트라시마코스와 소크라테스의 ‘정의’ 논쟁[플라톤의 '국가']을 시작으로 한나 아렌트의 비판까지 - 강의와 비평, 논문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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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시마코스와 소크라테스의 ‘정의’ 논쟁[플라톤의 '국가']을 시작으로 한나 아렌트의 비판까지 - 강의와 비평, 논문 포함

개혁신학어벤져스 2023. 11. 9. 12:54

 본 자료는 '국가는 왜 존재해야 하며, 그 안에 사는 시민들은 어떻게 국가 안에서 행복해질 수 있는지?'에 대해 답 또는 훈을 줍니다. 김헌 교수님이 플라톤의 '국가'라는 저작을 중심으로 아주 간명하게 결론을 내리는데요. '자유민주주의'를 사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법과 정치와 시민'에 대한 개념을 점검하게 해주기도 합니다. 물론, 소위 '정의'라는 난해한 개념이 그 모든 것들을 관통하며 말입니다.

  * 물론, 신학적인 개념이 전혀 내포되지 않지만, 본 강의는 한국 교회 그리스도인들이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시민으로서의 자질과 태도'를 되새기기에 충분합니다.

 

 -> 개혁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특정 개념을 '정의'로 절대화 하기에 앞서, 사회에서 전제적으로 추구하는 가치 있는 것들을 존중하는 '신앙적 성숙함'을 드러내야 할 뿐입니다. 맹목적인 추구가 아니라 말입니다. 플라톤이 강조한 정치는 대표적으로 한나 아렌트에 의해 충분히 비판되고, 한나 아렌트도 다양한 사람에게 충분히 비판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시대가 요구하는 정치철학을 논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개혁교회적인 정치철학 관념을 잘 갖추길 원합니다.


 * [인생의 발견 EP_02]|김헌 교수 - 당신은 어떤 나라에서 살고 싶으신가요? 

https://www.youtube.com/watch?v=vNFiGM1H-0Y 


 * 이하, '플라톤의 국가론'을 이해하기에 좋은 추천 논문과 그것을 반박하는 한나 아렌트의 입장을 재비판한 논문입니다.(PDF, HTML) 세속적인 정치철학을 객관적으로 비판하고, 그것의 시대적 한계를 수용하며, 개혁신학적 정치관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정의에 대한 트라시마코스의 ‘주장(logos)’과 ‘생각(doxa)’.pdf
0.36MB
아렌트의 플라톤 비판에 대한 고찰, 목적-수단 논리를 중심으로.pdf
0.48MB

 


 -> 개혁신학적 정치관을 소개한 자료를 링크합니다!

2023.11.09 - [신학 자료/역사신학] -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되는 국가관[정치관] - 제언, 영상, 논문 포함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되는 국가관[정치관] - 제언, 영상, 논문 포함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져야 할 올바른 국가관'을 다룹니다. 순서대로 보시면, 그것에 대한 개혁주의적 관점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성경을 제대로 읽고 국가와 정치 개념에 적용할 수 있

cr-ministry-institute.tistory.com


 -> 위에 첨부되었던 2개의 논문 중  한나 아렌트에 관한 원문(HTML)입니다.(위 논문은 제대로 게시되지 않네요;)

 

,
;
( ):  
,
Social Science Studies 2019 27 2 8-37 Korean  
:
.
.
.
.
.
. .  
http //dx doi org/10 17787/jsgiss 2019 27 2 8  
아렌트의 플라톤 비판에 대한 고찰 :  
목적-수단 논리를 중심으로  
표 광 민 중앙대학교  
이 연구는 한나 아렌트가 플라톤을 비판한 근본적 이유가 목적 수단 논리에 대한 거부 때문임을 주장하려 한  
-
다. 기존의 아렌트 연구가 그녀의 플라톤 비판을 철학사적 맥락에 집중해 설명해 온 것에 비해, 이 글은 목  
적 수단 논리에 주목한다. 인간은 특정 가치를 목적으로 하여, 지상에 유토피아를 건설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
않아 왔다. 철학자 왕을 정점으로 하는 이상적 국가체계를 설계한 플라톤은 유토피아 기획의 선구자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아렌트는 정치의 본질을 대화에서 찾음으로써 진리의 지배로부터 탈피할 것을 요청한다. 진리를  
목적으로 하는 목적 수단 논리가 정치 영역에 진입하는 것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진리의 구체적 내용  
-
을 알 수 없다는 절대적 한계를 안고 있다. 아렌트는 진리가 아닌, 인간이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는 다양  
성을 정치의 핵심적 특징으로 이해했다. 이는 플라톤과 달리, 정치를 진리로부터 분리시킴으로써, 정치의 영  
역을 확보하려는 시도이다. 그녀는 서로 다른 사람들 사이의 대화 속에서 정치의 본질을 찾으려 하는 것이다.  
아렌트, 플라톤, 목적 수단 논리, 진리, 정치, 다양성  
-
이 논문은  
년도 교육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완성되었습니다  
2016  
*
(
).  
NRF-2016-S1A3A2924409  
社會科學硏究 第27輯 2號•2019年  
8
Ⅰ. 연구주제적  
이 연구는 한나 아렌트가 플라톤을 비판한 근본적 이유가 목적-수단 논  
리에 대한 거부 때문임을 주장하려 한다. 아렌트의 플라톤 비판은 널리 알려  
진 주제이지만, 이에 비해 그 비판의 원인이 되는 목적-수단 논리는 큰 관심  
을 받지 못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기존의 아렌트 연구가 아렌트의 플라  
톤 비판 자체에 집중하여, 그녀가 말하는 ‘진리와 정치’ 사이의 대립을 그대  
로 수용했기 때문이다. 물론 아렌트 본인의 서술에 따른 플라톤 비판의 이유  
를 확인하는 것은 필수적인 학문적 과정이다. 이 글은 기존의 연구들이 집중  
해 온 진리와 정치의 대립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아렌트의 진리에 대한 비판  
이 무엇 때문인지에 대한 질문을 추가적으로 제기하려 한다. 그리고 이에 대  
한 답을 목적-수단 논리에 대한 아렌트의 거부에서 찾으려 한다. 목적-수단  
논리를 통해 진리는 스스로를 궁극적 목적으로 설정하는 반면, 인간의 삶과  
정치를 수단으로 격하시킨다. 아렌트의 진리 비판, 그리고 플라톤 비판은 따  
라서 구체적으로 진리와 정치 사이에 위계를 나누는 목적-수단 논리에 대한  
비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여기에 착안하여 이 연구는 아렌트의 플라톤 거부  
를 목적-수단 논리에 대한 비판이라는 관점에서 분석하며, 아렌트가 목적-수  
단을 벗어남으로써 가능해지는 자유를 정치의 핵심으로 여겼음을 주장하려  
한다.  
표광민_아렌트의 플라톤 비판에 대한 고찰  
9
이 연구는 아렌트의 플라톤 비판을 철학사적 측면이 아닌 논리적 측면  
에서 접근하며,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모호하게 남아 있는 아렌트의 정치  
이해를 명확하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최근까지 지속되고 있는 아렌트  
(
,
:
)
Benhabib 2000 xliv  
에도  
에 대한 학술적, 대중적 관심, 이른바 아렌트 르네상스  
불구하고, 그녀가 과연 정치를 무엇으로 이해했는지에 대한 명확한 분석을  
찾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 일차적 원인은 물론 그녀가 정치에 대한 정의  
를 제공하지 않은 데에 있다. 그녀의 저작들은 정치의 주요한 속성들을 여러  
각도에서 포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는 명  
확한 답을 내어놓지 않고 있다. 그녀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인간의 조건』  
( )  
1958  
은 정치의 특성을 인간 사이의 관계로부터 형성되는 공간성에서 찾고  
(
,
:
)
(
)
Arendt 1998 182-3  
1963  
있다  
. 『혁명론』  
은 폭력과 대비되는 정치의 제도적 측  
( )  
1967  
는 진리와 정치 사이의 갈등관계에  
면을 강조하고 있다. “진리와 정치”  
집중하고 있다. 『정치로의 소개』는 정치가 아닌, ‘정치의 의미’가 자유라고 말  
(
,
:
)
Arendt 2005 108  
. 물론 개별 저작을 통한 정치의 다양한 특성에 관  
하고 있다  
한 아렌트의 분석들은 각각의 의미를 지니며 모두 정치의 핵심에 놓여 있는  
(
)
action  
인간의 다양성으로 수렴하고 있다. 그리고 인간의 다양성은 말과 행동  
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음을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작 정치란 무  
(定義)  
엇인지는 정의  
되지 않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도식적인 설명으로 정치  
를 정의내릴 수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인정하더라도, 정치의 본질을 규명하  
는 것은 아렌트 연구에 있어서 하나의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이 연구는 플라톤에 대한 아렌트의 비판 근거를 목적-수단 논리에서 찾  
음으로써 아렌트가 생각한 정치란 ‘대화로서의 정치’라는 해석적 정의1에 이  
르려 한다. 정치의 본질을 대화에서 찾음으로써 아렌트는 진리로부터 탈피  
1 아렌트의 정치 정의는 존재하지 않으므로, 이 연구는 그녀의 사유를 통해 정치의 정의에 다다르려 한다. 따라서 이  
연구의 정치에 대한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 아렌트의 정치 정의에 대한 해석적 성격을 지닌다.  
社會科學硏究 第27輯 2號•2019年  
10  
할 것을 요청한다. 아렌트가 추구하는 대화가 의미를 가지는 지점은, 대화가  
특정한 선험적 진리를 설득시키는 일방적 과정이 아니라는 데에 있다. 아렌  
트에게 옳고 그름의 문제는 지혜를 다루는 철학의 영역에 속할 뿐, 정치와는  
무관하다. 그녀는 정치 영역에서 우월적 진리의 존재 자체를 거부하며 동등  
한 자들 사이의 대화를 통해 정치가 구성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멀게는 플라  
톤이 진리의 지배를 정당화한 이후, 보다 가깝게는 헤겔이 세계사를 절대정  
신이 구현되는 과정으로 정의내린 이후, 인간의 역사는 진리의 실현 과정으  
(
,
:
)
Arendt 2006 75  
. 개인의 자유가 인간 사회에서 반드시 실  
로 흔히 여겨져 왔다  
현되어야 할 진리로 인정받을 때, 프랑스 혁명은 진리 실현의 시작점이라는  
가치를 부여받는다. 마찬가지로 계급을 철폐한 평등사회가 진리의 구현이라  
고 여겨질 때, 러시아 혁명은 인류사적 필연성을 지니게 된다. 프랑스 혁명이  
끝나고, 러시아 혁명 역시 소비에트의 붕괴로 종결되었음에도 진리의 발현  
이라는 역사철학은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다. 오늘날 진리의 지배를 옹호  
하는 대표적인 사고는 인간의 삶이 자유, 인권, 민주주의가 확장되는 방향으  
로 나아간다는 생각이다. 과학적, 논리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이러한 인식은  
대부분의 민주사회들이 공유하는 신념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진리의 구체적 내용을 알 수 없다는 절대적 한계를 안고 있다. 민주주  
의와 인권의 확산이라는 명분 아래 자행되는 전쟁, 선진화라는 이름으로 정  
당화되는 타국의 전통문화에 대한 멸시 등은 역사적 필연으로서의 진리가  
지배하는 세계가 과연 정의로운가라는 반문을 제기하게끔 한다. 이런 점에  
서 진리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자유를 핵심으로 하는 정치의 중요성을 강  
조한 아렌트의 사유는 여전히 가치를 지닌다. 대화를 통해 정치를 구성하려  
는 아렌트의 주장은 정치를 진리로부터 분리시킴으로써, 정치의 영역을 확  
보하려는 시도이다. 이러한 노력은 대화를 통해 진리에 다다를 수 있다는, 역  
(
,
:
Luban 1979  
시 진리와 정치의 통합 가능성을 기대하는 모든 시도에 반대한다  
)
93  
. 아렌트는 진리를 거부하며 인간의 삶이 보여주는 하나의 명확한 사실로  
표광민_아렌트의 플라톤 비판에 대한 고찰  
11  
부터 정치를 구성할 것을 제안한다. 아렌트가 인정하는 유일한 원칙은 인간  
( )  
plurality  
이다. 모든 사람이 각각의 의견과 생각을 가지고, 각자의 삶  
의 다양성  
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만이 인간이 경험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사  
람들이 각자 생각하는 진리가 서로 다르다는 경험적 사실에 의해 정치의 영  
역에서 진리의 존재는 부정된다. 아렌트가 플라톤과 달리 소크라테스의 삶  
에서 목격한 것은 진리의 구현이 아닌 대화와 토론이 정치공간을 구성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었다. 이 글은 아렌트 정치학의 플라톤에 대한 반발을 통해  
철학적 진리와 정치의 관계에 대한 아렌트의 생각을 구체화할 것이다.  
II.렌트석들  
기존의 연구가 아렌트의 플라톤 비판을 충실히 설명하고 있음에도, 아  
렌트가 플라톤을 거부하는 근거가 자유를 지향하는 정치의 탈목적성, 목적-  
수단 논리의 거부에 있다는 분석에는 이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아렌트가  
플라톤 사상을 진리의 지배 구상으로 비판한 이후, 아렌트의 비판은 서양 철  
학사의 맥락 속에서만 이해되었다. 그녀는 폴리스의 정치에 좌절한 플라톤  
으로부터 진리를 추구하는 서구 정치철학이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이에 따  
르면, 플라톤이 진리를 초월적 기준으로 설정하면서 인간사의 모든 일들을  
( )  
the tyranny of truth  
”가 나타났다는  
진리의 기준에 따라 평가하는 “진리의 독재  
2
(
,
:
)
Arendt 2004 428-431  
것이다  
. 아렌트는 플라톤이 철학자가 지배하는 정치체  
2 진리란 구체적인 사실의 기술(記述)과는 달리 초월적, 형이상학적 관념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성의 추론 능력으로부  
터 도출된 신념체계를 지닌다. 아렌트는 구체적으로 사람들에게 목격된 진실을 “사실적 진실(factural truth)”로, 이  
성에 의해 수립된 관념적 진실을 “합리적 진실(rational truth)"로 구분한다. 이를 테면 ”1914년 8월 4일 밤 독일군  
社會科學硏究 第27輯 2號•2019年  
12  
(
)
unpolitical by nature  
제를 구상한 것은, 철학적 진리가 “본질적으로 비정치적  
이라는 데에서 좌절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한 명의 철학자가 독립적인  
사유를 통해 도달하는 진리는 여러 사람이 사는 정치공간에서, 더 이상 진리  
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의견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하나의 의견  
은 다수에 의해 옳다거나 적합한, 유용한 생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으나 그  
러한 합의가 변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시대와 장소를 초월한 진리가 될 수는  
없다. 따라서 의견으로 상대화되지 않고 스스로의 절대성을 유지하기 위해  
(
)
element of coercion  
서 철학적 진리는 자신의 유효성을 주장하는 “강제적 요소  
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아렌트의 주장이다. 강제, 지배, 동원을 정치가  
아닌 것으로 파악하는 아렌트의 입장에서 진리는 비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
,
:
)
Arendt 2000 558-560  
. 자신의 사상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기 시작한 1958년의  
『인간의 조건』에서 아렌트는 플라톤의 진리관을 절대적 존재를 상정하는 다  
른 주장들과 비교하여 설명한다. 그녀가 보기에, 플라톤은 철학적 진리가 인  
간의 삶 뒤에 보이지 않는 초월적 원리로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플  
라톤의 입장은 인간이 따라야 할 궁극적 법칙으로 여겨졌던 기독교적 섭리  
( )  
Providence  
,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보편질서로서의 자연법, 헤겔 철  
학의 절대정신, 칼 맑스의 계급이익 등에 의해 반복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아렌트는 진리가 정치를 지배해야 한다는 전통의 근원에서 플라톤을 발견하  
(
,
:
)
Arendt 1998 185  
는 것이다  
. 진리의 지배 문제는 아렌트의 사후 1977년에 출간  
된 『정신의 삶 : 사유』에서는 “형이상학적 오류” 개념으로 다뤄진다. 형이상  
학적 오류는 추상적 진리를 구체적 현실의 우위에 위치시키는 관념을 가리  
킨다. 절대적 진리가 현실의 정치를 지배해야 한다는 형이상학적 위계에 대  
(
,
Arendt  
한 비판은 그녀가 생애 전반을 통해 견지한 사상적 입장이었던 셈이다  
이 벨기에 국경을 침입했다“는 것은 여러 사람들의 목격과 증언에 의해 확인될 수 있는 사실적 진실에 해당한다  
(Arendt, 2006: 323-325).  
표광민_아렌트의 플라톤 비판에 대한 고찰  
13  
:
)
.
1981 26-40  
아렌트의 플라톤 비판에 대한 연구들은 아렌트의 시각을 따라 진리에  
대한 비판을 수용하는 입장과 아렌트의 진리 거부를 비판하는 관점으로 크  
게 나누어진다. 아렌트가 설명하는 틀을 충실히 따르는 연구들은, 플라톤으  
로부터 진리를 정치의 우위에 놓는 철학 전통이 시작되었다는 아렌트의 비  
(
,
;
,
;
,
;
,
)
Parekh 1981 Canovan 1983 Villa 1999 Dolan 2006  
.
판을 재확인하려고 노력한다  
국내 문헌 가운데에는 대표적으로 박혁  
며 아렌트의 플라톤 비판에 동의하고 있다. 활동적 삶과 관조적 삶을 비교  
(
)
의 연구가 관련 내용을 소개하  
2009  
(
)
(
)
2016  
의 논문, 아렌트의 정치철학 전반을 다룬 정천  
2011  
한 전광식  
, 장영란  
)
의 글 등에서도 플라톤에 대한 아렌트의 비판이 부분적으로 검토되  
(
2009  
고 있다. 이러한 작업들은 아렌트를 따라 플라톤 이후의 기존 서구 사상체계  
에 대한 비판을 이어가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유럽의 철학적 전통은 “플  
라톤에 대한 주석들”에 해당한다는 화이트헤드의 표현은 플라톤이 학문 세  
(
,
:
)
Whitehead 1978 39  
. 이에 비해 아렌  
계에서 지닌 절대적 위상을 알게 해 준다  
트는, 그녀에 대한 폭넓은 관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비주류적인 학자로 남  
아 있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아렌트가 플라톤 이후 헤겔/맑스에 이르기까지  
의 서구 사상과 대결하며 자신의 독창적인 정치사상을 정립하는 방법을 취하  
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플라톤 이래의 주류적 서구사상이 지배, 폭력, 강  
제를 정치의 본질로 정의한 데에 반대하며, 동의와 합의, 대화를 중심으로 하  
는 정치 이해의 전통을 발굴하려 노력했다. 이러한 그녀의 시도는 서구 사상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재성찰을 의미하며, 따라서 당연히 쉽사리 받아들여  
지기 어려운 도발적 주장으로 여겨지곤 한다. 기존의 정치 이해는 정치를 기  
본적으로 지배라고 이해한다. 종교, 폭력, 자유시장 또는 돈, 주권자 등 지배  
의 주체는 매우 다양할 수 있으나 특정 원리가 인간 공동체를 지배하고 조직,  
운영한다는 사고 자체는 다수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플라톤에서 시작하여  
헤겔에 의해 완성되는 진리의 지배를 아렌트는 이러한 지배 중심적 사유 체  
社會科學硏究 第27輯 2號•2019年  
14  
계의 근원으로 비판하고 있다. , 아렌트의 정치사상은 진리 및 진리를 중심  
으로 형성된 사상체계에 대한 도전이라 할 수 있다.  
아렌트의 플라톤 해석에 대한 또다른 연구는 진리를 부정하는 아렌트의  
입장을 비판한다. 당트레브는 하버마스와 번스타인에 의해서 아렌트의 플라  
(
,
:
)
D Entrèves 1994 135-136  
. 하  
톤 거부가 거부되고 있다며 관련 논의를 검토한다  
버마스의 경우 아렌트가 좌절된 행동의 해결책으로 인간 상호간의 약속에 기  
(
)
illusionary convictions  
댈 수밖에 없는 것은, 그녀가 “착각적인 확신  
”과 “비착각  
)
”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떠한 특정 의  
(
nonillusionary convictions  
적인 확신  
(
)
(
,
:
doxa  
Habermas 1977 22-  
에서도 유효성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
24  
. 하버마스는 의사소통행위이론을 통해 주장하듯이 대화와 토론이라는 이  
성적 행위가 궁극적으로 인간의 해방에 다다를 가능성을 여전히 기대하고 있  
. 당트레브의 해석에 따르면, 하버마스의 이러한 평가는 아렌트가 플라톤  
적인 진리의 확실성을 거부한 데 대한 비판으로 읽혀진다. 인간의 정치로부  
터 플라톤적 진리를 거부하려는 아렌트의 시도를 하버마스는 다시 거부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데이비드 루반은 네 가지 점에서 아렌트와 하버마스  
의 입장 차이를 지적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1) 의사소통과 정치적 토론 등  
의 대화가 하버마스에게는 동의에 이르기 위한 대화 자체를 의미하는 반면,  
아렌트에게는 의견이 대립하는 논쟁까지도 포함하며, 2) 지식과 정치의 상호  
환원이 하버마스에게는 가능한 반면, 아렌트에게는 불가능하고, 3) 진리란  
것이 하버마스에게는 합리적 정치의 최종 보장책인 반면, 아렌트에게는 폭  
정으로의 길을 의미하고, 4) 하버마스에게 이상적 의사소통이 모두의 합리  
적 동의를 이끌어 내는 것으로 이해되는 반면, 아렌트에게 토론을 통한 동의  
는 합리성의 문제와 관계없이 단지 특정 사안에 대한 정치적 결정을 위해 하  
(
,
:
)
Luban 1979 93  
. 이러한  
나의 의견이 정책으로 결정되었음을 의미할 뿐이다  
분석은 하버마스가 철학적 진리를 통해 정치적 의견을 비판하는 플라톤적 전  
통 위에 서 있음을 함의한다. 번스타인은 아렌트가 진리와 의견의 차이를 강  
표광민_아렌트의 플라톤 비판에 대한 고찰  
15  
조한 나머지, 이성에 의해 뒷받침 되는 공통의 합의를 신뢰하지 못하고 모  
(
)
pseudo argumentation  
든 논증을 “허위의 논증  
”으로 의심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
Bernstein 1983 221-222  
. 당트레브는 이러한 이성과 합리성, 진리의 입장으로  
(
,
:
부터 제기된 아렌트 비판에 대한 대응을 F. 메흐너 바나드로부터 찾는다. 바  
나드에 따르면, 아렌트는 의견의 충돌과 타협을 통해 이루어지는 역동적 정  
치의 대표성을 포착하고 있다. 이는 시민들이 정치를 통해 합의체제의 구성  
에 다다를 수 있으며, 정치적 대표체 구성의 근거는 진리가 아닌 공동체 구성  
(
,
:
)
Barnard 1977 42-43  
.
원들의 동의에 있음을 의미한다  
III.질세계성으로-리  
이 연구는 아렌트의 플라톤 비판을 철학사의 흐름 속에서가 아니라, 철  
학적 진리를 목적으로 하는 목적-수단 논리에 대한 아렌트의 거부로부터 이  
해한다. 목적-수단 관계는 특정 목적과 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 사이의  
(
the category of  
관계를 의미한다. 아렌트는 이 관계를 "목적과 수단의 카테고리  
)
( )  
the means-end category  
" 또는 “목적과 수  
means and end  
", "목적-수단 카테고리  
(
)
(
,
:
,
,
)
Arendt 1998 145 152 158  
.
the means-end relationship  
단의 관계  
” 등으로 부른다  
이 연구는, 목적-수단 카테고리 속에서 합리적 수단을 활용한 목적 달성이라  
는 사고방식을 강조하기 위해 ‘목적-수단 논리’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아렌트  
(
)
(
)
( )  
work  
으로  
action  
labor  
는 『인간의 조건』에서 인간의 활동을 행동  
과 노동  
, 작업  
분류한다. 행동은 개별 인간들이 다른 사회 구성원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표  
출하는 활동을 의미한다. 이에 비해 노동은 자연에서 생존에 필요한 산물을  
얻는 일, 작업은 자연물을 인공물로 가공하는 과정을 가리킨다. 이 때 노동과  
社會科學硏究 第27輯 2號•2019年  
16  
작업은 생존과 편익이라는 목적을 위해 기능한다. 노동에 해당하는 농경, 어  
, 수렵채취 등을 통해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자원을 얻어 생존에 필수적인  
식량 등의 생필품을 확보한다. 아렌트가 작업으로 분류하는 것은 공업활동,  
건축, 조각 등으로 자연을 적극적으로 변형시켜 이익과 효용을 얻는 활동들  
을 가리킨다. 따라서 노동과 작업은 특정한 목적을 위해 수단을 조직, 사용하  
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노동은 인간의 생존, 작업은 생활의 편익이라는 목  
적을 위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목적-수단 논리에 귀속되는 활동이다. 아리  
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목적과 수단의 관계에 대한 논의를  
(馬具)  
제시한 바 있다. 그의 예시에 따르면, 말고삐 등 마구  
제작 기술은 승마  
를 목적으로 하는 수단이고, 승마 기술은 다시 전쟁에서의 전술운용을 목적  
으로 하는 수단이 된다. 하나의 수단이 특정한 목적을 위해 사용되고, 이 때  
의 목적이 보다 상위의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면서 목적과 수단의 연계 관계  
(
)
.
Nikomachische Ethik 1094a4  
를 형성하는 것이다  
정해진 목적을 위해 적합한 수단을 활용하는 목적-수단 논리는 물질세  
계의 필요성에 근거하고 있다. 물질세계란 인간의 자유, 의지가 작동하지 않  
, 인간 삶의 조건이 되는 환경을 가리킨다. 물질세계는 따라서 인간이 만드  
는 사회, 공동체가 아니라 그러한 인위적 단위를 둘러싼 주변 환경에 해당하  
며 인간의 의지가 아닌 자연의 법칙을 따른다. 물론 이는 개념적 구분이며,  
공간적, 영토적 경계를 갖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개입하지 않는 물질세계는  
생물학적 필요성에 따라 목적-수단 논리가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형태로 관  
철되는 공간이다. 그리고 인간이 활동하는 영역 역시 일정 부분 목적-수단 논  
리에 따라 작동한다. 인간은 의지, 의식, 자유 등의 인간적 특성과 함께, 단  
순한 생명체로서의 속성까지 함께 지니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
ζῷον πολιτικόν,  
언어를 지녔다는 점에서 여타의 존재들과는 다른 정치적 존재  
)
zoon politikon  
라고 정의내린다. 인간을 동물 등과 구별시켜주는 것은 언어이  
. 동물들 역시 즐거움과 쾌락 등을 표현한다. 그러나 인간의 언어만이 옳고  
표광민_아렌트의 플라톤 비판에 대한 고찰  
17  
(
)
. 인간은 생물학  
Politik 1053a5-18  
그름 등의 윤리적 사안들을 다룰 수가 있다  
3
(
)
(
)
zoē  
bios  
적 삶  
과 동시에 정치적, 사회적 삶  
을 누리는 존재이다. 이로부터 인  
간이 속하는 두 세계가 개념적으로 나누어질 수 있다. 흔히 사회라고 불리는  
인간들 사이의 공동체, 인간세계는 자연의 논리로부터 벗어난 법, 도덕, 질  
서 등의 인위적인 규범에 따라 움직인다. 이에 비해  
의 측면에서, 인간을  
zoē  
포함한 모든 생명체들은 생물학적 존재로서 물질세계에 포함된다. 인간 고  
유의 의지가 개입되지 않는 영역, 즉 생명 유지와 관련된 차원에서 개념화할  
수 있는 물질세계는 모든 동물들에 내재된 생물학적 본능이 지배하는 공간이  
. 이러한 본능은 생존, 편익 등의 목적을 위해 필요한 요건들을 충족시키려  
한다. 물질세계에서는 목적을 충족하기 위해 수단을 동원하는 것이 생존을  
위한 필연적인 과정이므로, 합리성과 효율성이 중요하게 부각된다. 따라서  
생명체로서의 존재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을 효율  
, 합리적으로 활용하는 방법뿐이다.  
필요성과 더불어 물질세계의 목적-수단 논리를 설명하는 또 다른 핵심  
(
)
(
)
coercion  
oppression  
적 요소는 폭력이다. 폭력은 흔히 강압  
, 억압  
)
는 폭력과 동시에 권력을 의미하  
등의 의미로  
(
Gewalt  
사용된다. 독일어에서 폭력이란 단어  
( )  
force  
으로 바  
기도 한다. 그러나 아렌트는 폭력을 양적인 의미에서의 물리력  
라보고 있다. 세계를 파괴하는 인간의 폭력은 본질적으로 인간이 생산과정  
(
,
:
)
Arendt 2005 154  
. 파괴력과 생산력  
에서 사용하는 힘, 즉 생산력과 동일하다  
을 구분하는 것은, 물리력으로서의 폭력이 생산을 위해서 사용되느냐, 파괴  
를 위해서 사용되느냐는 용도의 차이일 뿐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아렌트는  
폭력을 기본적으로 중립적인 힘으로,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수단에 작용하  
3 조르지오 아감벤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zoē bios 사이의 구분으로부터 근대 주권 개념의 작동원리를 도출  
한다. 그는, 생체정치학적(biopolitical) 근대 주권이 인간의 삶을 생물학적 삶(zoē)으로 제한시키며 대상화함에 따  
라, 정치적 삶(bios)을 박탈당한 호모 사케르(homo sacer)의 형상이 전면화되었다고 진단한다(Agamben, 1998:  
1-2).  
社會科學硏究 第27輯 2號•2019年  
18  
는 비정치적인, 물리적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물질세계의 목적-수단 논  
리는 이러한 물리력으로서의 폭력을 통해 구현된다. 자연의 대상물에 폭력  
을 가해 (가공단계를 거쳐) 소비함으로써 인간은 생존과 편익이라는 생물학  
적 필요성을 충족시킨다. 따라서 폭력은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들이 물질세  
계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핵심동력이다. 이 과정에서 폭력은 물질세계  
(
)
( )  
object  
의 관계로 연결시킨다. 인간은 수  
subject  
의 개별 개체들을 주체  
와 객체  
, 채취, 가공, 제작 등의 활동에서 주체로 존재하며, 객체인 자연(), 즉  
자원, 동식물 등을 대상으로 폭력을 사용한다. 아렌트는 수단인 대상물에 대  
해 가해지는 폭력을 기계적인 물리력의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 사이에 폭력이 사용된다는 것의 의미는,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대상으  
로서 수단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생존과 편익을 추구하는 생물학  
적 존재라는 측면에서 물질세계에 속하며, 목적-수단 논리를 따른다. 생명을  
유지하고 이익을 추구하는 점에 있어서는 원칙적으로 인간과 다른 생명체들  
사이에 차이를 발견하기 어렵다. 생물학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생존과 편익  
이라는 목적을 충족시킬 필요성에 따라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수단을 활용한  
. 아렌트는 이 지점에서 폭력과 권력을 구분한다. 폭력이 주체와 객체 사이  
에 작용하는 힘인데 반해, 권력은 주체로서의 인간들 사이에 작동하는 힘이  
. 아렌트의 이러한 폭력/권력 구분은 권력에 대한 이상화가 아닌, 물질세  
계의 목적-수단 관계로부터 파생하는 논리적 귀결에 해당한다. 인간이 물질  
세계의 사물들을 대상으로 하여 행사하는 폭력은 힘을 가한다는 물리적 의미  
가 중요하다. 이와 달리 인간의 세계는 이러한 물리적 폭력에 의해서만 작동  
할 수는 없다. 강제와 억압만으로 인간의 질서는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폭  
력 이외에 인간의 결정을 설명할 수 있는 요인은 바로 동의이다. 동의에 기초  
한 행동은 타자의 폭력에 종속되지 않은 채 이루어지게 된다. 이러한 동의를  
끌어내기 위한 과정이 바로 설득이며, 이것이 권력이 물질세계가 아닌 (대상  
화되지 않은) 인간들 사이에서만 형성되는 이유이다. 그리고 아렌트가 권력  
표광민_아렌트의 플라톤 비판에 대한 고찰  
19  
을 뜻하는 라틴어 단어  
와 독일어 단어  
를 예로 들어 설명하듯  
potentia  
Macht  
, 권력이 가능성의 영역에 속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른 이들의 동의를 이  
끌어내어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가능성을 지닌 힘이 바로 권력인 것이다  
(
,
:
)
Arendt 1998 200-201  
. 권력에 의해 질서가 형성되는 인간세계에 비해, 목적-  
수단 논리에 따라 주체가 객체를 사용하는 물질세계는 설득의 과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생존과 편익이라는 생물학적 욕구가 목적으로서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목적이 정해져 있으므로, 물질세계에서 이뤄지는 것은 수단  
을 합리적, 효율적으로 동원하여 목적을 달성하는 구체적 실행과정 뿐이다.  
필요와 폭력을 특징으로 하는 물질세계는 새로운 것이 없는 반복적 순  
환체계를 형성한다. 목적-수단 논리는 자연이라는 이 거대한 순환체계를 지  
탱하는 질서이다. 인간은 목적-수단 논리에 따라 노동과 작업을 통해 다른 사  
물들을 수단으로, 자신의 목적인 생존과 편익을 달성한다. 이 때 노동과 작업  
이 이루어지는 공간적 범위는 구체적으로 지구라는 제한된 영역이다. 하나  
의 거대한 순환계를 이루는 지구 안에서 물질은 인간에 의해 생산되고 인간  
의 사용을 거쳐 인간에 의해 파괴, 분해된 후 다시 가공된다. 인간이 파괴하  
는 것은 인간이 만들었던 것이고, 파괴에 사용되는 폭력은 생산에 이용되었  
(
,
:
)
Arendt 2005 154  
. 인간은 목재를 사용하여 가  
던 폭력과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구와 건물을 만들어 사용하며, 수명이 다한 가구나 건물의 목재를 재활용하  
여 다른 사물을 만든다. 자연물이 인간의 폭력에 의해 가공되고 사용된 뒤,  
분해되고 재가공되는 순환이 진행되는 것이다. 이 거대한 순환 과정에서 새  
로운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물질세계의 불변성에 대한 인식은 이미 소크라  
(
)
( )  
Parmenides  
에 의해  
pre-Socratic  
테스 이전  
그리스 철학자인 파르메니데스  
nihil  
(()에서는 아무 것도 나올 수 없다)  
(
.
,
)
Frag B 8 12  
.
라는 구절로 표현되었다  
ex nihilo  
인간의 (정치)세계와 대비되는 물질세계에서 목적과 수단 사이에 새로운 것  
은 개입하지 않으며, 다만 물질들만이 폭력을 통해 순환할 뿐이다. 앞서 말했  
듯이, 새로운 것이 개입하지 않는 순환의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효율성과 합  
社會科學硏究 第27輯 2號•2019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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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zoe  
로서 인간이 폭력을 통해 수단인 자연을 이  
리성뿐이다. 물질세계의 존재  
용하는 활동은 결국 생존과 편익을 목적으로 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정해진  
목적을 산출해내기 위한 수단 동원 과정에서 폭력, 즉 인간의 힘을 효율적이  
고 합리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관건이 된다.  
IV.-치  
1. 목적-수단 논리로서의 플라톤 사상에 대한 아렌트의 비판  
플라톤이 진리를 목적으로 하는 물질세계의 목적-수단 논리를 인간에  
게 부과했다는 것이 아렌트가 플라톤을 비판하는 핵심적 이유이다. 특정한  
진리를 최종목적으로 하는 사고는 아렌트에게는 인간이 물질세계에서 벌이  
는 노동, 작업과 근본적으로 다를 바 없다. 물질세계에서 생존과 편익이 최종  
목적으로 자리하듯이, 이미 존재하는 진리는 스스로를 궁극적 목적으로 하  
는 진리의 세계를 형성한다. 플라톤이 추구하는 진리의 세계에서 목적으로  
서의 진리는 인간의 의지가 개입하기 이전에 초월적으로 존재한다. 물질세  
계에서 생물학적 인간이 생존과 편익이라는 최종 목적에 종속되는 존재이듯  
, 진리의 세계에서도 진리를 실현하기 위한 목적-수단 논리에 인간은 종속  
되는 것이다. 진리의 실현이 궁극적 목적으로 인정받는다면, 영속적인 진리  
는 개별 인간 및 인간집단이 내리는 판단 및 결정보다 우월한 것으로 여겨지  
게 된다. 진리를 정점으로 하는 목적-수단 논리는, 인간들 사이의 합의와 동  
의로 이루어지는 정치의 가치를 박탈하고 정치를 수단으로 격하시킨다. 아  
표광민_아렌트의 플라톤 비판에 대한 고찰  
21  
렌트가 말하듯, “파르메니데스와 플라톤으로부터 시작하는 정치사상의 철  
(
)
citizenship  
학적 전통은 명백히 폴리스와 시민성  
과의 대립 속에서 수립되었다  
.” 인간의 의견과 판단은 불확실하며 또한 불안정하다. 여론  
이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 또는 대중의 의사와 선  
(
,
:
)
Arendt 2006 156  
(
)
(
,
:
)
Arendt 2006 228  
. 불확  
constant flux  
호는 "지속적인 유동성  
" 상태에 놓여 있다  
실한 인간의 사고가 내린 잘못된 결정의 대표적 사례는 소크라테스의 죽음  
이다. 아렌트는 플라톤이 목적-수단 논리를 통해 정치를 진리에 종속시킨 계  
(
,
:
;
,
:
;
Parekh 1981 23-26 Canovan 1983 257-261  
기를 소크라테스의 죽음에서 찾는다  
,
:
;
,
:
)
Villa 1999 93-96 Dolan 2006 269-270  
. 그녀는 “우리 정치사상의 기원은 소크라  
테스의 죽음이 플라톤을 절망케 하고, 동시에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에 대해  
(
,
:
)
Arendt 2005 6-7  
고 말한다.  
근본적으로 의구심을 갖게 만들면서 시작되었다”  
물론 아렌트가 말하는 “우리 정치사상의 기원”이란 그녀가 자신의 철학으로  
(
)
vita activa  
거부하려 했던, 활동적 삶  
을 배제하고 정치를 진리의 실현장으로  
(
)
(
,
:
)
Arendt 1998 20-21  
. 플  
vita contemplativa  
격하시킨 관조적 삶  
의 태도를 의미한다  
라톤 철학은 불확실한 의견과 판단의 영역으로부터 벗어나 영속적이고 불변  
하는 진리를 추구했다. 플라톤의 유명한 ‘동굴의 우화’가 보여주듯이, 진리는  
인간의 인식 너머에 이미 존재하며, 인간은 다만 철학적 사유를 통해 이러한  
진리의 영역에 다가갈 뿐이다. 이렇듯 진리가 최종 목적으로서 정치 위에 군  
림하도록 한 것은, 플라톤이 인간의 삶을 인간 스스로의 불확실한 의견과 판  
단에 맡길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렌트는 이 과정에서 정치를 지배  
와 동일시하는 사유가 나타났다고 비판한다. 정치는 토론과 설득이라는 불  
확실하고 불안정한 과정이 아니라, 확고한 진리를 이해하는 지혜로운 자의  
지배를 의미하게 된 것이다.  
아렌트의 관점에서, 플라톤의 철학은 진리를 목적으로 삼고, 정치를 진  
리 실현을 위한 수단으로 종속시켰다. 이것은 아렌트가 생각하는 인간의 근  
(
)
( )  
teleology  
에 의해 거부됨을  
plurality  
본조건인 다양성  
이 우월적 진리의 목적성  
社會科學硏究 第27輯 2號•2019年  
22  
의미한다. 그녀의 입장에서 플라톤은 정치를 지배로 대체시킨 잘못을 범한  
셈이다. 플라톤은 무고한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죽게 한 정치에서 대화와 토  
론의 가치를 박탈한다. 올바른 정치를 위해서는, 철학이 정치를 이끌어야 한  
다고 생각한 것이다. 철학자가 왕이 되어 진리를 구현해 나가야 한다는 주장,  
즉 국가가 철학의 작업물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플라톤은 진리의 실현  
을 정치 공동체의 목표로 설정하고 이러한 목표를 실현시키기 위해 철학자에  
게 공동체의 지배라는 임무를 맡기려 했다. 이것은 정치가 범한 잘못, 즉 소  
크라테스의 죽음에 대한 플라톤의 보복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아렌트는 정  
치가 잘못을 범할 수 있는 문제의 원인을 인간 행동에 내재한 필연적 한계에  
서 찾는다. 노동, 작업은 특정 목적을 설정하고 그에 따라 필요한 수단을 동  
원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노동과 작업은 한 개인 또는 개인들 사  
이에 사전에 합의된 목표와 목표달성 방식에 따른 기능적 실행으로 이루어지  
게 된다. 반면, 인간의 행동은 인간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대화와 토  
, 논쟁과 타협을 통해 노동과 작업이 필요로 하는 목표 자체를 결정한다.  
이 때 인간의 행동은 필연적으로 공동체의 다양한 구성원들 사이에서, 개인  
의 통제력 너머에서 일어난다. 이로부터 행동은 노동, 작업과 달리 “결과의  
(非可逆性)  
(
the unpredictability  
, 행위자의 익명성  
예측불가능성, 과정의 비가역성  
,
,
)
of its outcome the irreversibility of the process and the anonymity of its authors  
”이라는 한  
(
,
:
)
Arendt 1998 220  
. 정치 영역에서는 다양한 인간들의 활동이 서로  
계를 갖는다  
교차하면서 공동체의 정치적 결정이 이루어진다. 정치과정에 많은 사람들  
이 개입하는 만큼, 그 결과는 예측했던 것과 달리 흘러갈 가능성이 있다. 또  
한 개인이 자신의 경제적, 시간적 부담을 통해 진행한 일과는 달리 공동체 속  
에서 이미 진행된 일은 되돌릴 수 없다는 비가역적 성질을 갖는다. 그리고 공  
동체 속에서 이루어진 일인 만큼, 매순간 일에 대한 책임자를 찾을 수 없다  
는 익명성이 수반된다. 공동체의 정치적 결정이 이러한 요인들로 인해 만족  
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을 때, 인간은 좌절하게 된다. 좌절한 인간은 행  
표광민_아렌트의 플라톤 비판에 대한 고찰  
23  
동과 행동으로 구성되는 정치에 환멸을 느끼게 되며, 정치가 아닌 지혜로운  
자의 지배, 즉 진리의 지배를 추구하게 된다. 지혜로운 지배자, 철학자는 상  
황을 파악하고 통제함에 따라 사람들에게 자유를 제한하는 대신 “안정성, 안  
(
,
,
)
stability security and productivity  
”이라는 확실성을 제공하기 때문이  
전성, 생산성  
(
,
:
)
Arendt 1998 221-222  
.
. 그 대표적인 시도가 플라톤의 철학자-왕 기획이다  
플라톤은 철학적 진리가 정치를 지배하게 만듦으로써 불완전하고 어리석은  
대중들이 자유로운 행동을 통해 잘못을 범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려  
했다. 자유를 박탈함으로써 현명한 자의 계획에 따른 안정된 삶을 보장하려  
했던 것이다. 이 때 정치는 철학자가 독단적으로 구상하여 현실에서 실현시  
키는 하나의 작업과정이 된다. 플라톤은 아렌트에게 행동의 자유로부터 좌  
절해 작업의 영역으로 후퇴한 인간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진리를 정점으로 하는 플라톤의 목적-수단 논리는 근대 철학까지 서구  
사상을 지배한다. 아렌트는 확실성을 보장하는 진리 아래에 불확실한 정치  
를 종속시키려는 철학적 사유가 플라톤으로부터 기원하여 헤겔까지 지속된  
(
,
:
;
,
:
)
Arendt 1998 185 Arendt 2006 28  
. 플라톤에게는 철학적 진리가 궁  
다고 보았다  
극적 목적의 지위를 점하고 있었다면, 헤겔은 진리의 내용을 역사 또는 정신  
으로 변용하여 목적-수단 논리의 지배를 근대에도 지속적으로 관철시킨다.  
(敎義)  
종교적 교의  
마저 유효성을 상실한 근대 이후의 세계에서 진리의 절대성  
은 플라톤 철학이 말하는 그대로 유지되기는 어렵다. 그러나 고대적 진리 관  
념의 유효성 상실에도 불구하고, 목적-수단 논리는 헤겔의 역사철학에 의해  
지속되었다. 그는 인간이 추구해야 할 궁극적 진리로서, 자유를 본질로 하  
( )  
Geist  
을 제시했다. 그리고 인간의 역사를 바로 이 정신이 점차 확산되  
는 정신  
(
)
(
,
Auslegung  
Hegel  
어 가는 과정, 즉 “시간에 있어서의 정신의 전개  
”로 정의했다  
)
. 헤겔에 의해, 역사는 과거의 일들, 또는 그에 대한 기록이라는 제  
:
1970 96-7  
한적 의미를 벗어나 미래를 다루는 작업으로 확장되었다. , 정신이 인류의  
궁극적 목적으로서 초월적 진리의 지위를 획득함에 따라, 인간의 역사는 이  
社會科學硏究 第27輯 2號•2019年  
24  
목적이 실현되는 과정이라는 종속적 의미를 부여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아  
렌트는, 헤겔이 진리의 실현을 추구하는 고대 철학을, 정신의 발현을 추적하  
(
,
:
)
Arendt 2006 29  
. 헤겔은 인간의 역  
는 역사철학으로 전환시켰다고 평가한다  
사가 인류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정신의 끊임없는 발전 과정이라고 이해했  
. 정신의 확장은 자명한 이치로서, 모든 인류가 겪게 될 절대적 진리의 실  
현과정으로 규정된다. 따라서 인간의 역사는 개별 도시, 국가, 민족의 의지  
(
,
:
Arendt 2006  
를 초월하는 보편적 흐름, 즉 정신의 전개 과정을 따르게 된다  
)
75  
.
아렌트의 플라톤 비판은, 인간의 삶과 정치에 목적-수단 논리를 도입한  
시원적 책임을 플라톤에게 묻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녀가 보기에, 고대로부  
터 근대 철학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특정 가치에 종속되어 있다는 사고의 발  
원지가 바로 플라톤 철학이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에서 확인되  
, 인간의 결정은 무고한 철학자를 희생시킬 수 있다. 그러므로 앞서 보았듯  
, 플라톤은 인간의 판단 너머 초월적 진리의 지배를 통해 결과의 예측불가  
능성, 과정의 비가역성, 행위자의 익명성 등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  
했다. 정치를 인간 공동체의 운영에 대한 논의와 결정이라고 이해할 때, 플  
라톤이 말하는 진리의 지배는 인간의 정치 바깥에서 정치의 토대를 찾으려는  
입장이다. 이 때 정치는 독자성을 지니지 못한 채, 진리를 담당하는 철학에  
(
,
:
)
Arendt 2005 130  
. 그러나 다양한 사람이 모여살고 있다는  
의존할 수밖에 없다  
가장 기초적인 사실로부터 정치공간은 본질적으로 진리의 지배를 거부하는  
특성을 지니게 된다. 플라톤이 목적으로서의 진리가 지닌 절대적 위상을 확  
신하는 데 반해, 아렌트는 인간 공동체에서 진리 자체가 존립 가능한지에 대  
해 의문을 제기한다. 인간의 판단과 의지 너머에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진리  
는 여태껏 확인된 바 없다. 물론 한 개인의 사유 속에서 진리의 발견은 가능  
할 수 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개인이 진리라고 믿는 것 역시 공동체 속  
에서 하나의 의견, 주장이 될 뿐이다. 한 개인에게 진리인 것은, 다양한 사람  
표광민_아렌트의 플라톤 비판에 대한 고찰  
25  
들이 존재하는 공동체 속에서는 하나의 관점일 뿐이다. 진리를 대신하여 아  
렌트가 인간 공동체에서 발견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다양성이다. 인간의 다  
양성은 사람들이 서로 다르다는 일상적인 경험으로부터 충분히 확인된다.  
그리고 정치 공동체는 이렇게 다양한,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모여 공존할  
때에 수립된다. 그러므로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는 공동체에서 한 개인의 의  
견이 진리라는 이름으로 관철되려 하는 경우, 다른 의견은 억압당할 수밖에  
없다. 철학이 목적으로 하는 진리는, 서로 다른 인간의 공존을 통해서만 존립  
가능한 정치와 충돌한다. 정치는 사람들이 각기 내어 놓는 다양한 의견들의  
통합을 통해 유지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의견과 아무 상관없이 초월적으  
로 존재하는 “절대적 진리에 대한 요구는 모든 정치와 정부의 근간을 파괴한  
(
,
:
)
Arendt 2006 229  
.”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통해, 이러한 다양한 의  
견들 가운데 잘못된 의견이 채택될 수 있음을 목도했다. 아렌트 역시 그러한  
위험성을 인정하며, 이를 결과의 예측불가능성, 과정의 비가역성, 행위자의  
익명성으로 정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인될 수 없는 진리 위에 정치 공  
동체를 세울 수는 없다는 것이 그녀의 입장이다. 정치는 인간 공동체가 존재  
하는 방식 그 자체이며, 인간이 확신할 수 있는 것은 공동체의 내재적 특성인  
다양성뿐이기 때문이다.  
2. 행동을 통한 정치의 구성과 정치의 의미로서의 자유  
아렌트는 대화를 통한 인간 사이의 관계에서 정치의 본질을 찾음으로  
, 정치를 지배와 동일시하는 기존의 정치학 전통 전체와 대립한다. 그 시원  
적 주장이 플라톤인 만큼, 아렌트의 정치사상은 플라톤과의 대결 속에서 구  
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진리를 중시해 온 서구 사상의 전통과 대결하며, 아  
렌트는 정치를 진리나 역사와 같은 특정 목적으로부터 해방시키려 한다. 아  
렌트가 플라톤에 의해 시작된 철학의 지배에 대항하기 위해 찾아낸 대안은  
社會科學硏究 第27輯 2號•2019年  
26  
소크라테스의 사유였다. 그녀는 철학사적으로 목적-수단 논리가 인간의 삶  
을 지배한 것이 플라톤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수단화되지 않은 정치적 원형  
을 회복하는 실마리는 플라톤 이전의 소크라테스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는 것  
이다. 아렌트가 플라톤이 기록한 대화 속 소크라테스의 모습을 통해 플라톤  
에 반대하는 것은, 일견 아이러니로 보이기도 한다. 플라톤이 전하는 소크  
라테스의 말과 행동은 역사 속 실제 소크라테스의 모습이 아니라, 플라톤이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 위해 각색되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플라톤이 자신의  
(
)
historical Socrates  
저작에 등장시킨 소크라테스가 실제의 역사적 소크라테스  
의 모습과 얼마나 가까운지, 또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등은 일명 ‘소크라테  
스 문제’라고 불리며 지속적인 논의의 대상이 되어왔다. 물론 이것이 문제  
가 되는 이유는, 플라톤 저작 속에서 나타난 소크라테스의 주장 가운데 어  
느 것이 소크라테스의 생각이고 어느 것이 플라톤의 의견인지를 구분하기  
위함이다.4 아렌트의 플라톤 해석에 있어서 소크라테스 문제가 의미를 가지  
는 지점은, 아렌트가 소크라테스 문제에 대해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데  
(
,
:
)
Magiera 2011 185  
. 아렌트는 대화의 내용보다도 대화라는 형식 자체  
에 있다  
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플라톤의 사유가 동굴의 우화 속에서  
보여지듯이, 한 명의 철학자가 진리를 추구하는 방법으로 진행되는 반면, 소  
크라테스의 대화는 공동체 속에서 인간이 타자와 함께 살아가는 정치적 방  
(
,
:
)
Arendt 1998 4  
. 대화라는 형식이 의미하는 것은, 소크라테  
식으로 나타난다  
스가 독단적 진리의 지배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아테네 시민들 각자가 지닌  
(
)
doxa  
의견  
의 다양성을 중시했다는 점이다. 아렌트는 doxa 의 의미를  
dokei  
, 즉 “나에게 어떻게 보이는가”로 설명하면서, 이는 절대적 진리나 주관  
moi  
적인 편견도 아닌, 공통된 세계에 대한 각자의 다양한 생각이라고 의미를 부  
4 소크라테스 문제는 슐라이어마허에 의해 본격적으로 제기된 이후(Schleiermacher, 1818), 지속적으로 논의되어 온  
사안이다(cf. Ahbel-Rappe & Kamtekar, 2006: xiv-xv; Prior, 2006: 25-28; Vlastos, 1991: 46-50; Kahn,  
1998: 74-75).  
표광민_아렌트의 플라톤 비판에 대한 고찰  
27  
여한다. 서로 다른 다양한 의견들 사이의 소통은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추상  
적 진리를 확인하는 과정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공통된 세계에 대해 의견  
을 나눔으로써 세계의 현실에 다가가는 과정이다. 이러한 다양성의 대화는,  
소크라테스가 직접 실천했던 것처럼 단순한 설득이나 수사학을 넘어서서  
(
talking something  
, 즉 “다른 사람과 무언가에 대해 깊이 이야기하기  
dialegesthai  
)
(
,
:
)
Arendt 2005 13-14  
. 따라서 아렌트  
through with somebody  
”의 방식으로 이뤄진다  
는 대화를 통해 진리에 다다르는 것이 아닌, 사람들 사이의 동의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보았다. 대화를 통해 제시된 각자의 의견이 수렴하여 진리로 확정되  
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정치적’ 결정으로 합의되는 것이다.  
초월적 진리의 지배로부터 탈피했다는 점에서 정치는 자유롭다는 특성  
(
,
:
)
Arendt 2005 108  
을 가진다. 앞서 살펴본 아렌트의 “정치의 의미는 자유다”  
는 명제는, 정치가 진리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있음을 의미한다. 정치는 특정  
목적에 종속되지 않는 인간의 공동체적 삶 그 자체를 가리킨다. 그리고 그러  
한 정치에 참여함으로써, 인간은 자신의 자유를 누리고 확인하게 된다. 물론  
이 때의 자유는, 흔히 이야기되는 개인적 자유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이  
사야 벌린 이후, 자유는 흔히 정치 참여의 권리를 의미하는 적극적 자유와 정  
치로부터 구속받지 않을 자유를 의미하는 소극적 자유로 나뉜다. 그리고 외  
부의 압제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소극적 자유가 본질적 의미의 자유로 이  
(
,
)
Berlin 2002  
. 이에 비해 아렌트가 말하는 자유 개념은, 인간의  
해되고는 한다  
보다 생물학적인 측면까지를 포함한다. 외부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라  
해도, 인간은 생명체로서 생물학적 욕구 충족의 필요성에 종속된 존재이다.  
생물학적 욕구는 인간의 자유와 대립하는 근본요소인 셈이다. 앞서 살펴보  
았듯이, 생존과 편익은 이러한 생물학적 욕구를 의미하며 노동과 작업은 이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인간 활동을 가리킨다. 따라서 자유를 외부 권력의  
압제가 없는 상태로 정의내릴 때, 여전히 인간의 자유를 제약하고 있는 생물  
학적 충족욕구는 간과되는 것이다. 물론 인간의 모든 활동이 생명 유지와 생  
社會科學硏究 第27輯 2號•2019年  
28  
물학적 편의를 위한 것으로 설명될 수는 없다. 인간은 의지를 통해 자연적이  
고 생물학적인 욕구의 예속을 거부하는 선택을 내리는 존재이다. 이러한 비  
자연적, 비생물학적 활동들을 아렌트는 행동으로 분류하는 것이다. 물론 인  
간은 의식주가 충족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다. 그러므로 아렌트는 인간  
이 사적인 영역에서 경제적 요건들을 확보한 이후에, 생물학적인 필요로부  
터 자유로운 상태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 이후에야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  
(
,
:
)
Arendt 1998 65  
. 따라  
로서 행동을 통해 정치공간에 진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 노동, 작업과 달리 행동은 목적-수단 바깥에 위치해 있으므로 특정 목적  
을 위해 기능하지 않으며, 이 점에서 자유를 본질적 속성으로 지닌다. 목적-  
수단 논리에 종속되지 않는 자유를 통해, 행동은 새로운 시도를 추구한다. 목  
-수단 논리 아래에서는 이미 정해져 있는 목적의 실현이 관건이 되므로, 진  
리 달성과정에서의 효율성과 합리성만이 중시된다. 그러나 목적이 사라진  
상태에서는 본질적으로 새로운 사유가 가능해진다. 목적이 없는 다양한 시  
도들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행동은 목적을 결과로 산출하기 위해 반드시 적  
(
,
Arendt  
합한 수단적 활동을 해야 한다는, 인과적 관계로부터 자유로운 것이다  
:
)
1981 207-208  
대화는 개인의 행동을 매개하여 그 의미를 다른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이해시킴으로써, 자유로운 개별 행동들을 공동체에 통합시킨다. 따라서 진  
리를 대신하여 정치공간을 채우는 것은 사람들 사이의 대화이다. 아렌트에  
게 정치란 일방적으로 진리를 수용하는 수단적 활동이 아니라, 대화와 토론  
을 통해 공동체의 운명을 결정하는 집단적 행위를 의미한다. 진리가 정치를  
지배할 때, 대화와 토론은 이미 정해진 진리를 어떻게 실현시킬 것인가라는,  
본질적으로 기술적인 문제를 다루게 된다. 그러나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이  
공존하는 정치의 영역에서 진리란 존재하지 못하므로, 대화와 토론은 각자  
의 의견과 판단을 공유함으로써 공동체의 방향을 결정하는 과정을 의미하게  
된다. 목적-수단 카테고리에서는 목적의 실현이 지배적 의미를 지니게 되므  
표광민_아렌트의 플라톤 비판에 대한 고찰  
29  
, 모든 관계는 목적을 효율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기계적 관계로 환원된다.  
관료제, 대량생산 공장에서 볼 수 있는 효율성, 합리성 위주의 질서에서 인  
(
,
:
)
Arendt 1998 121  
처럼 기계적인 업무를 완수하도  
간은 마치 “말 못하는 로봇”  
록 요구받는다. 관료제가 완전히 관철되는 집단에서 소속 구성원은 사전에  
정해진 일을 효율적으로 수행하도록 기대되므로, 이 과정에서 자신의 의견  
과 생각을 말하는 대화는 필요 없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의견을 교환하는 대  
화는 효율적 목적 실현이 아닌, 의지의 표출로서 인간 스스로를 드러내게 된  
. 그러므로 특정 정보 또는 명령을 전달하는 역할을 넘어, 토론, 합의 등의  
(
,
Arendt  
형태로 나타나는 대화는 개별 인간들의 실존을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
)
. 공동체의 한 구성원이 대화를 통해 자신의 의견과 생각을 다른 구  
1998 179  
성원들에게 전할 때, 그의 의견은 한 사람의 의견으로 제시되고 평가받는다.  
그리고 대화를 매개로 취합된 사람들의 생각과 의견들이 그대로 정치 공동체  
의 다양성을 이루게 된다. 목적-수단 논리로부터 자유로운 행동은, 합리성과  
효율성에 종속되지 않은 채 개별 인간이 지닌 실존성을 증명한다. 그리고 대  
화를 통해 사람들은 그러한 행동들을 공공의 영역에서 종합하고 그 의미를  
평가함으로써 공동체의 다양성을 확인한다. 정치공간은 다양성을 보장함으  
로써, 목적-수단 논리의 물질세계와 구분되는 인간의 세계를 구성한다. 명령  
이 아닌 토론, 논쟁의 형태로 진행되는 대화는 인간 사이의 수평적 관계를 전  
제한다. 폭력을 활용하는 노동과 작업이 주체와 객체 사이의 관계를 가리키  
는 데 반해, 행동과 대화는 설득을 목적으로 하는 주체 사이의 관계를 의미한  
.  
플라톤 철학으로부터의 탈출이 아렌트 정치철학의 시작점이라면, 아렌  
(
)
work  
트 정치철학의 완결지점은 플라톤이 자유를 포기하고 작업  
의 영역으로  
)
, 구체적으로는 행동의 일종인 용서와 약  
(
action  
회귀한 반면, 아렌트가 행동  
속을 통해 자유를 다시 시도하는 순간에 위치한다. 앞서 살펴본 대로, 아렌트  
는 목적-수단 논리를 벗어난 행동을 통해 인간의 정치 공동체가 형성될 수 있  
社會科學硏究 第27輯 2號•2019年  
30  
다고 주장한다. 정치의 근간을 진리의 확실성보다는 자유로운 행동과 대화  
에 의해 확인되는 인간의 다양성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유로운 행  
동과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는 대화는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위험을 안고 있  
. 대화는 개인이 가진 의견들 사이의 소통일 뿐이기에, 철학적 사유가 기대  
하는 진리의 확실성을 보장할 수 없다. 소크라테스의 죽음과 같이 잘못된 결  
정을 내릴 수 있는 정치의 한계 앞에서 플라톤은 진리의 지배를 요청한다. 그  
러나 아렌트는 정치는 확실한 진리를 인정할 수 없기에, 또다시 잘못된 결정  
을 범할지 모른다는 한계를 지닌 채로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사람  
들의 의견은 아무 이유 없이도 시시각각 변할 수 있으며, 그러한 가변적 의견  
들이 교환되는 대화 역시 거짓 정보와 유행, 분위기 등에 의해 잘못된 결론  
으로 흐를 위험이 있다. 아렌트는 이러한 취약성을 인간 정치 공동체에 내재  
된 필연적 한계로 생각한다. 인간은 잘못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올바른 결  
정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다. 그리고 죽은 소  
크라테스를 되살릴 수 없듯이, 한 번 저지른 잘못된 일을 되돌릴 수 없다. 다  
, 인간은 과거에 저질러진 잘못된 행동들을 용서할 수 있다. 용서라는 능력  
이 없다면, 인간의 공동체는 과거의 적대와 피해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용서가 불가능하다면, 보복이 과거로부터 벗어나는 유일한 해법으로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에서 보복이 또다른 보복을 불러오는 악순환의  
사례들을 수 없이 알고 있다. 과거 적대세력으로부터 피해를 받았을 경우, 흔  
히 보복을 취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생각된다. 용서는 행동의 일종으로서  
이러한 당연한 반응을 선택하지 않는 자유를 의미한다. 용서는 과거가 더 이  
상 현재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과거를 과거에 묶어둠으로써 과거로부터 현재  
를 자유롭게 만든다. 과거를 향한 인간의 능력이 용서라고 한다면, 불안정한  
정치 공동체가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약속 때문이다. 용서를 통해  
적대관계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약속을 통해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  
. 약속은 법률, 규범 등의 형태로 공식화, 제도화된다. 공식적 제도들은 상  
표광민_아렌트의 플라톤 비판에 대한 고찰  
31  
호 동의의 범위를 확인시켜 줌으로써, 진리를 대신하여 정치의 근간 역할을  
(
,
:
)
Arendt 1998 236-238  
. 물론 용서와 약속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다시 약속  
한다  
을 어기고 용서받지 못할 짓을 저지를 수 있다. 그러나 그 때에도 인간의 정  
치는 다시 보복의 악순환을 끊어내는 용서를 보여주며, 약속을 통해 새로운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불안정하고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존  
재론적 한계를 인정할 때, 희망으로 남는 것은 진리의 도래가 아니라 폐허 속  
에서도 다시 새로운 시작을 시도할 수 있는 인간의 자유로움, 그 가능성이라  
할 수 있다.  
V.:미  
아렌트는 진리를 목적으로 하는 목적-수단 논리를 거부하며, 인간의 행  
동과 대화를 통한 정치의 구성을 주장한다. 이 과정은 철학사의 전통 속에서  
는 플라톤에 대한 아렌트의 비판, 또는 플라톤에서 헤겔까지 이어지는 서구  
사상 전반에 대한 아렌트의 도전을 의미한다. 그녀가 오랜 정치철학의 전통  
에 대립한 것은, 특정한 진리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인간의 삶은 수단으로 전  
락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회가 일견 긍정적으로 보  
이는 것은 사실이다. 인간의 자유, 평등, 천부적 권리 등이 진리의 내용이 될  
, 이러한 진리를 현실에서 구현하려는 움직임은 윤리적으로 올바르고 바  
람직한 것으로 여겨진다. 인간은 유토피아를 지상에 건설하려는 의지를 지  
니고 있고,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지속적으로 혁명과 개혁을 시도해 온 것 또  
한 사실이다. 아렌트가 말하듯이, 플라톤은 그러한 유토피아 기획의 선구자  
라 할 수 있다. 그는 철학자 왕을 정점으로 하는 이상적 국가체계를 설계도  
社會科學硏究 第27輯 2號•2019年  
32  
삼아, 현실의 정치질서를 변혁시켜야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아렌트는 이  
러한 유토피아 구상이 실제로 정치적 역할을 하지는 못했다고 냉정히 평가한  
(
,
:
)
Arendt 1998 227  
. 계급 없는 평등사회를 청사진으로 만들어졌던 소련은 관  
료 지배계급의 극단적 독재체제로 전락하고 말았다. 공산주의 이상을 실현  
하려는 의지가 인간의 현실이 지닌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왜곡된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이 때, 아렌트가 말하는 인간의 현실이란 물론 다양성을 가리  
킨다. 인간은 서로 다른 생각과 의견을 가진 존재이다. 그리고 다양한 의견과  
주장들 사이에서 하나의 생각이 진리라고 명확히 말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 누구도 무엇이 진리인지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구도 특정  
가치를 보편적 진리로서 모든 이들에게 설득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생각이 공존하는 인간의 현실에서 의견의 불일치는 피할 수 없는 일이  
. 의견의 다양성을 진리의 절대성으로 억누르려 할 때, 진리는 목적이 되고  
정치는 물론 인간 자체 역시 수단으로 전락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정치가  
이데올로기의 수단이 되었던 냉전의 역사는 진리의 지배가 보여주는 경직성  
을 증명한다. 보다 실질적인 변혁을 가능케 하는 것은 진리의 지배보다는, 그  
러한 진리의 지배를 벗어나려는 인간의 정치적 노력들이다. 다양한 인간의  
사고는 진리의 지배를 거부하는 자유로움을 특징으로 한다. 자유는 특정 가  
치를 절대시하는 목적-수단 논리를 벗어나게 함으로써, 인간에게 과거의 관  
습과 반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공한다. 혁명적 이념에 대  
항해 인간 삶의 방식으로서 정치가 가진 다양성, 자유로움 그리고 유연함의  
가치를, 아렌트는 1956년의 헝가리 혁명에서 발견한다. 그녀는 헝가리 공산  
화 이후 1956년까지의 12년보다 헝가리 혁명의 12일이 보다 풍부한 의미를 지  
(
,
:
)
Arendt 1958 5  
. 평등이라는 진리를 도식적으로 추구했던 이데  
닌다고 말한다  
올로기보다 이데올로기에 맞서 자신의 의지를 표출하려 했던 헝가리 혁명이  
보다 큰 가치를 지닌다고 평가한 것이다. 플라톤은 확고한 진리를 철학을 통  
해 탐구하고, 그렇게 인식한 진리를 정치의 내용으로 삼으려 했다. 정치를 진  
표광민_아렌트의 플라톤 비판에 대한 고찰  
33  
리의 확실성 위에 올려놓으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서로 다르다  
, 그리고 서로 다른 사람들마다 다양한 의견들을 지니고 있다는 당연한 사  
실 앞에서 진리의 확실성은 무너져 버린다. 정치 공동체를 떠받치는 것은 오  
히려 대화와 토론, 합의의 가능성이다. 대화는 서로 다른 의견을 지닌 사람들  
(
)
를 창출할 수 있  
res publica  
사이에서 동의와 협력을 이끌어냄으로써 공동체  
. 절대적 진리를 단순히 이행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 속에서 합의를 찾아가  
는 과정을 통해 목적-수단 논리를 벗어난 정치가 작동하는 것이다.  
社會科學硏究 第27輯 2號•2019年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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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광민_아렌트의 플라톤 비판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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