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이스라엘 - 팔레스타인 전쟁과 한국 교회의 대처 방법, 총신대 3학년 5반 연구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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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자료/역사신학

2023년 이스라엘 - 팔레스타인 전쟁과 한국 교회의 대처 방법, 총신대 3학년 5반 연구 자료

개혁신학어벤져스 2023. 10. 12. 11:54

 현재 너무나 큰 문제시 되고 있는 사건이고, 지난 수십년간 많은 우려와 준비를 요구한 사안입니다.

 한국교회의 대비에 도움이 될까하여, 조원들의 허락 없으나(연락드리기가 어려워) 일단 게재합니다. 혹시, 조원들께서 보신 후 불편하시면, 저에게 알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원문 그대로 올립니다.

 * 예전에 신대원에서 조원들과 함께 수행한 과제를 올립니다.(개인정보는 삭제했습니다. 제가 참여했으나, 다른 분들과의 공동 작업이라 '역사신학'탭에 올립니다.)

 * 하마스든 헤즈볼라이든 대게 IS로 대표되는 이슬람 원리주의임은 동일합니다.

 * 만약, 아래의 자료를 인용하실 분은 반드시 출처를 표기하셔야 합니다. 

 

[조별 발표 / 미국 현대교회사]

 

 

 

미국 교회의 이슬람에 대한 관점이 9.11 테러와 IS 사태를

거치면서 어떻게 변화되어 갔는지를 고찰한 후

한국 교회에 주는 교훈을 연구함

 

 

 

 

 

 

 

과목명: 근세 및 현대교회사

담당교수: 안인섭 교수

학년//: 3학년 57

조원: 생략(8명)

 

제출일: 2016513

 

 

 

I. 서론

 

미국 근현대사회에서 이슬람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잘 살펴야 한다. 왜냐하면, 미국의 주적은 냉전시대 이후, ‘이슬람 근본주의세력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1919-1950년 사이 미국과 유럽인은 그들의 이해관계와 맞아 떨어지기만 하면, 이슬람 원리주의자이든 민족주의자이든 가리지 않고 협력했다. 이는 미국이 중동과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었고, 미국내부도 안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 미국은 20세기 초 석유보유를 위해 중동으로 처음 진출한다. 2차 세계대전 승리 이후, 미국은 전 세계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는 제 3 세계의 민족주의 운동과 사상이 소련과 연합하여 공산주의로 빠질 것을 우려한다.

이런 미국의 관점을 더울 강화시킨 사건은 일련의 중동전쟁이다. 이스라엘과 워싱턴의 전략적 관계 때문에 팔레스틴 주민들의 민족자결권을 경시하게 되고, 이스라엘 위주의 팔레스틴 흡수정책을 지지하여 팔레스틴 해방기구를 국제사회에서 무시한다. 이에 1948년 팔레스틴에서 독립을 선포한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지지는 팔레스틴 지역을 중심으로 아랍권에서 반미정서와 반제국주의를 발생시키는 계기가 된다.

이후, 1970년대에 들어 이슬람 정치가 현실로 드러나며, 미국의 중동에 대한 인식은 변화한다. 1970년대 초 리비아의 카다피가 이슬람사상을 이용하여 독재정권을 정당화 하고, 이슬람 급진주의와 테러리즘을 사하라 사막 전역에 퍼뜨리려 한 것, 19734차 중동전쟁으로 인한 제1차 오일쇼크로 미국경제가 휘청인 것, 1979년 이란이슬람혁명 과정에서의 미대사관 인질 사태와 제 2차 오일쇼크는 미국에게 이슬람을 미국의 이익에 위협이 되는 존재로 보게 만든다.

그러나 당시 대통령이었던 카터는 이런 이슬람부흥운동에 민첩하게 대응하기보다, 소련과의 냉전체제 속에서 이슬람을 정치적, 사회적으로 이용하는 정도로만 반응하고, 그저 이슬람을 테러파괴적 활동을 일삼는 단체정도로 가볍게 인식한다. 이에 아프가니스탄의 무자헤딘 이슬람 세력을 지원하고, ‘이란 게이트사건을 벌이는 등 소련을 견제한다.

이후, 1982년 레이건 대통령은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후,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평화협상에 반대한 것과 리비아 카다피의 독재정치를 보고, 테러단체와 이슬람 원리주의를 동일시한다.

이후의 흐름은 크게 2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1989년 조지 부시 대통령의 당선시,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크게 부흥하고 있던 이슬람을 두려움과 위험한 종교로 본 정치적 현안으로의 접근인데, 강경한 접근이다. 둘째, 1990년 이후 세계적 자유무역의 흐름강화로 인한, 클린턴 대통령의 경제문제로서의 접근이다. 클린턴 행정부는 부시 행정부 때보다 정치적 이슬람에 대해 더 타협적이고, 자유로운 해석을 했고, 기독교와의 공통점을 강조한 온건한 입장이다.

 

 

 

II. 본론

 

1. 이슬람 종파와 테러세력의 관계

 

이슬람은 크게 2종파로 나뉜다. 수니파와 시아파이다. 그 가운데, 19세기 이래로 크게 이슬람사회 안에 3가지 운동이 일어났다. 이 중, 수니파 안의 한발학파는 와하비 운동을 만들었으며, 이는 현재의 이슬람 테러세력의 근본 기치인 이슬람원리운동의 기원이라 할 수 있다.

 

1) 수니파

 

수니파는 신의 말씀인 코란과 함께 예언자 무함마드의 언행과 관행을 의미하는 수나’(Sunnah 관례, 법적 관행)를 따르는 사람들이다. 수니파는 대체로 아부 바크르를 비롯해 선출과 충성서약에 따라 즉위한 4대 정통 칼리프를 인정한다. 또한 수니파 무슬림은 대부분 4대 이슬람 법학파(法學派) 중 하나에 속해있으며, 이 법학파는 이슬람 법 샤리아의 해석 방법과 샤리아에 대한 태도에 따라 구분된다. 시아파가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신비주의적 경향을 띠고 비합리주의적인 신학을 발전시켜 갔다면, 수니파에는 일탈(逸脫)과 혁신을 격렬하게 비난하는 정통파 신학과 시대변화에 따른 합리적 변화를 수용할 것을 주장하는 신학이 나란히 발전했으며, 수많은 법학자·신학자들이 등장한다. 말리크 학파(전통주의), 하니파 학파(자유 중용주의), 샤피 학파(보편적 의견 일치)는 대부분 무슬림 공동체의 의견 일치에 대해 자유로이 통합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한발 학파’(엄격주의)는 법 해석을 엄격하게 하여 자유파의 개혁을 반대하며 코란과 하디스(무함마드의 언행록)에 있는 구절만 법의 근거로 채택하는 법리론을 주장하고 있다. 법리론이 엄격하기 때문에 무슬림 공동체의 의견 일치는 오로지 무함마드와 그의 동지들의 것만 받아들이고 다른 것은 모두 배격한다.

2) 시아파

 

'시아'는 사전적으로는 '분파'라는 뜻으로 수니파(정통파)의 상대적인 개념으로 사용된다. 시아파는 수니파와 함께 이슬람의 한 갈래이며, 이 둘은 똑같이 정통 이슬람으로 여겨지고 있다. 간혹 이 둘을 정통 이슬람과 이단으로 구분해서 보거나 민족적·종족적 의미를 담아 이해하는 경우가 있으나 이는 잘못된 시각이다. 오늘날 전 세계 무슬림 인구의 90%가 수니파이고 나머지 10% 정도가 시아파이며, 시아파의 대부분이 이란과 이라크에 집중 분포되어 있으므로, 시아파를 민족적·지역적으로 구분할 수는 있으나 이는 현재적 상황일 뿐 영속적이지 않음을 이슬람 역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시아파가 출현하게 된 발단은 예언자 무함마드 사후, 누가 이슬람 공동체의 지도자로서 그를 계승하느냐에 대한 교권 문제에서 비롯되었다. 여러면에서 시아파는 무함마드의 가족 중에서 계승자가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알리의 죽음으로 힘의 균형이 무너지며 일가족이 몰살당하는 일이 일어난다. 이후 이 사실이 알려지자 알리의 추종자들은 하나의 정파에서 종파로 발전시키며 시아 알리(알리의 추종자)라고 부르며, 수니와 시아라는 무슬림 종파가 나뉘는 분기점이 되었다. 이후, 시아파는 수 차례의 정치적 무장봉기에서 실패하며 심한 박해와 좌절을 겪었으며, 운동 초기부터 지하로 숨어들었다. 오랜 지하 활동으로 인해 시아파는 여러 이단적 사상에 쉽게 물 들었고, 후에 동방 기원(起源)의 이교적 요소가 다분히 혼입되어, 수피즘과 같은 신비주의적 색채가 가미되었다. 12이맘파, 자이디야파, 이스마일파 등이 대표적인 분파이다.

 

3) 이슬람사회의 내부운동

 

a. 와하비(Wahabi) 운동 - 전통 보수적 운동

 

와하비 운동은 본래의 이슬람으로 돌아가자는 구호 아래, 그리고 이븐 타이미야의 길을 따라 오직 코란과 하디스의 권위만을 인정하고 그 외의 것들은 이슬람에서 제거하여 정화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급진적이며, 배타적인 성향은 다른 학파의 반발을 초래했으나 아라비아 반도를 점령해 가던 사우디 군주가 와하비의 사상을 받아들임으로 19세기부터 와하비 사상이 아라비아반도를 거의 지배하게 되었다.

이슬람의 4대 법학파 가운데 하나인 한발 학파의 창시자 아마드 이븐 한발의 완고하고 보수적인 성향과 한발 학파의 이븐 타이미야가 일으켰던 살라피(Salafi) 운동에 감화를 받고 기존 질서에 저항하는 와하비 운동을 일으키게 되었는데, 그 성격이 종교적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 운동을 띤다. 이에, 현대 이슬람 원리주의 운동의 기원이라 할 수 있다.

 

b. 범 이슬람주의 운동 개혁운동

 

19세기 초에서 20세기 전반기에 이르는 150년 동안 유럽 문화가 중동으로 물밀 듯 밀어닥치자 이로 인해 무슬림들이 받은 충격은 실로 대단했다. 동시에 당시 유럽의 과학과 기술을 수용하여 무슬림 사회를 개혁해야 한다는 생각이 무슬림 세계 내에서 당연시되어 국가, 사회단체 및 교육 기관 등 공동기관을 비롯하여 지식인, 관료, 군인, 학생 등 모든 사회 구성원에 이르기까지 개혁, 즉 서유럽 문물과 제도의 수용과 모방에 급급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말 알 딘 알아프가니(Jamãl al-Din al-Afghãni, 1839-1897)는 이슬람의 순수한 원리에 대한 새로운 재해석(이즈티하드 ijtihād)을 시도하여 이슬람의 우수성을 강조하였고, 동시에 서구 사상과 문명의 수용도 아울러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적 성향은 20세기 중반 이후 서구의 영향이 가속화되면서 보수주의자들과 급진주의자들에 의해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c. 이슬람 원리주의 운동 - 급진적 성향

 

20세기 들어와 무슬림 공동체 내에서는 새로운 이슬람 부흥 운동이 새로운 종교 조직이나 단체들과 함께 일어났다. 먼저 이들 단체가 등장한 시기는 제 3세계 국가들과 같이 무슬림 국가들도 급격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인 변화를 겪는 시기였다.

이전 부흥 운동이 이슬람의 종교적 얼을 내세웠고, 개혁 운동은 토착적 요소와 유럽의 문화적 요소와의 혼합에서 나왔다면, 이들에 이어서 나타난 급진주의는 바로 독립국민국가(Nation State)’의 출현에 대한 대응책으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급진 사상에서 볼 수 있는 전투적, 배타적, 전통수호적 성격은 바로 이슬람의 부흥 운동과 개혁 운동을 창조적으로 통합하여 발전시킨 결과 생겨나게 된 것들이다. 이처럼 급진적 성향을 가진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은 이슬람의 현대화를 위해 서구와의 화해를 거부하며, 나아가 서구의 제국주의적 이념들과 서구적 삶의 방식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비판한다. 또한, 타락한 이슬람의 정치권력에서 이슬람 공동체를 구원하려는 시도를 해오고 있으며, 그 결과 이러한 새로운 부흥운동의 성향은 급진적으로 나타날 뿐 아니라 시공을 초월하는 포괄적 생활양식(way of life)으로 표현되고, 신의 의지와 진리에 기초하는 이데올로기로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추구하는 이슬람 공동체의 원형은 이슬람의 코란과 샤리아(율법)와 하디스(전통)에 근거한 신앙과 실천이 강조됨과 동시에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지 않는 철저한 정교일치의 공동체라 할 수 있다.

 

9.11을 일으킨 알카에다이슬람 원리주의(이슬람 근본주의)’를 믿는다. 이슬람 교리를 정치적 사회적 질서의 기본으로 삼아 이슬람교의 원점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는 운동을 실현하는 것이다. 이는 과거 이슬람국가가 십자군 공격을 받거나, 몽골의 침략에 의해 멸망한 후, 그 원인을 이슬람 본연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타락에 있다고 본다.

, 코란의 근본정신으로 돌아가자는 것인데, 요즘과 같은 극단적인 이슬람 원리주의 운동이 1940년대부터 사이드 쿠틉에 의해 시작된다. 원래, ‘성전(지하드)’은 칼리프만 선포할 수 있는데, 쿠틉은 누구나 필요에 따라 성전을 수행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에 이르고, 특히 이교도와의 전투를 소지하드라고 부르며, 원래의 의미인 이교도들이 먼저 싸움을 걸어온다면 살해하라는 방어적 의미를 탈피해, 자살테러와 무자비하고 불특정 대상을 상대로 벌이는 참수, 화형 등의 변질이 일어난 것이다. 물론, 지하드에 의한 죽음은 순교라고 여긴다.

 

2. 9.11테러를 일으킨 이슬람이 미국사회에 끼친 영향과 미국교회의 반응

 

1)배경

 

이슬람과 미국 간의 관계를 생각할 때, 현대사를 맞이하면서 아랍-이슬람 세계와 미국과의 만남을 생각해 볼 수 있다. 2차 대전 이후로 미국=기독교’, ‘기독교=미국이라는 공식이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1990년대 들어 아랍 이슬람 세계 전역에는 반기독교 정서가 번져갔다. 앞선 세대를 통해 유입되었던 기독교 세계에 대한 거부감이 경험을 통해 굳어지고 확신되었다. 그 전환점이 바로 19911월 벌어진 걸프전쟁이다. 아랍 지성은 물론 아랍 세계와 이슬람 세계가 이에 항의했다. 무슬림 사회에 패배감과 자괴심도 감지되었다. 일부 이슬람 원리주의 지도자들은 이것을 종교전쟁으로 인식하고 미국을 상대로 성전을 펼치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 후, 10여 년이 지난 후 20019.11테러가 터지자 적지 않은 아랍 무슬림 민중들은 환호하였다. “미 제국주의 타도 만세!” 이것은 논리적인 반응을 넘어서는 감정적 반응이었다. 아랍 사회에 9.11 음모론이 여전히 넓게 퍼져 있는 것도 심정적인 반미 정서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미국과 아랍 세계의 문명충돌 양상으로 비화하였다. 새로운 패권주의자 미국의 심장부를 강타한 사건 때문에 다시금 이슬람권은 미국에 의해 정조준된 상태였다. 테러와의 대전쟁의 출발이었다. 테러와의 대전쟁은 아랍 이슬람 국가 대부분 통치권에서도 반기는 이슈가 되었다. 그것은 자국 내의 반정부적인 재야 세력과 이슬람주의자들에 대한 통제 명분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2001년 아프간 전쟁, 2003년 이라크 전쟁이 이어졌다.

 

2) 9.11 테러 설명

 

2001911일에 일어난 9.11테러사건은 전 세계적으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9.11 테러 사건은 미국 뉴욕 시에 소재하는 103층 높이의 쌍둥이 빌딩인 세계 무역센터가 피납된 두 대의 비행기의 자살 충돌로 인해 완전 붕괴된 사건을 말한다. 미국 경제의 핵심을 집중 공격하라는 비디오를 통해 오사마 빈라덴이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연설한 내용을 보면, 그가 왜 9.11테러의 대상으로 뉴욕의 세계 무역센터 건물을 골랐는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 주는 발언을 추론해 볼 수 있다. 빈라덴은 이 테이프에서 미국 군사역의 기반은 경제에 있으며 경제가 붕괴되면 더 이상 세계의 야자들을 억압 할 수 없게 된다면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미국 경제를 타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19명의 젊은이들이 감행한 테러가 미국경제에 1조 달러 이상의 경제적 손실을 끼쳤다고 평가했다.

 

3) 9.11 테러를 일으킨 원리주의 무장단체

 

9.11은 아프가니스탄의 빈 라덴에 의해 발생한다. 이 테러집단은 알카에다로 명명되며, 이슬람교를 믿으며, 인간과 신을 동격화 하는 것을 죄라고 여기기 때문에, 예수를 수많은 예언자들의 하나인 인간으로 본다. 이에 삼위일체 사상과는 전혀 반대교리인 유일신론적 관점을 가진다. 이런 교리적 차이 외에도 기독교와 더 중요한 반목을 만들어낸 이유는 반복된 전쟁민족간 증오에 원인이 있다. 사실, 711년 이베리아반도(스페인과 포르투갈)를 이슬람 세력이 점령하면서 유럽인과 아랍인 간의 갈등은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9.11이 발생한 것은 이런 종교적, 역사적 갈등을 배경으로 2001년 부시행정부의 강력한 미국주도의 일방주의정책을 바탕으로 한, 중동지역의 막대한 석유이권정책과 직접적 관련이 있다. 중동지역은 사실 국가 자체적으로 석유를 채취하지 못한다. 그래서 선진국의 힘을 빌려 석유를 채취하는데 이때, 막대한 이득의 대부분은 선진국에서 가져가고 일부에 해당하는 비용을 중동국가에 지불한다.

문제가 되는 것은 국가와 일부 계층만 부자고, 국민 대다수는 가난한 구조라는 것이다. 이에, 중동지역은 자신들의 자원을 싼 값에 가져가는 선진국을 대표하는 미국을 특히 싫어하고, 이를 표적으로 삼아 미국을 공격하고, 이에 대한 대응으로 미국은 자국민과 자국보유자산에 대한 보호를 위해, 무력을 사용한 것이다.

 

4) 원리주의 무장단체의 미국공격의 이유

 

빈 라덴은 1979년 구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시 미국의 암묵적 동의와 비밀리의 지원 아래 무장조직을 결성했고, 냉전이 끝난 후, 1988년 그들을 모아 알카에다의 수장이 된다. 이후, 이들은 아프가니스탄의 무장조직 탈레반과 손을 잡고, 급기야, 1996년 아프가니스탄 정부를 무너뜨려 정권을 잡는다. 이들은 한국과 관련하여, 2007년 샘물교회사건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후, 빈 라덴은 20019.11테러를 일으키고, 미국은 2003년 보복전이자 정치적 이득을 위한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다. 당시 명분은 이라크에 미국을 공격할 대량 살상무기가 숨겨져 있다는 것이지만, 후에 석유관련 돈벌이를 위한 전쟁임이 밝혀지기도 한다. 이에, 9.11이전의 중동전쟁9.11이후의 아프가니스탄전쟁과 이라크전쟁이 발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서론에서 언급한 것을 바탕으로 미국이 이슬람 원리주의와 전쟁을 벌이게 된 이유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소련을 견제하려는 냉전 위주의 미국의 전략적 입장 하에서, 이슬람에 대한 이해의 부족과 그들의 종교적 신념의 변천과정을 등한시 한 것.

둘째, 이로 인해 이슬람에 대한 무조건적 적대적 정책 및 국익을 위해 중동국가를 이용하려는 정책으로 인한, 중동 이슬람세력의 반대급부적 반응이 악순환이 된 것.

 

5) 9.11 테러가 미국 사회에 준 영향

 

9.11 테러가 일어나기 전에 이슬람권에 대한 인식은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중동에서 이슬람 국가와 20세기 초까지는 적어도 적대 관계적인 관계가 없었다. 영국이나 프랑스와 같이 이슬람권을 점령해 식민지 정체를 펼친 것도 아니고, 중동에서 유럽식 제국주의 체제를 구축 하지도 않았다. 이것은 지리적으로도 멀고 미국 자체 내 안정을 취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세기 초, 미국은 석유 때문에 중동과 관계를 맺기 시작하였다. 미국 국내에서도 미국 내의 이슬람 이민 사회에 대해 문화적 차이로 인해서 반감을 가지거나 우려하지 않았고 오히려 히스패닉을(스페인 계열) ‘위협적인 이민 집단으로 인식하였다.

1955년 이후 1970년 사이에 미국은 이집트의 나세르 대통령이 이끄는 아랍 민족주의에 반대하는 정책을 피는데 이 때 미국은 정치적 이슬람이 우호적으로 보던 반면 혁명적 민족주의자들을 위험스럽게 여기며 그들에게 과격파또는 추종자라는 수식어를 붙여 경계하였다. 그리고 1960년대 미국은 이스라엘의 생존과 안보에 큰 관심을 가졌다. 그러다 1970년대 리비아의 정세 때문에 이슬람권을 인식하는데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리비아 지도자 깟다피는 이슬람 사상을 이용하여 혁명운동을 지원함으로 급진주의와 테러리즘을 전 세계에 퍼뜨리려고 하였다.

1980년대에 미국에서 이슬람 부흥주의에 대한 외교정책의 수립에 있어 원리주의자들과 맞서 아랍이슬람권에서 경계를 명확히 하는 강경파와 이슬람 원리주의자들과의 대화와 외교, 화해를 선호하는 온건파가 늘 동시에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이 때 1981년에 집권한 레이건 행정부는 이슬람 부흥주의를 매우 적대적으로 인식했다. 하지만 공산주의를 더 적으로 보았기에 이란 게이트 사건을 통해서 이슬람 세력들과 동맹으로 끌어 드리는 것을 보면서 알수 있다. 클린턴이 집권을 하자 그는 이슬람 세계에 대해 우호적인 발언을 하면서 이슬람 세계에서 온건한 무슬림 세력을 지지한다. 1994년 클린턴이 자카르타의 이슬람 사원에 방문하면서 비록 중동에서 비롯된 테러리즘이 우리에게 문제를 제기하고 있지만, 그것은 근본적으로 이슬람의 종교나 문화로 인한 것은 아니다라고 발언하면서 기독교와 이슬람의 차이점 보다는 공동점을 강조하면서 이슬람을 옹호하였다. 하지만 조지 부시를 통해서 2000년 대부터 이슬람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게 되었다.

부시가 집권을 할 때 9.11이 일어나면서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슬로건 아래서 응징을 가하였다. 이러한 전쟁 수준의 보복 선포는 자국 국민의 80%이상의 찬성을 받았다. 하지만 이러한 전쟁은 이슬람권의 서구에 대한 인식, 즉 서구는 곧 유대교 및 기독교 세력이고, 그 세력은 위협적인 강자라는 해묵은 인식을 더욱 악화시켰으며 다시금 옛 십자군 전쟁을 떠오르게 하였다.

미국 내 무슬림 단체도 발빠른 대응으로 불이익을 최소화 하려고 하였다. 9.11 당일 즉각적인 성명을 발표하였다. 그들은 적극적으로 테러를 강력하게 비난하였으며 자신들은 평화의 단체라는 것을 주장했다. 그럼에도 미국 안에서 미국 무슬림 사회를 향한 비난과 공격이 계속 되었다. 욕설과 모욕, 신체적 위협과 폭행, 폭화위협, 살인 같은 1700건에 달하는 공격과 고통을 받았다고 한다. ABC방송의 보도에 따르면 뉴욕의 이슬람 학교에는 9.11 테러 직구 450명의 무슬림 학생들을 살해하고 그들의 피로 페인트 칠하겠다는 협박 전화가 오기도 하였다. 이 이후 이슬람을 보는 태도는 크게 세 부류로 나눠졌다.

첫째는,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라는 적극적인 방어와 함께 이슬람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촉구하는 내용이며, 둘째는 9.11테러행위가 이슬람의 어두운 면을 그대로 보여주었다는 반응이며, 셋째는, ‘이스람은 테러 종교라고 단죄를 하고 강력한 비난을 퍼붓는 부류이다.

이러한 가운데서 유대계 미국인 여성 로라 블루멘펠드의 수기인 복수, 희망의 이야기가 출판되면서 테러에 대한 진정한 복수는 용서와 화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하면서 보복과 응징보다 화해를 주장하면서 큰 파장을 주었다. 이러한 사상이 포스트모던 시대 가운데서 큰 역할을 비추며 그들이 테러를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찾고 해결하려는 노력을 함으로 이슬람의 문제보다 환경과 상황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6) 이에 대한 미국 교회의 반응

 

9.11 테러는 미국 보수 기독교인들이 반이슬람 정서에 확신을 갖게 된 계기를 제공했다. 소수의 극단적인 행동을 이슬람의 본질적인 폭력성으로 악용한 측면이 적지 않았다. 이런 반이슬람 정서는 더욱 적극적인 친이스라엘 움직임으로 이동하였다. 부시 행정부는 눈에 띄게 반아랍, 친이스라엘 정책을 견지했다. 반미, 반기독교 정서를 자극한 측면이 적지 않다. 부시 스스로도 이라크 전쟁을 두고 신십자군 전쟁을 운운했다. 자극받은 아랍 이슬람 세계에서 반기독교 정서가 확산되었던 것은 이상할 것이 아니었다. 9.11테러는 소수 행위자들의 단순한 분노가 아닌 사회, 문화, 역사, 종교 등의 다양한 쟁점에서 비롯된 폭력현상으로 미국인에게도 다가갔다. 이에, 미국교회는 이슬람에 대해, 2가지 반응을 보였다.

첫째, 조지 부시 대통령의 이슬람에 대한 강경노선을 지지한 공화당성격의 미국 남부지역의 보수 기독교인(WASP)를 대표로 들 수 있다. 이 경우, 이슬람의 근본주의에 맞서, 일방주의 대외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한다. 2005년 통계에 따르면, 미국 국민 가운데 77%가 기독교 신자이며, 이중 40%의 개신교 신자 가운데, 25%가 이를 지지한다. 이는 전체 미국국민의 7.7% 정도에 해당한다. 그리고 일부의 다른 기독교신자와 일반인은 이 반응을 지지하려고 했다. 예를 들어 복음주의자 빌리 그래함의 아들 프랭클린 그래함은 20011116일 출연한 NBC 나이트 뉴스 프로그램에서 이슬람을 기만적이며 사악한 종교라고 단언하였고 이슬람의 신은 우리의 신과 같지 않다. 그들은 기독교나 유대교 전통의 신의 아들이 아니다. 그들은 전혀 다른 신을 믿고 있다.“고 이야기 했다. 복음주의자 작가 중 한명인 로버트 머레이도 이슬람의 공격이라는 책을 내면서 무함마드를 인종주의자, 살인자, 성적도착증환자라고 극렬한 비난을 퍼부었다.

둘째, 이외에 가톨릭과 자유주의, 복음주의권 기독교인의 경우, 대체적으로 비판적 언급을 하지 않고, 대체로 포용하자는 것이 기본입장을 견지한다. 이는 WCC(World Council of Churches)NCCCUSA(National Council of Churches USA)를 강화하여, 가해자의 입장과 이슬람이 느끼는 피해자의 입장을 기반으로 신학적 접근을 하는 경향으로 나타난다. 이 경우가 미국교회 주류의 반응이라 할 수 있다. 세계 교회 협의회(WCC)의 총무 Dr.라이저는 WCC를 대표하여 9.11테러에 대해 테러 행위를 정당화 시키는 모든 가능성을 청산하도록 촉구하고 세계 교회들을 향해서 미국에서 발생한 테러 사건에 대해 위로와 지속적인 에큐메니칼적 지원을 요청했다. 그리고 이 테러 사건에 대해 무력 보복이 아닌 분별된 자세로 신중하게 대응해 나가도록 촉구했다.

미국 교회 협의회(NCC)의 총무 Dr. 로버트 에드가와 세계 교회 봉사단체의 소장 존 메클로우는 9.11테러 행위를 비난하며 기도를 부탁했다. 미국 연합 그리스도교회(UCC)의 회장 토마스 목사는 복수님에 휩싸일 수도 있다는 것을 지적하며 폭력에 폭력으로 응징하려는 충동을 억제해야 한다고 호소문을 교인들에게 보냈다. 미국 성공회의 수장 프랭크 그리스도월드 주교는 복음의 가치와 교회의 선교적 입장에서 비추어 볼 때, 하느님을 믿는 우리는 스스로가 평화가 되며 인간의 마음을 변화시키고자 부름 받았다는 사실이 지금 이 순간보다 더 명확하게 밝혀진 적은 없다고 하면서 폭력이 종식되기를 기도한다고 하였다. 미국 장로교회(PCUSA)의 지도자들은 폭력은 악순환 되기에 평화를 가져오는 방안이 되기를 기도한다고 하였다. 감리교회 총회 산하의 교회와 사회 위원회 짐 위클러 총무는 세계의 모든 폭력을 종식시키기 위해 평화와 정의 및 치유와 온정의 손길을 위해 기도할 것을 요청하였다.

안타깝게도 이런 실패한 범신론적 기독교 통합운동은 오히려 교회를 더 혼란스럽게 만드는데, 급기야 이슬람교인이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도록 허락해주거나 또한 기독교인이 이슬람화 되는 크리슬람을 생성하는 발화점이 된다.

이러한 평화에 대한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부시는 전쟁을 일으키며 이슬람 세력을 척결하였다. 그 결과 사람들은 이슬람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시각이 수그러들면서 연민의 눈으로 보는 눈들이 많아졌다. 이것을 통해 WCC에 힘을 밀어주게 된 계기가 되었다.

 

3. IS사태가 미국사회에 끼친 영향과 미국교회의 반응

 

미국 사회에서 최근에 발생한 사건으로 ‘IS사태를 생각할 수 있다. IS 배후에는 여러 가지 원인들이 있겠지만 그 원인들 중에는 잘못된 이슬람 교리와 잘못된 율법의 적용, 역사와 정치적 폐해 그리고 사상과 이념의 혼란 등이 있다. 이슬람에서 개혁은 이슬람의 타끌리드(종교적 권위를 맹목적으로 따름)와 법적 유산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결국 IS, 이슬람의 역사적인 내러티브 속에서 배태되고 발달한 여러 종파와 정치 운동과 종교 사상이 결부된 결과이고 이러한 이슬람 조직들이 폭력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1) IS ?

 

IS(Islamic State)는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ISIL: Islamic State of Iraq and the Levant)를 전신으로 하며, 칼리프(이슬람 왕)를 통치원수로 삼는 제정일치적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 건설을 목표로 한다. IS는 먼저, 4만에서 5만이 전투에 참여하는 병력을 가진 테러단체로서 해외지부까지 합치면 20만명정도가 소속된 지금까지 존재했던 모든 테러조직보다 큰 조직이다. 특별히, 앞서 다룬 9.11테러 단체에서 등장한 알카에다와 다른 점이 있는데, 알카에다 같은 경우에는 9. 11테러 이후에 국제사회와의 테러와의 전쟁으로 계속 은신하면서 동굴에 피해다니면서 쫓기는 테러 단체였다면 IS라는 조직은 영토를 장악하고 국가를 선포하고 준국가 기능을 하고 있는 테러단체이다. 알카에다와 IS는 다르다. 알카에다는 9.11테러 이후고, 그 후에 IS가 새롭게 등장한 것이다. IS는 칼리프 제국 부활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데, 이슬람 중 수니파가 IS 지도자가 소속된 파이다. IS는 자기네들이 순수한 이슬람 국가를 새롭게 만들었다고 말하고 있다.

2003년 국제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이라크 하부조직으로 출발한 단체로, 이라크에서 각종 테러활동을 벌이다 2011년 시리아 내전이 발발하자 거점을 시리아로 옮겼다. 이들은 2013년 시리아 내전 당시 정부군에 대항해 싸우는 반군으로 활동했으나, 2014년 초부터는 다른 반군들과 본격적으로 충돌을 빚어 왔다. 특히 이들은 미국이 세운 이라크 정부에 대한 공격과 이라크 정부를 보호하고 있는 병력-외국에 대사들이나 군인들에 대한 공격을 계속해서 감행, 미군 차량 테러 -에 관하여 이라크 내부에서 테러를 감행하였다. 이후, 더 확장되어 수니파에 여러 수족들과 합해지면서 세력을 확장했다. 2011년 빈 라덴 사망 직후, 시리아 내전이 벌어졌는데, 이때, 많은 멤버들을 시리아로 보내어 자신의 조직을 키우는 역할을 하게 됐다. 이때 거점을 시리아로 옮겨 시리아 정부와 시리아 반군 사이의 각축전의 틈바구니에서 성장한 것이다. 최고 지도자는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이다.

2014629일에 IS라는 조직이 자신들이 세계적인 칼리프(이슬람 왕)라고 발표를 했다. 그러므로 전 세계에 있는 무슬림들에게 종교적, 정치적, 군사적인 권한을 자신들이 가진다고 주장했다. 이후, 그들은 리비아, 사우디, 시리아 내부, 요르단 곳과 전투를 벌였고, 2014년 즈음에 이라크에서 두 번째로 가장 큰 도시인 모술을 장악을 하며, 시리아 동쪽에 있는 지방에 대한 통제권도 가지게 됐다. 이에, 미국은 20148월 이라크 내의 IS에 대한 공격을 시작하는데, 20149월에는 아랍 5개국(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카타르)과 함께 시리아 내의 IS도 공격했다.

 

2) 9.11IS사태를 통해 볼수있는, 이슬람에 대한 미국교회의 올바른 신학 부재

 

IS가 발생한 후, 세계적으로 전세계의 분노가 나타났다. 국제사회가 테러 응징을 선포한 가운데, 종교계에서도 이에 관련된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였다.

이슬람에 대한 미국교회의 주측인 진보적 반응은 정치적, 사회적 관계를 먼저 고려하여, 신학이 이를 뒷받침하는 모습으로 나타났는데, 대표적으로 크리슬람’(Chrislam: Christianity(기독교)Islam(이슬람)을 합쳐 만든 단어)을 등장시켰다. 이는 앞에서 언급했듯이, 미국의 개신교회(핫송 침례교회, 테네시 주/올더게이트 연합 감리교회, 버지니아 주)가 무슬림에게 예배 장소를 제공하여 논란이 일어난 것을 기점으로 한다(2011. 5.1). 그들은 이웃에게 친절하고 이방인을 접대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가르침이라고 말하며, 무슬림에게 교회 예배당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하는데, 이는 문화를 성경보다 앞세우는 전형적인 WCC의 잘못된 신학이다. 그 결과 조사 당시인 2011년 미국에는 1,897개의 이슬람 사원이 있는데 9/11테러 즈음인 2000년 조사된 수치보다 57% 증가한 수치를 보인다. 관련하여, 맥파랜드 박사는 기독교와 이슬람의 근본적인 교리는 무시한 채 교제만 나누는 두 종교의 혼합체인 크리스람의 위험성을 경고하기도 한다.

반면, 비주류 미국교회의 보수적 반응도 불신자들이 보기에는 기독교 근본주의라고 부를 정도로, 아무런 신학적 준비 없이 나타난다. 관련하여, 이성수 교수는 부시 대통령 이후, ‘다시 근본주의자(개신교 내에서 근본교리를 위해 세상과 싸울준비가 되어있는 자)들이 살아났으며, 미국사회가 보수주의 교회가 크게 성장하고 보수주의로 급선회하면서 희미했던 복음주의자들이 근본주의자로 변하게 되었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주류 미국교회의 진보적 반응에 대항해, 2011년 당시에 있었던 예화가 있다. 2011년 당시 가파른 상승새였던, 건축 예정인 35개의 이슬람 사원과 이슬람 센터가 보수적 미국교회의 활동에 의해 선동된 지역주민들의 저항을 맞이한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9/11테러로 무너진 세계무역센터(World Trade Center)에서 불과 2블록 떨어진 곳에 건축될 이슬람 센터를 세우려다가 어려움을 겪은 경우가 있다. 이는 보수적교회의 선한 의도가 반영되어 있으나, 단순히 세속화를 두려워하고, 변화를 야기하는 세력을 경계해서, 다른 종교들을 비방하고, 하나님의 가호 아래 있던 과거를 그리워하는 모습이 올바른 신학적 정립 없이’, 그저 진정한 주의 종이 받는 고난과 십자군 전쟁과 동일한 동기로서 성전(聖戰)의 일로 여긴 것이다. , 미국교회의 9.11IS사태 사이에 반응은 다음의 2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 미국교회는 사회적 정치적 반응을 올바른 신학정립보다 중요하게 여기고, 이를 기준으로 신학을 정립하려 시도했다.

둘째, 미국교회는 일치되지 못한 반응으로 인해 미국 내 이슬람을 확장시키는 결과를 내었다.

 

i) 이슬람에 대한 신학적 접근의 부재의 심각성

 

이슬람에 대한 보수적 미국교회의 신학적 접근의 부재는 그들이 영향력을 끼칠 수 있으나, 실제적으로 잘못된 정치적 접근만을 일으키는 것을 다음의 미 국무부 장관이 발표한 성명에서도 잘 드러난다. “오늘 여러분 앞에 제가 선 이유는 여러분에게 확실히 하기 위함입니다. 제 판단에는 ISIS가 자신들이 통제하는 지역에 있는 야지드파, 시아파 무슬림들과 기독교인들에 대한 학살에 대해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에시(ISIS)는 자신들이 주장하는 바와, 이념과 행동에 따라 집단학살적인 성향을 보입니다. 그들이 말하는 것과 믿는 것과 행동하는 것에 따라서 말입니다. 다에시(ISIS)는 또한 인류에 대한 범죄를 자행하며, 앞서 이야기한 집단뿐만 아니라 때론 수니파와 쿠르드족과 같은 소수 민족들에 대해 민족 청결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ii)이슬람에 대한 미국교회의 일치되지 못한 반응의 예

 

IS테러가 발생한 후, ‘반무슬림 정서가 고조되었다. 이는, 테러리즘과 이슬람 종교에 대한 반감이 맞물려 자연스레 반무슬림 정서로 표출되어 대중의 분노로 나타난 것이다. 극단에 대한 반응 역시 극단이었다. 곳곳에서는 '이슬람 포비아(이슬람 혐오증)' 분위기가 고조됐다. 테러 직후 유럽 및 북미 지역에서 반이슬람 집회가 열리는가 하면 일부에서는 이슬람 사원을 공격하는 증오 범죄 사태도 발생했다. 특히 종교적으로 이슬람과 대립 구도에 놓인 기독교계에서는 '이슬람 포비아' 현상이 더욱 뚜렷한 것을 알 수 있다. 17일 공공종교연구소(PRRI)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미국 내 복음주의 기독교인의 77%"이슬람은 미국적 가치에 맞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가톨릭(61%), 흑인 개신교(55%) 역시 절반 이상이 무슬림에 대한 거부감을 나타냈다.

특히, 보수 기독교계의 반감은 더욱 거센데, 존 파이퍼 목사(베들레헴침례교회 원로)"그들은 피의 보복으로 천국을 간다고 믿으며 자신을 기만하고 있다"고 했다. 테러 발생 직후 소셜네트워크에서도 '이슬람은 악마' '무슬림을 몰아내자' 등 종교적 감정이 묻어나는 메시지가 속속 올라왔다. 기독교인 지훈성(49LA)씨는 "뉴욕의 9·11이나, 지난 1월 세계를 경악게 했던 프랑스 풍자 잡지 '샤를리 에브도' 본사 테러 사건이나 현재 각 지역에서 발생하는 분쟁 및 테러는 대부분 이슬람과 관련 있지 않느냐""특히 이슬람 이상 국가를 세우기 원하는 비이성적이고 극단적 무슬림 집단인 IS를 반드시 응징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히, IS사태에 대해 미국 기독교는 큰 분노를 하였고, 결과 서구 기독교의 중심인 미국의 경우 IS사태에 관해 기독교계의 입김이 세지고 있다. 이는 전 세계적 화두인 난민 문제로까지 불똥이 튀었다. 이슬람 테러 세력에 대한 반발로 '난민 수용 거부' 움직임으로까지 번지고 있는 것이다. 공화당 대선 예비 주자로 나선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 내 모든 이슬람교 사원을 감시해야 한다"고 했다. 공화당 내 다른 후보인 벤 카슨, 테드 크루즈, 마이크 허커비, 젭 부시 등도 "당장 중동에서 쏟아져 나오는 난민을 거절하는 법안을 만들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대개 개신교 또는 가톨릭을 종교로 둔 후보들로서 "난민들의 종교를 구분해 무슬림은 거부하고 기독교인만 받도록 해야 한다"고 극단의 목소리까지 높였다. 이런 가운데 미국 내 절반이 넘는 30개 주가 "시리아 난민 수용을 거부하겠다"고 밝혀 반이슬람 정서는 계속 확산중이다. 데이브 로렌스(UCLAㆍ정치학)씨는 "이번 사태가 향후 미국 대선에서 어떤 식으로 작용할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특히 반이슬람 정서는 보수 기독교를 중심으로 미국 대선에서 주요 변수로 부상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아들 프랭클린 그레이엄 목사는 "누가 테러리즘과 이슬람이 관계가 없다고 말하는가. 이번 테러도 그들이 떠받드는 '알라'의 이름으로 자행됐다"고 비난했다. 또한 파리와 베이루트에서 일어난 테러와 관련해 "이슬람이 전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했다"고 말했다. 그래함 목사는 지난 16(이하 현지시각)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이번 테러를 언급하며 "이슬람이 전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선언했다. 우리가 이를 인식하고 결정적인 반응을 해야 할 적절한 시기다. 우리는 당신에 대해 모르지만, 난 이슬람의 지배 아래 살고 싶지 않다. 전능하신 하나님 외에 어느 누구도 경배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함 목사는 또한 "미국은 IS와 싸울 의지가 있는 대통령과 지도자들을 뽑아야 한다. 적을 이기기 위해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우리의 동맹국이었던 러시아를 비롯해 가장 오랜 동맹국인 프랑스, 그리고 독일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과도 연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프랑스가 이미 이들을 공격하고 있지만, 이들을 멈추게 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전 세계는 커다란 위기에 놓여 있다.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 보호하심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미국이 너무 늦기 전에 하나님께로 돌이킬 수 있기를 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그래함 목사의 글은 '좋아요' 272,000, '공유' 151,000, '댓글' 28,000건 등 네티즌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이 가운데는 그의 견해를 비판하는 내용도 상당수 있다.

 

이런 상황 가운데, 종교를 통한 갈등은 IS가 노리는 전략이라는 주장도 있다. 하버드대학 스테판 월트 교수는 "현재 IS는 서방에 대한 극단적 공격을 통해 적대감을 키워 기독교와 이슬람에 대한 대립 구도를 만들어 중동에서 자신들의 입지를 다지려는 것"이라며 "만약 종교적으로 구도가 형성된다면 나중에는 이슬람권에서도 어쩔 수 없이 IS쪽에 힘을 실어줄 수밖에 없으므로 기독교는 그 전략에 절대로 휘말려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외국의 상황과 관련해 한인교계 선교 전문가들은 이슬람 혐오? 그럼 우리도 그들과 다를 바 없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 난민을 거부하는 것은 기독교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 “모두가 외면해도 우리는 품어야한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독교는 이슬람 포비아를 어떻게 봐야 할까? 정작 교계 관계자들은 주의를 당부하며 단편적 관점보다는 폭넓은 시각과 이해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미주 지역 선교 네트워크 단체인 GMAN 김정한 선교사는 과거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열강들은 기독교 제국주의적 시각에서 식민지를 만들었고 역사적으로 십자군 전쟁 때문에 중동 같은 3세계에서는 유럽에 대한 아픔과 반감이 있다선교적 관점에서 보면 그동안 기독교 제국주의적 선교는 완전히 실패했으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유럽과 이슬람에 대한 기독교 선교의 재접근 및 시각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선교사는 이럴때일수록 크리스천만큼은 선교적 관점에서 그들에게 사랑을 베풀며 복음의 정신을 보여주는 기회로 삼아야지, 이슬람에 대해 분노하며 전쟁을 통한 멸절을 외친다면 IS와 다를 게 뭐가 있느냐고 덧붙였다. 또한 토런스 지역 주님세운교회는 현재 터키 내 시리아 난민 사역을 지원하고 있다. 특히 이번 사건으로 미국 내에서 난민 거부 움직임이 확산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박성규 목사는 테러를 일으킨 극소수의 이슬람 극단 세력과 난민은 분명 구별해야한다. 모두를 도매금으로 묶거나 일반화시켜 생각하는 건 매우 위험하다기독교인이라면 분위기에 휩쓸리지 말고 난민들이 왜 목숨 걸고 국경을 넘으며, 어떤 아픔을 안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고 했다. 박 목사는 “IS와 테러 때문에 혐오의 눈길을 받는 난민을 오히려 예수의 사랑으로 감싸고 위로해야 한다지금은 난민을 거부할 때가 아니라 정말 그들을 위해 아파하고 기도하면서 따뜻한 복음의 손길을 내밀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선교 단체 관계자들은 “IS에 대한 무자비한 행보 때문에 무슬림 사이에서는 이슬람에 대한 실망과 반감이 커지고 있어 오히려 기독교에 대한 마음이 열리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미주지역 터키 선교 단체 실크웨이브미션 이세웅 총무는 현재 IS는 종교의 가장 저급한 상태, 즉 사랑과 포용이 결여되고 극단성과 맹목, 종교의 이름으로 사람까지 죽이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 때문에 이슬람에 실망하며 종교를 등지는 무슬림이 늘고 있다이럴 때 기독교인은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사랑하기 위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난민을 거부하는 건 기독교 가치를 스스로 깎는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 내 최대 이슬람 협회인 무슬림퍼블릭어페어카운슬(MPAC)’의 입장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는데, 이들은 IS에 대해 그들은 테러리스트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MPAC은 미국 최대의 이슬람 단체로 1986년 설립됐다. 미국 정부기관들과 연계해 이슬람 관련 정책 결정에 대한 자문 활동을 벌이는가 하면 젊은 무슬림들이 정치, 사회, 종교, 문화, 언론 등에서 활동하며 이슬람의 올바른 이해와 의미를 돕는다.

 

III. 결론

 

청교도 이념을 바탕으로 미국이 건국되었으나, 계몽주의의 여전한 영향으로 정교분리의 원칙이 적용된다. 이에, 미국정부는 이슬람에 대한 정치적, 사회적 접근을 우선시하게 되고, 이에 대한 반발로 이슬람 극단주의가 발생한다. 또한, 미국교회는 신학적 접근과 목양적 접근의 정립이 선행되지 않은 채, 정치적 사회적 접근을 바탕으로 이슬람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여 위험에 처한다. 물론, 9.11테러와 ISIS 테러를 겪으면서 미국 사회와 미국 기독교 안에서 이슬람에 대한 관심이 올라갔다. 한편에서는 그들의 교리를 배우고, 그들의 행동의 당위성을 찾아내려는 시도들이 끊임 없이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또 다른 한쪽에서는 그들을 공격했어야 하며, 지금도 늦지 않았다는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은 미국과 이슬람의 갈등을 심화시킬 뿐 아직까지 뚜렷한 해결책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미국교회에서 얻을 수 있는 한국교회로의 적용은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정치적 사회적인 것을 신학보다 위에 두는 오류는 범하면 안 된다. 즉 우리의 성경관을 먼저 확립하고 신학을 확고히 쌓아야 한다. 관련해, 민간인 학살 같은 것은 우리도 6.25 이후 여전히 불씨로 남아 있다. 이런 사회적 정치적 문제에 따라 보수와 진보가 나뉘고, 기독교인조차 정치적 사회적인 것을 신학보다 위에 두려고 한다. 신학적인 눈으로 문제를 먼저 바라보지 않는 것이다. 이것을 풀어야 한다. 반드시 신학이 우선시 되고, 목양적 관점을 취한 후, 사회적 정치적 해결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총선이 있었다. 건강한 보수적 신앙인도, 새누리 국민, 더민주 등 자신의 소견을 다양하게 펼쳤다. 마찬가지로 정치적 접근이 아니라, 신학적 접근을 해서, 진리를 먼저 찾아서, 목회적으로 적용해야 한다.

또한, 최근 늘어나는 흉악범죄자에게도 사회적 정치적 접근방식을 옹호하기 위해 신학이 보조하는 것이 아니라, 신학이 중심이 되어, 그들에게 성경과 세례를 줄 수 있도록 접근해야 한다. 얼마 전 있었던, 조선족 토막살인 사건을 보고, 국민들이 분노했다. 또는 탈북민이 그런 사건을 벌였다면, 민족주의적 입장을 우선시해서 그들에게 반응하려는 경향이 있을 수 있다. 그런 반응은 틀렸으며, 올바른 신학의 정립이 먼저다.

둘째, 이슬람의 종류에 따라,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인도네시아는 예를 들어, 급진적이지 않다. 온건적이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그 중 가장 중요한 이유는 중동에서와 같이 교회가 목양적 또는 올바른 신학적 관점이 아닌 정치적, 사회적인 반응으로 접근한 데에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이슬람에 대한 공격적, 극단적 반응을 앞세우기 이전에, 코란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교회 안에 존재하는 인종차별주의적인 요소를 제거하고, 신자들은 그들에게 신앙을 삶으로 보여주어 개인의 신앙을 변화시키는 접근이 더 중요할 것이다.

물론, 이를 위해 이슬람과 함께, 기독교에 대한 올바른 신학의 정립을 통한 교리적, 역사적, 사회적 교육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아마도 우리에게는 통일이라는 주제로 적용한다면, 6.25라는 남북전쟁의 아픔 속에서, 김정은을 우상으로 받드는 공산주의 불신자들을 이해하는 역사적, 사회적 접근과 그들의 사상 또는 신념을 기독교로 개종할 수 있도록 치밀하게 신학적으로 준비된 신앙이 요구될 것이다.

 

 

 

 

 

 

 

 

 

 

 

 

 

 

 

[참고문헌]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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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연구소, 이슬람의 이상과 현실(서울: 예영커뮤니케이션, 1996)

 

김정위 외 4, 이슬람 사상의 형성과 발전(서울: 아카넷, 2000)

 

김동문, 기독교와 이슬람 그 만남이 빚어낸 공존과 갈등, (서울: 세창출판사,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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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일주, 이슬람과 IS,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15)

 

 

* 논문

 

 

최종호 문명충동과 기독교 평화와 새 문명 창조를 위해- 경성대학교 신학과

 

이성수, ‘미국의 대 이슬람권에 대한 인식 연구 냉전시기와 탈냉전시기 이슬람권에 대한 정책변화를 중심으로-’(한국중동학회, 2005)

 

이성수 미국의 대 이슬람권에 대한 인식 연구” - 부산외대

 

이희수 9.11이후 미국 무슬림의 정체성 변화에 대한 고찰 : 이희수 - 한국이슬람 학회 논총

 

김현아, ‘9.11 테러와 근본주의의 충돌 하미드의 주저하는 근본주의자(새한영어영문학회, 2014)

 

이희수 9.11이후 미국 무슬림의 정체성 변화에 대한 고찰 : 이희수 - 한국이슬람 학회 논총

 

김길성, 총신의 신학전통(총신대학교출판부, 2013)

 

FoxNews.com,한국선교연구원(krim.org) 파발마 759

 

미국 /기독교와 이슬람 공존 논란, 2011.

 

이성수, 한국중동학회논총 제 26-1, 미국의 대 이슬람권에 대한 인식 연구, 2005

 

김윤성, ‘[특집/제국의 힘]미국 사회와 개신교 근본주의 - 사면초가 속의 저력,’ (역사비평, 2003),

 

 

* 웹사이트

http://www.christianitytoday.com/

 

http://www.foxnews.com/opinion/2015/05/20/christian-response-to-isis.html

 

http://www.crossmap.com/blogs/may-7th-islam-in-america-a-christian-response-with-dr-erwin-lutzer-6234

 

http://www.answering-islam.org/Terrorism/islam_terror.html

 

http://www.equip.org/article/a-post-911-look-at-islam/

 

http://www.religioustolerance.org/reac_ter18a.htm

 

http://www.pewforum.org/2015/05/12/americas-changing-religious-landscape/

 

http://cafe.naver.com/kccchurch/207

 

http://www.missiontoday.co.kr/archives/3145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3841124, ‘이슬람 vs 기독교?바로 그게 IS<이슬람국가>가 노리는 것”’

 

http://www.newsm.com/news/articleView.html?idxno=1493

 

http://www.newspower.co.kr/sub_read.html?uid=266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