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사본학의 현재와 미래 3
그런데 어떻게 해서 「공인 본문」(TR)이 붕괴하게 되었는가? 여기에는 그 당시 교회
가 사용하고 있던 성경에 대한 집요한 도전이 계속되어 왔었다. 물론 그 중에는 순수한
학적인 동기에서 출발한 것도 있지만 수백 년간에 걸쳐 진행된 그 과정과 결과를 돌이
켜 때, 때로는 소위 학문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을 위해 봉사하게 되었는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17세기 후반에 살았던 존 밀(John Mill, 1645-1707)은 TR과 다른 3만여 개의 “상
이독본”(相異讀本, variant reading)들을 모았으며, 이에 충격받은 벵겔(J.A. Bengel,
1687-1752)은 평생 동안 사본 연구에 몰두하였다. 물론 그는 경건한 학자로서 좋은
주석을 남기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의 사본 연구의 주요 원리 몇 가지는 그 후의 학자
들에게 두고두고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데, 곧 “본문의 증거력은 사본의 숫자를 셀 것이
아니라 그 비중을 달아보아야 한다”는 것과 “필사자는 어려운 것을 쉽게 만들려는 경향
이 있다”는 것이다. 첫번째 원리에 의해 사본을 “그룹”(계통)으로 나누게 되었으며, 두
번째 원리에 의해 사본상 어떤 구절에 쉬운 독본과 어려운 독본이 있을 때에 그 중에
서 어려운 독본을 선호하게 되었다. 이 두 원리는 그 후로 사본학계에서 마치 지극히
당연한 “공리”(公理)처럼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그러나 당연시되는 이 원리들은 아직 검
증되지 않은 것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 후에 그리스바하(J.J. Griesbach, 1745-1812)는 사본들을 다음과 같이 세 그룹으
로 나누었다. 곧, “알렉산드리안 그룹”과 “웨스턴 그룹”과 “비잔틴 그룹”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의 본문 선택 원리를 살펴보면 그의 사본학의 진면목을 볼 수 있게 해 준다.
그는 이것을 두 가지 경우로 나누어서 생각하는데, 첫째로 “짧은 것이 더 어렵고 불확
실하고 애매하고 이상할 때에는 짧은 독본이 긴 독본보다 우선한다”는 것이다. 둘째로
“긴 독본이 불확실하고 거칠고 부연 설명하고 이상하고 역설적이고 불경건하게 들리고
오류적일 경우에는 긴 독본이 짧은 독본보다 우선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경우를
잘 살펴보면 결국 하나의 원리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곧 사본
상 서로 다른 독본들이 있을 경우, 그 가운데서 어쨌든 “더 어렵고 애매하고 이상하고
심지어는 불경건하게 들리고 오류적인 것”을 원본으로 봐야 한다는 원리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원리에 의해 편집된 신약 성경이 우리 앞에 놓여진다면 그것은 매우 어색하고
문장이 잘 안 통하는 본문이 될 것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또다른 비평 학자인 라흐만(K. Lachmann, 1793-1851)은 1831년에 소문자 사본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단지 몇 개의 초기 대문자 사본과 고대 라틴어 역본, 그리고 벌게
이트와 교부들 인용을 사용하여 희랍어 신약 성경을 편집, 출판하였다. 물론 그의 목적
은 4세기에 동방 교회에서 통용되던 사본을 재구성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로써 대부분의 소문자 사본과 후기 대문자 사본들이 취하고 있는 본문 형태인 “비잔
틴 본문”(Byzantine text)이 제외 당하게 되었다.
그 외에도 티쉔도르프(L.F.C. von Tischendorf, 1815-1872), 트레겔레스(S.P.
Tregelles, 1813-1875), 알포드(H. Alford, 1810-1871) 등의 노력이 있었으나, 현대
사본학에 결정적인 전기를 마련한 것은 1881년에 영국 캠브리지 대학의 동료 교수인
웨스트코트(B.F. Westcott)와 홀트(F.J.A. Hort)가 두 권의 희랍어 신약 성경(The
New Testament in the Original Greek)을 출판한 사건이었다. 표면상으로는 두 사
람의 공동 작품으로 되어 있지만, 사실은 젊었을 때에 카톨릭의 예수회 회원으로 훈련
받은 바 있는 홀트가 주로 작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희랍어 신약 성경의 제 2권
은 「서론」과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서론」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사본 이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