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고리 비일의 '성전신학'에 대해 -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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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고리 비일의 '성전신학'에 대해 - 논문

개혁신학어벤져스 2024. 3. 23. 22:19

 비일은 자신의 다양한 유대 문헌의 성전(성막) 모티프를 사용하여, 성전 신학을 전개합니다. 세계적인 신학자이고, 몇년 전 아주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점을 감안하여, 그의 글을 적절히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히브리서에 관한 좋은 통찰력을 제공합니다.


 * 이 논문에서는 그레고리 비일이 히브리서를 다음과 같이 정리합니다:

1. 히브리서는 성전에 대한 수용을 포함합니다. 히브리서는 성전의 출현과 축제에 대해 다루고 있으며, 이를 통해 유대인들의 종교적인 관습과 역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2. 히브리서는 십계명과 세부 규정에 대해 다룹니다. 히브리서에서는 십계명과 세부 규정들이 어떻게 생활과 도덕적인 가치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설명합니다.

3. 히브리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역할을 강조합니다. 히브리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선지자, 제사장 및 왕으로서의 역할로 설명하고, 그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구원의 역할을 수행한 것을 강조합니다.

4. 히브리서는 성령의 역할을 강조합니다. 히브리서는 성령의 중요성과 그의 역할을 강조하며, 믿음의 힘과 변화를 통해 우리를 돕는다는 사실을 설명합니다.

5. 히브리서는 인내와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히브리서는 어려운 시기에도 인내하고 믿음을 잃지 않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과거의 선지자들과 예수 그리스도의 인내를 예시로 들고 있습니다.


 * 서술적 특징 

- 히브리서는 수신자에 대한 명확한 언급이 없으며,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수신자로 추정된다.
-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구약성경의 역할을 중요시했고, 히브리서에서도 구약의 구절들이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다.
- 본 논문은 히브리서의 수신자와 그들의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여 히브리서의 내용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 곧, 히브리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스도의 중심성과 탁월성을 상기시키고, 믿음을 지켜나가는데 필요한 인내와 힘을 부여하고자 한다.


그레고리 비일의 '성전신학'에 대한 비평 - 제2 성전기 문헌 및 히브리서를 중심으로.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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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고리 비일의 『성전신학』에 대한 비평:  
제2 성전기 문헌 및 히브리서를 중심으로  
Critiques on Gregory K. Beale’s  
The Temple and the Church’s Mission:  
with Special Reference to the Second Temple  
Literature and Hebrews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대학원  
신약 신학 전공  
진 정 아  
그레고리 비일의 『성전신학』에 대한 비평:  
제2 성전기 문헌 및 히브리서를 중심으로  
Critiques on Gregory K. Beale’s  
The Temple and the Church’s Mission:  
with Special Reference to the Second Temple  
Literature and Hebrews  
지도 김 규 섭 교수  
이 논문을 석사학위논문으로 제출함  
2020년 12월 7일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대학원  
신약 신학 전공  
진 정 아  
진정아의 석사학위논문을 인준함  
아 세 아 연 합 신 학 대 학 교 대 학 원  
2020년 12월 22일  
-- 목  
차 --  
Ⅰ. 서론 ·················································································································1  
1-1. 문제제기 ······································································································1  
1-2. 방법론과 본문의 개요 ···············································································3  
Ⅱ. 그레고리 비일(Gregory K. Beale)의 『성전신학』 ······················6  
2-1. 비일의 방법론 ·····························································································6  
2-2. 구약성경과 유대교에 나타난 성전의 상징성 ········································ 7  
2-3. 구약성경에 나타난 성전의 확장되는 목적 ············································8  
2-4. 구약 성전에서 확대되는 종말론적 목적 ················································9  
2-5. 신약성경에 나타나는 마지막 성전과 새 성전 ····································10  
Ⅲ. 유대 문헌에 나타나는 성전(성막)의 개념 ···········································13  
3-1. 벤 시라에 나타난 성전(성막) ·································································13  
A. 벤 시라의 배경과 목적 ···············································································13  
B. 벤 시라 내용과 성전(성막)의 출현 ···························································14  
C. 벤 시라에 나타난 성전(성막)의 개념 ·······················································17  
3-2. 에녹 1서에 나타난 성전(성막) ······························································24  
A. 에녹 1서의 배경과 목적 ············································································24  
B. 내용과 성전(성막)의 출현 ···········································································26  
1) 에녹 1서 72-82장 ‘천문학의 책’ ····························································26  
2) 에녹 1서 1-36장 ‘파수꾼의 책’ ······························································27  
3) 묵시록 (‘주간 묵시록’/‘꿈의 책’/‘에녹의 비유집’) ······························29  
a. 에녹 1서 93:3-10, 91:11-17 ‘주간 묵시록’ ······································30  
b. 에녹 1서 83-90장 ‘꿈의 책’ ·································································31  
c. 에녹 1서 37-71장 ‘비유의 책’ ·····························································31  
d. 에녹 1서 91-107(108)장 ‘에녹의 편지’ ··············································33  
C. 에녹 1서에 나타난 성전(성막)의 개념 ·····················································33  
1) ‘파수꾼의 책’에 나타난 성전(성막) ·························································33  
2) ‘비유의 책’에 나타난 성전(성막) ·····························································39  
3) ‘동물 묵시록’에 나타난 성전(성막) ·························································40  
3-3. 1QH(1QHodayot) 6.12-19에 나타난 성전(성막) ······························42  
A. 사해문서의 배경과 쿰란 공동체 ·······························································42  
B. 1QH(1QHodayot) 배경과 내용 ·······························································45  
C. 1QH 6.12-19의 내용과 성전(성막)의 출현 ···········································46  
D. 1QH 6.12-19에 나타난 성전(성막)의 개념 ···········································48  
3-4. Philo, Spec. Leg. 2.162-163에 나타난 성전(성막) ·······················52  
A. Philo, Spec. Leg.(De Specialibus Legibus)의 배경과 개요 ··· 52  
B. Philo, Spec. Leg. 2.162-163의 내용과 성전(성막)의 출현 ··········· 55  
C. Philo, Spec. Leg. 2.162-163에 나타나는 성전(성막)의 개념 ······· 57  
Ⅳ. 히브리서에 나타난 성막 ·········································································62  
4-1. 히브리서의 배경 ·······················································································62  
A. 히브리서의 저작목적 ···················································································62  
B. 수신자의 배경 ·······························································································65  
C. 히브리서 공동체의 세계관 ·········································································68  
4-2. 히브리서의 ‘성소’와 ‘참 장막’ ······························································70  
4-3. 첫 언약의 희생 제물인 그리스도 ···························································76  
4-4.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 ·································································81  
4-5. 영문 밖으로 나아가자(히 13:13) ····························································86  
4-6. 비일의 히브리서 해석 ···············································································91  
A. 히 8:2의 구약적인 배경 ·············································································91  
B. 마지막 때 하늘 성막 자체인 그리스도 ····················································94  
C. 마지막 날 성전에 대한 학 2장의 예언 ···················································95  
D. 성전과 제사장의 역할 (이사야의 인용) ···················································96  
Ⅴ. 비일의 히브리서 방법론에 대한 비평 ··················································98  
Ⅵ. 결론 ···············································································································107  
*참고 문헌 ··········································································································111  
Ⅰ. 서론  
1-1. 문제제기  
성막과 관련된 학술적인 연구 서적들은 극히 드물다. 특별히 신약에 나  
타난 성막을 연구하기엔 더 한계를 나타낸다. 그 중에 드문 예로서 그레고리  
비일의 ‘성전신학’1은 학문적인 가치가 매우 높은 책으로 평가된다. 성막과 성  
전에 관계된 전체적인 배경과 흐름을 연구하는 좋은 지침서이며 구약과 신약,  
유대 문서에 나타난 성막과 성전의 세계관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책이라는 면  
에서 유익함을 제공한다. ‘성전신학’이 말하는 내용과 연구의 업적, 비일의 사  
상들이 너무 높이 평가되었기 때문일까? 사실 비일이나 ‘성전신학’에 대한 비  
평적인 글들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물론 그의 책이나 사상들이 비평되지 않  
을 만큼 훌륭한 것이 사실이지만 성막이나 성전의 세계관을 자신의 방법으로  
풀어가는 과정은 약간의 의문점을 갖게 하였다. 비일은 ‘성전신학’에서 성전  
(성막)을 설명하기 위해 유대 문헌을 언급하였다. 유대 문헌에 나타난 성전(성  
막)의 출현은 ‘성전신학’안에 흐르는 성전의 개념과 세계관을 이해하기에 유용  
한 자료지만 대부분 에덴의 언어와 연결하여 유대 문헌을 해석하는 방법은  
1 Gregory K. Beale의 『성전신학』은 2004년에 출판되었고 한국어판 번역본(강성  
열 역)은 새물결 플러스 출판사에서 2014년에 출간하였다. 총 624페이지로 성전신  
학에 관련된 많은 정보와 견해로 독자들에게 유익함을 주고 있다. Gregory K.  
Beale은 성경을 관통하는 핵심주제를 바탕으로 신구약의 유기적인 관계를 증명하  
는 저서들을 발표한 미국의 신학자다. 대표 저서로 The Book of Revelation: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신약성경신학』, 『신약의 구약사용 핸  
드북』 등이 있다.  
1
2
유대 문헌이 가지는 고유의 특징들을 반영하지 않고 비일의 방법을 독자들에  
게 전달하고 있는 실정이다. 독자들은 이러한 방법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  
을까?  
히브리서에 대한 연구는 주로 히브리서에 나타난 제사장직과 속죄, 혹은  
‘성전’에 대한 연구에 집중되었다. 히브리서의 성전에 관한 연구 중에서 최근  
연구로는 Philip Church, Hebrews and the Temple: Attitudes to  
the Temple in Second Temple Judaism and in Hebrews (Leiden:  
Brill, 2017)이 있지만, 저자인 필립 처치는 히브리서의 성막(σκηνή) 언급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히브리서에 나타난 진영(히11:34;  
13:11; 13:13; παρεμβολή)의 개념은 Richard W. Johnson, Going  
outside the Camp: The Sociological Function of the Levitical  
Critique in the Epistle to the Hebrews (Sheffield: Sheffield  
Academic Press, 2001)에서 연구했지만, 마찬가지로 성막에 관해서는 거  
의 다루지 않았다. 그러나 필립 처치와 리처드 존슨의 연구는 대화 상대자로  
서 본 연구의 논의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신약성경(히브리서를 포함하  
여)에 나타난 성막 개념에 대한 거의 유일한 연구는 Craig R. Koester,  
The Dwelling of God: The Tabernacle in the Old Testament,  
Intertestamental Jewish Literature, and the New Testament  
(Washington: CBA, 1989)이다. 이 연구의 내용은 의미있지만, 히브리서와  
관련된 논의는 지나치게 간략하기 때문에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한 실정이다.  
신약 히브리서가 말하고 있는 성전(성막)이 구약에서 나타난 성전(성막)  
3
과 비교하여 어떻게 서술되고 있으며 중간단계인 유대 문헌은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성막을 이해하는지에 대한 관심은 성전(성막)을 좀 더 깊이 알아가는  
중요한 연구가 될 것이다. 비일의 히브리서 해석 방법에서도 동일한 이해가  
등장한다. 구약의 배경을 연결하여 동산의 언어와 히브리서 성막을 연결하는  
것인데 이러한 방법은 과연 독자들이 받아들이기에 타당한 방법론이 될 수  
있을까? 성전(성막)연구에 필요했던 유대 문헌들의 올바른 이해와 적용은 어  
떠한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가? 히브리서 전체를 해석하는 방법론의 큰 그림  
인 구약의 신약사용에 대한 올바른 적용은 어떤 자세와 전제조건을 가지고  
해석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갖게 한다.  
1-2. 방법론과 본문의 개요  
본 논문은 역사적 방법론을 사용하여,2 구약성경뿐 아니라 유대 문헌에  
나타나는 성막 개념과 히브리서에 나타난 성막 개념을 비교하며 성전(성막)에  
대한 통시적인 접근과 신학적인 접근 방법으로 연구하게 될 것이다. 성전의  
개념을 이해하고 확장시키는 과정에서 구약과 신약의 지속성과 연관성을 연  
구하는 것은 중요한 가치가 있다. 이에 관련하여 중간기 문헌들에 나타나는  
2 하나님은 특정한 역사적 상황속에서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셨기 때문에 고대의  
역사-문화적 상황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결코 ‘당시에 살았던 사람들’을 무  
시하고 건너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바로 말씀하시는 것으로 해석할 수 없  
다. 예를 들면 신약 서신들은 특별한 상황과 정황이 만들어낸 저작으로 당시 교회  
가 직면한 특정한 문제를 다루기 위하여 기록되었다는 의미를 지닌다. 성경의 역  
사-문화적 문맥을 안다는 것은 성경이 강력하고 적실성이 있는 살아있는 말씀이  
되게한다. (J. Scott Duvall, J. Daniel Hays, 『성경해석』, 류호영 역 (서울: 성  
서유니온 선교회, 2009), 146-157.  
4
성전(성막)의 출현을 찾아보고 그들이 가진 세계관과 공동체의 특징들을 살펴  
보게 될 것이다. 이러한 해석 방법은 유대 문헌 자체를 이해하는 것으로 그치  
지 않고 히브리서를 해석해가는 방법과 접목하게 될 것이다. 본론의 내용에서  
그 이유에 대해서 밝히겠지만 충분한 연구 가치가 있음을 증명한다. 본 논문  
특히 에른스트 케제만(Ernst Käsemann)이 그의 저작 The  
3
Wandering People of God 에서 제안한 바와 같이, 히브리서의 독자들을  
‘광야’를 지나는 이스라엘의 이야기 관점에서 파악하려는 관점을 도입하여 본  
주제를 이해하고자 한다. 성막은 광야와 관련된 개념으로서 일종의 광야 공동  
체로서 교회의 상황을 이해하려고 하는 히브리서 저자의 목적에 부합할 수  
있다. 비일은 ‘성전신학’에서 히브리서를 해석하는 방법으로 구약적 배경을 등  
장시킨다. 비일이 제안하는 신약의 구약사용은 어떠한 점에서 유용하며 신약  
의 구약사용에서 해석자가 유의해야 할 과제들에 비추어 비일의 방법론에서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파악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히브리서의 해석 방법론과  
유대 문헌의 연구가 비일의 해석 방법론을 비평하는 기본적인 틀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본론 Ⅱ. 그레고리 비일(Gregory K. Beale)의 ‘성전신학’에서는 먼저  
사용된 방법론에 대하여 분석하고 ‘성전신학’의 내용에 대하여 요약함으로 드  
러나는 문제점에 대해 비평하게 될 것이다. Ⅲ. 유대 문헌에 나타나는 성전  
(성막)의 세계관에서는 벤 시라, 에녹1서, 사해문서, 필로의 유대 문헌을 차례  
3 The Wandering People of God: An Investigation of the Letter to  
the HebrewsErnst Kdsemann, Roy A. Harrisville이 공동으로 저술하  
였고 Wipf & Stock에서 2002년 출간되었다.  
5
로 연구하게 되는데 이 문헌들은 모두 비일이 자신의 책에서 성전(성막)을 설  
명하기 위해 등장시킨 문헌들이다. 이 문헌들의 간략한 개요와 배경, 성전(성  
막)이 출현되는 본문을 찾아보고 성전의 개념을 분석하게 된다. 각 문헌에 등  
장하는 공동체들을 연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다. 공동체가 가  
지는 성전관이나 역사적 정황은 비일의 해석 방법론에서 함께 논의되었어야  
하는 부분에 대하여 보충적인 설명을 제공할 것이고 이러한 작업은 비일의  
방법론을 비평하는 기초 자료가 될 것이다. Ⅳ. 히브리서에 나타난 성막에서  
는 히브리서의 배경이 되는 수신자들의 상황과 히브리서 저작목적, 유대 문헌  
의 과정과 동일하게 히브리서 공동체가 가지는 세계관을 보게 될 것이다. 히  
브리서에서 주된 이슈로 드러나는 성소와 참 장막의 의미, 첫 언약의 희생 제  
물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대제사장 역할에 대하여 언급할 것인데 이러  
한 주제들은 히 13:13에 나타나는 ‘영문 밖으로 나아가자’는 권면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설명하게 될 것이다. 비일의 히브리서 해석에서는 비일의 ‘성전신  
학’ 안에서 분석하고 있는 히브리서의 내용을 분석할 것이며 각 주제별로 사  
용된 구약의 전승을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이러한 구약 전승 사용에 대한 비  
일의 방법론을 바라보며 보완되어야 할 것과 비평적인 부분을 첨가하여 결론  
을 맺는 과정으로 진행될 것이다.  
Ⅱ. 그레고리 비일(Gregory K. Beale)의 『성전신학』  
2-1. 비일의 방법론  
비일은 역사적 접근을 바탕으로 한 신약의 구약사용을 사용하여 저서를  
설명하고 있다. 비일의 ‘성전신학’은 성경 전체의 마지막 환상을 포함하는 계  
21:1-22:5 부분을 연구하며 성전에 대한 성경 신학의 의미를 발견하고자 하  
였다. 새 하늘과 새 땅을 ‘도시-성전’과 동일시하여 새로운 창조 세계와 새로  
운 우주도 동일 선상에 놓았다. 비일은 새 창조 세계와 새로운 예루살렘이 하  
나님의 장막을 가리키고 있다고 정의하였고 이 장막이 계 21장에 흐르는 하  
나님의 임재에 대한 참된 성전임을 주장한다. 구약에는 하나님의 임재가 성막  
이나 성전의 지성소에서만 한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비일의 주장은 이러한 구  
약의 한정된 임재가 아닌 지상 전체와 우주론적 차원에서 종말론적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의도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계 21장에 드러나는  
환상은 우주 전체를 가득 채울 마지막 때의 성전(성막)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비일은 구약에 나타나는 성전(성막)  
과 고대 근동에서 보이는 신전의 우주적 상징성의 증거를 개관한다. 에덴동산  
이 최초의 원형이 되는 성전이며 후에 만들어지는 모든 성전의 모델이 되었  
음을 함께 주장하였다.4 에덴의 이해는 구약에서 말하고 있는 성막, 성전이  
피조 세계의 축소판인 소우주를 상징하고 있다는 개념으로 강화하고 이러한  
4 그레고리 K. 비일, 『성전신학』, 강성열 역 (서울: 새물결 플러스, 2004), 34-35.  
6
7
구조물이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하고 있는 종말론적인 성전으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의도를 품고 있다.  
비일은 성경의 통일성을 말하기 위하여 신구약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  
로 쓰인 것을 전제로 두었고 구약, 신약의 공통 주제를 찾는 것에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비일의 ‘성전신학’은 책 전체에 걸쳐 어떠한 특정한 해석  
을 지지하기 위하여 일련의 증거 자료를 제시하고 설명하는 전형적 논의전략  
을 사용하는데 이러한 방법이 매우 설득력 있을 것이라 믿었다. 자료를 수집  
하고 자신의 주장에 맞게 사용하다 보면 설득력이 조금 미비한 자료가 있을  
지 모르지만 그러한 자료들조차 논증의 다른 관점에서 더 큰 설득력을 가져  
오는 주요 개념의 개연성과 타당성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라 역설한다. 비일  
이 제시하는 자료들은 성전(성막)의 개념을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 많은 유  
익함을 주는 논리적 접근의 근거가 된다. 히브리서를 해석해가는 과정에서 비  
일이 사용한 방법론은 구약에 나타나는 성전(성막)의 이해를 히브리서의 본문  
과 연결하여 풀어내고 있는데 신구약의 관계를 바로 볼 수 있도록 독자들을  
이끌어 간다. 비일은 히브리서를 해석해가면서 많은 부분 신약의 구약사용에  
대한 방법론을 사용한다. 이러한 방법은 비일이 성전(성막)을 해석하면서 사용  
하는 전승사적 방법론과 아울러 히브리서 해석에 충분한 연계성을 주고 있는  
지와 설득력있게 독자들에게 접근하고 있는지 비평하게 될 것이다.  
2-2. 구약성경과 유대교에 나타난 성전의 상징성  
여기에 나타나는 이스라엘 성전(성막)은 우주의 세 영역 즉, 바깥뜰은  
8
인간이 사는 땅과 바다를 포함한 가시적 지구를, 성소는 가시적 하늘을 상징  
하며 지성소는 비가시적인 영역으로 하나님이 거하시는 영역이다. 이러한 우  
주적 시각은 유대교에서도 발전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이러한 상징적  
해석 방법이 옳고 그름을 떠나 구약 성전이 지니는 상징적 의미를 정확히 파  
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대 근동의 신전들에서 발견되는 증거들은 이스  
라엘 성막이 상징한다고 하는 우주의 세 영역을 나타내는 결론과 유사하여  
장차 우주 전체가 신전이 될 것을 암시하고 있다. 고대 근동의 신전과 이스라  
엘의 성전(성막) 사이에 드러나는 극명한 차이는 내부에 우상이 자리하는 여  
부에 있다. 주변 나라의 신들은 휴식을 위한 거처가 필요하지만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어떠한 구조물도 당신의 적절한 처소가 될 수 없음을 말하고 있는  
데 이는 하나님 임재의 종말론적 목표를 가리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에덴동  
산에 대한 언급은 성경뿐 아니라 많은 유대 문헌에서도 발견된다. 최초 원형  
적인 성전의 모습으로 에덴은 이스라엘의 모든 성전과 성막의 기초가 되는  
수많은 평행관계를 보여주며 겔 28장에서도 에덴을 최초의 성소로5 부르고  
있는데 에덴이 ‘동산-성전’의 관계이지만 최초의 성전으로서 묘사됨을 입증한  
다.  
2-3. 구약성경에 나타난 성전의 확장되는 목적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자의 임무는 왕적이며 제사장적인 역할을 감  
5 겔 28:13,14,18에 나타나는 성소로서의 에덴은 이방 나라들에 대한 신탁 문맥 안  
에 등장한다.  
9
당하게 되는데 먼저는 에덴의 아담을 통해 나타난다. 동산을 관리하고, 보살  
피며 지켜내는 행동들이 이와 관련된다. 아담이 하나님의 왕적 형상으로 성소  
안에 있다는 개념과 유사하게 이스라엘 밖의 고대 근동의 신전 개념에서도  
신전 안에 신의 형상들이 배치되었다는 관습과 일치한다. 아담의 임무가 동산  
에 임재한 성소의 확장에 있었지만 아담과 하와의 죄는 동산의 성소가 임재  
됨을 확장시켜 나가는 것이 아닌 그곳으로부터 쫓겨나게 되었고 창 1:28의  
명령에 불순종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명령에 실패한 후 아담의 제사장-왕적  
사명은 다른 사람들에게로 옮겨가게 된다. 죄로 인한 아담의 사명은 점차 변  
화되었으며 그의 후손들 역시도 실패를 거듭하는데 마지막 아담의 등장으로  
이 세상에서 사명을 이룰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불순종 이전의 아담은 모든  
피조물을 지배하며 다스리고 정복하는 일을 성취함으로 주권을 드러냈다. ‘내  
가 너와 함께 하리라’의 보증은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성전 확장의 과제  
를 이뤄가는 핵심이 된다. 동산 성소에서 아담이 순종하는 모습 또한 하나님  
의 함께 하심을 통하여 명령을 이행하는 통로가 되었다. 나아가 이스라엘 백  
성들에게 선포되었던 출 19:6에서도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이 될 것이라  
말씀하시며 하나님의 임재를 더 널리 전하는 중재자로서의 사명을 던지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과 성취는 인류를 통해서도, 이스라엘의 성전 안에서도  
이뤄지지 않았고 여전히 성취되어야 할 대상으로 남겨져 있다.  
2-4. 구약 성전에서 확대되는 종말론적인 목적  
민 24:5-9은 에덴의 본래 목적과 유사한 설명을 발견할 수 있고 에스겔  
10  
서에는 종말론적 아담의 사명을 실패한 모습을 나무와 관련된 동산의 언어로  
표현하였다. 죄악된 행위에 따르는 심판과 계속되는 사명의 실패는 이사야서  
에 가서 종말론적 이스라엘의 모습으로 에덴의 회복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  
54:2은 성막의 종말론적 확장을 암시하며 마지막 때 이스라엘 전체로 넓혀질  
에덴의 확장으로 보았다. 이사야서에서는 참된 하나님의 성전이 오직 하늘에  
있음을 강조하고 이러한 차원이 지상에까지 확장되는 실제적 장소임을 표현  
하였다. 또한 새 창조를 통하여 하늘 성전을 확장하고 하나님의 사람들과 함  
께 거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지상의 어떤 건축물 안에도 거주하실 수 없는  
데 이는 하나님의 초월성뿐 아니라 정화, 재창조의 필요성에 대하여 함께 언  
급하고 있다. 스가랴에 나타나는 예언에서는 성막의 임재가 다시 돌아올 것과  
이전보다 더 나은 방법으로 이스라엘을 채우게 될 것을 암시하였다. 단 2장의  
성전은 온 세계로 확장되는데 구약의 산의 의미는 이러한 내용을 확증한다.  
신약의 모퉁이 돌과 연결된 단 2장의 돌의 의미 또한 같은 맥락으로 이해되  
는데 이러한 증거는 거대한 산-성전으로 표현될 수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  
추할 수 있다.  
초기 유대교 주석가들의 문헌들과 견해 또한 이러한 성전의 확장을 설  
명하는데 공헌한다. 사해 두루마리, 집회서, 에녹 1서, 필론, 시빌의 신탁 등  
에서 나타나는 성전의 이미지는 많은 부분 에덴과 연결되어 동산-성전의 개  
념을 설명하며 에덴의 확장을 주제로 그 필요성에 대하여 인식하고 표현하였  
다.  
2-5. 신약성경에 나타나는 마지막 성전과 새 성전  
11  
신약성경은 아직까지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성전의 확장을 이루지  
못했던 사명을 그리스도와 교회가 성취한다고 밝힌다. 그리스도는 첫 아담이  
해야 할 일을 성취하였고 다니엘의 예언과 같이 메시아됨으로 마지막 아담이  
되어 일을 성취하였다. 그리스도를 성전으로 인정하는 것은 그를 새 창조로  
받아들이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성전정결 사건은 이러한 그리스도의 모습에  
서 보이는 사역을 가리킨다. 요한복음에 묘사된 예수는 새 창조의 성전으로서  
나타나는데 말씀이 육신이 되고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그리스도는 창세기 야  
곱의 사닥다리와 같이 하늘과 땅을 잇는 연결고리가 됨을 다른 방법으로 보  
여준다. 사도행전에서 이해되는 핵심 가운데 오순절 사건은 예수의 성전 예언  
의 성취임을 빼놓을 수 없다. 오순절은 요엘서에서 예언된 대로 옛것의 파괴  
됨과 새 질서가 세워지는 것을 보여주었다. 사도행전에서 계속 언급되는 예  
수, 성령,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마지막 때 성전의 기초가 될 것을 확증  
한다. 바울의 견해는 새 성전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터가 됨을 주장하였다. 고  
린도서에 나타나는 마지막 때의 성전은 시작과 끝을 의미하는 교회로서 묘사  
되고 성령은 새 창조의 초기 증거가 된다. 새 창조 안에서는 부활의 실존이  
있고 우주적 의미의 성전도 자리한다. 신약에서 성전으로서 교회를 가장 잘  
묘사하는 부분은 엡 2:19-23인데 예수가 성전의 모퉁이 돌이 되심으로 사역,  
죽음, 부활을 설명한다. 히브리서는 성전보다 성막을 더 강조하는데 그 의미  
는 동일하고 성전보다 하늘의 양식과 더 관련된 용어임을 부각하기 위해 사  
용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우월성을 절대적으로 나타내며 대제사장으로  
서 사역과 새 언약 안에서 영원한 희생제물로서의 예수를 설명하였다. 그러나  
지상의 장막은 종말론적 하늘 성소의 그림자와 모형이 될 뿐이다. 요한계시록  
12  
에서 자주 등장하는 성소, 성전의 의미인 ναός 단어는 모두 하늘의 성전을  
가리키는데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는 마지막 때의 성전으로서 가지는 다양한  
측면들을 지시하고 있다. 하늘 성전의 의미는 부분적으로 교회시대를 지내는  
성도들의 확장을 포함한다. 요한계시록의 성전과 새 창조는 성전의 폭넓은 우  
주를 품고 있음을 나타냄으로 온 세상을 포괄하는 미래의 목적을 갖고 있음  
도 표현하였고 이러한 성전의 완성에 대하여 묘사하였다.  
본 논문에서는 히브리서의 성막 개념에 대해서 논의할 때 비일의 ‘성전  
신학’을 일종의 출발점으로 삼을 것이다. 비일의 많은 논의는 히브리서 해석  
에 있어서 중요한 측면을 지닌다. 아울러 본 논문은 비일의 논의에 있어서 방  
법론적인 측면을 재고할 것이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신약과 구약을 연결하는  
작업에서 중요한 것은 구약과 신약 사이에 놓인 중간기라고 불리는 시대에  
유대인들의 구약 해석의 발전이다. 이러한 창조와 낙원의 견지에서 성전을 해  
석하는 것은 유대 문헌에도 발견되는 것이지만, 이러한 해석 전승의 궤적은  
각 전승이 딛고 있는 역사적 정황 속에서 재평가되어야 한다. 본 논문은 성전  
에 대한 제2 성전 유대 문헌의 역사적 정황을 재해석하면서, 비일이 지적하지  
않은 다른 측면도 제2 성전에서의 성전 개념에 암시되어 있음을 고려할 것이  
다. 그리고 이러한 또 다른 시사점들이 비일이 고려한 창조와 낙원에 대한 관  
점과 조화롭게 이해될 때, 히브리서의 성전 개념을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본 논문은 제안한다. 다음 장에서 비일이 언급하였지만 깊이 있  
게 다루지 못했던 유대 문헌 4가지를 고려하면서 히브리서의 해석에 어떤 시  
사점을 지닐 수 있을지를 고찰할 것이다.  
Ⅲ. 유대 문헌에 나타나는 성전(성막)의 개념  
본 장에서는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벤 시라, 필로, 에녹 1서, 쿰란 문  
헌을 고려하면서 역사적인 정황 속에서 성전이 창조와 낙원의 의미를 나타내  
는 공간이며 하나님과 인간(그 백성)을 연결하는 중보의 공간으로서의 의미와  
더불어 다른 곳과 차별화된 배타적 중심적 공간이며, 제사장은 타자와 구분된  
구별된 지위를 의미한다는 점을 고려할 것이다.  
3-1. 벤 시라에 나타난 성전(성막)  
A. 벤 시라의 배경과 목적  
기원전 180년경에 히브리어로 쓰여진 벤 시라는 기원전 117년경에 손자  
가 그리스어로 번역하였다. 현대 번역본은 그리스어 본문을 기본적인 본문으  
로 채택하고 글씨체의 크기나 각주를 통해 본문을 구별한다.6 이 문헌은 유대  
지혜문학의 전통을 계승하며 실제적 인간 삶의 경험에서 나오는 충고이며 다  
양한 주제가 기원전 2세기 유대인의 생각이나 종교의 가치관을 짐작할 수 있  
도록 만든다. 비록 히브리어 정경에서 속하지 못했지만 칠십인역에 채택이 되  
었으며 탈무드나 랍비 문서에는 자주 등장한다. 벤 시라는 신약에 직접 인용  
되지 않았다. 그러나 제2 성전기 이후 유다이즘을 이해하고 예수와 초기 그리  
6 그리스어 본문은 오랫동안 교회의 책으로 읽혔고 가장 완전하다고 생각하였다. 그  
리스어의 전통에 교정할 부분이 있거나 벤 시라의 뜻을 좀 더 명확하게 전달하기  
위하여 히브리어의 본문을 사용하였다.  
13  
14  
스도교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일 수 있다. 벤 시라의 표현 방법은 동의적  
대구법이나 반의적 대구법을 두 소절의 짧은 경구로 사용하여 전개하고 있다.  
그는 성경 속의 지혜와 세속의 지혜를 통합화한 선구자로 고대 근동의 전통  
적인 지혜를 유다의 종교 전통을 헬라화된 세계에서 어떻게 연결해야 하는지  
보여 주었다.7 벤 시라를 저술한 목적은 당시 참된 지혜에 관심을 가지고 있  
던 그리스인들이 책이나 가르침을 좇는 것에 대해 질책하고 유다 전통 작품  
들과 교훈들 안에서 찾아야 할 것을 설득하고자 하였다. 벤 시라의 책은 이전  
에 쓰였던 이스라엘의 지혜와 공유되는 부분이 많다 하더라도 분명한 다른  
점이 존재한다.8 하나는 지혜를 모세의 율법과 동일시 하는 것과 이스라엘의  
거룩한 역사와 연결하여 생각한다는 사실이다.9 벤 시라가 제공하고 있는 정  
보는 유대교의 책인 구약성경이 어떻게 성장하였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몇 안  
되는 초기 창구이다. 손자의 번역을 통해 머리글에서도 나타나듯이 율법서,  
예언서, 나머지의 글들을 세 번 언급한다. 이 범주는 히브리어 성경에서 나뉘  
는 율법서와 예언서, 성문서의 분류를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B. 벤 시라 내용과 성전(성막)의 출현  
벤 시라의 논제는 매우 다양한데 많은 부분에서 동일한 논제를 다루고  
7 Daniel J. Harrington, 『구약성서의 외경 입문』, 박요한 영식 역 (서울: 성바오  
로, 2004), 157-158.  
8 특히 잠언을 들 수 있다.  
9 James C. VanderKam, 『초기 유다이즘 입문』, 박요한 영식 역 (서울: 성서와  
함께, 2004), 214.  
15  
있다. 다니엘 헤링턴(Daniel Harrington)은 주요한 7개의 논제를 분류하여  
설명하였는데10 이는 벤 시라를 어떻게 읽고 접근해야 하는지와 기대하는 바  
를 밝히고 있다. 벤 시라는 1-2장과 24장의 도입부에서 지혜를 묘사하고 찬  
양하는 시로 시작하고 있으며 42:15-43:33에서 하나님의 업적을 노래하는 찬  
가가 등장하고 44-50장은 옛 이스라엘의 영웅들을 찬양한다. 지혜를 허락한  
하나님께 대한 올바른 응답으로 보여드려야 할 태도는 ‘주님을 경외함’이다.  
이는 마땅히 드려야 할 감사, 존경, 그에 따른 행동을 함께 가리킨다. 이 주  
제는 벤 시라의 일관적인 주제가 되고 전체 신학적 틀을 제공한다. 벤 시라  
안에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는 주제로 ‘우정’을 들 수 있는데 이는 주님 안에  
서의 친구들이다. 개념의 정의나 필요성의 이유 등의 이론적인 생각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영예와 부끄러움’의 주제는 사회관계의 조언으로 문화적 문맥의  
일부다. 저자의 시각에서 영예와 부끄러움은 공동체 안에서 위치와 사회적 지  
위에 대한 다른 사람의 생각에서 유래하였다. 권력, 특권, 재물의 힘이 있는  
자가 존경을 받지만 이를 수용하는 반면 유다 종교 내의 지혜 접근방식에 따  
라 수정해 간다. ‘여자’의 주제는 문학적 방면과 역사적 문맥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벤 시라의 주된 청중은 젊은 남자이며 그들은 현인이 되길 원한다. 그  
들에게 해가 되고 불명예가 되는 여자를 조언하고 있다. 33장에 등장하는 ‘한  
쌍의 가르침’은 하나님이 악이 존재하도록 놔두시는 신정론에 대하여 설명한  
다. 이러한 주제를 다루는 의미는 하나님은 선과 악을 모두 주관하는 분이시  
라는 수정된 이원론에 대한 제안과 사물의 본성을 통해 하나님 계획의 수행  
10 Daniel Harrington의 7개의 논제는 주님을 경외함, 우정, 영예와 부끄러움, 여  
자, 한 쌍의 가르침, 죽음, 지혜로 분류하였다.  
16  
을 말한다. 인간에게 숙명적이며 피할 수 없는 문제는 바로 ‘죽음’이다. 애도  
의 방법을 설명하며 현인들 역시도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하고 사랑하는 자들의 죽음에 올바른 애도를 권면한다. 지혜는 기장 중요한  
주제로서 벤 시라를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어디서 지혜가 유래  
하였는지, 지혜의 정의가 무엇인지, 어떻게 지혜를 얻을 수 있는지를 묻는다.  
하나님은 지혜의 기원이며 사랑하는 자들에게 지혜를 허락하시고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설명한다. 지혜를 여성의 모습으로 묘사하였고 후에 토라  
와 동일시한다.11 지혜를 주신 분에게 보여드려야 할 응답은 처음으로 돌아가  
주님을 경외함임을 알려준다.  
이 책은 자연 안에서 넓게 드러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42:15-43:33)  
하는 것과 이스라엘의 역사의 재서술(44-50장) 부분에서 절정을 맞이한다.12  
그렇다면 42:15-50:23에서 나타나는 순서에 있어서 창조 안에 나타난 하나님  
의 영광 후에 그분의 권능이 역사 안에 드러나게 됨을 발견할 수 있다. 등장  
하는 지혜시들에서 말하고자 하는 벤 시라의 주된 가르침은 지혜가 본질적으  
로 주님으로부터 유래하고 모든 것들보다 앞서 창조되었으며 당신을 사랑하  
는 자들에게 부으심을 선포한다. 이는 주를 경외함으로 강조하고 이것이 지혜  
의 근본이고 뿌리임을 명확히 한다. 현인의 모습은 주님을 경외하는 내적 모  
습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외적인 모습을 가져야 함을 강조하며 어떤 상  
황에서도 신뢰함을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을 경고한다.13  
24장에 등장하는 지혜는 좀 더 특별함을 가진다. 지혜는 1인칭의 서술  
11 Harrington, 『구약성서의 외경 입문』, 164-172.  
12 Harrington, 『구약성서의 외경 입문』, 158.  
13 VanderKam, 『초기 유다이즘 입문』, 215.  
17  
인 ‘내가’로 시작하여 자신을 설명하고 있다. 지혜의 찬양함은 지혜가 예루살  
렘 성전에 머무르고 있다는 전제로 율법과 동일시하며 피조물인 지혜를 위하  
여 하나님이 예루살렘에 거처를 마련하셨다. 그는 지혜를 큰 강에 비교하며  
강처럼 흘러넘친다고 덧붙인다. 지혜의 충만함에 대해 이해하는 자는 아무도  
없다. 이 책은 지혜가 칭송의 대상이지만 지혜를 창조하신 분의 위대함을 의  
심하지 않게 만든다. 벤 시라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부록으로 지혜 추구의 시  
(51:13-30)는 기도와 성전예배를 포함하고 하나님을 찬양함으로 마무리한다.  
아래의 섹션에서는 벤 시라 24장에 나타난 성전과 벤 시라의 다른 곳에 나타  
난 성전 이미지들에 대해서 간략하게 논할 것이다.  
C. 벤 시라에 나타난 성전(성막)의 개념  
벤 시라에 나타난 성전에 대한 세계관을 살펴보기에 앞서 성전의 상징  
을 이루고 있는 정경의 문맥들과 공통된 점들을 발견하고 표현 방법에 관해  
연구하는 일은 의미가 있다. 창세기는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이야기의 서  
술로 시작한다. 또한 사람을 지으시고 에덴동산의 창조를 등장시킨다. 창조  
시의 분위기에 대한 서술과 벤 시라의 연결은 연구의 가치가 있다.14  
14 벤 시라 24:3-10은 마치 창조 때와 흡사한 분위기를 만나게 한다. "나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입으로부터 나왔으며 안개와 같이 온 땅을 뒤덮었다. / 나는 높은 하  
늘에서 살았고 내가 앉는 자리는 구름기둥이다. / 나 홀로 높은 하늘을 두루 다녔  
고 심연의 밑바닥을 거닐었다. / 바다의 파도와 온 땅과 모든 민족과 나라를 나는  
지배하였다. / 나는 이 모든 것들 틈에서 안식처를 구했으며 어떤 곳에 정착할까  
하고 찾아 다녔다. / 온 누리의 창조주께서 나에게 명을 내리시고 나의 창조주께  
서 내가 살 곳을 정해 주시며, '너는 야곱의 땅에 네 집을 정하고 이스라엘에서  
네 유산을 받아라' 하고 말씀하셨다. / 그분은 시간이 있기 전에 나를 만드셨다.  
18  
그렇다면 먼저 그레고리 비일의 해석을 고려해보자. ‘성전신학’에서 등  
장하는 비일의 설명은 벤 시라 24:28이 지혜를 터득한 자가 일찍이 아무도  
없었음을 지적하며 지혜의 역할이 성전15과 에덴동산을 설명하고 있는 언어로  
구성되어 있음을 강조한다. 지혜는 성전 안에 거하고 그 자체로서 풍성한 동  
산처럼 묘사하여 나무, 포도 넝쿨, 열매들이 등장한다고 설명한다. 비일이 에  
덴동산을 성전(성막)으로 간주하고 있는 주장과도 같은 맥락이다. 창 2장에서  
강이 에덴으로부터 흘러나와 동산을 적셨고 네 근원으로 되었으며 만드신 사  
람을 통해 그곳을 지키라는 임무를 부여하셨다. 벤 시라 24장에 등장하는 지  
혜는 강의 이미지를 사용하여 서술한다(24:25-31).16 에덴을 근원으로 흘러나  
오는 물은 동산을 적시고 네 강으로 나뉘어 땅을 적시듯 지혜 또한 이와 같  
그런즉 나는 영원히 살 것이다. / 그분이 계신 거룩한 장막 안에서 나는 그분을  
섬겼다. 이렇게 해서 나는 시온에 살게 되었다. (대한성서공회-공동번역 성서 개정  
판 1999)  
15 벤 시라 24:11-17은 주님은 사랑하시는 이 도읍에 나의 안식처를 마련하셨고, 예  
루살렘을 다스리는 권한을 주셨다. / 주님께서 고르시어 차지하시고, 영광스럽게  
만드신 그 백성 안에 나는 뿌리를 내렸다. / 나는 레바논의 송백처럼, 헤르몬산의  
삼나무처럼 자랐고, / 엔게디의 종려나무처럼, 여리고의 장미처럼 자랐으며, 들판  
의 우람한 올리브나무처럼, 또는 물가에 심어진 플라타나스처럼 무럭무럭 자랐다.  
/ 나는 계피나 아스파라거스처럼, 값진 유향처럼 향기를 풍겼다. 풍자향이나 오닉  
스향이나 또는 몰약처럼, 장막 안에서 피어 오르는 향연처럼 향기를 풍겼다. / 나  
는 테레빈 나무처럼, 영광과 자애의 가지를 뻗었다. / 나는 포도나무의 어여쁜 첫  
순처럼 돋아나서, 꽃을 피웠으며 영광과 부귀의 열매를 맺었다. (대한성서공회-공  
동번역 성서 개정판 1999)  
16 율법은 비손강 물처럼, 추수 때의 티그리스강처럼 지혜를 넘치게 하며 / 유프라  
테스강 물처럼, 추수 때의 요르단강처럼 깨달음을 넘치게 하고, / 나일강처럼, 포  
도철의 기혼강처럼 교훈을 넘치게 한다. / 지혜를 완전히 터득한 사람은 일찌기  
아무도 없었으며, 그 깊이를 완전히 알아 낸 사람도 고금에 없다. / 지혜의 생각  
은 바다보다 더 넓고, 그 계획은 심연보다 더 깊다. / 나로 말하면 강에서 흘러  
나오는 운하와 같고 낙원으로 흘러가는 물줄기와 같다. / 내가, "나의 정원에 물을  
대고 화단을 흠뻑 적시리라" 하고 말하자 나의 운하는 곧 강이 되고, 강은 또 바  
다가 되었다. (대한성서공회-공동번역 성서 개정판 1999, 벤 시라 24:25-31)  
19  
아야 한다. 땅은 영적인, 물질적인 풍요로움으로 가득하게 될 것이다. 비일은  
특별히 지혜를 물과 연결하여 묘사함은 에덴의 물 근원이 수목이 울창한 지  
성소에 거하면서 동산의 ‘거룩한 장소’로 확장되는 하나님의 임재와 동일시  
한다고 주장한다. 작은 물의 근원인 물줄기가 확장되어 바다의 그림으로 그려  
지는 묘사는 성소의 경계를 온 땅으로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지혜와 깨달음  
은 성전으로부터 나오며 그것이 온 땅을 덮을 것이다.17  
구약 성경에 나타나는 에덴의 성소는 점점 확대되어 이스라엘 땅 전체  
로 확장되어간다. 이는 곧 에덴동산의 성소와 이스라엘의 성전의 경계선이 세  
계를 포괄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음을 구체적으로 입증하고 있는 중요한 증  
거 자료가 될 것인데 민 24:5-7에서도 성막과 같은 동산의 이미지를 암시하  
여 벤 시라의 서술과 공통된 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비일의 주장이  
다.18 민 24:5-7의 본문은 에덴의 성소를 의미하는 목적과 유사하다.19 성전  
을 복수형으로 표현하는 후대 구약의 텍스트와 본문 사이에는 유사성을 가지  
는데 5절은 이러한 흐름으로 설명된다.20 장막이나 거처를 의미하는 두 히브  
리어 단어21는 오경 다른 곳에서 함께 나타날 때 성막을 가리키고 있다.22  
5
17 Beale, 『성전신학』, 218.  
18 야곱이여 네 장막들이, 이스라엘이여 네 거처들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 그 벌  
어짐이 골짜기 같고 강 가의 동산 같으며 여호와께서 심으신 침향목들 같고 물 가  
의 백향목들 같도다 / 그 물통에서는 물이 넘치겠고 그 씨는 많은 물 가에 있으리  
로다 그의 왕이 아각보다 높으니 그의 나라가 흥왕하리로다  
19 Brown은 본문에 등장하는 이스라엘의 공동체가 비유적 차원에서 또 다른 에덴  
동산을 비유하는 표현으로 설명하고 있다. (Brown, William P, The Eibos of  
the Cosmos: Eerdmans, 1999)  
20 시편에서만도 43:3; 46:4; 84:1-4; 132:5, 7 등이 있는데 85:1-4에서는 하나님의  
거처를 궁정이나 집으로 동일시한다. Stordalen(2000;443)은 본문의 복수형이 성  
막과 주변의 진영을 말하며 후에 시온에 거하시는 야웨의 집 주변 이스라엘 거처  
들과 동일시 되었다는 결론에 이른다. Beale, 『성전신학』, 166-167.  
20  
절에서 거처들과 장막들이 성막을 가리키고 있는 복수형이라면 이는 이스라  
엘 임무를 설명하는 구절이 된다. 이스라엘을 성막으로 이해하고 온 세상 가  
운데 펼쳐지는 초목이나 물로 연결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성막은 벌어  
짐이 골짜기 같고 강가의 ‘동산’과도 같다. 6절에서 표현된 ‘여호와께서 심으  
신 백향목 같고’는 후에 LXX에서 ‘여호와께서 심으신 성막들(장막들)같고’로  
번역되었다. 이러한 번역은 벌어진 나무들이 참된 성막(들)을 구성하고 있다고  
이해한다. 동산의 표상을 성막의 표상과 긴밀히 연결하고 있는 시점은 창 2장  
에 나타나는 표상들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더욱이 이어지는 구절들이  
아담에게 주신 사명,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을 반영하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유대교 아람어 성경은 민 24:5을 LXX의 방식과 같이 다룬다. 어떤  
아람어 성경은 6절의 ‘여호와께서 심으신 침향목들 같고’의 표현이 성막을 가  
리킨다고 이해한다. ‘하나님께서 세키나의 집(영화로운 거처)이 되도록 펼치신  
하늘과 같이 이스라엘은 아름답고 영원토록 지속 될 것이요....그분의 피조물  
중에 높임을 받을 것이다’23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준비하신 하늘  
성막의 확장된 부분과 같이 땅에서 펼쳐질 이스라엘의 사명에 대한 그림을  
그려볼 수 있다.  
‘성막’, ‘거처’에 대한 분명한 언급은 동산의 언어를 사용함이 분명하며  
21 민 24:5-7에서 ‘장막들’, ‘거처들’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משׁכן
 
הל
א
인데 전형  
적으로 이스라엘 성막을 지칭한다.  
22 민 24장까지 모두 25번이 사용되었는데 단 한 번, 민 16:27 에서만은 성막의 주  
변에 있는 이스라엘 거처를 가리킨다. 그러나 나머지 24회는 모두 성막을 의미한  
다.  
23 70인역의 번역에서도 거의 같이 ‘여호와께서 심은 성막(장막=σκηνή)들 같고’로  
번역하고 있다. Beale, 『성전신학』, 168-169.  
21  
풍족한 물에 대해서도 묘사하고 있다. 물줄기의 상징을 마친 후에 벤 시라는  
교훈을 빛나게 하여 멀리 뻗게 할 것이라는 ‘빛’의 이미지를 등장시켰다.24  
전 안에 거하는 하나님의 지혜의 활동은 전 세계를 덮을 것이고 채워가겠지  
만 이 또한 아직 이뤄지지 않은 목표가 된다. 벤 시라 24:9은 지혜가 시간이  
있기 전에 만들어졌으며 영원하다는 것을 드러낸다. 또한 거룩한 장막에서 그  
분을 섬길 것이라 설명하고 있다. 벤 시라에서 드러나는 지혜의 묘사는 매우  
다양하고 많은 정경의 부분들과 연관되어 있음을 살펴보았다. 지혜의 거처와  
근원에서 반드시 설명 되어져야 할 부분을 염두에 둔다면 이 지혜가 성전과  
도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하나님의 섭리 안에 모든 것이 진행되어감을 인정  
해야만 한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이 의미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벤 시라 24장에서는  
성소 혹은 성전에 대한 명시적인 언급이 없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11절에서 “이 도읍에 나의 안식처를 마련하셨고”는 성전 개념을 암시하기는  
하지만, ‘물’ 이미지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24:23-34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자세히 알기 어렵다. 즉, 24:23-34는 물 이미지를 율법과 연결하는 것이 분명  
하지만 이것이 성전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분명하지 않다. 오히려 24:23-34  
은 물 이미지를 통해서 토라를 ‘보편화’시키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  
고 이것은 ‘토라’를 통한 재창조라는 개념을 암시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비  
일이 벤 시라 24장에서 성전의 개념과 에덴/창조의 개념을 연결하는 것은 개  
24 비일은 ‘빛’과 연결된 텍스트를 설명해가면서 ‘지혜야말로 하나님을 향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충성을 다하는 순종의 근원’이라고 덧붙인다. 순종이 가져오는  
영적 열매 즉, 깨달음, 영광과 부귀, 교훈 등을 들어 이스라엘을 포함한 온 세계에  
가득 차게 될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22  
연성이 적어보이는 해석이다. 두 번째로 비일은 민 24:5-7과 벤시라 24장을  
비교한다. 그러나 벤 시라 24장이 민 24:5-7을 인유 혹은 메아리로서 사용하  
고 있는지 분명하지 않다. 그렇다면 벤 시라 24장과 민 24:5-7을 비교하는  
것은 방법론적으로 사실상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비일이 벤 시라 24장을 해석하면서 성전과 창조를 연결하려고 한 것은  
그의 책의 저작목적을 볼 때에 의미 있는 시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벤 시라  
24장이 정말로 성막과 창조를 연결하고 있을 때에만 가능한 해석이다. 벤 시  
라가 잘 알려진 것처럼 지혜와 율법을 사실상 동일시하고 있다면, 벤 시라  
24장의 창조 이미지들은 성전에 부여된 이미지라기보다는 율법에 부여된 이  
미지로 보는 것이 더욱 적합하다. 오히려 벤 시라에서 성전 이미지를 살피기  
위해서는 벤 시라가 가지고 있는 “제사장 신학”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사울  
올얀(Saul Olyan)에 의하면 벤 시라의 저자가 제사장 출신이었음이 분명하  
다.25 예를 들어서 51:14에서 저자는 “지성소 앞에 나아가 지혜를 찾아 기도”  
했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아마도 저자의 제사장적 배경을 드러내는 표현일 것  
이다. 고대 유대교에서는 여러 종류의 제사장 신학이 교차 되었다. 어떤 이들  
은 사독 계열만이 제사장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다른 이들은 모든 레위인들  
이 다 제사장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벤 시라의 제사장 신학은 제사장의 자  
격에 대한 고대의 논쟁 가운데 고려해야 한다. 벤 시라는 아마 이 둘 다의 견  
해에 해당하지 않았던 것 같다.26 예를 들어서, 벤 시라에 따르면 “아론의 사  
25 Saul M. Olyan, “Ben Sira’s Relationship to the Priesthood”,  
Harvard Theological Review 80 (1987), 285.  
26 Olyan, “Priesthood”, 286.  
23  
제직은 그의 후손들 에게만 계승되는 것이다”(45:25). 그렇다면 고대의 제사  
장 자격에 대한 논쟁에서 벤 시라의 저자는 제사장의 자격을 모든 레위인이  
아닌 아론의 자손에게 한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제사장의 자격은 사독  
계열이 아닌 아론의 모든 자손들에게 가능한 것이다. 그렇다면 벤 시라는 제  
사장의 자격에 대해서 완전한 배타주의(사독 계열에게 한정)도 아니고 레위  
보편주의(모든 레위인들에게 확장되어야 한다는 것)도 아닌 중도적 입장을 견  
지한다. 또한 다음의 표현을 보자.  
“거기에는 보석장이가 보석들을 도장 모양으로 잘라서 황금틀  
에다 박아놓았다. 이 보석들에 이스라엘 지파의 수대로 이름을 새겨  
서 기념으로 삼게 하셨다. 두건 위에 금관을 씌워주셨는데 금관에는  
축복의 문장이 새겨져 있다. 이런 것은 얼마나 보기 좋은 장식물인  
가, 얼마나 훌륭한 솜씨인가, 또 얼마나 자랑스러운 명예인가”  
(45:11-12).  
위에서 아론이 금관(아테레트 파즈)을 받았다고 되어있는데(45:12), 이것  
은 시편 21:3에서 다윗에게 주어진 금관과 같은 표현이다. 그렇다면 벤 시라  
는 제사장의 영광을 다윗의 약속과 연관시킨다.27 아마도 벤 시라의 저자는  
제사장에게 주어지는 영광을 다윗 계열의 왕에게 주어지는 영광과 사실상 동  
일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제사장은 또한 다윗의 죄를 씻어준 존재일 수  
있다(47:11). 또한 벤 시라의 저자는 다음과 같이 아론과 아론의 자손에게 주  
어진 권한을 설명한다.  
27 Olyan, “Priesthood”, 283.  
24  
“주님은 아론에게 당신의 계명을 맡기시고 율법에 따르는 사법  
권을 주셨다. 이렇게 해서 야곱에게는 당신의 계율을 가르치고 이스  
라엘에게는 당신의 율법을 밝혀주게 하셨다” (45:17).  
벤 시라에서 제사장은 성전에서 율법을 가르치는 존재이다. 벤 시라에서  
지혜와 동일시되는 율법을 가르치는 존재는 제사장이다. 그렇다면 성전은 제  
사를 위한 장소뿐 아니라 율법을 가르침 받는 교육적 기관이기도 하다. 이렇  
듯 벤 시라의 성전과 제사장직에 대한 신학은 당대에 존재하던 제사장의 지  
위와 자격 요건에 대한 토론의 배경에서 고려할 필요가 있다. 벤 시라의 성전  
에 대한 논의는 진공상태 가운데에서 주어진 논의가 아니다. 오히려 제사장의  
역할과 지위에 대한 활발한 토론 가운데 나온 문헌이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  
가 있다. 이러한 역동적 배경을 고려하지 않고 벤 시라의 성전과 창조를 연결  
하는 것은 방법론적으로 너무 단순한 것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벤 시라  
에서 제사장직은 특정인들, 아론 자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는 점을 고  
려해야 한다.  
3-2. 에녹 1서에 나타난 성전(성막)  
A. 에녹 1서의 배경과 목적  
에녹 1서는 제2 성전시기에 쓰인 가장 오래된 고대 본문들 중 하나로  
매우 길고 복잡하다. 현재 보존된 에녹 1서는 다섯 권의 책으로 구성되어 있  
25  
으며 각 책이 쓰인 시기는 서로 다르다.28 모든 내용은 에녹에게 계시로 전달  
된다.29 이 책의 저자인 에녹은 아담의 직계 후손이고 예렛의 아들, 므두셀라  
의 아버지며 노아의 할아버지다. 하나님과 함께 살다가 그를 데려가셨다는 성  
경의 말씀으로 많은 이야기들이 생겨났고 하나님이 데려가실 때 에녹은 미래  
의 세상, 우주의 신비, 인류 역사의 비밀을 보았다는 내용들을 이 책에 포함  
시켰다. 에녹 1서는 묵시록의 범주에 속하며 계시와 예언 두 측면이 다 드러  
난다. 현시대의 불의에 대해 분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다가오는 종말론적 사  
건들과 세상의 마지막 운명을 선포한다.30 이 책은 구약에 나타나는 이야기가  
토대가 되었고 신약성경이나 다른 외경의 문학들에 큰 영향을 미친다. 저자는  
구약성경의 일화들이나 여러 가지 개념들을 자신의 방법으로 재해석하여 보  
다 심도 있는 신학으로 발전시켰다고 볼 수 있다. 주 도구로 사용된 묵시문학  
의 이원론은 선악의 구분과 이로 인해 벌어지는 전 우주적 대결, 다가올 세상  
에 대한 구분 안에서 살펴볼 수 있다. 구약의 외경 중에서도 예수 시대의 종  
28 창세기 5장에는 아담을 시초로 하는 족보가 나타나는데 아담의 7대 손으로 에녹  
이 등장한다. 1권은 1-36장인데 ‘감시자들의 책’으로 불리기도 한다. 도입(1-5)에  
서 최후의 심판과 마지막 시대를, 6-36에서는 타락한 천사(감시자)와 사람의 결합  
으로 나타나는 사건들 즉, 인류의 부패, 거인족, 에녹의 중재 실패, 최종 운명의  
예언, 에녹이 본 여러 환시를 담는다. 2권(37-71)은 ‘에녹의 비유’로 소개되며 악  
인과 의인에게 닥칠 심판과 메시아에 대해 묘사한다. 3권(72-82)은 천문학 논고이  
며 시간 재기(해를 기준으로), 삼백육십사일의 태양력, 마지막 우주 혼란을 다룬다.  
4권(83-90)은 ‘꿈속 환시들’이라 불리며 세계와 이스라엘에 대한 환시를 기록하였  
다. 특별히 이스라엘의 역사는 은유적으로 표현되고 있는데 각각의 동물들 즉, 소  
(성조들), 양(충실한 이스라엘 백성), 짐승과 새(이방인들), 뿔달린 양(유대인 지도  
자), 흰수소(메시아)로 상징한다. 5권(37-71장)은 에녹이 유언하는 대목이다. 죄인  
의 최후는 비참하여 의인이 받을 영적 축복을 다룬다. 이 부분에서 91장과 93장은  
주간 묵시록으로 제외된다. (구약외경, 72-73)  
29 VanderKam, 『초기 유다이즘 입문』, 167.  
30 송혜경, 『구약 외경1』, (경기: 한님성서연구소, 2018), 167.  
26  
교와 사상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으며 신구약의 중간기에서 유대교 사상과  
초기 그리스도교 신학이 복합적이었다는 것도 드러낸다. 이 책은 또한 마카베  
오 항쟁 시기의 역사적 배경을 반영하고 있으므로 당시 상황을 엿볼 수 있는  
역사적 의미도 상당하다. 이 책으로 초기 그리스도교와 에세네파 신학을 이해  
하는 폭이 넓어지게 되었다. 에녹 1서의 공헌이라고 하면 신학적 개념들이나  
천상의 메시아, 최후의 심판, 부활, 감시자들 등의 개념들이다.31 천상의 메시  
아 개념은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꼽아도 무리가 없다. 최후의 심판  
이나 부활의 개념을 메시아와 연결해서 살펴봄도 의미가 있다.  
B. 내용과 성전(성막)의 출현  
1) 에녹 1서 72-82장 ‘천문학의 책’  
이 ‘천문학의 책’은 사해사본(4Q208-11)에서 발견되었고 아람어로 쓰였  
다. 그리스어와 에디오피아 언어로 번역되어 현재는 에디오피아 역본의 요약  
형태로 남아있다. 필체로 본다면 가장 고대 아람어 사본 4Q208이 기원전  
200년경에 생성된 것이므로 이 책은 그 시대보다 나중에 쓰여질 수 없고 정  
확한 추정이 어렵기는 하지만 그 연대보다 훨씬 앞서 생성되었을 것으로 추  
정한다. 여기에는 아람어 역본에 시작되는 긴 대목이 빠져있다. 천사 우리엘  
(‘하나님은 나의 빛’이라는 뜻)이 에녹에게 계시를 전달한다. 우리엘은 에녹을  
데리고 우주로 다니면서 많은 것들을 보여주고 이러한 것을 아들인 므두셀라  
31 송혜경, 『구약 외경1』, 78-79.  
27  
에게 전한다. 이 책은 1년을 에녹과 연결하여 보여주는 최초작품이다.32 계시  
는 엄청난 양이고 책에 나타난 법은 새 창조가 시작될 때까지 유효하다고 주  
장한다. 364일로 이뤄진 태양력을 소개하기도 하는데 해와 달의 움직임을 상  
세히 기록하여 설명하였다. 76-77장은 지리에 대한 언급이 나타나는데 고대  
천문학에서도 지리에 대한 학문을 다루었음을 생각할 때 무리가 아닌 듯하다.  
고대인들은 천체의 배치나 특정한 표징들이 지구에 일어날 일들에 예고를 보  
낸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천문학의 책’은 두 가지 관심사 주제를 연결하여  
설명하고 있다. 80:2-80:3에서는 죄인들의 미래에 대한 징벌로 한해가 점점  
짧아질 것과 수확이 늦춰지며 달의 형태가 달라지고 별이 신으로 여겨진다고  
예고하였다. ‘천문학의 책’은 유대 저술가들이 에녹을 천문학에 있어 전문가로  
서 인정하고 정보의 원천을 제공하는 자로서 인정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책  
은 1년을 계산하는 두 가지 체계화된 달력을 제시한다. 모두 에녹이 제시하였  
으며 선호하거나 우월한 것을 평가하지 않는다. 또한 유대의 특성을 가지지  
않는다. 안식일의 언급이 없고 성경에 나타나는 휴일도 등장하지 않는다.33  
천문학 책에서 히브리어 성경의 기반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으며 이 책은 쿰  
란의 문학 저술가들과 희년서에 많은 영향을 준 학술적인 성격의 글로 봐야  
할 것이다.  
2) 에녹 1서 1-36장 ‘파수꾼의 책’  
32 창세기 5:23에서 에녹은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다고 기록한다. 이를 태양력 날수와  
관련시킨다.  
33 VanderKam, 『초기 유다이즘 입문』, 169-170.  
28  
이 소책자 역시도 아람어로 쓰였고 쿰란의 네 번째 동굴 4Q201-202,  
204-206에서 발견된 여러 사본에서 확인되었다. 가장 오래된 사본인 4Q201  
이 기원전 200-150년에 작성되었다고 본다면 그 사본이 기원전 3세기에 다  
른 본문일 수도 있다. ‘파수꾼의 책’은 천사들이 인간 여인과 혼인하여 거인  
을 낳는 죄의 이야기를 소개하는데 에녹의 전통에서뿐 아니라 그리스도인들  
과 유대인들의 작품에도 주요 주제로 발견된다. ‘파수꾼의 책’에서는 다섯 개  
의 단락이 어색하게 연결된다. 1-5장은 서문의 역할을 하고 죄를 지은 인간  
을 신이 심판하는 주제를 가진다. 창조주가 정한 법에 순종하는 자연과 대조  
적으로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인간이 등장한다. 죄인에게는 저주로 선택된 자  
들에게는 평화와 생명이 약속된다. 6-11장에서는 에녹의 확실한 역할이 없으  
며 두 가지 신화를 포함하여 천사들인 파수꾼들이 여인과 결혼해 아이를 낳  
게 됨으로 죄를 짓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홍수 전 인류의 죄와 사악함이 최고  
점을 찍어 하나님이 징계하심을 설명한다. 12-16장에는 죄를 지은 천사들이  
에녹을 대리자로 세워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길 청한다. 에녹은 환시를 통한  
특별한 방법으로 청원에 대한 답을 받고 천상의 성전과 높은 어좌를 보게된  
다.34 파수꾼의 청원은 결국 거부되고 여기서 비롯된 악마와 나쁜 영들은 세  
상에 나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이는 천사와 거인이 제거되었지만 악이 지  
속되는 이유가 된다. 17-19장은 천상의 하나님을 본 에녹의 뒷이야기를 서술  
한다. 20-36장에서 권력의 천사 여섯을 소개하는데(20장)35 천사를 소개하는  
34 이사야는 아래에서 어좌에 앉으신 주님을 보았지만 에녹은 주님을 뵙는 것뿐 아  
니라 천상으로 올려져서 하나님 앞에 서게 된다.  
35 다른 사본에는 레미엘 천사를 포함하여 ‘거룩한 천사들 가운데 하나, 하나님께서  
일어나는 이들 위에 세우신 천사’로 첨가되어 일곱으로 나타내기도 한다.  
29  
각 절은 에덴동산의 이미지가 많이 나타내고 있다. 땅과 타르타루스를 다스리  
고, 카오스를 다스림은 어둠, 땅속의 심연, 무한공간을 나타낸다. 카오스는 태  
초 우주상태를 가리키는 것으로 혼돈과 무질서의 뜻이다.36 20:7의 낙원과 용  
들과 커룹들의 등장 역시도 창 3:24에 아담과 하와의 죄로 에덴동산에서 쫓  
겨난 후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도는 불 칼로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셨  
음과 연결되는 이미지를 발견할 수 있다. 25장에서는 미카엘 천사와 에녹이  
한 나무를 소재로 대화를 나눈다. 하나님의 어좌와 비슷한 높은 산꼭대기는  
주님이 땅으로 내려올 때 좌정하는 자리인데 곁에 있는 한 나무가 등장하고  
그 나무를 매우 신비롭게 설명하며 위대한 심판 때까지 나무의 어떤 것도 만  
질 수 없으며 그 열매가 선택된 자들에게 생명의 양식으로 주어질 것에 대하  
여 듣게 된다. 선택된 자들이 기쁘고 즐겁게 ‘성소’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37  
나무의 열매는 에녹의 조상들처럼 의인으로 장수하게 할 것이고 이 나무는  
창세기에 등장하는 에덴의 생명 나무를 가리킨다. ‘파수꾼의 책’은 파수꾼들과  
달리 에녹의 가르침이 유익함을 주고 있음이 드러난다.38 하나님은 의인들을  
기억하시며 천사나 악한 자들의 죄악 또한 잊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다양한  
영혼들이 보상받게 될 장소를 준비하시는 것과 불의와 악행으로 채운 자들의  
징벌 또한 확인시켜주고 있다.  
3) 묵시록 (‘주간 묵시록’/‘꿈의 책’/‘에녹의 비유집’)  
36 송혜경, 『구약 외경1』, 149.  
37 송혜경, 『구약 외경1』, 161.  
38 VanderKam, 『초기 유다이즘 입문』, 175.  
30  
제2 성전기에 쓰인 본문 중에도 묵시록이라고 불리는 책들은 신약성경  
의 묵시록과 닮아있다. 계시의 성격을 가지고 천사 같은 초월적 존재가 나타  
나 인간에게 주어지므로 미래를 폭로한다. 유대의 묵시록은 위경으로 분류된  
다. 묵시록은 아마도 기원전 3세기 말이나 2세기경에 유대인들 사이에서 생겨  
났고 인간이 추구하고 인지하는 일반적인 것에 국한되지 않고 현재를 살아가  
는 참 의미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면서 독자들을 위로하였다. 보는 관점에 따라  
‘천문학의 책’이나 ‘파수꾼의 책’을 묵시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처음 나타난  
‘역사적인 묵시록’은 기원전 2세기에 미래와 역사를 탐구하는 모습으로 보여  
졌다. 단 7-12장이 이러한 범주로 분류되며 이 작품은 기원전 165년경 쓰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39  
a. 에녹 1서 93:3-10, 91:11-17 ‘주간 묵시록’  
역사적인 묵시록으로 유대 문학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 여겨  
진다. 기원전 167년에 안티오코스 4세가 유대인들에 대한 박해와 유대교 금  
지령을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유추한다면 그 사건 이전인 기원전 170년경에  
쓰였다고 볼 수 있다. 쿰란에서 발견된 아람어 사본(4Q212)은 나뉜 두 부분  
의 순서를 바르게 담고 있으며 묵시록의 많은 부분을 보존하고 있다. 에녹이  
본 환시를 아들에게 알리는 형태로 시작부터 끝까지 간략히 역사를 묘사하고  
대부분 하나의 예고로 포장한다.40 여기에서 눈에 띄는 특징은 역사를 주기적  
39 VanderKam, 『초기 유다이즘 입문』, 190-191.  
40 VanderKam, 『초기 유다이즘 입문』, 191-193.  
31  
으로 구분한 것인데 하늘에서는 이미 모든 것이 일어나기 전에 결정되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b. 에녹 1서 83-90장 ‘꿈의 책’  
‘꿈의 책’에서 두드러진 특징은 85-90장에 나타나는 ‘동물 묵시록’이다.  
이 환시에는 마지막의 역사적 암시가 있고 성경의 인물들을 상징적으로 동물  
에 비유해서 묘사한다. 동물의 형태와 색깔로 인물을 평가하고 있으며 성경의  
역사를 모두 개관하여 종말까지 가고 있다. 저자는 시내산에서의 율법 계시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으며 제2 성전에 대하여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고있다.41  
메시아의 현존은 나타나지만 특별히 두드러진 역할도 나타나지 않는다. 특별  
히 90:28-36에 드러나는 예루살렘의 성전이 언급되는데 이전의 꺽이고 부숴  
져 옮겨진 성전이 더 높고 큰 집으로 대치되었음을 알리고 그곳에서 구속함  
을 받은 전 인류가 모이게 됨을 그리고 있다. 이는 성전의 구조물 범위가 전  
세계에 걸쳐있음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으며 종말의 때에 수용되는 장소로서  
그 집안에는 들의 짐승, 하늘의 모든 새가 모이게 될 것이다.42  
c. 에녹 1서 37-71장 ‘비유의 책’  
에녹 1서 가장 오래된 두 개의 부분에 끼어있는 묵시록이다. 다른 책과  
41 Vanderkam, 『초기 유다이즘 입문』, 194-197.  
42 Beale, 『성전신학』, 220.  
32  
달리 여러 차례 변천을 겪었다. 강조점이 이전의 책들과 다르며 쿰란 동굴에  
서 발견된 수천 개의 단편 사본들 중에서 찾을 수 없는 에녹 1서의 유일한  
부분이기도 하다. 이것이 우연이 아니라면 본문은 쿰란 동굴에서 발견된 것과  
다른 에녹의 글들이 쓰여 전승되었을 수도 있다고 추측한다. 또 이 작품은 에  
녹 1서 다른 부분들 보다 더 나중에 작성되었고 판독에 어려움이 있지만 여  
러 암시를 기반으로 기원전 37-4 헤롯 시대를 추정하며 기원전 1세기 말이나  
기원후 1세기 초에 쓰였을 것으로 본다. 신약성경 학자들에 의해 많이 연구되  
었다. ‘비유의 책’에서는 마지막 때 죄인을 징벌하시고 의인들에게 복을 주시  
는 하나님께 초점을 맞춘다. 여기에는 반전의 어법도 포함되어있는데 유린 된  
의인이 자기들의 구원을 인식하지 못하고 현재 억압하는 죄인들이 기다리고  
있음도 알지 못한다. 마지막에는 의인의 기쁨이 표현되고 죄인들의 파멸과 벌  
에 대하여 폭로한다. 여기서 에녹은 ‘사람의 아들’로 묘사되며 악한 자들의  
심판과 의인의 보상에 대하여 깊게 관여한다. 마지막 때에 벌어지게 될 일에  
대한 비유에서는 ‘연로하신 분(하나님 암시)’과 ‘사람의 아들과 같은 이’가 등  
장하는데 단 7장의 인물과 내용을 사용한다. 48:2-3, 6에서 사람의 아들은 창  
조되기 전 영들의 주님 앞에서 불린 이름이며 42:6, 49:6에서는 민족의 빛으  
로 등장한다. 의인들은 이분을 의지하게 된다.43 ‘비유의 책’은 의인들에게 평  
범치 않은 지도자를 제시한다. 그는 하나님의 궁극적인 통치 아래 있으며 선  
택된 자들의 희망이 되어 마지막 때에 그들을 구원하게 될 것이다. 또한 악을  
행한 자들에게 심판을 내리게 된다. 그의 호칭은 메시아, 의인, 선택된 자, 사  
람의 아들로 불린다.  
43 VanderKam, 『초기 유다이즘 입문』, 202-205.  
33  
d. 에녹 1서 91-107(108)장 ‘에녹의 편지’  
에녹 1서의 마지막 책인 ‘에녹의 편지’는 지혜문학으로 분류된다. 지혜  
문학에서는 이스라엘 역사를 언급하지 않으며 보편화 된 인생을 살아가며 문  
제를 해결해 가는 지혜들을 발견할 수 있다. ‘에녹의 편지’는 ‘주간 묵시록’과  
거의 동일한 시기인 기원전 170년경에 쓰였다고 추정한다. 이 본문의 일부도  
쿰란의 네 번째 동굴에서 아람어 단편들로 발견되었다. 에녹의 말 속에 포함  
된 지혜는 후손들, 그 다음 세대에 살게 되는 의인들을 위한 것이다. 의인이  
겪는 곤경, 악인의 외적 승리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반전을 기대하게 한다.44  
에녹이 가르치는 말은 지혜의 원천이 되며 현재 고난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준다. 하나님이 그들의 간청을 들으셨고 행동을 약속하시는 종말론적  
인 줄기에서 나타나는 지혜를 제공하고 있다. 108장은 첨가문일 수도 있는데  
쿰란에서 발견되는 어떠한 단편에서도 입증되지 않고 있으며 스스로 에녹의  
또 다른 책이라 말한다.  
C. 에녹 1서에 나타난 성전(성막)의 개념  
1) ‘파수꾼의 책’에 나타난 성전(성막)  
창 5:24에서 나타난 에녹은 하나님이 데려가심으로 소개된다. 에녹 1서  
14:9에는 ‘위로 들어 올려 하늘로 데려감’으로 표현되었고 14장 전체의 내용  
44 VanderKam, 『초기 유다이즘 입문』, 219-222.  
34  
은 공포 가운데 보게 되는 불길에 휩싸인 장소와 이와 대조를 이루는 높은  
보좌가 있는 영광과 영예의 장소를 묘사하고 있다. 집의 바닥은 불로 되어있  
고 그 위에 번개와 불이 흐르며 지붕은 타오르는 불로 나타냈는데 어좌의 형  
상을 수정 같으며 바퀴는 빛나는 태양과 같고 커룹들의 산과 같다고 설명한  
다. 바퀴가 마치 빛이 나는 태양과도 같다는 표현은 단 7:9에서도 나타난  
다.45 두 책은 분명한 연관성을 지닌다. 계속하여 14:19-23은 영광 가운데 앉  
으신 하나님을 소개한다. 태양의 형상과도 같고 어떤 것보다 눈부시고 하얗고  
주변으로 불이 타오르고 있어46 가까이할 수 없었고 영광과 영예로 얼굴을 쳐  
다볼 수도 없다고 하였다.47 이러한 묘사들은 어좌의 모습과 느낌으로부터 그  
분이 계신 곳을 상상할 수 있게 만든다. 두려움으로 가까이할 수도 없으며 너  
무도 찬란하고 빛나는 형상으로 눈을 들어 쳐다볼 수 없다. 상상이 불가한 이  
곳의 어좌를 통한 영광으로 가득찬 거룩한 성전의 이미지를 추측할 수 있다.  
비일은 ‘성전신학’의 책에서 유대교의 시각에 비춰진 성전과 성막의 이미지를  
찾아내려고 여러 자료를 사용한다. 14장의 내용을 인용한 비일은 하늘의 성전  
45 “내가 보니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셨는데 그의 옷은 희  
기가 눈 같고 그의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 그의 보좌는 불꽃이요 그의 바  
퀴는 타오르는 불이며” (단 7:9 개역 개정 성경)  
46 불은 긍정적 이미지로 쓰일 때 빛, 인도와 보호하심으로 상징되나 흔히 초월적이  
고 위험하며 절대적, 경외적, 신비적, 파괴적인 이미지를 동반한다. 하나님이 출현  
할 때 하늘의 불로 번개가 광채를 발하며 파괴적 폭풍우가 묘사되기도 한다. 보다  
일반적으로는 자연에 대한 불안에서 태양의 광채로 하나님이 표현된다. 에스겔의  
환상(1:4, 13, 27; 8:2; 10:2, 6, 7), 에녹 1서 14:8-22, 단 10:5-6에서 찾아볼 수  
있다. 또한 불이 지니는 파괴성은 심판의 자연스런 상징으로 나타나는데 접근이  
불가능한 하나님의 거룩함과 능력이 모든 것에 뛰어난 거룩하신 본질의 유사함으  
로, 적합한 상징으로 표현한다. John E. Goldingay, 『다니엘』, 채천석 역 (서울:  
솔로몬, 2008), 316-317.  
47 에녹 1서 14:9, 17-18, 19-23 (구약외경, 송혜경 역본)  
35  
이 지상 예루살렘의 성전이나 광야 성막과 같이 세 영역으로 분류되었음을  
언급하고 있다. 열거된 텍스트들이 자기의 백성들에게 오셔서 그들을 성전의  
일부로 만드시려는 하늘 성전과 같은 모습으로 다가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러한 주장은 이전에도 비일의 사상과 연결되어 성전의 경계선은 확장하는 의  
도를 나타내는데 사용하고 있다. 14:9, 10, 15절에 등장하는 ‘불의 혀’ 이미지  
는 종말적인 심판을 암시하는 단어로 설명하고 있는데 혀 같은 불길로 둘러  
싸인 바깥뜰 벽에 도착하고, 혀 같은 불길 속으로 들어간다고 서술한다(9-10  
절). 그는 성소를 통과하고 불같은 혀로 지어진(15절) 지성소를 바라볼 수 있  
는 다른 문을 통과한다. 또한 71:5에서도 성전 같은 수정 건축물을 보게 되는  
데 그 사이에 불의 혀가 있다. ‘불의 혀’는 하늘 성전의 일부로 보이고 지성  
소에서 나타나는 신현의 효과에 공헌한다. 구약에 나타나는 불의 혀는 사  
30:27-30에 성전으로 내려오심에 대한, 빽빽한 연기와 맹렬한 불, 장엄한 목  
소리 등의 단어들에서 느껴지는 시내산 신현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  
다면 맹렬한 불같은 혀는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한다. 신약에서는 어떠한가?  
행 2장의 오순절 장면에서 나타나는 불의 혀는 에녹서에서 나타나는 불의 혀  
와 평행을 이룬다고 주장한다. 오순절에 하늘에서부터 내려오는 성령은 에녹  
1서에 등장하는 혀같은 불의 모습으로 하늘 성전에서부터 성막으로 내려오신  
하나님의 모습일 수 있다고 보았다. 하늘 성전이 ‘혀 같은 불’로 부분적으로  
묘사되어 드러나기 때문에 성전 강림의 묘사로 적절하다는 지적이다. 성령의  
생기를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지상의 새 성전이 된다고 가정하면 이는 하늘  
로부터 내려왔고 같은 불의 형상으로 만들어졌음을 받아들인다. 이러한 시각  
은 오순절을 통한 하나님이 성전 임재를 나타내는 견해로서 더욱 강화하고  
36  
있다. 이러한 비일의 주장은 불의 혀가 성전의 지성소로 성소에서의 하나님의  
임재로 나타나는 현상임을 확실하게 한다.48 그러나 행 2장에 나타나는 ‘불의  
혀’ 같은 성령의 임재를 에녹 1서에 나타나는 하늘 성전에 대한 묘사로 드러  
나는 ‘불의 혀’와 연결하여 평행한 것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에녹 1서  
에서 성전의 모습으로 묘사된 ‘불의 혀’가 오순절의 사건으로 이 땅에 하나님  
의 성전 삼으신 백성에게 온전히 임재하셨다면 성전 된 하나님 백성들의 모  
습에서 성전의 기능과 모습이 지속적으로 나타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하  
나님의 백성으로 인침을 받고 성전 된 인간은 하늘 성전의 온전한 모습을 지  
속하는데 한계를 드러낸다. 또한 사 30장에 나타난 불의 혀를 들어 출애굽기  
에 나타난 시내산의 신현과 연결하여 설명한 비일은 분명 맹렬히 타오르는  
불같은 혀가 하나님의 심판을 나타내고 있음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행 2장에  
나타나는 오순절 역사에서의 불의 혀는 하나님의 심판과 연결될 수 없다. 오  
히려 불의 혀같이 임재한 하나님의 복이라는 측면을 더욱 부각시키는 본문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이러한 상반된 단어의 사용 안에 에녹 1  
서 안에 나타난 불의 혀를 고정하여 사용한다는 것은 억지스러울 수 있다. 물  
론 하나님의 심판 안에 백성들에게 주시는 복이 포함될 수 있지만 문맥상의  
쓰임새와 이미지를 고려할 때 하늘 성전의 임재로서 에녹1서와 사도행전을  
연결하는 것은 무리가 된다.  
어좌의 자리에 대한 설명은 다시 24장에서 계속되는데 24-25장에서는  
창세기에 등장하는 에덴의 성소를 부각하고 있다. 일곱 개의 산 중에서 어좌  
의 자리 같은 산에서 많은 나무가 발견되고 그중 가장 특이하고 향기 나는  
48 Beale, 『성전신학』, 274-278.  
37  
한 나무에 대하여 에녹과 미카엘은 대화를 나눈다. 심판이 있을 때까지 어떤  
것도 그것을 만질 권한이 없고 모든 처벌과 완성이 영원히 이루어지게 되면  
거룩한 자들에게 그 열매가 생명의 양식으로 공급될 것이다. 이 나무는 하나  
님 집 곁에 거룩한 곳으로 옮겨질 것이며 의로운 자라 택함받은 자들은 한없  
이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성소로 들어갈 것이라고 서술한다.49 그들이 있게 될  
성소는 살아있는 동안의 고통이나 재앙, 고난이 덮치지 않게 될 것이다. 마치  
창세기에 등장하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에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다. 등장하  
는 생명 나무는 에덴의 형상과 이미지를 더욱 확실하게 해주며 선택된 자들  
이 들어갈 곳인 성소가 에덴의 회복을 조명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50  
소에서의 삶은 샘 솟아나는 기쁨을 만끽하고 행복이 지속되는 삶이다. 조상들  
과 같이 오랜 삶을 영위하며 삶의 아픔과 고통, 눈물이 없는 곳이다. 이러한  
표현은 성소의 종말론적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많은  
영혼을 위한 장소들을 묘사함으로 현시대를 살아가며 힘들고 고통 가운데 처  
해진 사람들을 위로하고 구원의 확신을 가져다주는 역할을 감당하며 악인들  
에게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를 제공하고 반드시 징벌하시는 하나님을 확신시  
키고 있다.  
26장에는 예루살렘의 훼손 모양을 그린다. 세상의 한가운데 있는 복된  
곳, 즉 예루살렘을 가리키는 말로 땅의 중심부에 대한 개념을 겔 5:5에서도  
38:12에서 묘사하듯 동일하게 표현하고 있다. 2-3절에 나타난 흐르는 물은  
49 송혜경, 『구약 외경1』, 159-161.  
50 2바룩에서도 이와 같은 생각을 전하고 있다(73:1-2). 기름부음 받은 자가 마지막  
때에 왕국 어좌에 좌정하게 되면 이슬처럼 건강이 내리고 고통과 질병이 사라지며  
안식과 기쁨이 가득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계 2:7에서도 이기는 자들에게 하나님  
이 낙원에 있는 생명 나무 열매를 먹게 될 것이라고 나타난다. (구약외경1. 161)  
38  
마치 성전에서부터 흘러나오는 물을 묘사하는 겔 47:1-12을 연상시킨다. 산  
들 사이에 있는 골짜기는 물이 없이 메말라 있고 깊은 골짜기가 단단한 바위  
로 되어 나무가 한그루도 심기지 않은 곳이었다. 계속되는 27장에서는 이 저  
주받은 골짜기가 마지막 심판이 있을 때 불경한 자들이 영광스런 주님을, 영  
원하신 임금을 끊임없이 찬양하게 될 것이라 하였다. 비일은 에녹 1서에 대한  
성전의 이미지를 서술하면서 옛 성전이 새롭고 웅장하고 충만한 집으로 대체  
됨을 부각하며 역시 종말론적인 성전의 이미지로 받아들여 심판과 연결된 성  
전으로 묘사하고 있다.  
에녹 문헌의 각 책에서 공동체가 자신을 정의 내리는 방식은 각기 다르  
다. ‘파수꾼의 책’에서 에녹 공동체는 자신들을 의인들로 정의한다. 예를 들어  
“재앙의 날에 살아있을 선택된 의인들”(1:1)은 모든 이스라엘 혹은 유대인을  
의미하지 않는다. 1:8에서 “의인들”은 평화를 누릴 것이다. 그러나 불경한 자  
들은 멸망 당할 것이다. 여기에서 불경한 자들은 이방인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유대인을 포함하여 공동체 바깥에 있는 존재들이다. 3:6에서 죄인들에  
게는 구원이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선택된 이들에게는 빛과 기쁨이  
주어질 것이다. 이렇듯 ‘파수꾼의 책’은 종말론적 운명의 관점에서 선택된 이  
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을 선명하게 구분한다. 이 땅은 타락한 천사들 즉 파수  
꾼들에 의해서 파괴되어 있다. 에녹은 이 가운데에서 천상 성전에 대한 환상  
을 바라본다. 천상 성전은 회복될 공간이며 복된 공간이 예루살렘과 평행을  
이룬다(특히 26장). 결국 천상 성전은 예루살렘 성전의 일종의 도플갱어이다.  
천상 성전이 창조적 질서를 반영하는 것은 맞지만 이 천상 성전은 모두를 위  
한 것이 아니다. 천상 성전 장면은 에녹 공동체를 위로하기 위한 장소이며 주  
39  
제이다. ‘파수꾼의 책’에서 천상 성전의 개념은 배타주의적인 정황 속에서 언  
급된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2) ‘비유의 책’에 나타난 성전(성막)  
‘비유의 책’ 37-71장에서 나타나는 메시아 사상은 성전의 세계관을 엿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포인트가 된다.51 45-57장에 집중되어 나타나는 메시  
아 사상은 사람의 아들, 선택받은 이, 의로운 이 등의 호칭으로 묘사된다. 이  
러한 호칭은 천상의 인물로 선재하는 자이며 최후의 심판, 심판, 마지막 때와  
관련되어 나타난다. 마지막 때엔 죽은 이들이 일어나고 사람의 아들이 왕좌에  
앉게 될 것이다. 그는 만물을 통치할 것이고 영광의 보좌에서 심판하실 것이  
다. 여기에 등장하는 이는 ‘천상의 메시아’로 역할 한다.52 구약의 외경이나  
쿰란 문서에서 나타나는 메시아의 개념은 유대인들이 소망하는 메시아를 그  
리고 있으며 신약을 이해하는 기초가 된다. 메시아에 대한 염원은 역사의 차  
원을 넘어 종말론적 사상 안에서 드러난다. 의인들과 함께하실 메시아는 자신  
의 왕국을 세우며 세 예루살렘을 건설하게 될 것이다. 이곳이야말로 두려움과  
고통이 없는 찬양과 경배, 거룩함으로 예배하게 되는 참 성전이 될 것이다.  
‘비유의 책’에서도 의인들(혹은 선택받은 자들)은 모든 인종적 유대인들  
51 에녹 3서는 훨씬 후대에 쓰였지만 메시아에 대한 유대인들의 기대를 나타내고 있  
다. 45:5에서는 요셉의 아들인 메시아와 다윗의 후손인 메시아 두 명으로 제시되  
고 있는데 요셉의 아들인 메시아가 다윗의 후손인 메시아의 전신인 듯하다. 다윗  
의 아들인 메시아는 마지막 때 이스라엘 원수들과 전쟁을 하게 될 것으로 묘사되  
고 있다. (구약외경1. 42)  
52 송혜경, 『구약 외경1』, 42.  
40  
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유대인들 중에서도 선택받은 소수이다.53  
존 콜린즈에 의하면 “선택받은 이” 혹은 “의인들”과 같은 호칭은 “공동체를  
가리키는 거의 전문 용어 때로는 칭호로까지 사용된다.”54 천상 성전에서 예  
배하는 “선택받은 자들”은 지상에 존재하는 에녹 공동체에 상응하는 존재들이  
다. 곧, 천상에 존재하는 성전과 지상에 존재하는 에녹 공동체는 상호 연관된  
다. 말하자면 지상에 존재하는 의인들은 천상의 선택 받은 자들과 같은 의미  
다.55 이것은 이스라엘이 천상과 지상에 동시에 존재한다는 이중적 존재성을  
암시한다. 선택받은 자들은 그렇지 못한 자들에 비해서 존재와 운명의 관점에  
서 우월하다. 그렇다면 ‘비유의 책’에 나타난 천상 성전도 이러한 배타적 비  
전 속에서 이해가 되어야 한다.  
3) ‘동물 묵시록’에 나타난 성전(성막)  
에녹 1서 90장을 바라보는 비일의 견해는 역시 마지막 때를 나타내는  
종말론적인 분위기 안에서 확장되는 성전의 이미지를 설명한다. 우리의 상상  
을 초월하는 엄청난 규모의 성전을 보게 될 것인데 성전의 탑이 의로운 모든  
자가 다 볼 수 있을 만큼 높다. 구약성경 창 1:28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53 Martha Himmelfarb, Ascend to Heaven in Jewish and Christian  
Apocalypses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93), 49.  
54 John J. Collins, 『묵시문학적 상상력: 유다 묵시문학 입문』, 박요한 영식 역,  
(서울: 가톨릭출판사, 2005), 338.  
55 Kyu Seop Kim, The Firstborn Son in Ancient Judaism and Early  
Christianity: A Study of Primogeniture and Christology (Leiden:  
Brill, 2019), 162.  
41  
충만할 것을 이르신 동산 안에서 사명은 최초 에덴의 확장이 반드시 이루어  
져야 할 사명이고 그 경계선의 확장과 관련되어 해석한다면 90장에 나타난  
성전의 거대한 규모와 연결하여 성전건축의 경계선 확장과 평행을 이루는 단  
락으로 이해하고 있다.56 종말론적인 입장에서의 성전 규모는 땅끝까지 이르  
러 증인의 역할을 감당케 하심으로 당신의 백성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과 선하심을 알아갈 수 있다. 지금도 많은 영혼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고 계심을 인지한다면 그들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 성전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 성전의 규모를 에덴의 확장과  
동일 선상에서 해석되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에덴의 형태, 규모, 환경은 지  
극히 제한적인 서술로부터 유추하고 상상할 뿐이다. 성경 안에 담긴 하나님의  
완전하고 온전하신 뜻을 감히 말할 수 없듯이 에덴 또한 우리의 상상에 따라  
우리의 제한된 지식 안의 것만을 고집해서는 안 될 것이다. 에덴의 회복이 성  
막을 명령하시고 성전의 긴 역사를 통해 나타난 온전한 회복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은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지만 성전의 규모를 통해서 보이  
는 사명으로서의 에덴의 확장을 주장하기에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위에서 논의했듯이 에녹 문헌에 나타나는 성전 이미지를 에녹 문헌을  
생산해낸 묵시문학 운동의 사회적, 역사적 맥락에서 고려할 필요가 있다. 존  
콜린스가 지적한 바와 같이 에녹 문헌의 초점은 “‘공정의 영원한 식물에서 선  
택받은 의인들’의 출현”이다.57 성전의 낙원-에덴-창조 이미지들은 의인과 악  
인의 날카로운 대립 속에서 주어진다. 특히 89:73은 에녹 공동체가 예루살렘  
56 Beale, 『성전신학』, 222.  
57 Collins, 『묵시문학적 상상력: 유다 묵시문학 입문』, 140.  
42  
성전에 만족하지 못하고, 새로운 성전이 도래하기를 염원했던 것을 보여준다.  
천상 성전 이미지는 이렇듯, 에녹 공동체가 성전의 회복을 기다렸던 것과 그  
들이 주류 예루살렘 성전 세력과 대립을 하고 있던 사회적 정황을 암시한다.  
그렇다면 앞에서 논의한 것과 같이 천상 성전 이미지들은 이러한 에녹 공동  
체의 배타적 비전 속에서 이해가 되어야 한다.  
3-3. 1QH(1QHodayot) 6:12-19에 나타난 성전(성막)  
A. 사해문서의 배경과 쿰란 공동체  
쿰란 문서들의 저작연대는 기원전 2세기에서 기원후 1세기경으로 추정  
되고 있다. 쿰란 동굴에서 발견된 이 문서들은 히브리 성경의 주석자료와 쿰  
란 공동체의 행정, 조직, 규율이나 종교 생활 등과 연관된 문서로서 번역작업  
이 진행되면서 학문적 연구가 진행되었다. 사해문서는 에스더서를 제외하고  
히브리 성서 모두를 포함하고 있으며 현존의 히브리 사본보다 약 천 년가량  
앞선 것이어서 성경의 전승 역사연구에 매우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쿰란 공동  
체의 신학적, 종교적 경향을 살필 수 있는 자료이며 당시(BC 2세기~AD 1세  
기) 묵시적인 종말론의 경향을 지니고 있었던 에세네파의 성향이 파악되는 중  
요 종교문서로서 가치가 있다.58 그러므로 기독교의 배경 연구에서 사해문서  
는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또한 사해문서는 중간기 시대의 위경, 외경을 포함  
58 Florentino Garcia Martinez and Eibert J. C. Tigchelaar (edited and  
translated), 『사해문서1』, 강성열 역 (서울: 나남, 2008), 5-6.  
43  
하고 있는데 이는 묵시문학의 성향을 갖고 있어 정치, 종교적 변화에 대해 많  
은 정보를 제공하고 초기 기독교 문헌들의 연구에 도움을 준다. 쿰란에서 발  
견된 본문은 어떤 의미에서 성경과 연관되어 있다. 성경의 사본이거나 성경이  
흠뻑 스며있기 때문이다. 저자들의 작품에서 이스라엘 고대 작품의 분위기를  
발견할 수 있으며 고대 작품의 문체, 내용, 교훈을 반영하고 있다.59 성경 밖  
의 본문들은 성경 본문에서 적은 영향을 받고 성경에 비해 덜 밀접하게 관련  
된 작품들이다. 어떤 본문들은 쿰란 공동체에 필요한 것으로 보이며 공동체가  
소속되어진 좀 더 큰 에세네파와 같은 집단의 필요에 의해 쓰인 것으로 이해  
된다.60 다른 작품들은 유다 백성의 일부와 공유한 작품인 듯하다.  
사해사본의 구성은 성서로서 구약성서 본문, 구약 본문을 아람어로 번역  
한 탈굼과 성구함이 있다.61 사해사본은 외경 중에서 토비트, 집회서, 예레미  
야의 편지 3종류의 책을 찾아볼 수 있다. 에세네파로 들어온 문서와 자체에서  
59 VanderKam, 『초기 유다이즘 입문』, 274-280.  
60 쿰란에서 나온 저작들은 모세 율법에 집중하면서 율법 해석이나 집단 상황에 율  
법을 적용하고 아니면 한꺼번에 두 경우를 다루기도 하였다. 집단은 자신의 이해  
대로 모세 율법을 계속하여 연구하고 율법에 순종하는 의무를 지녔다. 율법에 대  
한 그들의 관점은 당시 유대인들과 구별되는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공동체의 규  
칙서’는 새 회원들이 계약할 때 행하는 연례의식을 서술하고 그들의 이원론적 신  
학을 설명해 공동체 생활을 하는 규칙들을 밝히고 집단의 목적과 광야에 위치한  
목적을 밝힌다. 입회 과정이나 회의 조직, 모임, 위반행위에 대한 형벌들이 명시되  
어 있다. ‘다마스쿠스 문헌’은 ‘내 아들’에게 순종할 것을 권면하고 불순종에 대한  
예를 인용하는 권고이며 다른 부분에서는 안식일 규정이나 공동체 생활과 공동체  
에 관한 규정들을 서술하고 있다. 예를 들면 공동체 일원이 되면 모든 재산을 공  
동체 금고에 넣었고 공동체 회원들은 한 달의 임금에 대해 이틀분만을 기부하도록  
했다.  
61 성구함은 두 종류가 있는데 테필린(teffilin)과 메추차(mezuzah)이다. 여기는 출  
13:1-10, 13:11-16과 신 6:4-9, 11:13-21 본문 일부가 들어있다. 테필린은 왼쪽  
팔, 이마에 달고 아니며 기도의식에 사용하였다. 메추차는 공공건물 문설주나 대문  
에 달아 출입시 입을 맞추어 경건을 표했다. (천사무엘, 『사해사본과 쿰란공동체』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4), 30)  
44  
저작된 문서인 외부문서와62 에세네파에서 저작된 40개의 작품인 내부문서  
63 페샤림(해석-interpretation)이라고 불리는 성서 해석문서가 있다.64  
쿰란 공동체의 형성은 기원전 약 150년 경이며 기원후 68년 로마의 파  
괴 이전까지 존재하였다. 원래 예루살렘 성전에서 추방되거나 스스로 떠나간  
제사장들에 의해 세워졌고 의의 교사로 불리는 지도자가 유대광야로 이끌었  
다. 사독계열 제사장으로 추정되는 의의 교사는 공동체를 위해 성서를 해석하  
였다. 이 공동체는 제사장들 외에 바리새인, 그 모체가 되는 경건주의자들인  
하시딤(Hasidim)도 참여하였다. 예루살렘의 성전예배 의식을 거부하고 하스  
모니아 왕조를 비난하며 예루살렘의 대제사장을 ‘사악한 제사장’이라 칭하였  
다.65 자신들을 칭할 때는 ‘거룩한 자들’, ‘땅을 유업으로 받을 온유한 자들’,  
‘빛의 아들들’이라 하였고 공동체 이외의 다른 이들은 어둠의 아들이라 불렀  
다. 쿰란 공동체는 예언서, 시편, 오경 등 우리가 정경으로 인정하는 책 외에  
토비드, 집회서 등의 외경, 희년서, 에녹 1서 같은 위경과 성전문서(The  
Temple Scroll) 등의 영향을 받았는데 자신들의 신앙, 사상을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유대 종파인 에세네파에 속하여 있거나 매  
우 유사한 공동체였다.66  
62 성전문서, 창세기 외경, 천사들의 예배서, 전쟁규율이 있다.  
63 의의 교사가 요나단에게 보낸 편지, 감사 찬양집(Hodayot), 공동체 규율(1QS),  
다마스커스 문서가 있다.  
64 이사야 주석, 호세아 주석, 나훔 주석, 하박국 주석, 스바냐 주석, 시 37편 주석,  
마지막 날의 해석, 메시아의 증거, 하늘의 대표자 멜기세덱이 있다.  
65 ‘사악한 제사장’(The Wicked Priest)은 마카베오 가문에 속한 제사장으로 보았  
고 시몬(기원전 143-135), 요나단(기원전 160-143)으로 추정한다.  
66 이 공동체는 예수의 시대에 존재했다. 그러나 사해사본에서는 예수를 언급하고 있  
지 않으며 신약성경에서도 에세네파나 쿰란 공동체를 언급하지 않는다. 천사무엘,  
45  
B. 1QH(1QHodayot) 배경과 내용  
구약성서의 시편과 비슷한 내용들이 나타나는 이 찬양의 노래는 히브리  
어 ‘호다욧(Hodayot)’이라 부르며 대부분 개인적인 감사의 노래들이다. 구원  
과 지식의 두 가지 핵심 개념을 가지고 있다.67 감사 찬양집의 사본들은 제1,  
4 동굴에서 발견되었다. 제1 동굴에서 발견된 1QH는 기원전 1세기 말경에  
쓰였고 대략 35개의 시를 포함한다. 처음과 나머지 부분이 심하게 훼손되기는  
했지만 가장 완전하다. 제4 동굴에서 발견된 사본들은 1QH와 내용의 중복이  
많은 단편 조각들이기 때문에 보완하는 자료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 책에 쓰  
인 많은 시는 ‘나는 당신을 찬양합니다. 주님’으로 시작된다. 시들 중 중간에  
포함된 17개의 시는 ‘의의 교사’가 만들었다고 여겼는데 의의 교사는 자신이  
유일하게 합법적인 대제사장이라 주장하고 있음을 반영한다. 다른 부분은 에  
세네파 사람들에 의해 저작되었다. 감사의 내용은 공동체 안에 자비와 은총을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성령의 선물을 허락하심에 대한 것이다. 내  
용을 통하여 에세네파 사람들의 영성과 하나님에 대한 사고,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통찰하고자 하는 모습을 이해하는 유용한 자료가 된다.68 개인의 시지  
만 공동체의 시다. 창조 때 드러나는 하나님의 전능성을 찬양하며 악한 자들  
에게서 오는 두려움과 위험, 사악한 길 가운데 지켜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한  
다. 이 감사찬양의 시는 쿰란 공동체가 자기 집단을 위해 성경 시편을 닮은  
『사해사본과 쿰란공동체』, 86-87.  
67 Martinez and Tigchelaar, 『사해문서1』, 196.  
68 천사무엘, 『사해사본과 쿰란공동체』, 40.  
46  
작품들을 썼을 것이라는 증거를 제공한다.69 감사의 시편에 속하지 않는 부류  
도 있긴 하지만 닮아있는 것은 사실이다. 또한 정경의 시편에 속하지 않는 시  
들도 더러 발견되었다.  
C. 1QH 6:12-19의 내용과 성전(성막)의 출현  
초기 유대 공동체의 ‘찬양 두루마리’의 텍스트(IQH 6:12-19)는 쿰란 성  
도들을 ‘빛의 원천’, ‘빛나는 불꽃’을 지닌 에덴 나무와 비교하고 이 나무를  
의의 교사의 말과 직접 연관시켰으며 몇 단락 후에 ‘구원’, ‘꽃’, ‘가지가....자  
라는’ 장소와 동일시 하고 있다.70 1QH 6:12-19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모든 민족으로 당신의 진리를 알게 하시며 열방으로 당신의  
영광을 알게 하셨다(12). 당신의 공의회에 속한 자들에게 나눠주시  
고 얼굴의 천사들과 함께 (당신의 거룩한 자들과) 중재자를 두지 않  
은 채로 그리하셨다(13). 그 열매.., 당신의 영화로운 명령에 응답할  
것이고 (거룩한 자들의 회)합에서 당신의 방백이 될 것이다 (그들의  
뿌리)는(14). (들판의 꽃)과 같이 영원히 자랄 것이고 영원한 농장  
가지들로부터 한 가지가 자라 온 세상을 자신의 그늘로 뒤덮을 것  
이다. 그것의 (면류관)은(15). 하늘에 (닿을) 것이고 뿌리는 심연까지  
내려갈 것이다. 에덴의 물줄기 모두는 그곳 (가)지(들)을 (적실 것)이  
며 끝없이 (넓은 바다)가 될 것이다(16). 에덴의 숲이 모든 세상을  
한없이 덮을 것이고 (그 뿌리는) 스올의 깊은 곳까지 내려갈 것이  
69 VanderKam, 『초기 유다이즘 입문』, 284.  
70 『성전신학』에서는 사해문서 표기 방법을 Sukenik으로 사용한다.  
47  
다. 빛의 근원이 마르지 않는 영원한 샘이 되며(17). 모든 의의 자손  
들이 빛나는 불꽃을 내며 탈것이다. 모든 죄악의 사람을 태우는 불  
로 (바뀔 것) 이다(18). 그들을 멸할 때까지, 그러나 나의 증거를 따  
르는 자는 의를 이루기 위해... 스스로 널리 퍼(지는 거짓) 미혹을  
받았다(19).71”  
이 문서는 에덴의 이미지와 배경을 그리듯이 묘사한다. 저자는 에덴에  
대한 확고한 이미지와 사상을 지니고 있으며 그것으로 성전 경계에 대한 확  
장을 펼쳐나간다. 온 세상으로 펼쳐나가게 될 성전의 확장은 자신의 공동체와  
연결하여 그 사상이 드러나며 직접적으로, 암묵적으로 표현 방법을 아끼지 않  
고 있다. 1QH 7:19에서는 직접적으로 명시된 ‘에덴의 물줄기’는 생수의 근원  
이 되며 에덴의 모든 식물과 숲을 울창하게 만들어 세상을 뒤엎을 것이라 하  
였다. 또한 이러한 샘은 빛의 근원과 연결하여 모든 의의 자손이 빛나는 불꽃  
으로 타게 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비일은 빛의 이미지를 설명하면서 1QH  
7:24에 ‘일곱 줄기의 빛’과 연결하여 자신의 생각을 드러냈다. 1QH 8:4 이후  
에도 1QH 6:12-19와 비슷한 물의 이미지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샘의 근원,  
물의 원천, 영원한 샘물 등이 등장한다. 1QH 8열에서도 샘의 근원으로부터  
시작하여 각종 나무들이 연결되어 풍성한 열매를 맺는 에덴의 이미지를 부각  
하였다. 1QH 8:16은 샘의 근원으로부터 흐르는 생수로 인하여 많은 나무가  
울창해지고 짐승들이 뛰노는 풍요로운 에덴 속에 하나님이 모든 것들을 위하  
여 내 입에 이른 비와 생수에 샘을 두셨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내 손으로  
71 Martinez and Tigchelaar, 『사해문서1』, 226-227.  
48  
수로와 샘을 여시고 내 손으로 도랑을 파게 하시며 식물을 관리하게 하신  
다.72  
D. 1QH 6:12-19에 나타난 성전(성막)의 개념  
1QH 6:12-19에서 드러나는 에덴의 이미지는 에녹 1서를 비롯한 다른  
유대 문헌들 뿐 아니라 사해문서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1QH 8:4부터 나타  
나는 이미지 또한 본문의 분위기와 매우 흡사함을 알 수 있다. 비일은 이러한  
에덴의 이미지, 특별히 생수의 근원이 되는 물과 그 물을 공급받고 자라는 식  
물, 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며 짐승들이 함께하는 풍요로움으로 채워간다.  
이러한 물의 근원은 다시 빛으로 확장되어 설명하였고 그 빛은 1QH 7:24에  
서 드러나듯이 ‘에덴의 일곱 줄기’라고 하여 성막의 등잔대 일곱 등불과 연결  
하였다. 여기서 ‘비춘다’라는 동사는 (땅의) 아들들을 향한 통치권 확립의 의  
미를 나타내고 있으며 동산과 더불어 보편성의 주제를 암시한다고 주장하였  
다. 이렇게 마지막 날 에덴의 성전은 이미 쿰란 공동체 안에 확립되었다.  
1QH 6:15-17은 에세네파 공동체를 하나님이 에덴에 심으셨던 나무에 비유할  
뿐 아니라 그 나무들이 온 땅으로 퍼져 나갈 것, 꼭대기가 하늘에 닿으며 에  
덴에 있는 강들의 물줄기로부터 공급받는 생수로 인하여 울창한 삼림이 될  
것이라 표현한다. 새 에덴의 나무가지들은 지구 전체에 펼쳐나갈 것이며 이로  
72 이곳에 나타나는 의의 교사는 자신을 사 5:1-7에 나타난 정원지기로서 묘사하고  
있는데 차이점이 있다면 사 5장에 나타난 정원지기는 하나님이지만 이곳의 정원을  
지키고 가꾸는 자는 의의 교사라는 점이다.  
49  
인해 생긴 그늘은 땅이 성막의 아래에 놓여질 때까지 퍼질 것이다. 이 성막은  
문자적 그늘의 의미가 아닌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하게 될 것이고 나무가  
성장하는 은유적인 표현은 쿰란의 증언, 증거가 될 것이며73 1QH 6:12에 나  
타나는 개념과 연결되어 나라들이 당신의 진리를 알게 되고 민족들이 영광을  
알게 될 것이라는 개념과 관련되어 설명하였다.  
쿰란 공동체가 갖는 하나님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 오경과 유대 전통을  
받아들이는 면은 유대인과 다르지 않지만 자신들을 새로운 계약적 공동체로  
인식하면서 유대인과 구별하였다.74 자신들은 마지막 때 선택된 남는 자들이  
며 예언서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비밀을 아는 유일한 공동체로 인식  
하고 있었다. 공동체 설립을 위하여 의의 교사를 보내신 하나님의 섭리를 믿  
었으며 성서의 해석이 하나님의 비밀을 밝혀내는 진리라고 여겼다.75 쿰란 공  
동체의 예배 모습은 구약의 율법을 철저히 지키고자 했지만 예루살렘 성전에  
서 드리는 희생 제사를 거부했다. 성전은 더럽혀졌고 올바르게 건축되지도 않  
았을뿐더러 제사장들이 순결치 못하여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성전의 예  
배는 다가올 메시아 시대로 연기하며 공동체의 거룩한 삶이 성전예배를 대신  
할 수 있음을 믿으며 새로운 개념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자신들의 지키고자  
하는 정의, 겸손, 인애, 진리 등을 하나님의 가르침 안에 충실히 행하면 이스  
라엘의 죄를 속하기 위한 희생 제사를 대신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들  
이 지닌 제사장의 역할과 지위는 매우 특별한 사상을 가지고있다. 비일은 이  
73 Beale, 『성전신학』, 209.  
74 여기서 구별되는 유대인들은 제2 성전시대의 유대교 중심이었던 예루살렘 성전  
대제사장들과 그 희생 제사에 참여하는 유대인들을 지칭한다.  
75 천사무엘, 『사해사본과 쿰란공동체』, 112.  
50  
러한 특성을 설명하기 위하여 사해문서 4Q418, frag. 81(4Q423 8+24)의 내  
용을 들어 설명하였다.76  
“거룩한 자를 축복하기 위해 너의 입술에 샘물을 만드신 내용  
을 시작으로 각자에게 그들의 유업을 주셨고 그들은 아담의 자손들  
중 너의 분깃, 유업이다(3). 너를 성별하여 그에게 드려 공경케 하시  
고 온 땅위에 가장 거룩한 자로 세우셨다(4). 너를 선택하시고 너의  
영광을 높이셨으며 자신을 위하여 장자로 세우셨다(5). 나의 선하심  
을 주어 너를 위한 것이 되게하여 그를 향한 신실함으로 행할 것이  
고(6) 네 모든 대적들의 손으로부터 판단을 구하라(7). 그를 사랑하  
고 그의 말씀을 지키고 모든 자를 향하여 친절과 자비로(8) 너에게  
명철을 주시고 자신의 보화에 대하여 권위를 주었으며 한 에바되는  
진리를 위임하였다(9). 그들이 너와 함께 하며 네 백성 위에 ...를  
임명하는 일이 맡겨졌다(10). 너는 그의 손에서 유업을 취하기 이전  
에 거룩한 자들을 공경하며(11). 거룩한 자들을 위한 노래를 시작하  
라, 그의 이름으로 불리는 자들은 모두 거룩해질 것이다(12). 그의  
찬란함과 영원한 심음에서 비롯되는 아름다움(13). 세계... 땅을 유  
업으로 받은 자들이 그 안에서 행할 것이다(14). 명철한 너는 만일  
수공기술의 권위를 네게 주셨다면(15).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을  
향한 ... 알도록 하라. 그곳으로부터 네 식량과 ... 위임하라(16). 너  
는 크고 명철한 자가 될 것이고 모든 스승으로부터 더 많은 명철을  
얻게 할 것이다(17). 즐거움을 추구하는 모든 자에게 너의 부족함을  
나타내라. 그리하면 ...을 굳게 세울 것이고(18). 너는 가득 채울 것  
이고 좋은 것들로 크게 배부르게 될 것이다. 너의 숙련된 솜씨로  
(19). 하나님은 (모)든 (살아있는 존재)의 유업을 배정해 주셨다. 지  
혜로운 마음을 가진 너희 모두는 ... 깨닫도록 하라(20).77”  
76 Beale, 『성전신학』, 210-211.  
77 Martinez and Tigchelaar, 『사해문서3』, 277-278.  
51  
비일은 이 문서들을 해석함에 배경을 거대한 에덴과 같은 온 세상으로  
보았고78 쿰란 공동체는 창 1:28의 사명을 반영한다고 설명하였다. 그들이 하  
나님을 영화롭게 할 것이고 그를 위하여 성별 한 것이다. 이 공동체는 온 땅  
으로 퍼져 종말론적으로 보이는 지성소로 이해하였다. 그들은 아담의 자손들  
이 되고 아담이 하나님이 맡기셨던 옛 동산인 성소에서 감당한 일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문서는 창세기 창조사건과 상관관계를 지니고 있다. 쿰  
란 공동체는 스스로를 ‘이스라엘의 지성소’, ‘아론의 지성소 무리’, ‘영원한 정  
원’(1QS 8:5)과 동일시하였다.79 아담과 다르게 아담의 후손들은 하나님께 순  
종하며 영원한 정원에서 살아갈 것임을 언급한다(4Q418, frag, 81).80 또 다  
른 쿰란 문서(4QFlor 1:6)에서는 ‘아담(인류)의 성소’가 쿰란 공동체 가운데  
건축될 것이라 말하였다.81  
1QH 6:12-19와 1QH 8:4 이후 등 초기 유대 찬양 문헌집에서 나타나  
는 생명 나무에 대한 해석은 요한이 본 환상을 저술한 요한계시록이 그리고  
있는 의미를 반영한다. 21장과 22장에 나타나는 종말론적이면서 보편적인 서  
술은 쿰란 공동체가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고 그 진리의 빛을 통하여 모든 나  
라로 확장 시킴으로 나무가 상징하는 비유의 경계를 허물어 확대하고 있다.  
사도요한은 계 21장에 나타나는 새 창조를 거대한 지성소로 그려내고 있다.  
78 이의 내용과 유사한 사해문서로 4Q475 (새로워진 땅)에서도 나타나는데 땅 위에  
더이상 범죄의 행동이 없을 것이고(4) 온 세상이 에덴 같을 것이며(5) 땅은 영원히  
평화로울 것이고(6) 사랑하는 아들.. 그가 그에게 유업으로 받게 하실 것(7)을 말하  
고 있다.  
79 에덴 동산에 대한 후대의 표현이다.  
80 Beale, 『성전신학』, 104.  
81 번역의 논란이 되기도 하는 이 표현은 ‘인간의 성소’, ‘인류의 성소’, ‘사람들로 이  
루어진 성소’ 등으로 번역될 수 있다.  
52  
4Q418, frag. 81의 내용에서도 볼 수 있듯이 전 세계에 퍼지는 지성소를 통  
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크고 놀랍게 만들고 계신 것이다. 쿰란 공동체가 예배  
의 모습을 기존의 희생 제사와 다르게 생각한 것처럼 하나님의 영광이 더이  
상 이스라엘이 만들어 놓은 인위적 성전 안에 한정되지 않으며 마지막 때까  
지 당신이 성별하여 선택하고 장자로 삼으신 자들을 통하여 전 세계로 확장  
될 것이다. 그들이 선택되고 일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며 제사장의 모습으로, 왕의 모습으로 창 1-2장에 나타난 종말론적인  
목표를 이뤄갈 것이다.  
종교 생활에서 기도는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성전 제단에 드려지는 물  
질적 제물을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하루 두 번 기도 모임을 가졌다. 이  
는 희생 제사를 드리던 성전의 모습과 같은 시간에 기도한 것이다. 유대 역사  
에 기도는 성전의 역할과 권위가 약화 될 때, 파괴되었을 때 그 중요성이 더  
욱 부각 되었다.82 공동체 기도의 태도는 이러한 사상을 반영하고 있다. 그들  
이 예배를 상징적으로 이해하는 근본에는 천사가 예배에 참여하고 있다고 생  
각하였는데 천사는 하늘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로 이해하여 자신들의 예  
배 모형으로 인식하였다.  
3-4. Philo, Spec. Leg. 2:162-163에 나타난 성전(성막)  
A. Philo, Spec. Leg.(De Specialibus Legibus)의 배경과 개요  
82 천사무엘, 『사해사본과 쿰란공동체』, 128-129.  
53  
필로는 헬레니즘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완전한 거부와 완전한 포용 사이  
어딘가에 서 있다고 봐야 한다. 물론 포용 쪽에 더 가깝지만 그는 헬레니즘과  
유대교와의 모순이나 대립을 느끼지 않았다. 필로를 부르는 두 가지의 호칭이  
있었는데 유대인 필론과 알렉산드리아 사람 필로다. 이러한 칭호는 그의 정체  
성을 알 수 있고 그의 배경 또한 짐작하게 한다.83 필로는 자신이 지닌 두 정  
체성 사이에 미묘한 노선을 걸었다. 필로의 작품은 성경 주석서, 호교론-역사  
적 논고, 철학적 논고의 세 범주로 나눌 수 있다. 그의 작품 대부분은 거의  
첫 번째 범주에 속하지만 성경해석에 주된 관점을 두지 않은 논고들 중에도  
비중있는 것들이 있다. 필로의 세 가지의 대 주석서 시리즈는 창세기와 탈출  
기의 질문과 응답, 우의적 주석, 율법서 주해 등인데 저술 당시 다른 청중을  
겨냥했을 것이라 보인다. 세 시리즈는 모두 어떠한 방법으로든 모세오경(특별  
히 창세기)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 당시 책이 보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주석  
서 시리즈는 개별작품으로 봐야했고 어떤 경우 독자의 추측으로 해석되는 경  
향도 보였다. 필로의 작품은 문구들 가운데 원래 어떤 방법으로 상호 연결되  
어 있는지 암시하는 구절을 찾아 고대 저술가들의 언급을 살펴보며 작품의  
저술순서를 추적한다.84 이 시리즈 가운데 ‘율법서 주해’는 가장 접근하기 쉽  
다. 청중들이 유대교나 철학에 대한 상세한 지식을 갖고 있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었는데 엘렌 번바움은 덜 박식한 자의 교육과 소외된 유대인의 계몽, 관  
심 있는 자들에게 호소하고 적대적 비유대인을 달래는 목적을 가질 것이라  
평가한다. 이 시리즈는 적어도 12 논고로 이루어졌고 대부분 존재하여 남아있  
83 Kenneth Schenck, 『필론 입문』, 송혜경 역 (서울: 바오로딸, 2008), 74.  
84 Schenck, 『필론 입문』, 48-49.  
54  
다.85  
‘세부규정1-4’(De Specialibus Legibus)는 십계명의 열 가지를 표제  
로 간주하여 개별법들에 대해 자세히 살펴본다.86 ‘세부규정 1’은 하나님께서  
홀로 다스리심과 우상숭배 금지의 2계명을 다룬다. 여기서는 모세오경에 있는  
사제규정이나 희생 제물, 유대교 성전예배와 관련된 많은 요소를 논의한다.  
그가 제시하는 하나님의 이해는 그분의 본성이 인간의 이해를 넘어설 것이라  
는 믿음과 그분의 존재가 있지만 어떤 분인지 알 수 없음에 대하여, 또한 성  
전에 대해서는 성전은 우주 자체이며 이것이 하나님의 참된 성전으로서 상징  
적 표상이 되고 대제사장의 제의 역시 우주의 상징적 표상으로 해석한다. 하  
나님이 창조하신 인간도 죄를 피할 수 없고 반드시 속죄해야 하는데 희생 제  
물을 통한 경건한 마음가짐과 함께 태도의 중요성을 밝히고 있다. 가시적인  
실재 뒤에 있는 존재를 부정하는 무신론자나 다신론자, 감각이나 정신을 우상  
으로 만드는 자들을 정죄하며 실존하는 하나님의 지식이 행복을 가져옴을 주  
장하였다.  
‘세부 규정 2’는 3, 4, 5계명을 다루며 맹세, 안식일, 부모공경에 관한  
것이다. 처음 다섯 가지 계명을 위반하는 자들은 하나님에 대한 의무를 져버  
린 자들로 처벌받게 될 것이며 죽어야 한다고 경고한다. 안식일에 관하여 상  
당히 길게 논의하였는데 유다 율법에 등장하는 열 가지 축제도 여기에 포함  
85 1. 세상의 창조, 2. 아브라함, 3. 소실된 ‘이사악’, 4. 소실된 ‘야곱’, 5. 요셉, 6.  
십계명, 7-10. 세부 규정 1-4권, 11. 덕, 12. 상급과 처벌  
86 세부 규정 1은 하나님의 홀로 다스리심 및 우상숭배 금지에 대한 첫 번째 두 번  
째 계명을 다룬다. 세부 규정 2는 십계명의 3, 4, 5계명에 대하여, 세부 규정 3은  
6, 7계명, 세부 규정 4는 8, 9, 10계명을 다루며 특별히 정의의 덕을 함께 논한다.  
(Schenck, 230)  
55  
시켰다.87 필로는 이 시리즈는 비유대인 누군가가 읽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추  
론된다. 왜냐하면 여러 가지 해설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88 처음 네 계명  
을 잘 지킬 때 보상받게 될 것이고 다섯 번째 계명은 장수를 가져온다고 주  
장하였다.  
‘세부 규정 3’은 자신의 삶에 일어난 변화에 대해 강하게 기술하고 나서  
6, 7계명인 간음과 살인에 대해 서술하였다. 그는 모세오경에서 성과 관련되  
어있는 모든 율법을 간음 아래 논하였고 폭력과 관련된 율법을 살인 금지 계  
명 아래 두었다. 남자와 여자의 역할에 관하여 유명한 논의가 발견된 곳이기  
도 하며 폭력에 관하여는 철학적 정신과 형이상학적 탐구에 대하여 언급한다.  
‘세부 규정 4’는 절도, 거짓 증언, 탐욕에 대한 금지를 다룬다. 또한 정  
의의 덕이 전체적 십계명과 관련 있다고 생각한 필로는 정의의 덕에 대해 언  
급하였다. 여기서 기타의 모든 율법은 십계명으로 귀속하는 모습을 보여주었  
다.89 또 다른 구절에서는 성경의 영감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썼는데 예언자  
들이 성경을 지어낸 것이 아닌 하나님이 그들의 성대를 울려 말씀을 받아 적  
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주장하였다.  
B. Philo, Spec. Leg. 2:162-163의 내용과 성전(성막)의 출현  
87 매일의 축제(2:42-55), 이렛날 축제 또는 안식일 축제(2:56-139 일곱째 해, 희년  
의 쉰 번째 해와 관련시킨다), 신월 축제(2:140-44 초하룻날 축제), 과월절 축제  
(2:145-49 또는 파스카 축제), 무교절(2:150-61), 오순절(2:176-87), 곡식단 맏물  
축제(2:162-75 또는 수확의 맏물 축제), 나팔 축제(2:188-92 또는 거룩한 달 개막  
일 축제), 초막절(2:204-13), 단식일(2:193-203 또는 속죄일)  
88 예를 들면 히브리인들이 이렛날을 안식일이라 부른다고 해설을 덧붙인다.  
89 Schenck, 『필론 입문』, 230-233.  
56  
Philo, Spec. Leg. 2:162-163의 본문의 번역을 다음과 같이 살펴볼  
수 있다.90  
첫 번째 축제(μετὰ τὴν πρώτην)에 이어서, 유월절의 날에  
축제가 있다. 이것은 그날에 일어나는 것에 따라 다발(δράγμα)이라  
고 불리운다. 왜냐하면 그 다발은 그 민족(τὸ ἔθνος)과 모든 땅에  
서, 그 나라와 모든 인류를 위한 제물이 되기 위해서 거둔 첫 소산  
으로서 제단으로 가져온다. 그리고 그것에 의해서 그 민족(τὸ ἔθνο  
ς)은 그들 자신과 나머지 인류를 위해서(ὑπὲρ ἅπαντος ἀνθρώπ  
ων γένους) 살아계신 하나님을 예배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의  
상속물로 비옥한 땅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땅에 척박한 땅은 없으  
며, 돌들이 있는 척박한 땅으로 보이는 모든 곳은 부드러운 흙으로  
깊이 쌓여 있으며 그들의 부요함의 이유로 살아있는 것들의 생산에  
아주 적합하다  
그 이유로 제사장이 도시에 지닌 관계와 유대인의 나라(Ἰουδα  
ίων ἔθνος)가 모든 땅에 지닌 관계가 같다. 진실로 말해야 한다면  
(εἰ δεῖ τἀληθὲς εἰπεῖν) 그들은 제사장으로서 모든 정결한 제물  
과 배와 정욕의 기쁨을 막는 그리고 정신의 군중들을(τὸν ὄχλον  
τῆς ψυχῆς) 저지하는 신적 율법들의 육체와 영혼을 위한 안내를  
통하여 지성과 이성은 비이성적 감각을 통제한다. 그들은 정신의 지  
속적이고 끌어넘치는 충동들(ὁρμὰς)을 자제시키며(ἀνέκοψαν), 멈  
추게 한다(ἀνεχαίτισαν). 부드러운 안내와 철학자의 권면에 의해  
서, 심각하고 엄격한 꾸짖음에 의해서, 혹은 처벌의 두려움(φόβῳ κ  
ολάσεως)으로 그것을 멈춘다.  
90 김규섭, “필로 강의안” (아세아 연합신학대학교, 2020)  
57  
비일은 필로의 문단에서 첫 열매를 드리는 일이 민족과 온 인류를 위하  
여 유효한 목적으로 기여한다고 말했는데 사람이 사는 온 세상과 유대 민족  
의 관계가 국가와 제사장의 관계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스라엘과 성전  
의 관계가 온 세상과 이스라엘의 관계에 해당하고 있음을 암시적으로 보여주  
고 있다는 것이다. 제사장이 이스라엘과 온 인류, 자연, 땅과 물, 공기와 불  
등을 위해서도 기도하며 이러한 기도의 궁극적 목적은 하나님께 피조물에 대  
한 자연의 동반자로 만들어 달라는 간구였다.91 이러한 필로의 문헌에 대한  
성전의 연결은 매우 의미가 있다. 유월절 축제의 의미를 부각하여 비옥한 땅  
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의 축제와 예물을 드리는 것은 이스라엘과 성전과  
의 관계를 해석해준다고 덧붙인다. 온 세상과 이스라엘의 관계로 설명되는 성  
전의 이미지는 세상으로 확장되는 더 나아가 온 우주로 확장되는 성전의 이  
미지로 설명하고 있다. 실제 필로는 제사장의 옷을 언급하면서도 제사장의 옷  
이 우주적 상징을 나타내고 있으며 세계를 표상하고 소우주의 성격을 가진다  
고 주장했는데 제사장 옷이 과연 우주의 복사판이며 창조 세계의 축소판임을  
분명히 인식하였다.92 이러한 성전 이미지의 확장은 비일이 말하는 성전의 확  
장을 설명하기 위해 필로의 문헌을 사용했으리라 보이기 때문에 제사장 역시  
온 인류의 주관자이시고 창조 세계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기초가 되  
어 자연과 세상과 인류의 하나 됨을 위한 제사장의 기도와 연결하였다.  
C. Philo, Spec. Leg. 2:162-163에 나타나는 성전(성막)의 개념  
91 Beale, 『성전신학』, 220-221.  
92 Beale, 『성전신학』, 62-63.  
58  
필로의 작품에서 예루살렘의 성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확실한 충성을 보  
여주기에 충분하다. ‘세부 규정’에서 그는 하나님이 한 분이시기 때문에 성전  
도 하나가 옳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필로는 예루살렘 성전에 대하여 종합적인  
설명을 추가하고 축제에 참여하는 자들에 관해 서술하였다. 그는 ‘가이우스  
알현 사절단’에서 유대인들은 성전이 더럽혀지는 것을 참지 못하기 때문에 죽  
음을 선택할 수 있다고 말한다. 성전에 대하여 그의 자긍심은 대단했다. 그러  
나 이러한 마음은 진짜 성전의 필요성을 느꼈다기보다는 자신이 유대인이기  
때문이며 그 유산과 관계가 있음을 볼 수 있다. ‘세부 규정’ 1:67에서 언급하  
였듯이 한 개의 성전이 존재함은 하나님이 한 분이시라는 것을 상징한다. 필  
로의 주장은 하나님의 참된 성전은 전체 우주이며(Spec. 1:66) 지상에 있는  
성소가 아니라 주장하였다. 지상에 있는 손으로 만들어진 성전은 먼저 상징의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감사를 드리는 장소, 죄의 사함을 위하여 희생 제사를  
드리는 장소로 설명한다. 필로는 덕을 지닌 자들은 몸이 성소에 없을지라도  
마음으로 그곳에 있음을 믿었다. 마음이 성소 안에 있다면 굳이 몸이 그곳에  
없어도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거처하실만한 구조물로서 집은 아무것도 없  
으며 그분께 자격있는 집은 오직 합당한 영혼이라 설명하였다. 필로는 성전에  
대하여 다른 곳의 어떠한 성전도 그 유효성을 거부한다.93 필로는 레 26장에  
나타나는 성막의 예언이 비유형적 건축물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이해하였  
는데 레 26:12이 ‘거룩한 성전’94 또는 ‘하나님의 집’95으로서 인간의 영혼이  
93 Schenck, 『필론 입문』, 89-92.  
94 Philo, Som. 1:148-149  
95 Philo, Som. 1:148-149; Pream.123  
59  
나 정신을 가리키고 있다고 보았다.96 희생 제사는 상징적인 것으로 하나님께  
나아감을 도와줄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자들을 위해 성전이 존재할 수 있다  
고 하였다. 그러나 덕이 있는 사람은 희생 제사 없이도 하나님을 찾을 수 있  
다.  
필로는 배타주의자도 보편주의자로도 설명되지 않는다. 실생활의 모습과  
그의 이념은 궁극적으로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보편주의적인 이념을 가지  
고 있었지만 그가 가진 선입견이나 감정은 종종 배타주의적인 모습을 보여주  
었다. 이론상 그의 주장은 누구든 하나님을 볼 수 있다고 말하지만 유대인들  
이 실제적으로 이러한 주장에서 유리한 입장에 처해 있던 것은 사실이다.97  
필로의 작품 속에는 로고스의 이미지를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다. ‘세  
상의 창조 24’에 나타나는 로고스는 정신에 인식되는 세계가 이미 세상의 창  
조에 관여한 하나님의 로고스임을 말한다.98 관념의 세계를 담고 있는 그릇이  
로고스인 것이다. 또 하나의 로고스는 영혼을 하나님께 인도하는 안내자로서  
의 기능을 하는데 하나님의 모상이 되어 세계에 침투하고 있으며 마치 거울  
을 보는 것처럼 하나님을 비추어 로고스, 이성이 하나님을 관상하는 올바른  
길을 제공한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이유는 필로는 로고스를 대사제 즉 하나  
님과 인류를 이어주는 중재자의 역할을 감당한다고 주장한다.99 필로가 이해  
96 레 26:11과 연결하여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성막을 세우시고 그들  
을 싫어하지 않을 것이며 그 중에 행하여 하나님이 되시고 그의 백성이 된다는 것  
이다. 그러므로 필로의 세계관에 의한 해석은 보이는 건축물로서의 성막이 아닌  
백성들의 마음과 정신을 가리켰음을 유추할 수 있다. Beale, 『성전신학 526.  
97 Schenck, 『필론 입문』, 111.  
98 정신에 인식되는 세계가 다름이 아닌 세상의 창조에 관여하신 하나님의 로고스이  
며 정신에 인식되는 도시, 즉 필로가 제시하고 있는 건축가의 도시가 설계되는 이  
미지가 그 도시를 창조하려 미리 숙고하는 건축가의 사고 행위라고 설명한다.  
60  
하고 있는 창조의 세계는 감각적 세계와 지성적 세계로 나뉜 이원적인 것이  
다. 인간관에 대해서도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인간은 영혼과 육체로 구성되  
는데 영혼은 높은 차원에서의 불멸하는 존재이며 육체는 낮은 차원에서 죽어  
야하는 존재이다. 이스라엘이 모세의 율법에 순종하는 삶을 살고 감각적 쾌락  
을 절제할 때는 영혼의 모습이며 이민족들을 육체로 보는 것이다. 이러한 모  
든 것들의 목표는 감각적인 것을 떨쳐 버리고 하나님께 나아감으로 복된 직  
관을 얻는 것이다.100 관념의 세계를 담는 전체적인 정신세계에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올바른 길을 제공하는 이성의 역할이 탁월함을 지니고 있듯이 전  
인류 안에서 제사장의 역할 또한 매우 특별한 자로 구별되어 하나님과 인류  
를 이어주는 중간역할을 감당하고 있는것이다.  
Philo, Spec. Leg. 2:162-163에서 사용되는 민족의 단어를 자세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 민족(τὸ ἔθνος)’은 보편적 은혜를 누리고 있는 전  
인류를 의미하며 자신의 공동체를 나타내는 단어로 ‘그들 자신과 나머지 인류  
를 위해서(ὑπὲρ ἅπαντος ἀνθρώπων γένους)’를 사용한다. 유대인들은  
일반적인 인간으로 나타나는 인류와는 구별된 존재라는 인식을 보여준다. 필  
로의 철학에서 드러나는 로고스인 이성이 정신의 세계를 지배하고 이끌어 나  
가는 원리와도 같이 전체 인류에게 허락하시는 은혜로서 유대교의 관습이나  
사상 밖에서도 인류가 하나님 앞에서 적법한 지위를 가질 수 있다고 믿는 유  
대교의 보편주의에서 분리되어 자신들만이 그 우위에 서서 합당한 양식과 삶  
을 살아가는 자로서의 배타적 사상을 드러내는 단어로 해석되어야 한다.  
99 Schenck, 『필론 입문』, 142-144.  
100 VanderKam, 『초기 유다이즘 입문』, 258.  
61  
Philo, Spec. Leg. 2:162-163에서 드러나는 성전의 확장은 충분히 거론될  
가치가 있지만 비일이 이 문헌을 이용한 의도에는 간과된 부분이 있다.  
Ⅳ. 히브리서에 나타난 성막  
히브리서 전반적인 이해를 위해 히브리서 수신자들의 상황이나 공동체  
성격, 저작목적을 살피고 히브리서 성전(성막)의 단어 사용에서 나타난 참 장  
막의 의미를 알아보게 될 것이다. 하늘 성전과 어떠한 관계성을 가졌는지에  
대한 연구도 함께 진행 될 것이다. 첫 희생 제물로서 예수 그리스도가 드린  
피의 제사는 그리스도 제사의 특징을 발견하는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며 예  
수가 감당했던 대제사장직을 이해하고 어떤 구체적인 방법으로 이 사역을 감  
당했는지를 찾아 히브리서 공동체와의 연결점을 찾을 것이다. 또한 영문 밖으  
로 나아가라는 의미가 무엇인지 살펴봄으로 히브리서 수신자들의 상황에서의  
현실적 권면을 제공할 것이다.  
4-1. 히브리서의 배경  
A. 히브리서 저작목적  
히브리서는 주후 1세기 후반, 로마 제국에 있는 여러 마을과 도시에 모  
인 소규모의 기독교 공동체 중 한 곳에 보내진 서신이었다. 3세기 이후에는  
기독교가 로마의 주 종교가 되었는데 히브리서가 정경에 포함되는 과정이 순  
조롭지 않아 4세기까지 지중해 동서부에 거주하는 그리스도인들이 히브리서  
를 받아들이는 입장에 이견을 보였다. 동방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향해 나  
가는 영혼의 순례에 관심을 가지고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하여 권위적인 책으  
62  
63  
로 간주했지만 서방에서는 교회 권징을 고심하며 히브리서를 거부하거나 무  
시하였다. 그러나 4세기 삼위일체 논쟁은 모든 교회가 히브리서를 좀 더 긍정  
적으로 평가하도록 만들었고 제사장 직분, 교회의 예전 등의 교회에 대한 이  
해와 연결되었다.101 히브리서가 말하는 합법적 성소는 하나라고 주장한다. 또  
한 이스라엘의 전통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으며 그리스-로마의 신전들과 현  
격한 대조를 이룬다. 히브리서에서는 이 성소를 하나님이 세우신 장막으로 보  
았고 율법에서 보이듯 모세에게 주신 계시에 기초하고 있다. 하지만 히브리서  
가 말하고 있는 하늘 장막은 땅에 있는 성소의 합법적인 면을 보여주기 위함  
이 아니라 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102  
본문에 나타나는 히브리서 저작의 배경에서 청중과 저자의 관계를 결정  
하기는 쉽지 않다. 청중은 위기 속에 있었고 이탈된 무리도 있었다(10:25). 남  
아있는 자들 중에서도 믿음의 지속성과 타당성에 대하여 확신을 잃어가는 상  
황이었다. 그들이 받아들인 구원의 메시지에 대한 관심도 점차 줄어들었다  
(2:1-4). 이전에 하나님의 새 언약 백성으로서 신분을 가져다준 복음의 환희  
와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에 마음을 닫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103 자신들이  
예수 운동에 일치시킨 이후 담대한 헌신에서 후퇴하고 있었다. 당시 공개적인  
박해와 투옥, 재산의 손실까지도 감내한 청중들은 현재 낙심과 무기력함에 힘  
겨워하고 있다. 그들의 신분에 대한 적대적인 사회 반응에 지속적인 신앙고백  
의 필요성에 지쳐갔다(12:3-4). 경각심을 주었던 사항은 이전 지도자들이 설  
교했던 하나님의 말씀과 상충하는 전통들에 대하여 무리가 이끌림을 받고 있  
101 Craig R. Koester, 『히브리서』, 우성훈 역 (서울: CLC, 2018), 30.  
102 Koester, 『히브리서』, 91.  
103 이러한 사실은 2:1; 3:7-4:13; 5:11; 12:25에서 살펴볼 수 있다.  
64  
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유혹은 현재 리더들과 공동체 사이에 해결되지 않는  
문제의 근원이 되었다. 더 나아가 이를 분리하고자 하는 무리는 권속들 간 교  
제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자 노력하지 않았다. 불안정한 사회의 모습과 종교  
의 요인들은 구성원들을 정치, 사회, 종교에 취약하게 만들면서 가정교회의  
안정성까지 해치는 일을 감당하게 되었다. 저자는 공동체 일부 구성원들이 배  
교의 중대한 위험 속에 있음을 감지하였고 이는 하나님으로부터의 배교 일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공적인 모욕에 처하도록 한 행위로 정의하였다.  
그러한 행위는 언약의 신실함을 저버리는 것이고 언약적 교제로부터 떨어져  
나감을 의미한다. 저작 배경에 대한 이러한 증거들은 저자의 목회적 전략이며  
호소의 긴급한 목소리임을 설명해준다.104  
히브리서는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하신 일의 우월성과 궁극성을 강조한  
다. 기독교는 절대적인 성격과 함께 영역 면에서 보편성을 보여준다. 이것은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목적들에 대한 열매로 나타났고 여러 차례 걸  
쳐 다양한 방법으로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신 것들을 성취하신 실제이다. 이  
러한 정의는 진리 안에서 다른 가르침으로 떠나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성취한 것들에 대한 이해를 정확히  
전달하려는 의도를 가지고있다. 유대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경각심은 물론 서  
신의 논의는 더 넓은 적용이 가능하다. 유대 그리스도인과 이방인 그리스도인  
들뿐 아니라 실제 모든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공히 유익함을 주기 때문이  
다.105 히브리서 기자는 어렵고 위험한 시기의 사람들에게 ‘굳게 붙잡고(3:6)’,  
104 William L. Lane, 『히브리서』, 채천석 역 (서울: 솔로몬, 2006), 89-91.  
105 Donald A. Hagner, 『히브리서의 신학적 강해』, 이창국 역 (서울: 크리스챤출  
판사, 2008), 33-34.  
65  
‘들어가기 힘쓰며(4:11)’, ‘완전한 데 나아가고(6:1)’, 자신의 앞에 있는 ‘소망  
을 얻으라(6:18)’고 격려하고 권면하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저자의 이러한 설  
득력 있는 메시지는 이전에 더 기본적인 훈련을 받았기 때문이다. 독자들이  
스스로 내적인 힘을 키워 그들의 어려움과 핍박하는 자들에게로 눈을 돌리는  
것이 아닌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실생활에 우선순위를 정립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서신의 우선적 권면은 인내하라는 메시지다. 아브라함의 약속도 오래  
참았음을 상기시켰고 모세 또한 히브리인들의 얼굴에서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인내하였다. 이보다 더욱 중요한 예수 그리스도의 인내는 ‘그 앞의 즐거움’으  
로 인하여 ‘죄인들이 자기를 거역한 일’을 참아내셨다.106 인내할 수 있는 원  
동력, 이 위험한 시기를 잘 극복할 수 있는 근원은 바로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에서 나오는 힘이다. 그들이 믿음을 지켜나가기 위하여 감수하고 희생해야  
할 위협 때문에 신앙을 포기한 것보다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바라보지 못  
하고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돌아서려고 했던 것이다. 저자는 유대인 그리스  
도인들, 이방인 그리스도인들과 더불어 현재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히  
브리서에 나타나는 그리스도의 중심성과 탁월성을 기억하고 환경과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지켜나갈 것을 부탁한다.  
B. 수신자의 배경  
히브리서는 다른 서신과 달리 서두에 수신자의 정체를 밝히지 않고 있  
다. 뿐만 아니라 히브리서 전체를 살펴보아도 수신자에 대한 언급이 없다. 그  
106 Raymond Brown, 『히브리서 강해』, 김현회 역 (서울: IVP, 2000), 13-14.  
66  
러나 본 서신의 수신자가 히브리인들이었다는 초대교회의 이해는 타당성이  
있다.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구약성경의 역할을 중요시하였고 히브리서에서는  
빈번하게 구약의 구절들이 사용되고 있다. 구약의 이야기들은 수신자들이 이  
미 잘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 된다. 당시의 수신자들은 유대교에 대한 핍  
박과 고난의 매우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었다. 많은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유  
대교와의 타협 위기에 있었고 유대교로의 회기 가능성이 있던 것으로 보인다.  
사도행전에서 나타난 사도들의 투옥, 심문, 스데반의 순교, 바울의 수난 등은  
이러한 어려움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107 그러므로 수신자는 기독교 신앙을  
포기하고 유대교와의 타협이나 회기의 유혹으로 마음이 복잡한 유대 그리스  
도인들이었을 것이라 여겨진다. 스피크(C. Spicq)는 수신자들이 회심한 제사  
장이라 주장하였고 야딘(Yigael Yadin)은 쿰란 공동체로부터 회심하였거나  
적어도 이들의 영향을 받았던 자들로 여기지만 학자들의 연구는 이 두 그룹  
의 확인이 용이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108  
몇몇 학자들은 히브리서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내졌다고 주장한  
다.109 히 3:12은 유대교로 돌아가려는 자들에 대한 경고라기보다 이방 종교  
로 돌아가려는 자들에게 보내는 경고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하며 6:1, 9:14의  
‘죽은 행실’이 이방 종교에 대한 묘사로 보는 설명이 더 타당하다. 또한 고급  
한 헬라어 문체와 칠십인역의 인용은 당시의 수신자가 유대인보다는 이방인  
수신자의 가능성을 열고 있다.110 하지만 유대인들이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사  
107 양용의, 『히브리서 어떻게 읽을 것인가』, (서울: 성서유니온, 2014), 23-24.  
108 Hagner, 『히브리서의 신학적 강해』, 32.  
109 von Soden, Zahn, Moffatt, E. F. Scott, Käsemann, Geerhardus  
Vos 등이 있다.  
67  
는 상황에 대한 고려나 헬라어 수준을 반영할 필요성이 없는 것으로 보아 순  
수한 이방인이었을 가능성은 매우 적다. 이러한 정황들을 종합해 볼 때 수신  
자들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었고 희생 제사에 관심을 가진 제사장 집단이  
었을 것이라는 추론도 가능하다. 또한 일반적인 초대교회의 상황을 감안 할  
때 전체 교회의 이방인들이 상당수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바울서신에서 등장하는 유대인 기독교와 이방인 기독교 간의 갈등 관계  
는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두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는 이미 과거의 일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저자는 단순하게 독자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만 칭하고  
있다. 수신자에 대한 정보는 충분치 않으며 이방인과 유대인이 섞여 있을 수  
있다는 가정을 불러온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할례 행위나 안식일 준수에  
대하여 매우 엄격한 사상을 갖고 있다. 그러나 히브리서는 할례에 대하여 언  
급하지 않고 안식일을 지키는 것보다는 종말론적 안식을 말한다(4:1-10). 또  
한 이방인들이 청중이 되어 그리스-로마 신앙으로 되돌아감을 우려했다면 우  
상숭배에 대한 위험을 더 명확히 언급해야 했을 것이다.111 다시 말하면, 히브  
리서를 해석함에 청중이 유대교 그리스도인인지, 이방인 그리스도인인지를 구  
분하는 것은 큰 의미를 부여하지 못한다.112 청중의 민족적인 배경보다는 그  
리스-로마의 문화들, 유대교 문화, 기독 공동체와 관련되어 있는지를 연구해  
야 할 것이다.  
110 양용의, 『히브리서 어떻게 읽을 것인가』, 26-27.  
111 고전 8:1-13; 10:14-30 참조  
112 1세기 60년대 경부터 로마의 사람들은 단순히 통칭으로 ‘그리스도인들’로 간주  
하였다.  
68  
C. 히브리서 공동체의 세계관  
히브리서가 지목한 수신자는 2:16의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2:10의 ‘하  
나님의 아들’이다.113 히브리서 저자는 청중이 모세의 율법을 인식하고 음식에  
대한 규율에 관심을 갖으며 유대의 해석 방법인 ‘게제라 사바’의 논증을 따르  
길 기대한다.114 이러한 방법의 예로는 4:4-5을 해석함에서 발견되고 있는데  
두 논점을 주장하며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먼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  
는 하나님의 맹세를 인용하여 순종하는 자들만이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갈 수  
있다고 암시한다. 그러나 인용하는 본문을 이해하는 자세한 설명은 등장하지  
않는다. 다음으로 시 95:11에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옴을 금한다는 구절을 하  
나님의 창조역사 후에 어떻게 안식하셨는지 떠올리게 되는 창 2:2과 불쑥 연  
결시키고 있다.115 물론 언어적인 유사점은 발견할 수 있지만 두 본문을 연결  
하고 있는 목적이 분명하지는 않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을 수신자로 주장하  
는 사람들은 아마도 유대교로 회기하려는 일부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우려가  
히브리서를 쓰게 된 목적이라 이해할 것이다. 저자는 수신자들을 기독교 공동  
체 안에 계속하여 머물게 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가 유대교의 제도들보다 월등  
하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노력한다.  
그렇다면 히브리서에서 나타나는 형제(ἀδελφοί)개념은 어떠한 의미를  
113 ‘아브라함 자손’,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표현은 이스라엘을 가리킬 때도 사용하  
였다(신 14:1; 호 11:1).  
114 이는 유비(analogy)에 의한 유추(inference)를 뜻하며 같은 단어가 두 성경의  
본문에 등장할 때 독자가 한 개의 본문을 사용하여 또 다른 본문을 해석할 수 있  
다는 방법론이다.  
115 Koester, 『히브리서』, 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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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는지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 일반적 형제들을 지칭할 때는 동료 그리스도  
인을 지칭한다. 그러나 10:19에 성소에 들어가는 담력을 얻은 형제들은 보편  
적인 인간을 지칭하기보다 하나님의 백성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2:10-18에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고난과 시험은 인간으로 받은 고난과  
시험이기보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나아가 하나님 백성의 대표로 받은 시험, 고  
난이다. 왜냐하면 대제사장은 하나님 백성의 대표가 되는데 예수가 대제사장  
으로 불리기 때문이다.116 백성들의 죄를 속량하는 예수의 대제사장적인 행위  
는 하나님의 백성 대표로서 행한 것으로 이해되며 이는 예수가 인간이 되었  
다는 의미를 넘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의미가 된다. 믿음의 장으로 불  
리는 11장은 이스라엘의 족장들의 순례 여정을 그리고 있다, 저자는 순례자들  
의 이야기를 통하여 독자들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독자들은 그들과  
동일시 되거나 보다 나은 새 언약 안에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인데  
자신들의 삶의 환경을 구속사적인 시각에서 해석하기를 권면한다. 예수의 고  
난은 보편적인 인간의 약함을 경험하기도 했지만 하나님의 백성으로, 그들의  
대표로서 고난을 당한 것이다. 히브리서 공동체가 당하고 있는 고난은 인간적  
인 한계에 부딪혀 겪는 고난이 아닌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칭호 때문에 받는  
고난으로 이해 되어야 한다.117 히브리서에서는 공동체가 당한 고난에 대하여  
위로하고 그들의 정체성을 바로 세워야하는 주된 임무를 발견할 수 있다. 고  
난 가운데 미래를 바라보게 하며 위로를 주는 2:10은 많은 아들을 이끌어 영  
116 김규섭, “보편적 인간 혹은 아브라함의 자손?:히브리서 2:11, 17에 나타난 형제  
(ἀδελφοί)에 관한 연구”, 「신약연구」 17.2(2018), 234.  
117 김규섭, “보편적 인간 혹은 아브라함의 자손?:히브리서 2:11, 17에 나타난 형제  
(ἀδελφοί)에 관한 연구”, 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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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에 들어가게 하심을 말하고 있는데 이 역시도 일반적인 성도들의 영화로움  
을 언급하는 것이 아닌 고난을 당하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예비된 이스  
라엘의 영광을 얻게 된다는 의미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의 공동체는 보편적인 인간 성도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백성으로서  
그리스도의 형제가 되었음을 의미하며 아브라함의 자손이 됨을 나타낸다.  
4-2. 히브리서의 ‘성소’와 ‘참 장막’  
히브리서는 ‘성전’이라는 단어보다 ‘성막(장막)’이라는 단어를 일관되게  
언급하고 있다. ‘성막(장막)’이라는 단어는 매우 보편적으로 오경에 등장하고  
있지만 신약에서는 본 서신 외에 행 7:44에만118 나타나고 있다.119 ‘장막’은  
모세가 시내산 체험을 한 이후로 하나님의 명령에 의하여 지어졌고 솔로몬이  
건축한 ‘성전’이라는 건축물을 지을 때까지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신앙생  
활의 중심이 되었다. 저자는 왜 성전(ἱερόν, ναός)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성막(σκηνή 장막)이라 언급하였는가? 예루살렘 성전과 헬라 시대의 신  
전들은 대부분 ‘ἱερόν’과 ‘ναός’가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히브리서  
118 행 7장에서는 스데반의 설교가 등장한다. 스데반이 순교를 당할 때 증거의 장막,  
즉 성막과 성전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이는 결국 다윗과 솔로몬  
에 대한 대조에서부터 시작된다. 시내광야에 세워진 성막인 ‘광야교회’는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세우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해주었다. 다  
윗은 야곱의 집을 위하여 하나님의 처소(σκήνωμα- 히브리어로는 미쉬칸)를 준비  
한 사람이었고 솔로몬은 하나님을 위한 집(οἶκο)을 지었다. 솔로몬이 하나님을  
위하여 지은 집은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신전이다. 성막은 하나님이 친히 지으  
신 성소로 하나님의 뜻이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 이뤄지는 현장인 것이다.  
119 Hagner, 『히브리서의 신학적 강해』, 153-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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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는 이러한 단어들이 등장하지 않는다. 히브리서가 성전의 단어보다 성막  
을 주로 사용하는 이유는 구약성경에서 나타나는 성막의 전체적인 모양과 비  
품들이 상세히 묘사된 것도 있지만 성전보다 하늘 양식과 더 관련되어있기  
때문이다.120  
문자적으로 성소와 참 장막(히 8:2)을 가리키는 본문은 해석이 나뉘는데  
첫째로 앞의 단어나 문장과 연결하는 단어인 καί(즉, that is)가 성소 또는  
지성소와 바깥뜰이나 성소 전체를 의미하는 것 같은 참 장막을 구분하여 하  
늘 성소의 다른 부분을 의미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다. 이런 구문은 히  
9:8, 11에 나타나는 것으로 보이며 속죄일의 의식에 관하여 나타난 성경의 묘  
사가 ἱερόν으로 성소를 나타내고 있으며 σκηνή로 장막 전체를 나타낸다.  
또 하나의 주장은 καί를 성소와 장막을 연결하는 설명의 의미로 해석했는데  
이 해석이 더 타당성이 있다. 두 명사 뒤에는 ἥν(~것) 이라는 단수 관계사가  
나타나 장막 하나만을 수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첫 장막 안에 등대, 상,  
진설병이 있으니 이는 성소라 일컫고’(히 9:2)에서도 볼 수 있듯이 성소와 성  
막이 한 구절 안에 교차되어 나타남을 발견할 수 있다. 장막 앞에 붙여진  
‘참’이라는 단어는 하늘에 있고 영원함을 지닌 뜻으로 일시적이고 이 땅에 있  
다는 표현과 대조된다.121 ‘참된’의 반대 의미인 ‘거짓된’으로 직접적인 해석을  
시도해 볼 수 있지만 히브리서에 나타나는 성소는 결코 거짓 성소가 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직접 성소를 지으라 명하셨고 이 땅 가운데 존재하는 일시  
적인 성소는 하늘의 영원하고 참된 성소의 원형이 되기 때문이다. ‘참된(ἀλη  
120 Beale, 『성전신학』, 399.  
121 Koester, 『히브리서』, 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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θινός)’의 뜻은 비유적 성소는 지상의 것이고 문자적인 성소는 하늘의 것으  
로 표현되는 근거가 된다. 이 단어는 두 가지의 뜻을 가지는데 참된 것, 진정  
한 것의 표상과 예언 성취의 뜻이다. 계 3:14에서 그리스도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라 표현한다. 이러한 표현은 구약에 등장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  
로서 불완전한 증인들의 완전하신 실체이며 모델임을 나타낸다. 히브리서에서  
는 하늘 장막을 참되다고 하였다. 하늘 장막이 종말론적 성전에 관하여 직접  
적인 예언의 성취이며 불완전한 구약의 장막이 예고한 것들의 성취가 되기도  
한다. 모든 유형적 성전은 다가올 영원하고 참된 성전의 모형과 모델이 된다.  
마지막 성전은 불완전한 사람이 아닌 완전하신 하나님에 의해 새 창조되었기  
때문에 변하지않고 사라지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종말론적 성전은 성취의 의  
미에서 볼 때 참되고, 영원한 실재로 존재한다는 점에서 참되다고 할 수 있  
다. 히브리서 문자적 성전이 유형적인 것이 아닌 하늘 성전으로 거론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하나님의 임재가 사람의 기술로 지어진 건축물 가운데서는 불  
완전하게 표현122되기 때문이다.123  
‘장막’으로 번역된 σκηνή는 히브리어 오헬(천막)과 미쉬칸(처소 혹은  
장막)을 헬라어로 옮긴 것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에서 지었던 성소  
를 가리키고 있다.124 성막에 대한 언급은 구약 출애굽기에서 자세히 나타나  
122 행 7:48-49는 스데반 설교의 요지를 나타내는데 지극히 높으신 이는 결코 손으  
로 지으신 곳에 계시지 않는다고 선포한다. 하늘 성전의 설명을 명확히 하고 있  
다.  
123 Beale, 『성전신학』, 513-514.  
124 학자들 중에는 장막의 ‘양식’에서 실제적인 하늘의 장막이 되었을 것이라 주장하  
며 옛 주석가들 중에서는 교회나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 다시 말해 ‘장막을 친’  
즉, 말씀이 육신이 된다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히 9:11에 나타나는 ‘더 크고 온전  
한 장막’ 또는 두 가지의 개념이 혼합된 것으로 이해하였다. 대부분의 참 장막은  
73  
는데 하나님이 모세에게 보여주신 모양대로 지어졌고(출 25:9) 모세는 보여주  
신 양식대로 하였다(출 25:40). 히브리서 저자 역시도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  
과 그림자로서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 모든 것을 산에서 보이던 본을  
쫓아 지었음을 언급한다(히 8:5). 히 9:4에서는 지성소의 물건을 열거하는데  
이는 모두 출애굽 이후 광야 생활에서 하나님을 체험한 증거들이다. 이러한  
물건들이 의미하는 바는 성막이 이스라엘의 광야 경험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이 또한 히브리서가 말하는 하늘의 성막은 성전의 모습  
이 아닌 광야 성막의 모습으로 나타나 히브리서 수신자들의 상황 가운데 광  
야 공동체의 삶으로 인도해가는 것이다.  
여호와가 그의 성전에 계시고 여호와의 보좌가 하늘에 있음(시 11:4)을  
말하고 있는 본문이나 하늘이 여호와의 보좌임(사 66:1)을 드러내는 본문은  
하나님의 보좌가 하늘에 있음을 언급하며 그 영화로운 보좌가 우리의 성소가  
됨(렘 17:12)과 연결할 때 하늘에 있는 보좌는 성소의 이미지와 충분히 연결  
고리를 만들 수 있다. 이후의 많은 문헌은 하늘의 성소 개념을 발전시켰다.  
에녹 1서 14:18-21에서 에녹은 하나님의 보좌를 설명하는데 수정 같은 형상  
과 태양 같은 바퀴, 커룹들의 산과 같다고 표현하였고 그 위에 좌정하신 영광  
을 감히 쳐다볼 수 없음을 말하였다. 히브리서에서는 이러한 참 장막을 모세  
가 본 성막의 형상과 동일시 하였다.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의 ‘거하다’는 헬  
라어 동사 σκηνόω는 ‘장막을 치다’125의 뜻을 가지고 있는데 구약 출  
‘성소’로 이해하고 있다.  
125 욜 3:17 ‘내 성산 시온에 “사는(κατασκηνῶν)” 너희 하나님 여호와인 줄 알 것  
이다’의 뜻에서도, 슥 2:10 ‘내가 와서 네 가운데 “머물 것”이라’ 에서도 발견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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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8-9에 나타나는 중요한 용어다. 말씀이 사람들에게 거한다고 선포할 때  
예수 그리스도가 육신이 되셔서 하나님이 이 땅 가운데 임재하는 새 장소가  
되었고 옛 성막을 대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요한은 예수를 성전을 대신하  
는 자로서 제시한다. 계 7:15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  
니(σκηνόω)’”의 직접적인 해석에서는 하늘에서 하나님의 임재에 사용하였고  
21:3은 “하나님의 장막(σκηνή)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  
께 계셔(σκηνόω) 하나님의 백성이 됨”에서는 마지막 날에 사람들 앞에 나타  
날 신적 임재를 보여준다.126 신적인 임재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현현은 매우  
장엄하다. 또한 성막이나 성전과 하나님의 영광은 임재하심과 지속적인 연결  
성을 보이고 있다. 시내산에 올라간 모세가 성막에 대한 여러 가지 말씀을 들  
을 때 구름이 산을 덮었고 그 위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였다(출 24:15-16).  
성막이 세워지는 출 40장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나타났으며 솔로몬의 성전 봉  
헌식에서도 마찬가지였다(왕상 8:10-11). 성전이 회복되는 환상을 본 에스겔  
도 성전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함을 본다(겔 44:4). 헬라어 동사 σκηνόω는  
히브리어 ‘샤칸’(
שׁכן
)의 음역이다.127 ‘샤칸(
שׁכן
)’은 우리말로 표현할 때 ‘거하  
다’, ‘머무르다’로 해석되었고 하나님의 임재와 관련된 단어로 봐야한다. 영어  
로 ‘to dwell’(NKJV)로 번역되어 ‘한동안 머무르다’의 뜻을 지니고 있다. 그  
러므로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이 땅에 오셔 한동안 머무른다는 뜻으로 해석  
다. 70인역에서는 ‘내 이름이 이스라엘의 집 가운데 영원히 거할 것(κατασκηνώ  
σω)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126 Brown, 『요한복음』, 264.  
127 출 25:8에 나타나는 단어로 ‘거하다’의 의미를 지녀 임재하심과 연관된 단어로  
해석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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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다. 흔히 쓰이는 ‘성막’에 대한 영어표현인 ‘tabernacle’은 장막이  
되다의 영어 동사 ‘to tabernacle’로 쓰이면서 히브리어의 ‘샤칸’(
שׁכן
)을 나  
타낸다.128  
지상의 성소가 그림자이고 모형이며 본이라는 사실이 사람들에게는 부  
정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 이유는 그림자가 실제와 비교되었을 때 희미한  
자취로만 단순히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히브리서가 말하고 있는 그림자  
는 그런 의미가 아니다. 상응하는 개념으로 이해되어 점점 발전적 모습으로  
묘사된다. 먼저 구약의 대제사장과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역할은 동일하  
다. 구약의 대제사장과 예수의 섬김은 제물을 드리는 것으로 이 두 제사장의  
역할에서 상응성이 발생되는 것은 참 장막과 장막 사이의 상응성이 있기 때  
문이다. 또한 참 장막과 장막을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공유한다.  
작자가 동일하다는 것은 두 장막의 연속성을 설명하는 것이고 본질적인 면에  
서 동일성을 지니고 있음을 말한다.129 몸과 그림자는 일치한다. 그러므로 그  
림자 또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130 몸과 그림자는 불가분  
리의 관계가 된다. 그림자의 참된 의미는 몸을 완벽하게 반영함으로 나타난  
128 왕대일, 『성막이 된 하늘 성전』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9), 98-99.  
129 조병수, 『히브리서 신학』 (경기: 합신대학원 출판부, 2012), 83-88.  
130 Lohmeyer은 “이러한 설명이 그림자에게도 의미와 권리가 있는 것으로 제공된  
다. 그림자가 없는 몸은 존재하지 않고 몸이 없는 그림자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  
다면 그림자도 역시 실제와 관련을 가지고 있다”(Kolosser, 122에서 재인용)고  
주장한다. Schulz도 비슷한 주장을 하였는데 “그림자가 몸의 실제를 지시하고 있  
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림자가 없는 몸이 있을 수 없고 몸이 없  
는 그림자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Weiss도 “히브리서가 지상적  
인 것, 천상적인 것으로, 또는 모형과 원형 사이에 발생하고 있는 상응을 설명하  
려 필연적 논리에 철저히 사로잡혀 있다”고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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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렇다면 히브리서는 하늘의 성소와 땅의 성소가 완벽하게 일치됨을 위하  
여 그림자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131  
4-3. 첫 언약의 희생 제물인 그리스도  
히브리서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또 하나의 논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  
과 죽음이 완전한 속죄 제물이 되었다는 것과 기꺼이 죽음으로 나간 모습으  
로 인해 위대한 대제사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완전  
한 하나의 속죄 제물이며 동시에 희생 제물을 드리는 제사장이다132. 히브리  
서에서는 그리스도가 완전한 제사와 관련하여 결정적 특성을 보여준다. 그리  
스도의 희생은 언약의 피를 통한 중보자 되심을 증거한다. 히 9:18-22에는  
모세의 피 뿌림에 대한 행위와 의미를 전달한다. 성막이 피와 연결됨은 분명  
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 피는 모형적이고 예언적이며 장차 오실 예수의 피에  
대한 그림자에 지나지 않았다. 제단에서 희생된 동물의 피는 죄를 속할 수도  
도말 할 수도 없다. 그저 단순히 죄를 덮은 것이다. 죄를 제거하거나 하나님  
과 화목하게 하는 길을 열 수 없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다른  
것을 의미한다.133 예수 그리스도는 화목 제물이 되었고 진정한 하나님과의  
131 이러한 일치성은 히브리서의 서두에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일치적  
표현에서도 발견될 수 있는데 ‘광채’와 ‘형상’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경우와 비슷하  
다(히 1:3).  
132 Daniel J. Harrington, 『최근 히브리서 연구 동향』, 김병모 역 (서울: 기독교  
문서 선교회, 2013), 89.  
133 Martin Ralph De Haan, 『성막』, 조무길 역 (서울: 생명의 말씀사, 2018),  
227-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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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의 길을 열어주었다. 화목이 이루어지기 전에 죄의 문제는 반드시 해결되  
어야 한다. 죄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인간과 하나님을 분리하기 때문  
이다.  
피의 제사라는 말은 히브리서 저자가 의도적으로 예수의 죽음을 나타내  
는 도구로 사용한다. 모든 언약이 제사를 통하여 세워지진 않지만 모세의 언  
약은 피로 인해 세워졌고 예수의 피로 세워진 새 언약의 모형적 역할을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새 언약의 중보자인 것처럼 모세는 시내산에서 받은 언약의  
중보자였다. 그러나 다른 것은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의 신분이었지만 모세는  
하나님의 종으로 부름받아 일했다는 것이다. 모세는 하늘의 장막을 바라보기  
만 하였고 예수는 그 안에서 섬기는 분이었다. 모세가 선포한 율법과 계명은  
히브리서에서 온전하지 못하고 부적합한 것으로 소개된다. 예수로 인하여 폐  
지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세가 첫 언약을 시작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제사  
는 예수 그리스도의 새 언약을 시작하기 위한 수단인 자기희생을 보여준  
다.134 히브리서는 옛 언약을 세우고 장막을 치는 것을 단일사건으로 통합한  
다. 첫 언약의 제사 속에는 가치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모세에 의하  
여 정결을 위하여 피를 뿌린 행위는 새 언약으로 발전된 예수 그리스도의 온  
전한 정결을 전조한다. 구약에서는 피의 의식에 대해 잘 알려졌지만 왜 죄를  
사하는지, 어떻게 정결하게 되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단지 피의 가치를 인  
식할 뿐이다. 그러나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피 흘림이 하  
나님이 인간을 용서하는 길임을 밝히고 있다.135 용서는 예수의 보혈로만 가  
134 Koester, 『히브리서』, 727.  
135 Koester, 『히브리서』, 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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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하기 때문에 피 흘림이 없으면 사함도 없다(히 9:22)고 결론을 내린다. 그  
리스도의 희생은 제사장들이 드렸던 어떠한 제물보다도 월등하다. 예수가 희  
생 제물로 드려진 제사는 단번에 드려졌고 이전에 동물을 제물로 하여 드려  
졌던 반복된 제사의 헛됨을 반증한다.  
피의 희생 제사는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그분을 향하여 나가기 위한 정  
결에 필수적 요소가 되는 것이다. 히 12:24에는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  
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린 피’를 증거한다. 최초 순교자  
였던 아벨은 그 피를 통해 자신의 억울함과 원수에 대한 저주와 연결되는 피  
였다(창 4:10).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원수 됨을 허물고 화해하고 용  
서하는 새로운 길을 열어 주었다는 것에서 더 나은 피로 부각 된다. 그리스도  
의 보혈은 옛 언약에서 가질 수 없었던 양심의 정결함을 입어 참된 구원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아벨과 동일하게 죄없이 죽음을 당하신 예수였지만 저  
주가 아닌 축복으로 하나님을 경험하는 은혜의 길로 인도하는 구속의 피가  
된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사역 이외에 추가 할 일이 없으  
시다. 죄인을 구원하는 일로 십자가의 길 외에 다른 길을 마련하지 않으셨다.  
예수는 단 한 번의 희생제물이 되셔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요구와 완전한 율  
법인 새 언약의 요구를 성취하셨다.  
그리스도가 드린 완전한 제사는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이 드렸던 제사  
보다 우월하다. 히브리서에 나타나는 그리스도의 제사는 이전에 동물의 희생  
을 통해 매일 반복되었던 레위 계열의 제사 관행을 일단락시켰다. 그들의 지  
속적 제사는 열정의 표상이 아닌 무익함의 증거가 된다. 왜냐하면 반복적 제  
사가 죄를 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구약의 제사는 하나님께 속한 일이며 이  
79  
일을 위해 택함받은 아론과 같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으로  
부터 존귀함을 입었다(5:4). 성소에 들어갈 수 없었던 일반인들과 달리 주님  
앞에 서 있었기 때문에 명예로움이 존재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죄를  
위해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의 우편에 앉았다(10:12).136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신 이와 제사를 위해 서 있는 제사장과는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사명을 끝내고 하나님의 진정한 안식  
에 들어간 것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죄에 대한 완벽하고 최종적인 제사가 되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레위 계열의 제사장들이 드렸던 제사와 같이 그 효력에 한계  
를 드러냈을 것이다. 레위 계열의 제사장들이 드린 제사는 과거의 죄를 사하  
는 것이 아닌 죄를 인식하게 만드는 반대의 결과를 가져왔다(10:3). 죄의 시  
작은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으로부터 시작되고 죄의 사함은 그 반대로 그  
리스도를 믿음으로 대체될 수 있다. 그리스도 희생의 죽음이 선포될 때 죄는  
사함을 얻게 되고 죽은 행실에서부터 깨끗하게 되어 양심을 온전하게 만드는  
능력이 나타난다(9:14). 그리스도가 희생 제물이 되어 단번에 드린 피의 제사  
는 레위 계열의 제사장들이 동물의 피를 사용하여 드린 제사보다 월등하다.  
이러한 그리스도 피의 우월성은 제사의 방법으로부터 기인 되는데 예수의 완  
전한 희생 제사는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9:14) 전개되기 때문이다.137  
제사는 보통 불을 사용하여 드려진다. 레위 계열의 제사장들이 행했던 제사에  
사용된 영원한 불은 정화로 종결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제사를 전개하는 영  
136 Koester, 『히브리서』, 752.  
137 Koester, 『히브리서』, 707.  
80  
원한 성령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섬기는 예배자로의 변화를 기대하  
게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가 희생 제사를 통하여 들어간 성소는 손으로 만  
들었던 그림자 성소가 아닌 하늘 참 성소였다(9:24). 히브리서는 그리스-로마  
시대에 작성되었고 그곳은 사람들에 의해 성소가 세워졌다(8:2). 많은 신을 숭  
배했던 까닭에 신전은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유일신 사상과  
함께 예루살렘의 성전만을 바라보았고 제사를 드릴 수 있는 유일한 곳으로  
인정했다. 히브리서는 합법적 성소가 하나뿐이라고 주장하며(8:2) 이러한 유대  
인들의 사상에 반기를 들었다. 이 성소는 하나님이 세운 장막이다. 모세에게  
주신 계시에 기초하지만(8:5) 히브리서가 말하는 하늘의 장막은 땅의 성소에  
대하여 합법성을 부여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 대안을 제시하는데 유대 문헌에  
서도 나타나듯이 예루살렘의 성소를 하나님이 임재하는 장소로 보았다.138  
수 그리스도가 사역하는 곳은 하늘이다. 그리스도는 영원한 제사장이며 영원  
히 지속될 성소가 필요하고 유일한 장소로서 하늘의 장막뿐이다. 그리스도의  
사역은 하늘 성소를 지향한다. 이러한 성소의 집중은 예배에 대한 새로운 시  
각을 제공한다.  
히브리서 저자가 지상의 성소와 천상의 성소를 구분하는 양식은 천상의  
거룩함에 두고 있다. 성소의 거룩함은 그것을 주재하는 제사장과 성취된 예전  
과 깊은 관계를 맺는다. 천상의 거룩함은 실제 근원으로 또한 완전히 실현된  
구원의 장소로 하늘의 개념에 근거하여 가치론적 의미를 지닌다. 천상적 구원  
은 하나님의 임재와 직접성에서 완성되는 실제적, 온전한 구원이다.139 천상  
138 Koester, 『히브리서』, 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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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로 그리스도가 입성하는 것은 종말론적으로 새로움이 제시되고 옛 의식  
을 대체하는데 예수 그리스도는 이러한 의도를 온전히 성취하신 분이다. 그분  
은 온전히 자신의 사역을 이루고 하늘에 나타나셨다. 자신의 피를 한 번에 드  
려 새로운 시대의 막을 열었고 우리들의 중보를 위하여 성소에 나타나신다.  
그러므로 온전하신 속죄의 제사가 드려짐을 믿는 것은 죄로부터 해방된 삶을  
의미한다. 인간의 죄 사함은 지상에서 행하지만 그 지속적인 효력은 안전한  
하늘의 영역에 속해있다.140 영원한 성소는 사람으로서가 아닌 주님에 의해  
고안되었다. 이 장소는 구원과 믿음을 이루어가는데 파괴적인 원수의 세력이  
침범할 수 없는 곳이며 바로 그곳이 그리스도가 계신 곳이다.  
4-4.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  
히브리서에서 볼 수 있는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에 대한 서술은 그 기  
여도가 매우 크다. 대제사장직의 수행 임무는 속죄뿐 아니라 도움을 필요로하  
는 이들을 위한 중재가 포함된다(7:25). 그들을 위한 간구의 중재는 첫째로  
도움 요청의 의미다. 이는 도움, 허가, 호소, 정의를 수반하는데 부당한 대우  
에 맞서 권위자 또는 하나님께 불만을 토로할 때 쓰였다.141 중재는 원수로부  
터의 구원 요청이 되기도 한다. 히브리서 수신자들의 고통받는 상황은 지속적  
도움의 근원이 되는 그리스도의 중재를 기대했을 것이다. 둘째는 용서의 요청  
139 Lane, 『히브리서』, 539.  
140 Brown, 『히브리서 강해』, 180-181.  
141 에녹 1서 9:3에 나타나듯 사람들의 영혼이 지극히 높으신 분께 호소할 때 보이  
며 롬 11:2 엘리야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고발하였다는 것으로 쓰였다.  
82  
인데 구약에서 이 단어는 용서에 대한 단어로 쓰이지 않았지만 일부 신적인  
심판에 대해 구원을 바랄 때 사용 하기도 하였다.142 히브리서가 말하는 중재  
가 용서를 요청한다는 가정을 뒷받침하는 이유는 7:26-27에 인간 죄를 언급  
하고 그리스도의 제사장의 사역이 속죄를 가져오며(2:17) 새 언약이 용서를  
수반하기 때문이다(8:12; 10:17).  
그리스도가 대제사장이 된 시점을 생각해보는 것은 대제사장직의 이해  
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일부의 본문에서는 예수의 승귀를 통하여 대제  
사장이 되었다고 제시하는데 멜기세덱의 반차를 쫓은 제사장으로서 속성이  
영원히 직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한다면(6:20) 예수는 부활과 승귀를 통하여  
제사장이 된 것이다. 대제사장이 되기 위해 자신을 영화롭게 한 것이 아닌 승  
귀를 통해 영예를 얻었다. 이 땅에서 사역할 때 예수는 제사장이 아니었다.  
제사장의 가문도 아니었고 율법이 요구하는 제사장으로서 자격도 없었기 때  
문이다. 그러므로 제사장과 영화를 포괄하는 개념으로서 ‘온전함’을 이룰 때  
예수가 제사장 직분을 받았을 것이다. 또 다른 본문은 예수의 제사장직은 지  
상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제언한다. 그의 죽음이 제물되었기 때문이다. 히  
9:11은 이미 죽은 시점에 제사장이었음을 암시한다. 자신을 희생하여 죄를 사  
하기 위하여 세상에 오셨으며 하나님의 우편에 앉기 전 죄를 정화하였다(1:3)  
제사장 직분의 지상적 측면을 강조하는 학자들은 그리스도가 지상에서의 삶  
에 제사장이었고 성육신하면서 제사장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제사장  
직분의 천상적 측면을 강조하는 강조하는 사람들은 지상에서는 제사장이 아  
142 창 18:22-33; 출 32:11-14; 민 14:13-19; 삼상 7:5-9; 마카비 2서 7:37-38 등  
이 있다. Koester, 『히브리서』, 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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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었고 그의 죽음 또한 희생 제사가 아니라고 주장하는데 속죄는 하늘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143  
그렇다면 히브리서는 이문제를 어떻게 풀고 있는가?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가 언제 대제사장이 되었는지에 관하여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단지 각 주장을 뒷받침하는 본문만을 유추해낼 뿐이다. 각 주장이 제시하는  
시점들은 모두 불완전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시점에 차이가  
나타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사역은 분명하였고 그것을 이루셨음  
에 의미를 두어야 할 것이다.  
히 2:10에 ‘온전함’으로 번역된 τελειόω는 ‘어떠한 과정을 거쳐 무엇인  
가를 그 목표, 목적, 종착지에 이르게 하다’의 뜻을 지닌다. 이러한 정의로 본  
다면 히 2:10은 하나님께서 고난의 과정을 통하여 예수를 구원의 창시자로서  
목표지점에 이르도록 한 것이다. 예수의 신성에도 불구하고 고난이라는 과정  
을 거치지 않으면 목표에 이를 수 없음을 내포하고 있다.144 히 4:15은 예수  
를 인간의 연약함을 지닌 분으로 소개한다. 연약함으로 시험에 노출되었으며  
육체로 거하는 동안 통곡, 간구, 눈물과 소원을 올려야 했다. 히브리서 기자  
는 예수가 고난을 통해 순종을 배웠고 이러한 과정으로 완전함에 이르렀다고  
표현하고 있다. 결국 죽음으로 마무리되는 고난을 통과하여 인간과 하나가 되  
셨고 비로소 구원의 창시와 대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준비를 마친  
것이다. 히 2:17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기  
143 Koester, 『히브리서』, 188.  
144 정성국, “하나님 우편에 오르신 아들과 대제사장 예수-히 1:5에서의 시 2:7과  
삼하 7:14 사용”, 「ACTS 신학저널」 제22집 (2014),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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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해서”는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셔야 했다”고 전한다. 죽음 이후 하나님  
의 보좌 우편에 앉으신 예수는 히 1:5에서 말하는 ‘오늘’ 하나님이 정하신 모  
든 준비과정을 마치고 목적지에 이르렀다. 그 순간 예수는 ‘아들’이라 인정받  
았으며 다른 아들들과 하나 되어 그들을 대표하는 대제사장의 사역을 감당할  
만한 자격을 갖추셨다. 그러므로 예수의 부르심은 히 5:5-6에서 보여주듯이  
‘아들’과 ‘대제사장’으로서 이중적임을 알 수 있다. 구약 시 110편의 인용은  
‘영원한 대제사장’의 주제로서 시 110:4을 언급하며 또한 ‘하나님 우편에 오  
른 아들’로서 시 110:1을 모두 담고 있다.  
히브리서에 나타나는 제사장직은 거의 그리스도의 제사장에 초점을 맞  
추고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사명으로서 제사장 직분에 대해 관심을 비  
추지 않는다. 벧전 2:5에서 그리스도인들을 거룩한 제사장이라 칭하고 계  
1:6, 5:10은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으로 표현한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서 그  
리스도인들의 제사장을 히브리서에서 발견할 수 있을까? 존 스콜러(John M.  
Scholer)는 그리스도인들이 제기하고 있는 어떠한 제사장직의 요구도 그리스  
도의 대제사장직에서 연유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  
리스도의 죽음과 승귀로 하나님께 나아감을 누리고 있으며 마지막 날들에 예  
배와 찬양, 거룩한 제사를 드리고 있고 하나님께 직접적으로 완전히 나가게  
될 종말론을 기대할 수 있기때문에 정당한 예기적 제사장으로 묘사될 수 있  
다고 하였다.145 그리스도인들을 예기적 제사장으로 보는 개념은 저자가 당시  
유대 저술가들처럼 제사장직에 대한 이해를 구약에서 가져왔다. 그러나 가장  
145 John M. Scholer, 『예기적 제사장들: 히브리서의 제사장직』, 1991.  
Harrington, 『최근 히브리서 연구 동향』, 99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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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영향은 ‘우리를 위한’ 예수의 죽음과 ‘우리의 죄를 위한’ 그리스도의 희생  
에 대한 초기 기독교 신앙고백과 그의 형제들을 거룩하게 만들기 위해 예수  
의 대제사장직을 이해하고 고백하게 하려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사역을 관찰할 때 사용되는 구약의 전승은 출애굽  
의 이야기가 아닌 이스라엘의 대제사장과 관련되어있는 본문을 사용한다. 레  
위기 16장의 본문에서 레위 계통의 대제사장들과 마찬가지로 예수의 사역도  
사람들의 죄를 사하게 될 것이다(2:17). 그러나 이러한 사역을 위해 다른 이  
들과 분리되어야 했던 제사장들과는 다르게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했던 예  
수는 사역 수행을 위해 먼저 그들과 같이 되셨다(2:17). 성육신을 감당한 그  
리스도는 자신의 자비함과 신실함을 드러냈는데 제사장 전승에서 등장하는  
최고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자비와 신실을 지닌 제사장이 되기 위하여 고난  
당했다는 것은 고난을 통해 후에 자비를 배웠다는 의미도, 신실함이 없이 고  
난을 통해 신실해졌다는 의미도 아니다.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은 예수 그리스  
도의 이러한 속성이 시험을 통하여 명확히 드러났다는 의미이다. 예수의 대제  
사장직의 임무는 속죄와 관련하여 큰 비중을 차지한다. 속죄는 죄의 제거를  
뜻하는 속량과 신적인 진노를 피하는 의미로서의 화목의 뜻을 포함하는데146  
구약의 모세 세대를 위협한 신적인 진노가 히브리서 청중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때 히브리서에 적합한 개념이 될 수 있겠지만 히브리서가 더  
강조하고 있는 요소는 1:3에서 나타나듯이 죄를 정결하게 하는 속량의 의미이  
다. 속죄일은 광야로 내보내는 숫염소를 통한 이스라엘 공동체의 죄를 씻는  
의식뿐 아니라 사람, 사물 모두를 정결하게 하는 의식을 포함한다. 예수의 또  
146 Koester, 『히브리서』, 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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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대제사장적 임무는 시험 당하는 자들을 위해 지속적 도움을 주는 것  
인데(2:18) 사회로부터의 비난이나 현실적 고통으로 인한 좌절(13:13-14)로  
시험을 경험한 자들에게 대제사장의 역할을 기대한다. 광야 세대는 하나님을  
시험했고 그들이 행한 불신앙적 시험은 하나님을 진노하게 만들어 약속된 것  
을 받을 수 없게 되는 결과를 도출했다. 히브리서 공동체들은 이러한 어려움  
가운데 서 있으며 광야 공동체와 같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 있는 큰 대제사장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다(4:14). 그분은  
똑같은 시험을 받은 자로서 우리를 동정하시고 연약함을 돕는 분이다. 그분으  
로 인해 은혜의 보좌로 나아갈 수 있는데 하나님과 관련하여 사용되는 ‘나아  
가다’(προσέρχομαι) 동사는 여러 가지 측면을 의미한다. 그중에 발견되는  
제사장의 의미는 성막의 지성소와 관련되어 해석되어야 한다. 예배자는 성소  
의 외부경계까지, 일반 제사장은 제단까지, 대제사장은 시은좌에 나아갈 수  
있는데147 그리스도가 이미 앞장서 지나가셨기 때문에 청중들은 은혜의 보좌  
로 나갈 수 있다.148 인간은 자신의 죄를 책임져야 할 죄인이고 대제사장은  
이러한 인간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 사이에서 중재하는 위치에  
서 있다. 대제사장인 예수를 통해 누리는 유익함은 자비와 돕는 은혜이며 이  
는 히브리서 공동체의 이해를 반영하고 있다.  
4-5. 영문 밖으로 나아가자(히 13:13)  
147 하나님은 그룹들 위에 앉아 계시고(왕하 19:15; 시 80:1) 그룹들은 장막과 성전  
의 지성소 안의 언약궤 위에 있었다. 일부 학자는 시은좌(the mercy seat)의 표  
현을 4:16 은혜의 보좌와 9:5 속죄소를 나타낼 때 사용하였다.  
148 Koester, 『히브리서』, 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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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제도의 기본 구조는 예비적이고 모형적인 것이기 때문에 제사장들은  
심지어 대제사장까지도 제단과 제사에 접근할 수가 없었다. 이는 오직 그리스  
도인들이 예수를 믿음으로만 가능하다. 제사장들은 대속죄일의 희생 제물을  
포함하여 다른 속죄의 제물을 먹을 수 없었다. 이 제사들에 희생된 제물은 성  
밖에서 불태웠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사실을 예수 그리스도가 성벽 밖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 사실과 연결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진영 밖에서 짐승을 태  
우는 행위와 예루살렘 성벽 밖에서 예수의 십자가 사건은 예표적인 일치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것을 드러내기 보다는 성문 밖에서 당한 예  
수의 수난과 독자들이 겪는 고난에서 평행점을 찾는다. 독자들이 가진 예수의  
믿음은 그들로 하여금 이스라엘 진영 밖에 위치하게 하고 학대받게 하였기  
때문에 13:13에서는 “그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가자”고 권면하  
고 있다.149 영문 밖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기 위해 나아가야 할 곳이고  
십자가가 세워진 곳이며 죄인들을 용서하기 위해 세상이 버린 하나님 아들의  
의를 힘입어 죄인을 만나주시는 장소가 된다.150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자, 신앙을 지켜나가길 원하는 자는 현 상태로  
부터 분리됨을 요청한다. ‘영문 밖에서’의 설명을 보충하기 위해 레 16:27을  
인용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문 밖에서 고난 당하셨고151 이는 당신의 백성  
을 거룩하게 하시기 위한 행위였는데 예수가 당한 죽음의 효력은 사실 고난  
당한 장소에 의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예수의 수난이라는 역사적 사실은  
149 Hagner, 『히브리서의 신학적 강해』, 252-253.  
150 Richard D. Phillips, 『히브리서』, 전광규 역 (서울: 부흥과 개혁사, 2006),  
1036.  
151 마 21:39; 요 19:20 즉, 예수는 예루살렘의 성벽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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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교훈을 담고 있다. 레 4:12, 21에서 나타나듯 제물로 끌려온 짐승들은  
영문 안에서 희생되었고 영문 밖에서 불살라졌다. 구약성경은 영문 밖에서 죽  
임을 당한 다른 제물에 대하여 언급한다. 율법 아래 저주를 받고 하나님 백성  
의 자리에서 끊어진 자들은 영문 밖에서 사형을 당했고 그 시신은 희생된 제  
물들이 불살라지는 곳에 버려졌다. 그리스도는 죄도 없으셨고 거룩하신 하나  
님의 아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율법의 저주 아래에 있는 부정한 자와 같이  
취급된 것이다.152 그리스도는 현재에도 여전히 제사, 음식물을 포함한 모든  
율법에서 영문밖에 서 계신다. 그러므로 그의 피로 거룩함을 받은 자들은 예  
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위하여 영문 밖으로 나가야만 하고 나아감으로 거룩  
함을 입을 수 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가 계시는 영문 밖은 어디인가? 학자들마다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는데 성스러운 영역을 부정하여 세속적인 영역으로서 세속성을  
받아들이라는 권면으로 이해하기도 하며 유대교와의 결별의 메시지로 예수가  
속죄를 완성한 천상의 세계를 추구하는 권면으로도 해석된다.153 더 발전된  
152 히브리서의 저자는 사도 바울의 말과 유사한 서술을 보인다.(고후 5:21; 갈  
3:13) 사도 바울이 택했던 구약의 본문은 히브리서 기자와는 다른 것인데 사도 바  
울은 신 21:23의 ‘나무에 달려 저주 받은자’의 말씀을 인용하였고 예수의 죽은 장  
소가 아닌 죽음의 방식으로 논지를 넓혀 나가고 있다. 그러나 히브리서의 기자와  
바울은 비슷한 요점을 제시한다.  
153 헬무트 쾨스터는 세속의 영역으로 영문 밖을 바라보며 13:13의 본문을 세속성을  
받아들이라는 권면으로 이해하였다. 두 번째 학자들은 이 본문을 유대교의 결별로  
이해한다. 다시 말해 유대교가 아닌 예수가 궁극적 속죄를 완성하신 천상 세계를  
추구하라는 권면으로 이해하고 있다. 제이스 톰슨은 ‘영문 밖’이 수직적이고 초월  
적 세계로 이해하였다. 더 나아가 유대 공동체와의 사회적, 감정적 연결에서 단절  
하라는 권면으로 이해하기도 한다(B. F. Westcott; F. F. Bruce 등의 학자들).  
그러나 히브리서의 수신자들이 유대인들만이 아니고 유대인들이 유대 제의로 다시  
돌아가는 것을 경고하기 위해 쓰여졌는지 의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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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으로 유대 공동체와 사회적 연결뿐 아니라 감정적인 부분까지의 단절을  
말하고 있다고 이해하였다. 그러나 히브리서 수신자들은 유대인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유대 제의로 다시 돌아가고자 하는 태도를 경고하기 위한  
목적으로는 보기 어렵다.  
이 단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3장 전체의 구문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  
다. 이 부분이 제사와 제단의 의미를 재정의하기 때문이다. 1-6절에서는 성도  
의 삶의 전반적인 모습 가운데 형제 사랑, 손님 대접, 결혼과 재물의 문제가  
거론되고 7-9절은 지도자에 대한 권면이 나타나며 17절에 다시 지도자들에  
대한 순종을 말하였다. 7절과 17절에 나타나는 공통적인 표현인 인도하는 자  
들(ἡγουμένων ὑμῶν)과 9절(οὐκ ὠφελήθησαν)과 17절(ἀλυσιτελὲς γ  
ὰρ ὑμῖν τοῦτο)에 동일하게 등장하는 유익이 없다는 문장은 지도자의 권면  
을 강화한다. 그 가운데 삽입된 10-16절은 제사와 제의를 주제로 새로운 생  
활방식에 대한 권면으로 나타나는데 이곳에서 말하고자 하는 권면은 이전에  
중심에서 추구했던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인으로서 삶  
이 주변화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유대교 복귀를 막는 의  
미도 세속적인 삶을 수용하라는 의미도 아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인으로  
받게 되는 수치와 모욕, 주변화되는 모든 상황에 대한 인정과 받아들임이다.  
예수는 지상에서 죽임을 당했지만 십자가의 죽음을 당한 곳은 영문 밖이다.  
예수를 위한 고난과 치욕의 자리는 영문 밖의 자리가 된다.154 그곳은 새로운  
성전이 세워지고 천상의 시온이 될 것이다. 신앙인들이 목표하는 천상의 시온  
154 Koester, 『히브리서』, 997-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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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향해 가는 길은 영문 밖을 거쳐야 하며 옛 세상의 중심에는 존재하지 않  
는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의 죽음이 있었던 영문 밖을 거쳐야만 천상의 시온  
에 갈 수 있으며 이곳은 이전에 추구했던 고결하고 명예로운 모든 삶에서 벗  
어나 주변화되어 있고 소외된 곳임을 알 수 있다. 12절에서는 이 영역을 성  
문 밖(ἒξω τῆς πύλης)이라고 말하고 있다. 구약에서 행해졌던 희생 제사의  
완전한 완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심으로 설명되며 이를 성문 밖에  
서 이루셨다.155 예수가 감례한 모든 불명예, 모욕은 유대교를 향하여 안락과  
안전에서 떠날 것이며 히브리서를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신앙을 지켜나갈 때  
그리스도로 인해 받게 되는 환란, 핍박, 모욕을 잘 견딜 수 있어야 함을 권면  
한다.156 영문 밖은 영광스런 구역이 아니다. 보호받을 수 없는 수치스런 구역  
이다. 새 예루살렘은 바로 ‘성문 밖’ 또는 ‘영문 밖’에 있는 것이다.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사의 방법은 지상에서의 것이 아  
닌 영적인 제사여야 한다. 영적 제사의 방법은 13:15~16절에 ‘찬송의 제사’로  
설명되는데 시 50:14, 23에 등장하는 이는 그 이름을 고백하는 즉, 공개적으  
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과 신앙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가 된다고 재  
정의하고 있다.157 이러한 어휘의 활용으로 유추할 때 단지 곡조가 붙은 노래  
만으로 정의될 수 없고 히브리서를 읽는 독자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신앙 고  
백’안에 드리는 예배여야 하고 선을 행하며 나눠주는 삶으로 해석되어야 한  
다. 영문 밖 제단의 예배는 단순한 의미의 초월적인 모습이 아닌 형제 사랑과  
155 장동수, 『영문밖으로 예수께 나아가자』 (서울: 침신대 출판부, 2008), 267-268.  
156 이러한 권면은 히브리서 전체에서 읽을 수 있는 내용으로 볼 수 있다(2:1; 3:12;  
4:11; 6:4이하 10:35; 12:3).  
157 장동수, 『영문밖으로 예수께 나아가자』, 269.  
91  
손님의 접대, 아울러 학대당하는 자들을 기억하는 것이다. 매일의 일상 가운  
데 주어지는 부르심으로 확장되어야 할 것이다.  
히브리서의 수신자들은 이제 중대한 결단을 맞이한다. 그리스도를 욕하  
고 정죄하는 도시 안의 삶을 택하든지 처참하게 저주를 받고 십자가의 고난  
당하셨던 영문 밖으로 나가든지의 선택이다. 이제까지 히브리서 저자의 권면  
은 참된 안식을 누리고 성소 안의 삶 속으로 들어갈 것을 계속하여 강조하였  
다. 그러나 이제 결론적인 권면은 그와 상반되는 영문 밖으로 나아갈 것을 촉  
구하고 있다. 진에서 나온 영문 밖으로의 삶은 많은 어려움 가운데 감당할 것  
을 요구하지만 참된 기쁨이 있는 그리스도 안의 참 평안을 누리는 곳이 될  
것이다.  
4-6. 비일의 히브리서 해석  
A. 히 8:2의 구약적인 배경  
히 8:2은 참 장막이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닌 주가 세우신 것임을 강조한  
다. 이스라엘의 성막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세우도록 명하시고 알려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주장은 의미가 있다. 그러나 히 8:5은  
모세가 만든 성막이 산에서 보여주셨던 본을 따라 지어져야 한다는 것을 강  
조한다. 성막은 마지막 때에 만들어질 것으로 현세에 속하지 않고 새 창조에  
속하여 하나님의 손에 의해 만들어져야 하는 것의 작은 모형일 뿐이다. 성막  
은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닌 주가 세우신 것이다. 이에 대한 배경으로 언급된  
92  
민 24:5-6은 확장되는 동산의 압축적 묘사를 담고 있다.158 ‘장막’, ‘거처’를  
뜻하는 단어가 오경에서 함께 나타날 때 한 번의 경우(민 16:27)만 제외하고  
모두 성막을 가리키고 있다.159 민 24:5-6의 장막들, 거처들이 성막을 가리키  
는 복수형이라면 이는 이스라엘의 임무를 설명하고 있는 또 다른 텍스트로  
봐야한다. 성막으로서 이스라엘의 모습이 온 세상을 향하여 퍼져나가는 초목  
과 물로 연결시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6절에 ‘여호와께서 심으신 침향목’  
은 70인역에서 ‘여호와께서 심으신 성막들(또는 장막들)’로 번역되는데 동산처  
럼 벌어지는 나무들이 참된 성막을 구성하는 것으로 해석 되어졌다. 동산과  
성막의 표상을 연결하는 태도가 창세기 2장의 동일한 표상들 사이에서 기인  
하고 있음도 유추해 볼 수 있다. 민 24:6의 70인역이 ‘성막’을 계속하여 언급  
한다는 사실은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다. 신약의 히 8:2이 민수기가 말하고 있  
는 하늘의 참 장막으로 옮기는 70인역을 계속하여 언급하기 때문이다. 70인  
역의 민 24:6은 24:5에서처럼 성소의 복수형 언급에 준하는 하늘 성소들과  
동일시한다. 물론 히브리서에서는 천상의 차원을 가리킨다.160 70인역에 더하  
여 민 24:5에 나타나는 동산언어는 신약에서 해석 또한 ‘성막’을 가리킴이 분  
명하다. 유대교 아람어 성경도 민 24:5을 LXX의 방식과 같이 다룬다. 어떤  
아람어 성경은 6절의 ‘여호와께서 심으신 침향목들 같고’의 표현이 성막을 가  
리킨다고 이해한다. “하나님께서 세키나의 집(영화로운 거처)이 되도록 펼치신  
158 비일은 민 24:5-6을 그리스어 구약성경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곳에 나타나는 여  
호와께서 심으신 침향목은 여호와께서 심으신 장막으로 번역되었는데 70인경은 식  
물학적인 히브리어 구절을 나름의 방법대로 해석하며 번역하고 있다.  
159 여기서는 성막의 주변에 있는 이스라엘의 거처를 가리킨다.  
160 민 24:5에서의 복수형은 σκηναί로 쓰이지만 히브리서에서는 ἁγίων으로 쓰이  
고 있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93  
하늘과 같이 이스라엘은 아름답고 영원토록 지속 될 것이요....그분의 피조물  
중에 높임을 받을 것이다”161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준비하신 하  
늘 성막의 확장된 부분과 같이 땅에서 펼쳐질 이스라엘의 사명에 대한 그림  
을 그려볼 수 있다. 아람어 역본에서 민 24:6에 대한 해석은 온 땅으로 퍼져  
나가는 이스라엘의 사명에 대해 묘사하고 있는 것으로 우주적 의미를 지닌  
하늘 장막을 확장하는 것으로 비견된다.  
70인역과 탈굼의 공통점은 하늘에 있는 것도 장막으로 표현되고 있다는  
점이다.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는 그곳에 지극히 높으신 이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는데 이러한 왕권의 개념은 아담이 창조 세계에서 가진 지위의 초  
기성취로 설명하는 히브리서 앞부분(2:6-9)의 해석과 관련된다. 또한 이상적  
인 아담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는 시 8편에 기초하여 히 2장과의 관련성은 아  
담 초기묘사가 그리스도를 대제사장으로 바라보는 히브리서와 이어지고 있다  
는 사실에서 더 강화된다. 창 1-2장에서 아담은 왕으로 묘사되고 다음에 성  
전에서 예배하고 다스리는 제사장적인 인물로 묘사되었다.162 이러한 패턴이  
반영되었다고 보면 히 2장의 논의에서도 아담을 제사장으로 뿐 아니라 하나  
님의 아들로 악을 다스리는 사람으로 간주한다.163 그리스도는 제사장-왕으로  
오셨다. 하늘 성전에서 계속 통치하고 일하실 것이다.  
161 70인역의 번역에서도 거의 같이 ‘여호와께서 심은 성막(장막=σκηνή)들 같고’로  
번역하고 있다. Beale, 『성전신학』, 168-169.  
162 왕으로 묘사되는 구절은 창 1:26-28이고 제사장적 인물로 묘사되는 구절은 창  
2:15이다.  
163 Beale, 『성전신학』, 406-408.  
94  
B. 마지막 때 하늘 성막 자체인 그리스도  
히 9:12에 근거해서 비일은 그리스도 자신의 피로 성소에 들어갈 수 있  
음은 성막을 예수의 피와 동일시한 것으로 새로운 창조 세계에 속한 성막이  
예수 자신임을 발견하게 한다고 보았다. 계 12:22-29에 등장하는 시온 산이  
나 하늘의 예루살렘은 성전, 성소에 대한 언급이 나타나지 않지만 구약의 표  
현대로 시온산이 이스라엘 성전과 동일시되는 개념으로 해석될 때 함축적 의  
미를 발견할 수 있다. 히 12:18-21에서는 하늘의 시온산과 시내산을 대비시  
키는데 시내산을 땅에 있는 성전으로 본다면, 히브리서 본문은 하늘의 성전과  
지상의 성전을 비교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시온산은 신자들이 상속받게 될  
흔들리지 않는 나라(28절)인데 이와 평행을 이뤄 해석되는 구약의 텍스트는  
단 7:18이다. 단 2장에 언급되는 ‘영원한 나라’는 온 세계에 가득하게 될  
(2:35) 돌로 묘사되면서 불경건의 나라와 대조되고 있다. 다니엘의 돌산이 거  
대한 성전과 관련되는 암시를 사 2:2-3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산이 이스라엘  
을 상징하며 산의 이미지가 여호와의 전으로서 산과 연결된다는 것과 단 2장  
과 같이 마지막 날에 이뤄질 사건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 성전이 세워질 곳으  
로 산이 점진적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것이다. 구약에서의 산과 성전의 긴밀성  
을 포함한다면164 단 2장의 돌은 성전-산의 기초가 되어 종말론적 성전과 관  
련된 해석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히 12:22-29은 다니엘서의 이러한 배경을  
가지고 있음이 당연시 된다. 더욱이 22절에 ‘시온산’을 히브리서 다른 곳에서  
164 예를 들면 시내산의 등장은 산, 언약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고 자주 묘사된다.  
또한 구약에 하나님의 백성과 연결된 모든 성전은 산 위에 있다는 사실은 산과 성  
전의 긴밀한 관련성을 확증한다.  
95  
언급할 때 하늘 장막과 관련된 하늘의 예루살렘과 동일시한다.165  
C. 마지막 날 성전에 대한 학 2장의 예언  
히 12:26-27의 성전 언급은 학 2:6을 인용하여 마지막 때의 성전 개념  
이 학개서에 담겨있음을 보여준다. 학개서는 마지막 날에 성전의 영광을 자세  
히 묘사한다. 학 2장은 출 19:5-6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소유로, 제사장 나라  
로 삼으신다는 약속을 언급하고 있음을 암시하는데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  
의 임재 가운데 살아가고 그 임재 안에 영화로운 빛을 발하는 제사장의 모습  
처럼 될 것이고 어둠 속에 살아가는 이방 나라들의 중재자의 역할을 감당할  
것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영으로 자기 백성을 통하여 성전건축의 시기를 알리  
며 그때는 출 33장의 약속이 이뤄지고 19장의 사명과 약속이 성취되는 시기  
이다. 요약하면 출애굽기의 두 약속 텍스트가 마지막 때 하나님의 성전이 백  
성을 통하여 건축될 것임을 뜻하고 있는 것이다. 장차 건축 될 성전의 영광은  
이전보다 클 것을 언급하는데 솔로몬의 성전 영광을 넘지 못하며 에스겔의  
종말론적 성전의 기대도 성취할 수 없기 때문에 중간기 유대교인들은 종말의  
때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주후 70년 성전의 피괴는 유대인들이 성전을 생  
각하는 방법에 위기를 가져왔다.166 이러한 약속의 성취는 학 2:6에서 나타나  
듯 ‘조금 있으면’ 진동이 있을것이고 이 때에 새 창조 안에서 이뤄지게 될 것  
이다. 여기에 나타나는 표현은 옛 창조의 실질적 붕괴를 가리키고 옛 체제의  
165 히 8:1-2, 5; 9:24  
166 Beale, 『성전신학』, 155-156.  
96  
급격한 변화가 새 질서를 세워나가기 위한 길을 열게 될 것이다. 이러한 해석  
이 히 9:11에 나타나는 (사람) 손으로 짓지 않은 것이 (옛) 창조에 속하지 않  
는 더 크고 온전한 장막의 주제와 연결된다. 학 2:9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보다 더 크리라는 결론 역시 후의 장막이 첫 번째 것보다 더 완전하고 크다  
는 히브리서 개념과 일치하고 있다. 하나님의 계획은 새것을 세우시기 위하여  
첫 번째 성전에서 시행되던 희생 제사를 폐하셨고 종말론적 희생 제사를 위  
해 단번에 영원한 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 새 언약의 가치가 충  
분했다는 증거가 된다. 새 성전은 진동치 않고 영원하며 새 창조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손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쇠하지도 변동함도 있을 수 없다. 학 2장  
에 드러나는 마지막 날의 성전을 염두하고 있는 히브리서 기자는 히 12:28에  
서 ‘흔들리지 않는 나라’에 대해 언급할 때 더 확실해진다. 이곳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기는 장소가 되며 히 12:22-28에 드러나는 흔들리지 않는 산, 성  
전, 나라에 성도들의 참여가 시작된 것은 하나님의 영화롭고 영광스런 통치를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167  
D. 성전과 제사장 역할 (이사야의 인용)  
흔들리지 않는 성전의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게 된 그리스도인들은 히  
12:28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기는 제사장으로서의 일을 감당하므로 은혜  
를 받아야 한다. 이러한 신자들은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라야 하는데(14절) 그  
들이 지상으로부터 이어지는 마지막 때의 성전에서 예배할 자들이기 때문이  
167 Beale, 『성전신학』, 414-416.  
97  
다. 화평을 따르지 못한 에서와는 대조적으로 아브라함이나 야곱처럼 본향에  
대한 믿음, 미래의 성전과 시온을 향한 미음을 가지고 화평을 따르는 삶은 당  
장의 복을 누리지 못할지라도 억울해하지 않는다. 이러한 마음으로 사는 신자  
들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미래로부터 현재로 들어온 성전, 새창조, 시온과 예  
루살렘에 그 초점을 맞춰야 한다. 탐욕을 멀리하는 삶은 화평을 이루는 것뿐  
아니라 권리가 짓밟혀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결국 거룩함으로 옷 입은 자들은  
온전한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할 수 있게 된다.  
화평은 구약의 시대를 살았던 예언자들이 기대한 새 창조의 주요 표지  
가 된다. 이사야가 예언한 새 하늘과 새 땅은 옛 창조에 나타난 짐승이 함께  
평화로운 모습을 보여줌으로 묘사되는데 이사야가 말하는 예언의 핵심은 유  
대인과 이방인으로 나뉜 모습에서 서로 평화를 누리게 될 것임을 강조하였다.  
이사야의 배경 역시도 히브리서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히 13:20은 그 배경  
을 사 63:11(70인경)에 두고 있으며168 주제의 측면에서도 하늘 성전에서 많  
이 이탈하지 않는다. 평강의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들에게 능력을 주시고 백성  
들은 평강을 추구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으로 그분의 뜻을 이뤄간다. 이  
러한 능력은 부활하신 ‘큰 목자’와 동일시되며 영원한 언약에서 주의 부활을  
경험하기 시작한 ‘양떼’들에게 허락하신다.169 하나님과 관계는 새 창조의 영  
역에서 성취되는데 여기에는 하늘의 예루살렘, 시온산, 참장막 등이 속해 있  
다.  
168 “양떼(이스라엘)의 목자(모세)를 바다에서 올라오게 하신 이가 이제 어디계시  
냐”(70인경 사 63:11).  
169 Beale, 『성전신학』, 416-420.  
Ⅴ. 비일의 히브리서 방법론에 대한 비평  
비일은 이스라엘의 성막 그리고 성전에서 보이는 수많은 평행관계를 많  
은 부분 모든 성전의 기초가 되는 원형적인 성전으로서의 에덴에 맞춰가고  
있다. 모든 유사성을 염두에 두고 집합적 효과를 가짐으로 에덴을 동산의 형  
태를 지닌 최초 성전으로 간주하게 만들었다. 겔 28장에 나타난 에덴이 18절  
에서 성소로 불려지고 있음은 ‘동산 성전’이기는 하지만 최초의 성전을 입증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초기 유대교에서도 확증해 주고 있으며 유사  
한 고대 근동의 신전에서도 뿌리가 태고의 동산으로 찾아가고 있음을 찾아볼  
수 있다고 하였다. 비일의 히브리서 연구에서 발견되는 8:2의 구약적 배경에  
대한 해석은 민 24:5-6을 자세히 풀어 그 안에 담겨진 의미와 히브리서의 성  
막이 가지는 특징을 나열하였다. 비일의 성전(성막) 해석의 가장 큰 줄기가  
되는 원형적 에덴과의 연결은 이곳에서도 전개된다. ‘여호와께서 심으신 침향  
목’이라는 식물학적 구문을 70인역이나 탈굼의 해석으로 ‘성막’을 의미한다고  
연결하고 있으며 에덴의 확장의 사명이 결국 이스라엘의 사명으로 온 땅에  
퍼져나가야 함을 묘사하였다. 에덴에서의 아담의 역할이 제사장-왕의 원형적  
인 모습으로 나타나 하늘 장막의 예수 그리스도를 왕-제사장으로 풀이하는  
기본적 배경이 된다고 설명하였다. 비일의 확고한 주장은 민 24:5에 나타난  
‘동산 언어’가 신약에서 해석될 때 ‘성막’을 가리킴이 분명하다고 주장한다.  
신약에 나타나는 구약의 인용 구절이나 단어의 사용, 의미적으로 연결되  
는 많은 소재와 주제들은 신구약의 통일성을 전제로 둔다면 분명히 연결되어  
해석되어야 하고 서로 상관하는 의미를 찾아가야 하는 것이 올바른 해석 방  
98  
99  
법이다. 빌 또한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진 성경의 통일성에 대하여  
분명히 언급하였다. 성경을 좀 더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방법은 그 시대에 역  
사적인 정황을 살펴볼 수 있는 당대의 문헌들을 찾아보는 것인데 그 안에 나  
타난 시대적 배경과 맞물려 성경을 풀어가는 작업은 성경을 폭넓게 이해하고  
편협하고 한정된 해석을 막아주는 울타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구약과 신  
약을 연결하여 해석할 때는 중간기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사상과 가치관,  
그들이 살고 있던 시대적 배경과 역사적 상황을 고려하여 중간기 문헌들을  
살피고 그 해석과 더불어 신약에 접목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구약의 시대  
가 끝나고 바로 신약의 역사가 이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구약의 원래 문  
맥적인 의미와 신약 저자의 구약사용 간의 관계는 학자들의 해석 방법론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신약에서의 구약사용은 그 당시 신약을 읽는 대상자들의  
상황을 잘 살펴야 한다. 예를 들면 바울의 구약사용 배경을 청중 중심으로 보  
았을 때 그리스도의 사건이라는 해석학적 토대와 함께 청중에게 직접적으로  
호소할 수 있는 그리스-로마 세계에 대한 논리를 동원했을 때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170 선교사들의 상황화 작업은 메시지의 전달, 이해, 수용을  
170 정성국, “새 언약의 우월함에 대한 바울의 그리스-로마적 대답 고후 3:1-4:6에  
나타나는 바울의 선교적 구약사용”, 「성서학 학술 세미나」 (2011. 9), 21.  
정성국은 자신의 논문에서 뉴-레토릭(인간 언어를 통하여 타인을 설득하는 것에  
대한 보편적 원리를 알아내고자 하는 운동)에서 세 가지의 통찰을 주장하였다. 첫  
째, 설득을 목적으로 하는 소통 메시지의 의미는 저자나 의사 전달자의 의도에 해  
당 하지만 그 의도는 처음부터 청중이 가진 상황이 고려되어 형성되었다는 것이  
다. 둘째, 설득이 일어나는 논리와 원인은 커뮤니케이션이 발생한 개별적 상황에서  
탐구되어야 한다. 셋째, 언어는 단순한 정보 전달에서 나아가 어떤 현실을 만들어  
내고 구체적 일을 수행한다. 그러므로 바울의 구약 인용은 단순히 구약 의미전달  
을 넘어 그것을 사용함으로 바울이 달성하기 원하는 목적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  
이다. (정성국, 「성서학 학술 세미나」, 5.)  
100  
하나의 긴 과정으로 이해할 것을 요구한다. 구약의 완전한 해석의 전달이기보  
다는 말하지 않고 남겨둔 부분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상황에 필요한 요구를  
고려하여 구약 구절이나 특정 부분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성경  
저자들은 자신의 선교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구체적이고 방대한 커뮤니케  
이션 전략을 사용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개별 구절들은 이러한 통찰  
을 염두에 두고 주석하고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비일의 히브리서 해석 방법론은 많은 지면을 구약과 연결하여 히브리서  
본문의 배경이 되고 그것으로부터 연결된 해석으로 결론을 맺어간다. 히 8:2  
의 해석도 이와 같은 방법으로 전개된다. 그 배경이 되는 민 24장을 풀어내  
며 성전(성막)의 원형인 에덴과 연결하려는 일에 집중하였고 결국 동산의 언  
어가 히브리서의 성막을 가리킨다는 결론을 독자들에게 던지고 있다. 이것은  
과연 독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타당한 방법이 될 수 있을까? 비일이 사용  
하고 있는 전승사적 방법론은 구약과 신약을 연결하여 해석함에 많은 유익함  
이 있다.  
그러나 비일의 방법론에 관하여 몇 가지 고려할 것이 있다. 먼저 비일은  
신약과 구약을 연결하는 시대에 쓰인 유대 문헌에서 성전 모티프의 역사적  
정황에 대해서 보다 세밀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미 비일  
이 언급했던 유대 문헌들을 살펴보았고 각 문헌들을 통하여 비일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확인하였지만 성전(성막)의 이미지를 발견해나가기 위해 대부분의  
유대 문헌들에서 에덴의 언어들을 찾아가려는 노력을 보인 것이 사실이다. 그  
러나 각 유대 문헌들이 가지는 고유한 사상이나 가치관, 공동체의 의미나 역  
사적 정황에 대한 보다 세밀한 언급은 발견할 수 없었다.  
101  
특히 유대 문헌의 성전 모티프는 유대인의 “선택”과 관련된 측면에서  
사용된다. 우리는 이 점을 본 논문의 벤 시라, 필로, 쿰란 문헌, 제1 에녹서에  
서 고려해보았다. 이러한 문헌들은 비일이 그의 성전 신학에서 다룬 문헌들이  
다. 그러나 비일은 위에서 말했듯이 창조와 낙원의 개념을 문헌들에서 읽어내  
려고 했을 뿐, 성전 모티프들이 이스라엘의 선택을 강조하고, 그들이 열방으  
로부터 구분되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정황에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  
지 못한다. 원래 성전과 제사장이라는 개념은 하나님과 인간(혹은 그의 백성  
들) 사이의 중보(intermediation)라는 측면(수직적 측면)에서 이해되기도 하  
지만,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구분된 지위(제사장) 혹은 배타적이고 중심적 장  
소(성전)라는 수평적 측면으로도 이해가 된다. 비일의 논의는 주로 수직적인  
측면을 다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수직적인 측면을 다루고 있는 것도 의미  
가 있지만 성전 전통은 유대 문헌에서 수직적, 수평적 측면이 교차해서 의미  
를 형성해 간다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이러한 측면으로 볼 때 창조와 낙원의  
개념이 유대 문헌에서 어떻게 발전된 의미를 지니는지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점은 히브리서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비일은 그의 저서에서  
히브리서의 성전 모티프를 창조와 낙원 모티프에 성공적으로 반영하였음을  
지적한다. 그러나 히브리서의 성전 모티프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늘 성소로  
중심적 장소가 이전되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히 13:13에서 예수께서 죽  
음을 당한 곳이 하늘 성소의 “초월적 장소”에 속한 것일 뿐 아니라 “영문  
밖” 즉 사회의 주변부에 위치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예수가 죽임  
을 당하고 그 피로 제사드린 장소와 성도들이 고난 당하고 사회적으로 주변  
화된 장소가 오버랩되고 있는 것이다. 중심부에 위치했던 성소가 사실은 주변  
102  
부에 위치하며, 하늘의 것을 미리 경험하는 곳이 사회의 중심부가 아닌 사회  
의 주변부라는 것을 암시하면서, 이전의 구분된 중심적 장소를 의미했던 성전  
의 의미를 히브리서 저자는 전복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새 창조와 낙원의  
장소는 이 지상에서는 중심부가 아닌 주변부에 있을 수 있고 하늘 성소가 겹  
쳐지는 지상의 장소는 중심부가 아닌 주변부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성  
전 모티프의 사용을 통해서 히브리서 저자는 고난 가운데 있던 히브리서 독  
자들을 위로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측면이 충분히 지적되지 않  
는 것은 비일이 가진 방법론적 측면에서 전승의 발전과 역사적 정황을 충분  
히 살피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비일은 자신의 저서에 신약에서 구약을 해석하는 아홉 가지 방법에 대  
하여 상술하였는데 구약 본문에 대한 신약 사용과 관련된다고 생각하는 초기,  
후기 유대교의 구약 본문을 사용하고 살펴볼 것과 초기 유대교의 인용구(위  
경, 사해 두루마리, 필론, 요세푸스), 마소라 사본, 70인역이나 탈굼 등의 문  
서들을 비교하라고 권면한다. 신약의 구약사용에 대한 유대교의 배경과 연관  
성은 신약 본문과 관련되는 유대교, 그리스-로마의 배경을 담고 있는 역사적  
배경들이 담긴 주석을 참조할 것을 언급하였다.171 이러한 방법론에 대한 설  
명은 신약과 구약을 연결해 가는 해석의 과정에서 꼭 필요한 작업이며 중간  
기 역사에서 참고하고 함께 연구되어야 할 부분이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  
러한 주장에서와 달리 비일은 히브리서를 해석하는 방법에서 전승의 과정 중  
어떤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있다. 중간기 유대 문헌이 가지는 중요성을 언급  
171 Gregory K. Beale, 『신약의 구약사용 핸드북』, 이용중 역 (서울: 부흥과 개혁  
사, 2013), 88-92.  
103  
했지만 히브리서가 가지는 역사적 맥락에 대해 좀 더 상세하게 언급했어야  
하는 필요성이 요구된다. 이러한 작업은 독자들이 구약의 배경을 설득력 있게  
받아들이고 비일의 히브리서 해석 방법론에 대한 동의를 끌어내는 설득력 있  
는 도구가 되었을 것이다.  
신학자들이 사용하는 ‘성경적(biblical)’이라는 용어는 주의해서 사용해  
야 한다. 왜냐하면 성경의 묘사를 실제적으로 일어난 역사적인 사건으로 간주  
하지 않고 ‘성경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구약을 이해하는 전제조  
건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이 권위로부터 이탈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해  
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일 뿐 아니라 성경의 인간 저자들이 기록한 역  
사적, 문화적인 문서라는 사실 또한 인정해야 한다. 성경의 저자는 자신들이  
살고 있던 시대의 언어로 기록하였고 당시 일반적인 표현 방법과 사상을 전  
달한다. 하나님은 계시를 받는 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표현양식을 주  
셨고 이러한 의미에서 성경은 참되고 적절한 근동의 책으로 불릴 수 있는 것  
이다. 이러한 성경을 적절하게 연구하는 사람은 사람들 가운데 성경이 나타났  
을 때의 문화적인 환경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172 당대의 문화가 고대 근동  
의 문화와 유사한 점들은 물론 차별화되어 구별되는 것은 무엇인지도 파악해  
야 할 것이다. 성경의 모든 단어와 문장에 세세한 주의를 기울여 해석해야 함  
은 물론 고대의 다른 언어나 문화들에서 단어의 용례에 주목해야 하며 무엇  
보다 모든 단계가 결국 하나님의 계시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정당한 해석  
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  
172 허주, “Edward Joseph Young의 구약신학 이해와 평가”, 「ACTS 신학과 선  
교」 제11권 (2010), 103-141.  
104  
히브리서는 구약의 인용들로 가득하고 인용된 본문은 히브리 본문(맛소  
라 텍스트)보다 일반적으로 70인경을 따르는데 이는 히브리서에 나타난 인용  
과 영어 번역본 구약과의 차이점을 설명한다. 독자들은 인용된 본문의 내용보  
다 저자의 논의에서 인용된 본문이 어떻게 해석되고 사용되고 있는지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지게 된다. 구약의 명백한 의미에서 저자가 주장하는 바를 명백  
히 밝히지 못할 때는 저자의 주석 방법에 대해 빈번한 비판을 받기도 한다.  
히브리서는 내용상 기독론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과 사  
역을 주로 다루며 구약의 해석 역시도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정의 내릴 수 있  
다. 다시 말하면 구약의 궁극적이고 최종적인 목표는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  
어야 함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구약에서 말씀하시고 약속하셨던 모든 것의 성  
취요, 목적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해하는 것은 구약을 읽을 때 새로운 이해  
의 관점을 제공한다. 이러한 구약의 견해는 원래 구약 저자들이 구속사적으로  
초기 단계에 서 있는 자신들의 위치에서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을 뛰어넘는 것  
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속 사역은 단편적이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장점을  
발견하는 통일된 완전체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임한 성취  
는 구약을 보다 온전하고(sensus plenior) 깊은 의미를 갖게 된다.173 원래  
173 sensus plenior: 히브리서에 나타난 구약 인용들은 신약성경 전체를 통해서  
처럼 원저자가 실제로 의도한 의미로부터 발전되지 않는 본문의 해석을 접하게 된  
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히브리서 구약 인용은 종종 임의적이거나 경솔한 것으로  
거부되거나 의문시되어 왔다. 신약의 저자들이 구약 원저자가 의도하는 것보다 더  
많은 의미를 본문에서 발견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 점에서 그들은 이미 확립된 유  
대관습을 따르고 특정한 역사적인 상황에서 인식된 것보다 더 많은 의미를 갖고  
있는 것으로 간주 된다. 예를 들면 메시아 시편의 경우들이다. 이 본문들은 그것  
들 넘어 미래를 가리킨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구속의 성취와 부활 이  
후 구약을 다르게 읽었다. 그때부터 그리스도는 구약의 의미를 알려주는 해석학적  
열쇠가 되었고 해석 방법에서도 그리스도 중심적이 되었다. 본문의 의미는 ‘보다  
105  
저자들의 의도를 넘어 구약에 대한 ‘보다 온전한 의미’에 대한 인식은 경솔하  
고 잠정적 석의로 인도되는 것이 아니다.174 구약 해석에 그리스도 중심의 해  
석학을 적용하는 경우 낯선 요소의 도입이 아닌 성경에 영감을 부어주신 분  
의 궁극적인 의도에 더욱 밀착되게 하며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강조를 인식  
하는 것이다.  
히브리서 저자는 구약을 인용할 때 다른 신약성경 저자들이 사용하는  
‘기록되어있다(γέγραπται)’는 동사 대신 ‘말하다’라는 식으로 도입한다. 말하  
는 주체가 인간이 아닌 하나님, 성령, 아들로 규정하여 구약성경을 단순히 역  
사적인 문서로 대하기보다 지금 말씀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살아있는 음성으  
로 간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구약의 궁극적 출처가 하나님 자신이라  
는 확신이 이러한 방법으로 표현되었다.175 구약은 종결되지 않은 이야기로서  
필수불가결한 준비로 유효하지만 예레미야가 보았던 것처럼 어떠한 새로운  
것이 필요하다. 예레미야를 통한 하나님의 언약은 옛것이 곧 사라질 것이라는  
선언이었고(히 8:13) 새것의 도래에는 옛것의 근본적인 변화를 포함한다. 히  
브리서는 옛것과 새것의 불연속적인 단절의 선을 긋고 있지만 히브리서 저자  
에게 새 언약은 옛 언약의 성취로서 간주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런 이  
온전한’, ‘더 깊은 의미’(sensus plenior)로 불려졌다. 오직 후대에 그리스도를  
체험한 자들만이 알 수 있는 궁극적 의미를 무의식적으로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sensus plenior는 원래 언급되었던 성취 시대에 대응물 사이에 일치를 자주 포  
함한다. 이러한 일치는 신적으로 의도된 것으로 간주되며 하나님의 주권과 구원  
계획의 일치, 성경의 영감, 타락으로부터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안에 예수 그리  
스도를 볼 수 있게 한다. 히브리서 저자를 인도하고 구약 본문의 사용을 알기 쉽  
게하며 설득력있게 만드는 이러한 방법이 강조되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는 것이다.  
Hagner, 『히브리서의 신학적 강해』, 43-44.  
174 Hagner, 『히브리서의 신학적 강해』, 41-43.  
175 양용의, 『히브리서 어떻게 읽을 것인가』, 46-47.  
106  
유로 예레미야 예언의 새 언약을 소중히 다루고 있다. 새 언약은 옛 언약이  
약속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구약은 적은 의미에서 보다 큰 의미를 떠 맡았  
다.176 구약은 그 자체에서 의미를 발견하기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  
신 하나님의 계획과 계시 안에서 말하고 있는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한  
다.  
176 Hagner, 『히브리서의 신학적 강해』, 48-49.  
Ⅵ. 결론  
비일의 ‘성전신학’에서는 유대 문헌에 나타나는 성전(성막)을 소개하고  
각 언급들이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에덴의 언어와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를 상세히 설명하였다. 사용된 유대 문헌들은 성전(성막)을 이해하는데  
많은 영향을 주었고 에덴의 언어들과의 연결하려는 비일의 목적에도 큰 가치  
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각각의 유대 문헌에 숨겨진 공동체의 가치관과 성전의  
개념을 살펴보는 것은 비일의 연구에서 조금은 부족했던 또 하나의 방향을  
찾아낼 수 있었다. 벤 시라, 에녹 1서, 사해문서인 호다욧과 필로 문헌에서  
나타난 성전(성막)의 개념들과 각각의 공동체 세계관은 특별함이 존재했다. 벤  
시라에서 주의 깊게 바라봐야 할 것은 제사장 신학이다. 벤 시라의 지혜와 동  
일시되는 율법을 가리키는 존재로서의 제사장의 지위, 역할을 고려할 때 벤  
시라의 공동체와 성전 세계관을 올바르게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에녹 문헌의  
공동체는 자신들을 의인으로 정의하였고 일종의 성전으로 생각하였다. 천상  
성전과 연결된 해석 방법에서 보여주듯이 배타주의적인 정황 속에 언급되었  
고 배타주의적 비전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사해문서 호다욧에 나타나는 쿰  
란 공동체는 자신들을 거룩한 자, 빛의 아들 등으로 인정한다. 1QH 6:12-19  
에 나타난 많은 에덴의 언어는 성전(성막)과 연결되어 나타나고 공동체의 특  
별한 삶이 예배를 대신하는 삶으로 믿는 새로운 개념을 발전시켰다. 이는 기  
존의 희생 제사와는 구별되는 인위적 성전 안의 한정된 모습에서 확장된 종  
말론적 목표를 바라보는 세계관을 발견할 수 있다. 필로 문헌은 로고스의 이  
해가 매우 중요하다. 전 인류 안에서 제사장의 역할은 특별한 자로 구별되어  
107  
108  
하나님과 인류를 이어주는 중간역할을 감당하며 Philo, Spec. Leg.  
2:162-163에 나타나는 민족의 공동체는 유대교의 보편주의에서 분리되어 자  
신들만이 그 우위에 서서 합당한 양식과 삶을 살아가는 자로서의 배타적 사  
상을 드러내는 단어로 해석되어 그 세계관을 보여주었다.  
비일이 성전 신학에서 사용한 유대 문헌의 성전(성막) 모티프는 유대인  
의 선택과 관련된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비일의 유대 문헌 사용은  
창조-낙원의 개념을 읽어내려고 노력했지만 문헌에서 나타나는 성전(성막)의  
모티프가 이스라엘의 선택을 강조하고 그들이 열방으로부터 구별되었다는 것  
을 강조하는 정황에서 사용되었음을 지적하지 못했다. 성전(성막)과 제사장의  
개념을 이해할 때는 수직적 측면과 수평적 측면 모두를 고려해야 하는데 수  
직적 관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에서 나타나며 수평적 측면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구분된 지위(제사장), 또는 배타적이고 중심된 장소로서의 성전  
과 연관되어야 한다. 비일은 주로 수직적인 측면을 다루고 있는 것으로 보인  
다. 그러나 성전(성막) 전통은 유대 문헌 안에서 수직적 측면과 수평적 측면  
이 교차하여 의미를 형성해 간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비일의 해석은 성전  
(성막)의 단어와 문장이 드러난 본문을 사용함에 유대 문헌이 가지는 역사적  
인 정황이나 공동체의 가치관, 사상, 의미를 고려하여 전달하려는 부분이 부  
족했다. 각 유대 문헌에 나타나는 공동체의 의미는 그들이 성전을 어떠한 가  
치관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공동체의 역사적 배경은 성전(성막)을 더 깊이 이  
해하고 해석할 수 있도록 만드는 해석의 틀을 제공한다. 그러나 비일은 유대  
문헌의 사용에 이러한 부분이 부족하였기 때문에 유대 문헌을 통하여 성전(성  
막)의 깊은 의미를 알아가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충분한 해석의 방법을 제공하  
109  
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비일의 히브리서 해석은 구약의 전승을 이용한다. 히 8:2 참 장막의 배  
경으로 민 24장을 언급하여 확장된 ‘동산 언어’를 설명하였고 하늘 성막 자체  
이신 그리스도를 단 2장에서 나타난 영원한 나라와 대조하여 종말론적 성전  
과 연결하였다. 더 나아가 마지막 날 성전의 모습으로 학 2장의 예언을 설명  
하였는데 이는 하나님의 영화롭고 영광스런 통치를 묘사하였으며 성전과 제  
사장의 역할에 대한 사 63:11의 배경은 평화의 나라로 새 창조되는 하늘의  
예루살렘과 시온으로 그려지고 있다. 비일은 그의 저서에서 히브리서의 성전  
모티프를 창조와 낙원 모티프에 성공적으로 반영하였지만 신약 히브리서를  
해석하는 방법은 구약의 성전(성막)을 중간기 문헌과의 충분한 상호작용을 가  
지지 못한 채 바로 적용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신약에 나타난 구약을  
해석하는 방법은 구약과 신약의 공백기를 채우는 문서들에서 나타난 여러 가  
지 역사적 정황과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해를 필요로 한다. 역사가  
흘러가는 틀밖에서 바라보는 사상이 아닌 각 시대의 상황과 살아가고 있는  
공동체 가치관의 파악은 구약과 신약을 함께 해석함에 중요한 다리 역할을  
감당한다. 물론 모든 신약의 구약사용이 반드시 유대 문헌의 이해를 거쳐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유대 문헌의 고려는 신약에 나타난 구약을 이해하기에  
충분한 자료와 가치를 제공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히브리서  
수신자들의 상황과 어려움을 이해하고 히브리서를 읽는다면 그들의 상황화에  
맞는 해석이 필요할 수 있다. 이러한 신약의 구약 해석은 구약의 주석이나 주  
제가 다 드러나지 않을지라도 충분한 해석과 바른 이해를 독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다.  
110  
본 논문에서의 유대 문헌의 연구나 비일이 사용한 신약의 구약사용 방  
법론에 대한 연구는 단어나 문장에서 읽고 이해하는 사실들이 마치 전부를  
알고 있다는 자만에서 벗어나 그 배경지식이나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여 해석  
할 때 좀 더 폭넓은 해석 방법의 틀을 제공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성전(성  
막)이라는 주제를 풀어가는 비일의 ‘성전신학’은 독자들에게 많은 영향력을 제  
공한 만큼 성경 해석자들의 자세를 다시 바라보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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