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의 책을 사용합니다.
Calvin, J., & Beeke, J. R. (2008). 365 Days with Calvin. Day One Publications; Reformation Heritage Books.
9월 20일
* “주 십자가를 지심으로” (새찬송가 265장)
* 히브리서 4:16, 에베소서 3:11-21
* 묵상 : 담대히 보좌 앞으로 나아가기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확신의 근거는 하나님의 보좌가 은혜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장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를 피할 때마다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그 자체로 숙고될 때 우리를 절망으로 가득 채우는 것 외에는 다른 효과를 낼 수 없습니다. 그분의 보좌는 너무나 두렵습니다.
우리의 주저함을 해결하고 모든 두려움과 떨림에서 우리의 마음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사도는 하나님의 보좌를 은혜로 장식합니다. 그는 그것에 달콤함으로 우리를 유혹할 수 있는 이름을 부여합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그분의 보좌에 은혜와 우리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의 깃발을 확립하셨으므로, 그분의 위엄이 우리를 쫓아낼 이유가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께 두려움 없이 부를 수 있습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은혜로우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그분의 보호와 후원 아래 받으실 때, 그분은 우리를 그분의 선하심으로 덮으시며, 그렇지 않으면 우리에게 두려울 하나님의 위엄이 은혜와 아버지의 호의로 대체됩니다.
사도는 우리가 자비를 얻기 위해 이렇게 하신다고 말합니다. 이 확신은 큰 이유 없이 추가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비가 필요한 사람들을 격려하기 위해 주어진 것입니다. 누구든지 자신의 비참함을 느끼고 주저함으로 길을 막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자비를 얻을 수 있다는 표현은 그리스도의 중재에 의지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는 모든 사람들이 자비를 얻을 것이라는 가장 기쁜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반면에 사도는 간접적으로, 또는 암시적으로 이 길을 택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에게 위협을 제시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화해하는 유일한 참된 길을 무시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무자비하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 기도(Contemplatio) : 아들을 통해서만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다는 단순하지만 궁극적인 진리를 상기하는 것은 좋습니다. 아들이 얻은 용서 없이 담대하게 보좌에 나아가는 것은 순전히 자살 행위일 것입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자비나 은혜를 찾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완화되지 않은 신의 진노를 찾을 것입니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비와 은혜를 위해 매일 모든 필요를 가지고 자유롭게 은혜의 보좌에 나아가고 있습니까?
'연구소 > 산하 교회 경건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건회A] 9월 21일 (0) | 2024.09.15 |
---|---|
[경건회A] 9월 19일 (0) | 2024.09.15 |
[경건회A] 9월 18일 (1) | 2024.09.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