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사역을 통한 COVID-19로부터의 교회 공동체의 안전과 선교 통로 확보 – 역사 속 전염병 대응 사례 분석과 신속진단검사의 사역으로의 적용 가능성을 중심으로(미래실천목회연구소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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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사역을 통한 COVID-19로부터의 교회 공동체의 안전과 선교 통로 확보 – 역사 속 전염병 대응 사례 분석과 신속진단검사의 사역으로의 적용 가능성을 중심으로(미래실천목회연구소 2021..

개혁신학어벤져스 2021. 5. 4. 15:45

 많은 고민 끝에 지난 저의 기고문을 공유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지난번에 미래실천목회연구소에 기고한 글입니다. 글의 발표는 가을쯤으로 늦춰질 것 같으며, 이에 원고의 내용에 추가해야 할 사항이 많을 겁니다. 이는 2021년 4월 2일에 제출하였습니다. 기고문을 올린 이후, 하나님께서 사회적인 변화를 활발히 인도하셨습니다.

 기고문은 최근 오세훈 시장의 발언으로 화제가 되었던 항원신속진단검사키트와 서울대학교와 다른 관공서에서 도입하려는 신속 PCR검사를 많이 언급했습니다. 제가 주장하였듯 불행 중 다행으로 각종 신속진단검사가 범사회적으로 시행되었습니다.

 한편으로 한국교회가 저의 글을 통해 많이 준비할 수 있었을 텐데 일부 준비할 수 있는 것들을 놓친 것 같아, 많이 가슴 아픕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여전히 해야 할 또한 할 수 있는 일은 많습니다. 앞으로 한국교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변이 바이러스의 도전과 이에 대한 대비입니다. 변이 바이러스가 한국교회를 덮칠 가능성이 너무나 높습니다. 물론, 이 또한 이루어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고문에 언급하였듯 앞으로 한국교회는 보건의료사역에 더욱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한국교회 그리스도인들은 개교회의 물량적 성공을 위해서가 아니라, 각 개인의 내세를 향한 진실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상황에 따라 필요하다면, 교회의 형태와 신앙생활의 구조를 과감하게 바꾸어야 하며, COVID-19로 고통받는 모든 교회 안팎의 사람에게 몸을 사리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이는 돈을 크게 필요로 하지 않으며, 본래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목회자분들께 추천드리는 것은 단 하나입니다. 기고문에 언급한 저의 생각에 조금이라도 동의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반드시 개교회에서 매우 짧은 주기로 교인들을 대상으로 정기적인 감염검사 또는 스크리닝을 현재 진행하는 사역에 추가하여 시행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교인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 소중한 목회지를 지키는 최소한의! 최선인! 유일한! 방법입니다. 변이 바이러스에 그나마 대응할 수 있는 필수적인 플랫폼을 만들어 놓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 아직, 기고문이 회지에 실리지 않았기에 기고문을 인용하실 분은 당분간 출판 예정 미간행물로 표기하시기 바라며,  URL을 반드시 표기하셔야 합니다. 제가 기고문을 무료로 배포하더라도 저작권을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제목: 보건의료사역을 통한 COVID-19로부터의 교회 공동체의 안전과 선교 통로 확보 역사속 전염병 대응 사례 분석과 신속진단검사의 사역으로의 적용 가능성을 중심으로(장창한 목사)

 

서론

1970년대 이후부터 COVID-19 사태 전까지 한국교회는 대면 예배, 기도회, 전도 축제, 성경세미나, 부흥회, 심방, 수련회, 찬양 집회 등 예배 중심적 목회를 수행하였다. 이들은 예배를 통해 성경을 배우고, 기도하고, 대인관계를 쌓고, 비그리스도인들을 교회에 초청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높은 감염률과 치사율을 가진 COVID-19와 그것의 변이는 대면활동이 주를 이루는 이러한 목회에 추가적인 사역적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위기가 곧 기회라는 생각으로 전염병이 창궐한 상황을 역으로 이용해야 한다. 보건의료사역은 교회 공동체의 안전과 선교 통로를 도모하도록 한다. 이는 COVID-19 사태 아래에서 유일하게 확장할만한 사역 분야이며, 예배 중심적 목회를 활성화시키는 최선의 방아쇠(Trigger)이다.

역사속에서 교회 공동체들은 다양한 전염병을 경험하였고, 이를 계기로 매번 신학적으로 목회적으로 적절하게 대응방법을 발전시켰다. 물론, 이는 교회의 존립을 지키고,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교회가 부흥하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한국교회는 이를 참고하여, COVID-19와 그것의 변이와 나아가 그 어떤 신종 감염병에도 적절히 대응해야 한다.

본고는 2021년 하반기에 COVID-19에 대한 전국민적 백신 접종이 완료되는 상황을 고려하여, 한국교회가 당장 실행할 수 있는 동시에 당장 가시적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대응방법을 제안하려 한다. 한국교회는 COVID-19에 시급히 대처하여, 더 이상의 피해를 막아야 한다. 결론적으로 한국교회는 신속진단검사(항원신속진단검사, 신속 PCR검사)를 중심으로 보건의료 사역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이는 사역현장에 곧장 적용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하고, 신속하며, 경제적이다.

 

본론

전염병이 창궐한 역사적 상황마다, 교회 공동체는 다른 어떤 사역보다도 보건의료 사역에 역량을 집중했다. 관련된 사례와 그것의 신학적 목회적 발전상을 분석하면, 그것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알 수 있다.

 

1. 키프리아누스 역병에 대한 초대교회의 대응

초대교회는 로마제국으로부터 핍박을 받는 순간에 강력한 전염병을 경험했다. 대표적으로 키프리아누스 역병(Cyprianus Plague, 249-262)을 들 수 있다. 이는 매우 장기간 연속적으로 로마제국에서 창궐했고, 그것의 감염률과 치사율이 매우 높았다. 이로 인해, 로마에서는 하루에 약 5,000명이 사망했고, 알렉산드리아에서는 전체 인구의 약 66%가 사망했으며, 이는 로마제국에 군사적, 인구적, 경제적 기반을 무너뜨리며, 큰 혼란을 초래했다.

키프리아누스 역병은 학자에 따라 홍역 또는 천연두 또는 유행성 인플루엔자 혹은 에볼라 바이러스와 같은 바이러스성 출혈열로 달리 보는데, 현재로서는 이들 혹은 이들과 비슷한 질병으로 추측된다. 관련하여, 이상규는 그것의 증세를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그것(키프리아누스 역병)의 증상은 금식한 구토, 설사, 고열, 피부 발진, 인후통, 그리고 손과 발의 괴저(壞疽, 손발이 썩음) 현상이었다.

 

키프리아누스 역병은 로마제국의 통제를 벗어났고, 결과적으로 많은 이들을 죽음과 빈곤과 이기주의에 빠지게 했다. 이는 초대교회 그리스도인을 포함하여 로마제국의 모든 구성원에게 영향을 주었다. 그들은 직접적으로는 사망과 신체적 고통을 간접적으로는 사회경제체제의 몰락으로 인한 인간성의 파괴와 경제적 고통을 경험했다.

당시, 로마제국의 주류를 이루던 이교도들(Pagan)은 키프리아누스 역병을 피하기에 급급했다. 그들의 도피는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그들은 늙은 부모와 어린 자식과 값비싼 가축을 버려둔 채 도주했다. 그들은 역병이 퍼지지 않은 지역으로 신속히 떠났다. 그 결과, 안타깝게도 유기되는 사람들이 발생했고, 그들은 전염병과 굶주림으로 죽었다. 관련하여, 알렉산드리아의 감독 디오니시우스(Dionysius of Alexandria, c. 200- c. 265)는 이렇게 증언한다.

 

이교도들은 처음 질병이 발생하자 아픈 자를 내쫓았고, 가장 가까이 이는 자들이 먼저 도망쳤고, 병든 자가 죽기도 전에 거리에 버려지고 매장하지 않는 시신을 흙처럼 취급했다. 그들은 이렇게 함으로써 치명적인 질병의 확산을 막고자 했으나 아무리 몸부림쳐도 도망치기 어렵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달랐다. 그들은 전염병이 창궐한 곳에서 도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이교도들에 의해 방치된 사람들과 전염병에 걸린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들은 방치된 모든 사람들에게 물과 음식을 제공하고, 그중의 환자들을 간호했다. 심지어, 그들은 거리에 방치되어 썩어가는 시신들을 사비(私備)를 들여 수습 및 매장했다. 관련하여, 키프리아누스는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이 보여준 모습의 원동력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죽음이 별다르게 공헌한 바가 없더라도, 특별히 기독교인과 하나님의 종들에게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훈련을 하며 기꺼이 순교를 갈구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에게는 이것이 죽음이 아니라 훈련이다.

 

우리가 단지 우리(그리스도인)만을 소중히 여기고 우리끼리만 자비를 베푼다면 그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세리나 이교도들이 하는 것 이상으로 선으로 악을 이기고, 하나님께서 관용을 베푸신 것 같이 관용을 베풀고, 원수조차도 사랑하며, 주님께서 권고하신 대로 핍박하는 자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한다면 우리는 온전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변함없이 태양을 떠오르게 하시며, 비를 내리셔서 씨앗들을 기르시고 이러한 모든 선하심을 그의 백성들에게 보이실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그렇게 하십니다. 만일 누가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다면 그 사람은 아버지를 본받아야 함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키프리아누스는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 내세(來世)에 대한 믿음이 분명했음을 강조한다. 그들은 죽음 이후에 질병과 고통이 없는 내세(요한계시록 21:4)에서 영생을 누릴 것이라 확신했고, 이는 그들에게 역병에 걸린 사람들을 돌보고, 그들의 믿음을 환자들에게 전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들은 내세와 그곳에서 누릴 삶에 대한 말씀을 기억했고, 그것들로 말미암는 자신의 희망이 환자들의 희망으로 확장되기를 소원했다.

이로 말미암아,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로마 정부와 로마시민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얻는다. 그들은 그들에게 파라볼라노이(παραβολνοι)로 불렸다. 이는 한국어로 위험을 무릅쓰는 자들에 해당한다. 이는 그들이 비그리스도인들에게 특별한 사랑을 실천하였음을 보여준다. 많은 학자들은 이러한 사회방역 체계적 기여가 이교자들에게 기독교로 개종하거나 최소한 본격적으로 기독교에 관심을 두는 동기(動機)를 부여했다고 주장한다.

 

소결론 :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키프리아누스 역병이 창궐한 상황에서 환자를 간호 및 치료하고, 그것을 예방하는 일에 과감하고 용감하게 뛰어들었다. 그들은 죽음의 위험 앞에서도 도피하지 않았다. 그들은 내세를 확신하고 소망하며, 환자뿐만 아니라 전염병으로 인해 발생한 사회적 약자들을 돌보았다. 이는 이교도들이 주류였던 사회에서 초대교회를 성장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2. 흑사병에 대한 개혁파 종교개혁자들의 대응

중세시대는 지속해서 흑사병이 유행했으며, 중세시대 말기를 살았던 종교개혁자들도 이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이는 그들과 그들의 가족과 개혁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을 자주 덮쳤다. 그들은 중세 로마가톨릭교회와 전쟁을 벌이는 동안 흑사병과도 처절하게 싸웠고, 이는 그들에게 흑사병을 신학적으로 목회적으로 성찰하게 했다. 본고는 흑사병을 경험한 종교개혁자들 중 츠빙글리, 칼빈, 베자를 중점적으로 또한 차례대로 분석하였다.

 

2.1 츠빙글리(Ulrich Zwingli, 1484-1531)

츠빙글리는 1505년에 신부로 서품을 받았고, 151911일부터 스위스 취리히의 교회에서 종교개혁의 지도자로 등장한다. 그가 취리히의 교회에 취임하자마자, 15198월부터 흑사병이 취리히에서 창궐한다. 이는 약 5만 명이 살았던 취리히에서 9월 중순경에 확산하여, 총인구의 25% 이상을 죽게 했다. 이후, 다음 해인 1520년 봄에 그것이 진정되기까지 약 7천 명이 추가로 사망하는데, 츠빙글리는 그것이 가장 맹위를 떨치던 15199월에 환자들을 돌보던 중 감염되어, 10월 무렵에 죽음의 위기를 맞이하기도 했다. 당시, 그가 남긴 기도문은 다음과 같다.

 

도와주시옵소서, 주 하나님, 이 고통 가운데서 도움을 주시옵소서! 제 생각으로는 죽음이 문 앞에 있습니다. 내 앞에 와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여당신께서는 저를 정복하셨습니다. 당신께 제가 부르짖나이다. 만일, 이것이 당신의 뜻이라면, 저를 공격하고 있는 이것들을 떼어내 주옵소서. 아니면, 한 시간이라도 안식을 주시든지 평안을 주옵소서. 하오나 나의 날들 가운데서 죽음에 이르게 하시는 것이 당신의 뜻이라면, 그대로 하시옵소서. 당신께서 무엇을 하려고 하시든지, 제게는 지나친 것이 아니옵나이다. 지으시든지, 아니면 깨뜨리든지, 나는 당신이 빚으신 그릇이옵나이다.

 

츠빙글리는 흑사병으로 죽음을 위기에 처했을 때, 중요한 깨달음을 얻는다. 이는 하나님이 자신의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절대 주권자라는 것이다. 그는 자신에게 맡겨진 종교개혁의 사명을 실현하는 것과 흑사병에 걸려 갑작스럽게 죽을 위험을 경험하는 것 사이에 많은 고민을 했다. 이는 그에게 생사를 결정하시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해야 할 것이면서도 동시에 인정할 수 없는 것인 일종의 딜레마였다. 그리고 그는 고민 끝에 로마서 9:19-21을 바탕으로 이를 몰아내야 할 또는 싸워서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단지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는 도구로 여겨야 함을 고백한다.

 

2.2 칼빈(Jean Calvin, 1509-1564)

칼빈은 생애 전반에서 크게 5번 정도 흑사병을 경험했고, 이를 통해 그것을 경험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생사와 실제적 신앙생활에 관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통찰했다. 관련하여, 몇몇 사건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먼저, 흑사병이 1542년 가을에 제네바를 공격한 사건은 칼빈에게 가장 치명적이었다.

당시, 프랑스는 약 1만여 명의 군인들을 보내어, 제네바를 공격했다. 그들은 제네바에 주둔했으며, 그들로 인해 약 1년 후 제네바에서 흑사병이 창궐했다. 당시는 칼빈이 스트라스부르그에서 제네바로 되돌아온 지 불과 1년 정도가 흘렀을 때이며, 이로 인해 제네바 인구의 약 33%가 사망했다.

흑사병이 제네바에 퍼지자, 일선에서 환자들을 돌보던 개혁교회 지도자들은 큰 타격을 받았다. 대표적으로 피에르 블랑세(Pierre Blanched)1542년 가을까지 흑사병으로 죽어가는 자들을 의료적으로 신앙적으로 돌보다가 감염으로 사망했고, 매튜 게네통(Mathieu de Geneston)이 단지 몇 주를 사역하던 중에 감염으로 사망했다.

물론, 그 이전에도 흑사병으로 말미암은 사건들은 칼빈에게 영향을 주었다.

칼빈은 1538년 동역자 기욤 파렐(Guillaume Farel, 1489-1565)의 조카가 흑사병에 걸려 사망하는 것을 곁에서 지켜봤다. , 칼빈은 미망인 이툴레트 드 뷰르(Idclctte de Burc)를 아내로 맞이하여 15408월에 결혼했는데, 이는 그녀가 1540년 봄에 회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전남편 장 스토르되르(Jean Stordeur of Liege)를 흑사병으로 잃었기 때문이었다. , 칼빈은 츠빙글리의 장남 윌리엄이 15세가 되던 1541년 스트라스부르그에서 신학을 공부하던 중에 흑사병에 걸려서 사망하는 것을 목격했으며, 15413월에 끌로드페레(Claude Ferey)와 루이(Louis) 등 젊은 예비 종교개혁자들을 흑사병으로 스트라스부르그에서 잃었고, 친구이자 스승인 바젤대학교의 신학자 시몬 그리네우스(Simon Grynaeus, 1493-1541)를 흑사병으로 154181일에 잃는다.

칼빈은 많은 지인을 흑사병으로 잃으며, 고통과 의문 속에서 이를 성찰했다. 그리고 그 결과, 그는 기독교강요 프랑스어 초판(2: 1541)에서 라틴어 증보판(3: 1543)으로 넘어가며, 흑사병과 관련한 자신의 깨달음을 보충한다. 결론적으로 그는 흑사병이 창궐할 때,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을 책망하고, 죄를 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를 하나님의 뜻에 비추어 자신을 반성하고, 변화시키는 기회로 여겼다. 그는 라틴어 증보판(3: 1543)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께서 전쟁이나 전염병이나 어떤 재난으로 나를 치시는 일이 간혹 있다. 이처럼 모두에게 임하는 채찍을 받으면모든 백성들은 자신을 책망하고, 죄를 고해야 한다.

 

칼빈의 이러한 관점은 라틴어 최종판(5: 1559)에서도 나타난다. 칼빈은 라틴어 최종판(5: 1559)에서 직접적으로 총 10회에 걸쳐 전염병을 언급한다. 그중 제3권 제411절에서 그는 전염병과 전쟁과 기근을 개혁교회라는 공동체가 함께 죄를 고백하는 계기로 삼아, 공동체 구성원 각자가 겸손하게 신앙생활하라고 즉, 말씀을 더욱 실천하라고 말한다.

 

소결론 : 칼빈은 흑사병이 창궐한 상황이 모든 개혁교회 구성원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성실하게 실천하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즉, 그것이 각 개인의 구체적인 신앙생활에 영향을 줄 수 있음을 설명했다. 이는 구원론적으로 믿음과 행동을 연관 지어 이해한 결과로서, 키프리아누스와 츠빙글리의 전염병에 대한 견해를 획기적으로 보완 및 발전시킨 것이다.

칼빈은 믿음과 행동 사이에 전염병이 창궐한 특별한 상황을 위치시켜, 각자를 유기적으로 설명하려 시도했다. 그의 노력은 전염병을 개인의 구원의 여정에 포함시키는 개념을 최초로 도입했다는 측면에서 의의가 있다.

먼저, 키프리아누스는 전염병을 로마제국에 내린 하나님의 심판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시대적으로 로마제국이 교회를 핍박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염병에 대한 견해는 적에 대한 심판론적 관점을 전제했다.

또한, 츠빙글리는 적에 대한 심판론을 탈피해 개인적인 생사에 관한 섭리론으로 그것의 논쟁 방향을 바꾸었다. 그러나 이는 현세와 내세에 관한 구원론적 설명을 시작하게 하는 시발점에 해당할 뿐이었다. 그는 흑사병으로 야기되는 구원론적 실천사항에 관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2.3 베자(Theodor Beza, 1519-1605)

베자는 1564년에 칼빈에게 제네바 목사회의 의장직을 위임받아 제네바에서 총 41년간 사역하며, 흑사병을 경험했다. 그러던 중 그는 자신의 저작인 흑사병에 대하여 알아야 할 것(A Learned Treatize of the Plague, 1579)을 통해 흑사병에 대한 견해를 서술했다. 해당 작품은 그것으로 말미암은 베자의 개인적 회심, 동역하는 목회자들과의 갈등을 상세히 언급한다. 그는 칼빈의 관점에서 더욱 나아가, 그리스도인 개인의 구체적인 일상에서 흑사병에 대응하는 실천규정 또는 실천원리를 논거했다.

베자는 스승인 볼마르의 집에서 불링거(Bullinger, 1504-1575)의 논문 거룩한 예배의 의식 속에 자리 잡은 오류의 기원(De orgine erroris in Divorum acsimulacrorum cultu, 1529)을 접하고, 이후 약 13년간 자신의 거취를 고민한다. 그러던 중 베자는 흑사병에 걸리고, 이를 종교개혁에 참여하지 않은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여긴다. 다행히 그는 흑사병에서 회복되고, 이후 종교개혁자로 살아간다. 그는 1549년부터 로잔 아카데미에서 신학 교수로 활동했으며, 1559년부터는 제네바 아카데미에서 초대학장으로 활동했다.

베자가 제네바 목사회의 의장에 취임한 지 몇 년 후, 흑사병이 제네바에 창궐한다. 1568~1571년에는 제네바에서 약 3,000명이 흑사병으로 사망했는데, 그중 1571년에는 베자의 동료인 니콜라스가 흑사병으로 사망했고, 제네바 아카데미가 휴교하기도 했다. 이후, 1574년에 흑사병이 제네바에 다시 퍼졌는데, 그것의 두려움으로 인해 한 목회자가 사역지에서 도망치는 일이 일어났다.

베자는 개혁교회의 지도자로서 장기간 흑사병을 경험하며, 지인을 잃는 슬픔과 두려움, 발족한 지 얼마 되지 않는 개혁교회 공동체가 와해되는 고통을 깊이 성찰했다. 그리고 그는 흑사병과 관련된 개인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이를 이루어가는 섭리, 인간의 전염병에 대한 방어 노력의 허무함, 종교개혁을 완수해야 했던 종교개혁자들의 죽음 등을 합리적이면서도 체계적으로 설명했다.

베자는 칼빈과 마찬가지로 흑사병을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그리스도인의 마음에 존재했는지를 확인하는 도구로 전제한다. 나아가, 베자는 어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에 대해 이를 서로가 맺고 있는 관계 속에서 살피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흑사병이 창궐한 상황 속에서 어떤 그리스도인이 속한 가정 또는 교회 또는 국가 등 각각의 여러 공동체와 그것의 각 구성원은 공통으로 위기상황의 극복 주체이며, 그 각각의 주체적 공동체들과 각 개인은 끈들로 서로 복잡하게 연결된다.

이때, 베자는 각 개인에 따라 그 끈들이 각기 다른 강도를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흑사병이 창궐한 상황 속에서 개인의 실제적 행동을 선택하기 위해, 개인과 그 개인이 속한 여러 공동체가 맺는 관계의 강도가 다름을 고려해야 함을 의미한다. , 베자는 여러 공동체들의 구성원인 개인이 특정한 행동을 수행하기 전에, 그것을 철저히 각자의 양심에 비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목회자라는 한 개인은 흑사병이 창궐한 상황에서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먼저 돌볼 수도 있고, 개혁교회라는 공동체를 먼저 돌볼 수도 있다. 베자에 따르면, 그에게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맺게 된 가족이라는 관계가 어느 관계보다 중요하지만, 한편으로 가족만을 돌보는 어떤 행동이 흑사병과 로마가톨릭교회의 공격을 받는 개혁교회의 붕괴를 불러올 수 있음을 고려하며, 철저히 양심에 비추어 하나의 행동을 결정해야 한다.

베자는 전염병 발생에 따른 그리스도인들의 선택적 사랑의 실천에 관해, 그것이 한편으로 제한적이지만 동시에 한편으로 다양할 수 있음을 설명했다. 이는 각 그리스도인들에게 상황에 따라 또한 양심에 근거하여 그가 특정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실행하도록 한다. 관련하여, 베자는 그 최선의 선택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음을 설명한다.

 

하나님의 작정이 변하지 않고 그의 영원한 섭리가 우리의 삶에 변하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의 삶을 구원하기 위해서 일상의 적법한 수단을 제거하지 않는다. 사도 바울의 명백한 예(27: 24, 31)에서 보는 것처럼 삶의 연장에 대한 답을 하나님으로부터 구한다 할지라도 아니다. 우리의 삶을 연장시키고 끝내는 것과 관련하여 영원 전에 하나님께서 작정한 것이 아직 우리에게 숨겨져 있을 때, 이러한 수단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보기 드물다.

 

베자는 해당 저작에서 칼빈이 기독교 강요1권 제169절에서 성자 예수님의 뼈에 대해 언급한 것을 바탕으로 그리스도인이 이러한 특별한 전제를 바탕으로 어떤 결정을 내린다면, 하나님의 우주적 섭리의 차원에서 봤을 때, 그의 선택이 결과적으로 예정되었던 것이라 말한다.

 

소결론: 베자는 가장 후기의 개혁파 종교개혁자로서 흑사병에 대응할 수 있는 신학적 목회적 개념을 가장 포괄적이면서도 통합적으로 정리했다. 그는 다른 개혁파 종교개혁자와 동일하게 흑사병을 그리스도인들이 내세를 기억하며, 이웃을 향한 사랑을 실천했는지를 점검하는 도구로 여겼으며, 구체적으로 어떤 그리스도인이 처한 상황에 따라 그의 양심에 비추어 그가 속한 여러 공동체를 대상으로 반드시 그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아가, 그는 어떤 그리스도인이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이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완벽한 섭리와 예정 아래에 있다고 주장하며, 흑사병에 대처하는 실제적 행동지침의 큰 틀을 확정했다.

 

3. 말라리아, 콜레라에 대한 초기 한국개신교회의 대응

19세기 후반 조선에는 말라리아, 콜레라, 천연두, 급성 인플루엔자 등의 전염병이 주기적으로 유행했다. 그중 말라리아와 콜레라는 그것들에 대한 초기 한국개신교회의 적절한 대응을 가장 잘 드러낸다. 초기 한국개신교회는 그것들로 고통받던 조선의 백성들의 필요를 채워 주는 보건의료 사역에 집중했고, 이로 말미암아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먼저, 말라리아이다. 제중원일차년도보고서에 따르면, 이는 당시 가장 흔한 전염병이었다. 이는 1884년에 최초의 의료선교사인 알렌이 입국하기 전까지 장년을 기준으로 약 40%의 치사율을 보였으며, 1886년을 기준으로 전체 제중원 환자 중 약 10%를 차지했다.

초기 한국개신교회 의료선교사들이 본격적으로 조선에 입국할 때, 그들은 대표적인 말라리아 치료제인 금계랍(金鷄蠟, Quinine, 키니네)을 가져왔다. 그들은 적절한 신문물의 도입과 활용을 통해 조선의 백성들의 건강을 지키는 동시에 기독교적 세계관을 전달했다.

초기 한국개신교회 의료선교사들은 금계랍의 약병에 특정 문구를 표기했다. 바로, ‘금계랍(키니네)은 육체의 어떤 병에는 효과가 있지만, 이 약으로 인간의 영혼은 구원할 수 없고 인간의 영혼을 구할 수 있는 약은 따로 있다.’이다. 이는 말라리아 환자들에게 그리스도에 관한 믿음과 그로 말미암는 개신교회적 내세관(來世觀)에 궁금증을 불러일으켰고, 그들은 선교사와 목회자로부터 성경을 구해 읽는다.

당시 조선의 백성들의 세계관은 개신교회의 그것과 매우 달랐다. 의료선교사였던 호러스 알렌(Horace Allen), 릴리아스 언더우드(Lillias Underwood), 올리버 에비슨(Oliver Avison) 등은 조선의 모든 국민(國民)들이 굿을 하거나 부적을 사용하는 등 미신적인 방법으로 전염병을 퇴치하려 했음을 기록한다.

예를 들어, 알렌은 조선인들은 천연두를 비롯한 몇 가지 질병은 악귀 때문에 생기는 것이고, 이 악귀들을 쫒아내는 것이 정상적인 일이라고 믿어 맹인(盲人)이나 무당(巫堂) 같은 여자의 말에 따라 축사(逐邪)한다라는 직접적인 기록을 이외에 언더우드는 왕실에 천연두가 발생하여 거대한 굿판을 벌인 기록을 에비슨은 조선인들이 콜레라가 쥐 귀신에 의해 일어난다고 보았던 것과 관련해 그들이 도성 곳곳에 고양이 그림이나 새끼줄을 붙이거나 고양이 사체를 부적으로 설치했던 간접적인 기록을 남겼다.

, 초기 한국개신교회 의료선교사들은 말라리아를 예방하고 치료하기 위해 현대적인 의학지식과 치료제라는 신문물(新文物)을 적절히 사용했으며, 이를 통해 조선의 기성세대의 내면에 기독교적 세계관을 심고자 노력했다.

조선은 콜레라로도 큰 피해를 보고 있었다. 초기 한국개신교회 의료선교사들이 입국할 즈음 콜레라는 풍토병이었다. 당시 서울의 인구는 약 15만으로 1895년 청일전쟁 후 서울에서만 5천 명 이상이 콜레라로 사망했으며, 이는 약 4%의 치사율에 해당한다.

호러스 언더우드(Horace Underwoood)18954월에 입국하자마자 콜레라의 치료와 방역에 힘쓴다. 그는 청년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각 마을을 돌며 콜레라를 직접 치료하며, 조선의 백성들이 이를 예방할 수 있도록 집을 청소하고 소독하며, 응급조치를 취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특히, 치료 활동과 더불어 초기 한국개신교회 의료선교사들의 콜레라 예방 활동은 조선의 백성들에게 매우 매력적인 관심사였다. 일반인들과 달리 개신교회 교인 중에서 상대적으로 콜레라 사망자가 거의 나오지 않은 점은 그들에게 개신교회와 그것이 가진 세계관에 깊은 관심으로 이어졌다.

이외에도 콜레라에 대한 초기 한국개신교회의 대응에 관해 눈여겨볼 점이 있다.

먼저, 콜레라로 초기 한국개신교회 교인들이 사망했을 때, 해당 교회는 고아나 과부나 그들을 실질적으로 책임지던 친족(親族)의 생계를 지원했다. 대표적으로 평양 장대현교회가 콜레라로 부모를 잃은 어린이를 돌보는 비그리스도인 조부모를 경제적으로 지원한 경우를 들 수 있다.

또한,제중원일차년도보고서스크랜튼(William B. Scranton)이 미감리회 선교부로 보낸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선교를 목적으로 세워진 병원은 신분의 고하를 따지지 않고 질병을 치료했으며, 돈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약값과 치료비를 청구하지 않았다. 이는 초기 한국개신교회 의료선교사들이 모든 조선의 백성들의 건강을 증진을 위하는 동시에 그들에게 기독교 세계관을 전달하려는 사역의 본질(本質)에 충실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소결론 : 특별한 연고나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초기 한국개신교회 의료선교사들은 먼 타국에서 조선으로 건너와 자신과 무관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헌신적으로 전했다. 그들은 여러 전염병이 창궐한 상황에서 기독교적 세계관을 전하여,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최고의 자기희생적 사랑을 실천하는 믿음의 본()을 보였다. 이때, 그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던 문물을 지혜롭게 사용해, 무속신앙과 불교가 주류를 이루던 사회에 기독교적 세계관을 전달했다. 이는 한국개신교회가 조선에 정착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4. COVID-19에 대한 한국교회의 대응 신속진단검사를 중심으로

전염병과 교회의 관계를 역사 속에서 고찰한 결과, 한국교회는 COVID-19를 치료하거나 예방할 수 있는 새롭고도 적절한 도구를 발굴하고 사용하여, 자신을 보호하는 동시에 헌신적으로 의료선교에 임해야 함을 알 수 있다. 그중 본고는 현재 한국사회의 COVID-19 대응 상황을 고려하는 동시에 한국교회가 가장 실행할만하고 가장 실행해야 사역을 제안하려 한다. 이는 신속진단검사를 활용한 보건의료 중심적 사역으로 요약된다.

관련하여, 정부는 202141일부터 공식적으로 COVID-19 또는 그것의 변이에 대비하여, 각종 신속진단검사를 민간에서 활용할 수 있는 방안과 그 효과를 전문가들과 상의하기 시작했다. 이는 정부가 시국의 엄중함을 인식한 결과이자, 신속진단검사를 활용한 한국교회의 사역전략수립이 시급히 논의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첫째, 항원신속진단검사이다. 해당 검사에 사용되는 항원신속진단키트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사용된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20204월부터 여러 키트를 개발했고, 지금까지 이들을 지속해서 해외에 수출했다. 이는 강력한 편의성과 신속성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 20214월 현재 한국 정부는 이를 스크리닝(Screening)을 목적으로 허용한다.

항원신속진단키트는 면역분석학적으로 효소면역분석법(enzyme linked immunosorbent assay; ELISA)을 활용한다. 이는 Alkaline phosphataseHorse radish peroxidase를 결합한 항체를 항원과 결합을 시킨 후에 이 효소들과 반응하는 기질(Substrate)이 접촉한 결과 색상 변화, 형광 발광, 화학반응 등으로 방출된 빛을 감지하여, 항원을 정성 또는 정량적으로 분석하는 방법이다. 이는 소량의 혈액이 있을 때, 일반 PCR검사보다 매우 빠르게 단지 몇 분 정도의 시간으로 검사결과를 도출한다.

항원신속진단검사는 실제 해외에서 COVID-19 사태 해결에 도움을 주고 있는데, 이는 그것이 교회사역에서 사용될 수 있는 충분조건을 갖추었음을 의미한다. 의료선교사역에 적합한 도구는 그것을 행하는 자와 그것의 대상이 되는 자 모두에게 가격적으로 합리적이어야 하며, 곧장 사역에 도입할 수 있을 만큼 누구라도 쉽게 다룰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항원신속진단검사는 이러한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

한국교회는 신속진단검사를 통해 교회 안팎의 숨어 있는 감염자들을 스크리닝하여, COVID-19의 전파를 억제하는 데에 기여할 수 있다. 이는 그의 가정과 교회를 지킬 수 있는 유용한 방법으로 한국교회는 이를 사용하여 1건이라도 또한 1시간이라도 빨리 COVID-19에 대처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항원신속진단검사를 교회 내의 일반 PCR검사를 받기 어려운 그리스도인들에게 정기적으로 시행할 수 있다. 교회 내에 고령과 장애와 질병 등으로 움직이기 힘들거나, 갑작스레 신속하게 검사결과를 얻어야 할 상황이 생기거나, 직업적 특성으로 인해 일반 PCR검사를 받기 어려운 사람이 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의도치 않게 COVID-19를 교회 공동체에 확산시킬 수 있다.

개교회가 정기적으로 개교회에 속한 의료인과 그의 병의원에서 해당 검사를 그들에게 제공할 수 있다면, 교회의 모임은 더욱 안전해질 것이다. 일정한 규모가 있는 교회에는 해당 검사를 시행할 수 있는 의료인이 존재할 것이며,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이웃 교회 또는 노회 또는 교단에서 이를 보완할 수 있을 것이다. 개교회에 속한 의료인들은 그들이 소유한 병의원을 통해 해당 검사를 개교회와 협력하여 교인들에게 당장 시행할 수 있다.

나아가, 한국교회는 정부와의 대화를 통해 장소적으로 교회에서 항원신속진단검사를 시행하도록 논의해야 한다. 그러한 논의가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해당 검사를 교회에서 교회 소속 의료인에 의해 시행할 수 있다. 이는 개교회가 지역사회를 선교하는 기틀을 마련하는 전환점이 될 것이다.

교회에서 항원신속진단검사가 무료 또는 저비용으로 시행된다면, 많은 지역사회 주민들이 교회에 방문할 것이다. 교회 밖에도 비용과 건강과 시간의 문제로 일반 PCR 검사를 받기 어려운 사람이 많다. 단적으로 지역사회에 존재하는 불우이웃이나 노숙자나 일반 PCR검사를 받으러 가기 힘든 직업을 가진 자나 특별한 개인적 사유로 검사소에 방문하기 어려운 자를 예로 들 수 있다. 물론, 이들이 아닌 평범한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교회에서 해당 검사가 시행되어도, 선교적으로 큰 효과가 발생할 것이다.

대표적인 항원신속진단키트를 기준(상품명:SD BIOSENSOR, WHO&EUL&식품의약품안전처&TGA 사용승인)으로 이는 일반 PCR검사와 비교해 산술적으로 약 88%의 민감도(양성 환자 중 검사법으로 진단한 양성 정확도), 96%의 특이도(정상인 중 검사법으로 진단한 정상 정확도)를 가진다. 관련하여, 최근 한미약품에서 20213월 중으로 출시하려 했던 HANMI COVID-19 Quick TEST는 이미 세계보건기구(WHO)에 긴급사용승인이 허락되었으며, 일반 PCR검사와 비교하면 약 90%의 민감도, 96%의 특이도를 확보했다.

둘째, 신속 PCR검사이다. 이는 항원신속진단키트와 일반 PCR검사의 사이쯤에서 기능하며, 현재 COVID-19가 적절히 관리되는 한국에서도 도입을 적극적으로 추진 중이다.

일례로 경기도 여주시는 신속 PCR검사를 공장 등 대규모 인원이 일하는 사업현장에 시행했다. 이를 위해, 여주시는 202011월부터 정부 및 경기도와 논의하여, 조례로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실제, 여주시는 2021225일까지 행정구역 내의 물류창고, 대형쇼핑몰, 종교시설, 대중교통 종사자 등 44000을 대상으로 해당 검사를 시행했으며, 이를 통해 무려 19명의 무증상 감염자를 스크리닝했다.

또한, 서울대학교20213월 현재 기숙사입소 등 무증상 감염자를 신속하게 스크리닝해야 하는 일상적 상황에서 신속 PCR검사를 도입하려 정부와 논의 중이다. 관련하여, 2021312일에 COVID-19의 검사방법과 그것의 효율에 대해 가장 이해도가 높은 집단 중 하나인 서울대학교 자연대 대학원생의 약 83%가 스크리닝을 위한 학내 신속 PCR검사 도입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는 신속 PCR검사가 일반 PCR검사와 비교해 무증상자를 스크리닝할만한 충분하고도 높은 신뢰성을 확보했음을 보여준다.

 

소결론 : 신속진단검사는 국내에 본격적으로 도입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의 기술적 특징과 해외의 사례를 고려했을 때, 이는 향후 교회 공동체의 보호와 지역사회 선교를 위해 사용될 수 있다. 개교회는 시간과 비용과 기타 문제로 일반 PCR검사를 시도할 수 없는 교회 안팎의 사람들을 개교회 소속의 병의원에 정기적으로 초청할 수 있다. 나아가, 정부와의 협의로 개교회에서 신속진단검사가 시행된다면, 한국교회는 공동체 보호와 선교 활동을 확보하는 확실하고도 강력한 동력(動力)을 확보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필자는 신속 PCR검사와 비교해 결과의 신뢰성에 큰 차이가 없고, 가격이 저렴한 항원신속진단검사를 개교회에서 당장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을 제안한다.

또한, 한국교회는 신속진단검사를 통해 강력한 COVID-19 변이와 신종 감염병의 등장을 대비해야 한다. 현재의 COVID-19를 기준으로 확진자가 1000명을 지속해서 초과할 경우, 신속진단검사 도입의 필요성과 당위성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더욱 증가할 것이다. 한국교회는 신속진단검사를 선제적으로 모든 사역의 중심에 도입하여, 미래의 각종 전염병 유행에 대비해야 한다.

 

결론

현대 한국교회 그리스도인들은 현재 상황에서 공동체와 사회를 보호하고 선교의 통로를 여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결론적으로 한국교회는 보건의료 중심적 사역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 이는 전염병이 창궐한 상황에서 한국교회의 질적 양적 성장을 동시에 이룰 수 있는 유일하고도 확실한 방법이다.

한국교회 그리스도인들은 COVID-19 사태를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각자에게 이웃을 향한 사랑의 실천 여부를 점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역사 속의 많은 교회가 헌신적인 이웃사랑을 실천하여 전염병이 창궐한 세계 곳곳에 복음을 전한 것처럼, 한국교회와 한국사회에도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당장 시행할 수 있는 보건의료 사역방안으로 교회 내의 무증상자를 대상으로 정기적인 검사를 시행하는 것과 신속진단검사를 사역의 중심에 도입하는 것이 제안된다.

전자와 관련하여, 각 그리스도인이 진심으로 가정과 교회와 사회를 사랑한다면, 그는 비용과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COVID-19 감염을 최대한 정기적으로 확인하려 노력할 것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믿음과 그것의 실천이 맞닿아야 한다. COVID-19 사태 속에서, 이는 내세에 대한 소망과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을 증명하는 적절한 기회이다.

후자와 관련하여, 개교회에 속한 의료인과 그들이 소유한 병의원을 활용하여, 교회 안팎의 사람들에게 신속진단검사 중심적 의료선교사역을 수행해야 한다. 이는 전자와 관련하여 한국교회에 한국사회의 구성집단 중 가장 높은 수준의 안전을 부여하며, 동시에 교회가 공중보건에 기여하는 안전장치라는 인식을 한국사회 구성원들에게 제공할 것이다.

물론, 한국교회는 비그리스도인들에게 교인들이 소유한 병의원에서 무료로 신속진단검사를 시행하도록 보조하는 등 교회 안팎을 대상으로 하되 과감하게 인적 물적 자원을 배치하여, 큰 열매를 얻어야 한다. 나아가 정부와의 논의가 적절히 진행되어, 장소적으로 개교회를 신속진단검사의 전초기지로 활용한다면, 개교회는 지역사회 선교를 위한 강력한 통로를 확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