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교회(~340년, 기독교 공인 전까지)를 연대적으로 정리합니다.^^
* 맨 아래에,다운 가능한 파일을 첨부합니다. 성경과 교리와 핍박에 관한 '교부들, 이단들'의 활동을 정리합니다. 주요 초대교회 교부들이 등장한 배경과 '신학적 인류사사적 흐름'을 동시에 파악할 수 있습니다.
연대(AD) | 주요 사건 | 로마 황제 | 박해와 교부, 이단 | |
30(29-33) | 예수님 죽음과 부활 / 초대교회의 생성 | 티베리우스 (14-3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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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 스데반 집사 순교 = 초대 신앙 -> 선교 운동의 시작 => 사도들을 제외하고, 다른 제자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야만 했음 |
유대교의 기독교 탄압 | ||
41 |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 순교(큰 야고보, 야고보서 저자가 아님) | 칼리굴라 (37-41년) | 헤롯 아그립바 1세의 예루살렘 교회 박해 | |
44 | 바나바의 권유로 바울이 안디옥에 합류 | 알렉산드리아의 필로(기원전20~기원후 42년 이후 사망) | ||
45 | 바울의 1차 선교 여행 | 클라우디우스 (41-54년) |
황제가 자신을 신으로 부르거나 자신에게 신전을 지어 바치는 것을 금지시킴 | |
49 | 제 1차 예루살렘 교회 공의회 | |||
50 | 야고보서 저술 | |||
51-54 | 바울의 2차 선교 여행 | |||
62 | 예수의 형제 야고보 순교 | 네로 (54-68년) |
로마는 유대교와 기독교를 본격적으로 구별하며 가혹한 박해를 시작함 1. 이 당시의 모든 일상생활이 이방 종교와 관련된 것들이라서 기독교인들은 사회적으로 폐쇄적인 삶을 살았고 그러한 그들의 모습을 이방인들은 못마땅해 함. 2. 일반인들이 교회공동체에 참여하지 못하자 이들이 서로 사랑하고 형제, 자매라고 부르는 것을 보며 집단으로 성적 문란한 짓을 하고 성찬식을 전해듣고 사람을 먹는다고 오해함. 3. 기독교인들은 형상이 없는 것을 믿는다고 해서 무신론자라고 생각했고 이들이 신들을 믿지 않아서 여러가지 자연 재해가 발생한 것이라고 생각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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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 성전 건축이 끝남 -> 수천명이 일자리를 잃음 -> 사회적 불만 고조 로마 대화제 / 베드로 순교 |
네로 황제는 로마시의 방화 사건을 정치적인 목적 때문에, 기독교인의 탓으로 돌린다. 이에 수많은 기독교인들은 원형 경기장에서 사자의 밥이 되거나, 십자가 형을 당하게 됨. | ||
55-65 | 바울의 3차 선교 여행 | |||
65-68 | 로마에서 바울 순교 전통적 유대교와 거의 결별 = 이방인 신자들은 할례를 받지 않았으며, 유대인들의 식이법들을 알거나 지키지도 않았으며,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일곱째 날의 안식일 대신, 예수님께서 죽음으로부터 다시 살아난 첫째 날을 예배의 날로 정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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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70 | 히브리서 / 베드로 전서 / 유다서 저술 | |||
66-73 | 유대인들이 매일 드리는 황제에의 제사를 거부 ->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들 반란 | |||
60 | 디모데 전서 / 디모데 후서 / 디도서 = 목회서신 저술 | |||
68 | 네로 황제 자살 | |||
60 - 70 | 마태복음 / 마가복음 / 누가복음 = 공관복음 저술 | 갈바 (68-69년) 오토 (69년) 비텔리우스 (69년) |
69-81년 로마 황제들이 기독교에 대해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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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 로마의 티투스가 예루살렘 점령 / 예루살렘 멸망 / 성전 파괴 -> 유대교 = 기독교인들의 도주를 반역행위로 간주함 / 기독교 = 계시받아 피한거라고 함 ===> 유대교와 기독교가 완전히 단절됨 |
베스파시아누스 (69-79년) | ||
티투스 (79-81년) | ||||
80 | 사도행전 저술 | 도미티아누스 (81-96년) |
도미티아누스 황제 - 황제 숭배 종교 시작 및 기독교 박해 | |
90 | 요한복음 저술 / 얌니아 회의 = 유대교에서 공식적으로 기독교인 추방 |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을 통해서 두 가지 이단에 대항함 1. 예수는 단지 인간에 불과하다 = 에비온파 2. 예수는 단순한 유령(영)이다 = 가현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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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 요한계시록 / 클레멘트1서 저술 | |||
90 | 베드로 후서 / 요한1,2,3서 저술 | 영지주의(=그노시스=이원론) 대항 | ||
95 | 교회에서 감독, 집사들 권위가 생김 = 목회자, 평신도 개념이 생김 | |||
네르바 (96-98년) | ||||
90 - 110 | 바나바서 / 디다케 저술 | 트라야누스 (98-11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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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 이그나티우스(안디옥의 감독) 순교 2세기 초 - 이그나티우스 =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 곳에는 어디나 카톨릭 교회(공교회, catholic church)가 있다 카톨릭=보편적인=전통의 <==> 이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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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 비두니아 총독 플리니와 트라야누스 황제와 서신 왕래 "남녀노소,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 지역 전체에 걸쳐 도시와 촌락을 막론하고 …" |
로마제국에서의 기독교인에 대한 인식 변화(로마의 법적 근거를 바탕으로) | ||
132-135 | 팔레스타인에서 Bar Kochva 혁명 | 하드리아누스 (117-138년) | ||
140 | 영지주의자 마르키온 로마교회에 들어감, 아리스티데스의 변증 | 안토니누스 피우스 (138-161년) |
140-150년 마르키온(헤르마스의 목자) 활동 => 초대교회가 구약을 계속 간직하게됨 1. 공의와 사랑의 조화로운 하나님 2. 구약으로부터 시작된 역사의 중요성 강조 => 신약정경을 정하기 시작하는 계기가 됨 3. 순교자 유스티누스(150년 이전~165년 사망) 4. 시리아인 타티아누스(155년 이전~172년 이후 사망) 5.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140/50~215/216년 이전 사망) 6. 시리아인 바르데사네스(154~222년) 7. 시리아인 타티아누스(155년 이전~172년 이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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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 | 교회로부터 마르키온 추방됨 -> 마르키온파 교회 설립 | |||
150 | 기독교교 변증가(기독교 학자) VS 기독교 비판자, 부활절 날짜 논쟁 변증가 - 1. 기독교의 적수들의 공격에 응답 / 2. 이교 신앙의 약점들을 지적해냄 2세기 중엽 - 역사가 헤게시푸스 = 모든 감독들의 주장은 동일하고 일관성이 있음 -> '믿음의 계통도'를 만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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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 저스틴(유스틴)=유스티누스의 제 1변증 | |||
155-156 | 폴리캅(폴리갑, 서머나의 감독) 순교 | |||
150 | 저스틴=유스티누스의 유대인 트리포와의 대화 저술 | 156-172년 1. 새로운 예언자 몬타누스 주의 등장 -> 두 명의 여 선지자들과 함께 성령의 이름으로 각종 예언들을 발하며, 임박한 그리스도의 재림을 경고 => 교회 내에 무질서가 야기됨 => 교회에서 파문당함 => 교회 지도자들은 몬타누스파를 맹렬히 비난 => 신약성경을 정경화하는 가운데 어떤 것을 더 추가하면 안되는가를 고민하게 됨 2.마르치온(138년 이전~160년경 사망) 3. 사르데스의 멜리토(170년 또는 170년경 사망) 4. 161-180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박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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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 타티안의 Diatessaron 저술 | |||
160 | 저스틴=유스티누스의 제2변증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161-180년) |
루키우스 베루스 (161-16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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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 | 저스틴=유스티누스(변증가) 순교 - 참수 저스틴=유스티누스 - 그리스 철학에 익숙한 헬라인들에게 기독교를 합리적으로 설명하려 함 유대인에게는 성경적으로 설명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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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 170 | 타티안과 멜리토에 의한 변증작품 | |||
170 | 몬타누스주의자들의 예언활동 성행 | |||
172 | 로마인들 중에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을 믿겠다는 이들이 늘어남 -> 할례로 인해 재정적인 후원만 함 = 이들을 유대교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고 부름 => 이들이 기독교로 오게 됨 = 부유한 여성들이 많았음 기독교인들이 로마의 소외되고 버림받은 가난한 자와 과부들을 돌보고 가난한 형제들의 장례식을 치러줌(전염병이 특히 심했는데, 의료선교사역에 매진함) => 기독교인들이 박해와 순교를 당하는 모습이 로마인에게 영향력을 주기 시작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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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 | 아데나고라스의 그리스도인을 위한 간청 / 리용에서 그리스도인 학살 | |||
178 | 셀수스가 True Discourse을 통해 기독교 공격 | |||
180 | 로마에서 세례문답을 위해 초기 형태의 사도신경을 사용 판테이누스가 알렉산드리아에서 기독교적 영지주의 학당을 설립, 기독교를 진정한 철학으로서 가르침 => 판테이누스의 제자 = 클레멘트 = 최초의 기독교 학자 이레니우스의 활동 및 저술 |
아타나고라스(180년경 사망) | ||
190 | 2세기 말 - 이레네우스와 터툴리안(터툴리아누스)은 교회의 감독들에게 사도들로부터의 믿음의 전통과 올바른 교리의 가르침이 그대로 이어진다고 주장함 => 교회의 수직적 계급 제도 = 강력한 권력을 가진 감독이 이단으로부터 진리를 보호한다고 생각함 | 콤모두스 (180-193년) 페르티낙스 (193년) 디디우스 율리아누스 (193년) |
무라토리 정경 목록 | |
190-215 |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의 활동과 저술 |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193-211년) |
1. 클레멘트 - 영지주의와는 달리 성품의 계발 = 하나님과의 동행을 가르쳤다 클레멘트의 사역은 기독교 사상과 헬라적 사고의 올바른 연합을 마련했고 이 기초 위에 오리겐이 등장하게 된다 2. 클레멘트와 오리겐 - 기독교를 철학의 형식으로 제시하나 베드로와 바울의 메시지에 완전히 충실한 모습을 고수함 3. 리용의 이레네우스(177년 이전~200년경 사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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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20 | 카르타고에서 터툴리안의 활동 |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의 박해 | ||
199-220 | 부활절 논쟁과 단일신론 논쟁 | |||
202-203 | 카르타고에서 퍼페투아와 펠리시타스 순교 | |||
208 | 터툴리안이 몬타누스주의자가 됨 | |||
211-217 | 3세기 무렵 교회가 조직화가 되기 시작, 예배당이 생김, 하나님->감독->장로->집사->회중 사도 -> 감독지명 -> 후계자 지명 = 교회는 사도성의 계승이 있다 => 감독의 권위를 높여줌 = 특히 대도시 교회 감독들의 권위는 더 커짐 |
카라칼라 (211-217년) |
게타 (211-212년) | 카라칼라 황제의 박해 |
215 | 사도적 전통 발간 | |||
213-230 | 히롤리투스 로마에서 활동 | 마크리누스 (217-218년) 엘라가발루스 (218-222년) 세베루스 알렉산데르 (222-235년) |
터툴리아누스(160년경~220년 이후 사망) | |
215-250 | 오리겐(오리게네스)이 알렉산드리아와 가이샤라에서 사역 | 막시미누스 트락스 (235-238년) 고르디아누스 1세, 2세 (238년) 푸피에누스, 발비누스 (238년) 고르디아누스 3세 (238-244년) 필리푸스 아라부스 (244-249년) |
클레멘트의 제자 오리겐 = 헥사플라라고 이름하는 6개 번역판 대조 성경을 vusckss | |
235-238 | 로마의 감독 칼리스투스에 의해 간음죄에 범하고 회개한 자를 최초로 성찬에 참여시킴 | 1. 로마의 히폴리투스(189년 이전~235년 사망) 2. 막시미누스 트락스 황제의 박해 | ||
248 | 키프리안(치프리안)이 카르타고의 감독이 됨 | |||
240-260 | 갑파도기아(캅바도키아)의 그레고리 사역 | 데키우스 황제 (249-251년) |
카르타고의 치프리아누스(3세기 초~258년 사망) | |
250 | 신학자이자 저술가이자 사상가이자 성직자인 오리겐 투옥 카르타고의 감독 키프리안은 고백자들은 인간들의 죄를 사해줄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자들과 논쟁을 벌임 -> 키프리안은 죄의 중대성에 따라 차등을 둬서 교회로 다시 귀환할 수 있는 여부를 결정하는 체제를 마련 => 차등에 따른 고행의 제도가 생김 로마 교회의 존경받던 신학자요 장로였던 노바티안은 살인, 간음, 배교의 대죄들을 저지른 자들에게는 교회가 그 죄를 사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고 주장(=교회는 성도들의 공동체라는 전통적인 입장 고수) <=> 다른 장로 코넬리우스는 감독에게는 심각한 죄들까지도 사해 줄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주장(=교회는 죄인들이 배우는 학교라는 입장) => 코넬리우스의 의견이 다수에게 지지를 받고 감독의 자리까지 오르게 됨 => 세례와 함께 이때부터 '고해'라는 제 2의 성례가 생기게 됨 |
1. 노바티아누스(250년경 사망) 2. 데키우스 황제가 최초로 황제 숭배를 공식화하고 최초로 제국 전역에서 동시에 기독교 박해함 => 한 줌의 향을 피우고 "황제가 주님이시다"라고 고백해야 했다 => 증명서 발급 순교자 / 고백자 / 변절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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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 | 노바티안이 소수의 지지자들과 함께 로마교회에서 분리 | 헤렌니우스 에트루스쿠스 (251년) |
이집트인(콥트인) 안토니우스(251~356년) | |
트레보니아누스 갈루스 (251-253년) |
호스틸리아누스 (25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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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밀리아누스 (253년) | ||||
254 | 신학자이자 저술가이자 사상가이자 성직자인 오리겐 풀려났으나 고문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사망 | 발레리아누스 (253-260년) |
257-260년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박해 | |
258 | 카르타고의 감독인 카프리안은 실추된 명예 회복을 위해 순교함 | |||
268 | 사모사타의 바울이 안디옥의 감독직에서 파직 | 갈리에누스 (260-268년) | 오리게네스(185년경~254년 사망) | |
클라우디우스 고티쿠스 (268-270년) 퀸틸루스 (27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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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280 | 기독교가 플라톤의 제자 Porphyry에 의해 공격 당함 | 아우렐리아누스 (270-275년)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타키투스 (275-267년) 플로리아누스 (276년) 프로부스 (276-282년) 카루스 (282-28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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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누스 (283-284년) |
누메리아누스 (283-284년) |
파코미우스(287년경?/310년 이전~346/47년) | ||
동 로마 | 서 로마 | |||
293 | 사두정치 시작 | 디오클레티아누스 (284-305년) - 황제 갈레리우스 (293-311년) - 부제 |
막시미아누스 (286-305년) - 황제 콘스탄티우스 클로루스 (293-306년) - 부제 |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 로마의 정통적인 황제 숭배 종교를 따른 마지막 황제 = 로마제국의 마지막 박해 = 냉정하고 논리적인 행정가 = 통치권을 강화한 황제 - 처음엔 기독교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음 |
304 | 부 황제 갈레리우스의 건의로 기독교 박해 시작 ①교회파괴 ②기독교서적 불태움 ③군부는 신자들을 축출 ④로마신에게 제사하지 않는 자는 잡아서 고문하고 죽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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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 | 안토니오스가 이집트에서 수도생활 시작 | 1. 이집트인(콥트인) 아타나시우스(295/300~373년) 2. 이집트인(콥트인) 알렉산드리아의 베드로(주교, 300~311년) | ||
304-313 | 락탄티우스 신의강요 출간 | 갈레리우스 (305-311년) - 황제 |
콘스탄티우스 클로루스 (305-306년) - 황제 |
이집트인(콥트인) 알렉산드리아의 알렉산더(311~328년) |
305 |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와 막시미아누스 황제의 퇴위 | 갈레리우스 (305-311년) - 황제 |
세베루스 (306-307년) - 황제 리키니우스 (308-311) -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 (306-337) - 부제 막센티우스 (306-312년) - 독자적으로 활동 |
1. 시리아인 에프렘(306년경~373년) |
307 | 막센티우스가 아버지인 막시미아누스와 함께 서 로마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세베루스를 잡아서 죽임(자살시킴) 동 로마의 디오클레티아누스, 갈레리우스와 서 로마의 막시미아누스가 회의를 해서 서 로마 황제로 리키니우스를 임명하기로 결정함 아버지 막시미아누스와 아들 막센티우스가 갈라섬 |
2. 갈레리우스 황제 - 동 로마에서 여태까지와 달리 전국적으로 조직적인 박해 시작 ==> 제국 내의 기독교 박해에 대한 반대 여론이 강하게 일어남 ==> 카르타고의 감독이 자원하는 순교자들이 많아 무조건 죽으려는 자들은 '순교자'로 대우하지 않겠다고 발표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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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6-312 | 3. 콘스탄티아(살라미스)의 에피파니우스(310/20~402년) | |||
311 | 북아프리카에서 도나투스 분리주의가 시작 | 4. 306-312년 서방에서 콘스탄티누스 1세와 세베루스 황제에 의해 박해가 진정 5. 311년 갈레리우스 황제 - 관용의 칙령 발표 막시미아누스 전 황제 - 이집트에서 박해가 계속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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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312 | 312년에 콘스탄티누스 1세가 밀비안 다리에서 막센티우스 죽이고 서 로마 제국 유일한 황제가 됨 |
리키니우스 (308-324) - 황제 |
콘스탄티누스 1세 (306-337) - 황제 막센티우스 (306-312년) - 독자적으로 활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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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 | 리키니우스 황제와 콘스탄티누스 1세에 의한 밀라노 칙령 발표 | 리키니우스 (308-324) - 황제 |
콘스탄티누스 1세 (306-337) - 황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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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8 | 알렉산드리아에서 아리우스 논쟁 발발 | 라오디게아의 아폴리나리우스(315년경~392년 이전) | ||
320 | 알렉산드리아 교회 지도자들 아리우스 파문 -> 니코메디아(정치적수도) 교회 VS 알렉산드리아(학문의 중심지)교회 = 두 교회의 세력 다툼 아리우스 지지자들의 세력을 힘입어 알렉산드리아로 귀환 파코미노스의 수도원운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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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 | 콘스탄티누스 1세가 주일을 특별한 날로 제정 | |||
321-324 | 그리스도인들이 리키니우스 황제 영토하에서 박해 | |||
324 | 콘스탄티누스 1세가 단독 황제가 됨 | 콘스탄티누스 1세 = 콘스탄티누스 대제 (306-324, 324-337) |
바실리우스(329/30년경~379년) | |
325 | 유세비우스가 교회사 완성 아리우스가 알렉산드리아로 귀환후 폭동이 일어나고 이를 해결하고자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니케아 공의회 소집 = 최초로 황제가 소집한 종교 회의 |
락탄티우스(290년 이전~325년경 사망) | ||
328 | 아타나시우스가 알렉산드리아의 감독이 됨 | |||
325-381 | 아레이오스 논쟁이 계속됨 | 나지안즈의 그레고리우스(326년경~390년) | ||
330 | 수도를 로마에서 비잔티움으로 천도 이름이 비잔티움 -> 콘스탄티노플 로 바뀜 (현재의 이스탄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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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5 | 아타나시우스가 두로 공의회에서 정죄받아 유배당함 | 니사의 그레고리우스(335/40~394년 이후) | ||
336 | 앙카라의 마르셀루스가 유배당함 / 콘스탄티노플에서 아리우스 사망 | 아리우스(256년경~336년) | ||
337 | 콘스탄티누스 1세의 세례와 죽음 / 제국 분리 | 시리아인 아프라하트(227년경/345년) | ||
338-340 | 유세비우스가 콘스탄티누스 1세의 생애 저술, 사도신경 | 1. 체사레아의 에우세비우스(260/64~340년경) 2. 암브로시우스(339년경~39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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