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칼빈의 제네바 시편가와 그 현대적 활용에 대해 다룹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칼빈의 교회음악 사상: 칼빈은 교회음악이 경건성 향상과 예배 진행에 중요하다고 보았으며, 성경을 기반으로 한 찬송가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 제네바 시편가의 탄생: 1539년부터 1562년까지 제네바에서 프랑스어로 시편을 운문화하고 작곡하여 "제네바 시편가"가 탄생했습니다.
- 시편가의 보급과 영향: 제네바 시편가는 여러 나라로 퍼져나가며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고 찬송가집으로 발간되었습니다.
- 한국어판 칼빈의 시편찬송가: 2009년 칼빈 탄생 500주년을 기념하여 한국어판 "칼빈의 시편찬송가"가 출판되었습니다. 이는 한국 교회음악사에 중요한 사건으로, 현대적으로 악보화하여 널리 보급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핵심적으로 이 문서는 칼빈의 시편가가 교회음악에 미친 영향과 현대적 활용 방안을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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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의 제네바 시편가 및 현대적 활용
주성희 교수
총신대학교 교회음악과
칼빈(John Calvin, 1509-1564)의 시편찬송가는 개혁교회의 유산으로, 1539년부터 1562년에 걸쳐 스위스
제네바에서 150편의 시편을 불어로 운문화하고 작곡되어져 1562년『제네바 시편가』(Genevan Psalter)가
탄생하였다. 이 시편가는 칼빈의 철저한 감독하에 편집된 것이었으며, 성경중심의 원칙에 기초하여 이루어진
시와 노래의 운율화 된 회중찬송이었다.
칼빈은 교회음악이 교회의 경건성 향상과 예배 진행에 중요한 요소임을 일찍이 알고 있었으며 교회음악은
품위 있을 것, 간결할 것이었다. 절대자 하나님을 위한 노래이므로 품위가 있어야 하고, 회중들이 부르는 노
래이므로 간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교회음악에 대한 분명한 핵심 근거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기인
한다. 또한 가사의 중요성에 따라 시편찬양을 주장하였으며, 그것을 전 회중에게 보급시켰다.
칼빈 탄생 500주년 기념일인 2009년 7월 10일에 한국어판 『칼빈의 시편찬송가』(Calvin's Genevan
Psalter)가 한국 땅에 최초로 출판 소개되었다. 이는 한국교회사에 있어서 매우 소중하고 중요한 교회음악 산
물이라 할 수 있다. 21세기에 이루어진 이러한 작업을 통하여, 하나님께 드려지는 최상의 교회음악을 만들기
위해 심혈을 기우려 얻어진 산물인 칼빈의『제네바 시편가』를 소개하게 되었다. 이 일은 우리나라에서 칼빈
의 시편가를 우리말로 찬송할 수 있게 된 계기가 만들어진 역사적인 사건이 되었다.
1. 제네바 시편가
1) 칼빈의 교회음악 사상
칼빈은 1509년 7월 10일 프랑스 파리 동북방에 있는 노용(Noyon)에서 태어났다. 그는 1517년 루터
(Martin Luther, 1483-1546)의 종교개혁보다 뒤인 1536년 종교개혁을 하였다. 탁월한 조직력과 교리에 탁
월한 신학자로서, 다양한 저술 및 목회자와 교육자로서의 삶은 유럽의 종교개혁의 지도자가 되게 하였고, 그
의 영향이 프랑스에서는 위그노(Huguenotes)를, 영국에서는 청교도(Pilgrim-Puritans)들을, 스코틀랜드에서는
장로교회(Presbyterian Church)를 네델란드에서는 개혁교회(Hervormde Kerk)를 만들었으며, 그밖에 독일과
스위스에서도 각각 개혁교회를 만들었다. 이와 같이 종교개혁에 커다란 영향을 준 칼빈이 교회음악에 대해
언급한 자료들을 연도별로 정리하여 칼빈의 교회음악 사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1) 1536년 기독교 강요(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전편 제6장 중 제3장 기도 부분
여기서 그는 기도가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한 목적이든지, 아니면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기 위한 간구가 목
적이든지,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을 향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공중기도보다 개인기도의 중요성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기도에 사용되는 소리나 노래가 마음의 느낌에서 솟아 나오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
나님 앞에서 아무 가치도 유익도 없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입술 끝에서나 목줄기에서 솟아나는 이 소리는, 하
나님의 진노만을 불러일으킬 따름인 것이다." 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언급이 칼빈이 음악에 대해 언급한
최초의 것이다. 칼빈은 내면적인 개인기도의 중요성과 함께, 말과 노래로 표현되어 나타나는 공중기도의 중요
성을 언급하고 있는데, 공중기도나 개인기도에서 마음이 담겨있지 않는 즉 영적인 요소가 내포되어 있지 않
는 말과 노래는 하나님께 아무런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고 하였다.
제4장 성만찬의 "희생제사"에 대한 부분에서 찬송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다. 또한 성례의 마지막 부분인 성
례의 집행에서, 성만찬이 어떻게 행해져야 하는지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이 공중예배에서의 찬양의 중요성에
대한 최초의 언급이다.
(2) 1537년 제네바 교회조직과 예배를 위한 조항들을 평의회에 제출
성만찬에 대해 주장한 내용 중 음악에 대한 중요한 주장은 "공중예배시 시편가 부르는 것을 도입하는 것"
이었다. 이 시편찬양은 공중예배에 있어서 부수적인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것으로 인정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 조항들을 칼빈의 음악신학의 기원으로 볼 수 있다. 또한 공중기도가 자국어로 되어야 함과 같이, 사제들이
제단에서 라틴어로 노래하는 것이 공중예배에서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3) 1537년 말 "성찬에 관한 신앙고백(Confessio fieder de Eucharistia-Cr. IX)"을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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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8년 1월 200인 의회에서 "신앙고백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에 대하여는 성만찬에 참례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칼빈과 파렐의 제안을 거부하고, 또한 3월에는 목사회와 상의없이, 시의회 총회에서 3일 내에 제네
바를 떠날 것을 요구받게 된다. 그리하여 그 해 8월 부쳐(Martin Bucer)의 소개로 스트라스부르크에 있는 프
랑스 피난민 교회의 목사로 초청된다. 여기에서 칼빈이 스트라스부르크의 성만찬예식에 찬양을 사용하고 있
다는 사실과, 회중을 위해 프랑스어 시편을 준비하고 있으며, 이 찬송가를 출판할 예정이라는 사실을, 파렐에
게 보낸 편지를 통하여 알 수 있다.
(4) 1539년 칼빈의 첫 번째 시편가인 『스트라스부르크 시편가』가 출판
"음악을 붙인 몇 개의 시편과 캔티클(Aulcuns Pseaulmes et Cantigues mys en Chant)이라는 제목으로
『스트라스부르크 시편가』가 출판되었다. 1540년 9월 제네바 시의회는 칼빈을 초청할 것을 결의하게 되며,
1541년 5월 1538년의 추방령을 취소하고 다시 초청하여, 그 해 9월 제네바로 돌아가게 된다. 11월 20일 교
회헌법 규칙(Les Ordonnances ecclesiastigues de l'Eglise de Geneve)이 공포되었는데, 여기서는 음악에
대한 언급이 없었으나, 어린아이들이 배워야 한다는 제안으로, 16세기 제네바시에서의 효과적인 음악교육이
시작되었다.
(5) 1542년, 제네바의 예배에 대한 권고의 서문 "독자들에게 보내는 편지(Epistle to the Reader)"
일반 교인들에게 쓰여진 교회음악에 대한 첫 번째 기술로서, 공중예배에서 부르는 시편가에 대해 언급한
다. 시편가는 멜로디와 함께 출판되었으므로, "여러분은 오직 악덕과 방탕 그리고 악덕과 관련되어 널리 불리
는 노래 대신에, 사랑과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여러분을 가르치는 적합한 노래들을 갖게 될 것이다"
라고 독자들에게 알림으로, 음악이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증명한다. 또한 그는 식사할 때와 가
정에서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 위하여 만든 음악과 교회에서 불려지는 찬송가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세속음악은 가볍고 신중하지 못하며, 성악과 기악을 다 사용할 수 있으나, 교회음악은 엄숙하고
위엄이 있어야 하므로, 시편가사를 사용하여야 하며 성악만을 사용해야한다고 주장하였다.
(6) 1543년 기독교 강요 제3판은 1542년 "독자들에게 보내는 서한"에 대한 부연 설명이다. 여기서 칼빈이
주장한 시편가의 음악적 특징들은 가볍거나 경박해서는 안 되고, 장중함과 위엄을 지녀야 하며, 다른 하
나는 가사가 선율보다 우선적이므로,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면서 노래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1543년 서
한에 대한 첨가에서는 음악이 적절하게 조절된다면 사람을 영적인 생활로 고양시킬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
리고 말과 음악의 결합은 매우 중요하므로, 교회음악의 가사는, 성경에 있는 시편이나 캔티클을 사용해야 한
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시편가를 노래함에 있어 마음의 전적인 몰입을 요구하며, 청중이 무엇을 노래하고 있
는가를 알면서 노래하는 것을 요구한다.
2) 칼빈의 제네바 시편가 탄생 배경
칼빈은 마틴 루터가 카톨릭 의전과 행사들을 보전하는 것에 대해 비판하며, 성경에 없는 가사에 의해 노
래하는 것을 금한다. 그 결과 칼빈의 종교개혁에서 교회음악의 가장 중요한 산물인 시편가(Psalter)가 탄생되
었다. 이 시편가는, 규칙적인 박자와 운이 있는 자국어 시편 번역의 운율시에 새로 작곡한 선율 또는 대중적
인 곡조나 플레인송(plainsong) 에서 선택한 선율을 붙이는 것이다.『제네바 시편가』(Genevan Psalter)가
탄생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1539년 『스트라스부르크 시편가』
제네바에서 추방당한 칼빈은 스트라스부르크(Strasbourg)에 머물게 된다. 시편 번역에 관심을 가지고 있
었던 궁정시인 마로(Clement Marot, 1497-1544)를 만나게 되어 칼빈의 첫 번째 시편가인『스트라스부르크
시편가』를 출판하게 된다. 이 시편가는 22곡으로 19편의 시편가와 십계명, 시므온의 노래, 사도신경으로 구
성되어있고, 그 중 13곡이 마로에 의한 것이었다.
(2) 1542년 『제네바 시편가』(1542년 판)
1541년 칼빈은 제네바로 되돌아갔고, 1542년 마로에 의해 시편이 운율시로 번역되어
30편의 시편
을 번역하고 운문화하여 시편가를 만들었다. 이 때 마로가 이단자로 몰려 곤경에 처하게 되어 칼빈이 가 있
는 제네바로 도피하여 만나게 된다. 칼빈은『마로의 시편가』(1542년 판)를 공인하게 되었고, 계속적인 공동
작업으로 19편의 시편 운문화 작업을 하였다. 1542년에는 칼빈의 프랑스 운율의 두 번째 시편가이며 제네바
최초의 시편가가 "교회의 기도와 찬양형식(La Forme des Prieres et chantz ecclesiastiques)"이라는 제목
으로 출판되었는데, 이것이 『제네바 시편가』(1542년 판)이다.
(3) 1551년 『제네바 시편가』(1551년 판)
- 2 -
유능한 작곡가 부르주아(Louis Boureois, 1510-1561)가 1541년부터 10여년간 시편가의 멜로디와 화음
을 붙이는 작업을 하여 제네바 시편가를 완성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1544년 마로가 지병으로 사망하자,
칼빈은 시편 운문화 작업을 함께 할 인물을 찾던 중, 1548년 제네바를 방문한 베즈(Theodore de Bèze,
1519-1605)를 만나 시편 운문화 작업을 같이하게 된다. 1551년 마로의 19편과 베즈에 의해 운문화된 34편
이 추가되어 "불어로 운문화된 다윗의 83개의 시편(Pseaumes Octantetrois de David mis en rime
François)"이 완성 되어, 각 시편에 선율이 붙여진 시편가(1551년 판)가 출판되었다.
(4) 1562년 『제네바 시편가』(1562년 판)
1562년 16세기 프랑스의 대표적인 음악가 구디멜(Claude Goudimel, 1505-1572)과 르 쥔(Claude Le
Jeune, 1528-1600)이 『제네바 시편가』의 선율들을 화성화 작업하여, 1562년 파리에서 4개의 파트북
(part-book) 형태로 출판하였다. 같은 해인 1562년 제네바에서『제네바 시편가』가 완성되는데, 이때에는
150개의 시편, 10계명, 시므온의 노래, 식사 전후를 위한 식사기도(table prayers)들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이후 구디멜은 곧바로 화성화 작업에 들어가 1564년 시편가를 완성하게 된다. 이 시편가는 4개의 파트북
형태로 출간되었고, 그 중 최상성부인 수페리우스(Superius)와 콘트라(Contra)만이 현존한다. 1565년 기존과
같은 방법의 새로운 작품이 나왔는데, 그 중 수페리우스와 콘트라 그리고 테노르만이 보존되어있다. 같은 해
제네바에서 프랑소아즈 자끄(François Jaqui) 후계자들이 구디멜의 작품을 가지고, 4개의 파트북을 하나의 책
으로 합치는 형태로 변형하여 출판하였다. 그는 1562년에 출판하였던 『제네바 시편가』의 세팅을 변형시켜
테노르(tenor)에 주선율(cantus firmus)을 두고, 각각의 멜로디 음들을 화성화 하였다. 또한 멜로디의 두 번째
세팅을 위해, 자유로운 작곡기법과 정교한 대위법을 도입하였다. 구디멜의 시편가집『CLAUDE GOUDIMEL
OEUVRES COMPLÈTES』에는 호모포니(homophony) 작품 125개와, 폴리포니 구성(polyphony texture)의
작품 29개가 포함되어 있다.
3) 제네바 시편가의 보급
1600-1685년까지 90판 인쇄
4) 제네바 시편가의 영향으로 발간된 시편가
앵글로-제네바 시편가(Anglo-Genevan Psalter, 1561년)
영국 메리 여왕이 개신교 박해(1553-1558)로 영국을 떠나 독일로 피신하였다. 그 일부가 1555년
제네바로 이주하고, 녹스가 담임한다. 이들이 제네바 시편가에 감동되어 시편가집 발간.
영국시편가(English Psalter, 1562)
메리 여왕 죽고 1560년까지 피신했던 영국 개신교들이 제네바에서 배운 시편가를 가지고 영국으로
돌아가서 발간.
스코틀랜드 시편가(Scottish Psalter, 1564)
녹스 목사가 1559년 스코틀랜드로 귀국하여 1564년에 발간.
네델란드 시편가(Dutch Psalter, 1566)
청교도들이 미국에 오기 전에 네델란드에 먼저 들렸을 때는 1566년 다신(Peter Datheen)이 제네바
시편가를 번역, 편집한 네델란드 시편가가 널리 사용되고 있었다.
에인스워즈 시편가(Ainsworht Psalter, 1612)
네델란드 시편가를 편집해 1612년에 암스테르담에서 에인스워즈 시편가를 발간하여 사용하다가 미국
으로 가져가므로 칼빈의 시편가가 미국에 그대로 전파되게 된 것이다.
베이 시편가(The Bay Psalm Book, 1640)
칼빈의 제네바 시편가는 1620년 미국의 메사추세츠 플리머스에 정착한 청교도들에 의해 미국에 전해
지게 된다. 1628년 프랑스와 네델란드에서 온 이주민들은 제네바 시편가와 네델란드 시편가를 사용
하였는데, 곡은 같은 것이었으며, 주로 부르주아의 곡이었다. 1638년경 더 많은 영국인들이 이주하였
을 때, 이들은 새 시편가를 만들었는데 이것을 베이 시편가라고 부른다. 곡조가 붙은 책은 1698년에
야 발간되었다. 이 베이 시편가는 미 동부 식민지교회의 중심적인 회중찬송집이었다.
2. 한국어판 칼빈의 시편찬송가
1) 탄생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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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29일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총회 신학부 주관으로 ‘시편 찬송가 공청회’가 개최되었다. 이
공청회에서 본인은 ‘시편찬송가에 관한 교회음악적 관점’이라는 발제를 통해, “각 나라의 시편찬송은 찬송가
의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현재 다른 나라의 찬송가는 시편가를 별도로 구분하여 편집되
어 있는데 비하여, 우리나라 찬송가(2006)에는 시편가의 구분이 없고, 일반 찬송 속에 칼빈의 제네바
시편찬송 2곡(1장 ‘만복의 근원 하나님’, 528장 ‘날 구속하신’)과 스코틀랜드 시편찬송 1곡(131장 ‘다
나와 찬송 부르세’) 그리고 소수의 시편의 내용 찬송들이 있다는 설명과 함께 시편찬송의 중요성을 강조
하였다. 이러한 발제를 통해 제안된 내용들이 반영되어 같은 해 10월에 ‘시편찬송가 편찬위원회’가 만들어졌
으며, 동 위원회에서는 ‘한국 시편찬송가’(가칭) 발간하기로 하되, 일차적으로 칼빈의『제네바 시편가』를 발
간하기로 하였다. 이는 한국교회사에 있어서 매우 소중하고 중요한 교회음악 산물이라 할 수 있다. 21세기에
이루어진 이러한 작업을 통하여, 하나님께 드려지는 최상의 교회음악을 만들기 위해 심혈을 기우려 얻어진
산물인 칼빈의『제네바 시편가』를 우리말로 찬송할 수 있게 된 계기가 만들어진 역사적인 사건이 되었다.
칼빈 탄생 500주년 기념일인 2009년 7월 10일에 한국어판 『칼빈의 시편찬송가』(Calvin's Genevan
Psalter)가 한국 땅에 최초로 출판 소개되었다.
2) 한국어판 칼빈의 시편찬송가의 보급
2009-2016년까지 2판 3쇄 발행
3) 현대적 활용의 예
칼빈의 시편가는 현재의 찬송가와 비교해 볼 때 마디와 박자의 구분이 모호하며, 악구가 불규칙하고, 선
율의 음역이 좁고 유사하지만 불규칙하다. 이러한 이유는 칼빈이 음악적 내용보다는 가사에 중심을 두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현재 마디와 박자를 사용한 찬송가와 같이 현대적으로 악보화하여 널리 보급
될 수 있도록 한다. 다음에 칼빈의 시편가 관련된 본인의 창작곡집과 논문을 소개한다.
(1) 칼빈의 시편가 주제에 의한 『주성희 피아노 변주곡집』
① '시편 1편' 주제에 의한 7개의 변주곡 ② '시편 23편' 주제에 의한 6개의 변곡곡
③ '시편 107편' 주제에 의한 7개의 변주곡 ④ '시편 121편' 주제에 의한 8개의 변주곡
⑤ '시편 134편' 주제에 의한 10개의 변주곡 ⑥ '시편 150편' 주제에 의한 8개의 변주곡
칼빈 제네바 시편가의 현대적 활용의 예로 제시되는『주성희 피아노 변주곡집』에서 의도한 것은 시의
분위기를 잘 표현하도록 하였고, 여섯 개의 작품 모두 적어도 한 변주에서는 한국음악의 소재를 사용하였으
며, 각 곡의 분위기에 적합한 풍부한 음향을 시도하였다. 그 결과 이 작품은 16세기와 21세기 음악의 만남,
한국과 서양 중세 음악어법의 만남 그리고 선법과 화성의 현대적 어법을 통한 만남을 시도한 결과물이다.
(2) 데스칸트가 있는 칼빈의 시편가
(3) 칼빈의 시편가와 관련된 논문
① “교회음악 역사적 발전에 비쳐 본 ‘칼빈의 음악신학’.”『총신대학교 논문집』제12집 (1992): 169-206.
② “『찬양가』(1894년)의 편집구조와 내용에 관한 연구.”『음악연구』제34집(2005): 151-196.
③ “교회음악적 관점에서 본 ‘시편가’에 관한 연구.”『음악연구』제39집(2007): 37-76.
④ “칼빈의 시편가 주제에 의한 ‘주성희의 피아노 변주곡’에 관한 연구.”『개혁논총』제15권(2010): 265-326.
⑤ “칼빈의 예배음악 신학에 비춰본 한국 찬송가의 나아갈 방향.”『개혁논총』제31권(2014): 265-326.
3. 맺는 글
시편가는 구약시대의 공인찬송가였다. 신약시대에도, 로마교회시대에도 시편가는 찬송의 중심에 있었
다. 종교개혁시대에 칼빈은 진정한 찬송은 시편가라는 신념으로 프랑스어 시편가를 창작하여 회중찬송
으로 보급하였고, 루터는 독일어로 독일찬송의 가사와 곡을 모두 창작하여 회중찬송으로 불렀다. 이러한
창작찬송 작업은 찬송을 잃어버렸던 회중에게 다시 찬송을 되돌려 주게 되었고, 세계의 음악역사를 바
꾸어 놓았다.
찬송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다양하게 변해왔고, 시편도 각 나라의 언어와 가락으로 불렸지만, 칼빈의
표현대로 시편은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찬송이며 불변의 찬송이다. 그러므로 시편을 언어로서가 아닌
회중찬송으로 회복되어, 교회마다 널리 불려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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