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교회 성경해석학 개론(기고문4)
6. 대표적인 기독교 성경해석학의 오류와 극복
문법적인 오류(2)
요약
복잡한 구문론적 단위는 단일한 단어 단위보다 훨씬 더 많은 오류가 유발될 변수들을 가진다.
관련하여, 그것에 대한 분석이 반드시 전제됨이 당연하나, 지난 수십년 간의 성경 연구에서 구문
론적인 분석은 그리 인기가 없었다는 점과 그것의 하위체계를 이루는 몇몇 문법적인 오류들은 전
공 논문 정도에서 취급해야 할 정도로 복잡한 문제점들을 제기할 수 있음을 반드시 염두해야 한
다. 즉, 구문적 단위부터 문법적인 단를 거쳐 단일한 단어 단위까지 각각에서 성경을 올바로 해
석하기 위해, 많은 변수들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1. 신약 성경 헬라어의 유연성(flexibility)
언어는 시간과 함께 변한다. 특히, 언어를 이루는 단위인 구문은 덜 조직적이 되며, 예외는 늘
어가고 형태론은 간소화 된다. 다시 말해, 비교적 더 조직적인 고전 헬라어 시대의 문법을 그것
의 후대에 기록된 헬라어 신약 성경에 곧장 적용할 수 없다. 즉, 고전들에서 훈련 받아온 문법학
자들은 신약을 읽을 때, 실수들을 하지 않도록 헬레니즘 헬라어를 다시 배울 필요가 있다.
2. 다양한 시제와 태와 관련한 오류들
‘시제’가 ‘헬라어 시제들’을 가리키는 매우 정확한 방법이라는 견해가 있는데, 꼭 그렇지는 않다.
예컨대, 현대의 대다수 학생들은 시제(tense)라는 단어를 시간적인 개념으로 상기하나, 점점 더
많은 헬라어 문법학자들은 헬라어 시제의 기본적인 의미론적인 의미는 ‘양상(aspect)’이라고 주장
한다. 즉, 그것은 행위를 제시하기 위해 저자가 선택한 방법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 말을 이해
하기 위해, 추후 일반적으로 헬라어 문법책에서 전개하는 ‘표준’ 범주들로 시작하여 난점들과 오
류들을 지적한 후 양상적(aspectual)인 접근을 구체적으로 논할 것이다.
A. 아오리스트(부정과거, 단순과거형) 시제
프랜크 스텍은 아오리스트 동사가 쓰인 행동이 반드시 ‘단 한번의’ 혹은 ‘완성된’ 행동으로 추론
됨을 문제시 한다. 다시 말해, 거의 무조건 아오리스트 동사가 종종 순간시점(punctilar, 하나의
순간적 시점을 가리키는) 시제로 간주되는 현상황에 의문을 던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많은 학자들은 아오리스트 동사가 사용된 롬5:12의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다’와 같
은 구절을 아담이 죄를 범할 때의 단 한번의 행위를 가리켜야 한다고 주장하며, 롬 12:1에서 몸
을 드리는 것은 단 한 번의 헌신이며, 계3:19에서 언급하는 회개를 단 한번의 행위라고 주장한
다.
물론, 이는 신학적으로 옳은 결론이다. 아오리스트 동사는 대게의 경우, 그 행동이 고유한지 혹
은 반복되고 있는지, 기동적인지 순간적인지, 과거의 것인지 혹은 성취된 것인지를 상술하지 않
고, ‘단순히 행동 그 자체’를 가리킨다.
그렇다. 방금 지적되었듯, 한편으로 위 성경구절은 아오리스트의 성격에 근거하여, 추론한 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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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으로 또는 대부분의 적용가능한 해석 중 하나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모든 아오리스트가 그런
식으로 쓰이는 것은 아니다.
관련하여, 많은 예가 존재하는데, 이는 단순과거형(아오리스트) 시제가 다양한 문맥에서 다양한
의미를 가질 수 있음으로 바꾸어 말할 수 있다.1) 예를 들어, ‘말했다.’는 그것이 적시적으로 의도
된 상황에 따라, 화자의 소망을 포함하거나 본문 속 청자를 비판하거나 본문 밖 독자에게 특정
행동을 유발하고자 사용되기도 한다. 이는 그것이 발화 또는 기록됨에 있어, 그것이 과거의 어떠
함을 의도할 뿐 실제로 단회적인 행위이든 그렇지 않든 아무 상관 없을 수 있음을 전제한다.
즉, 단순과거형(아오리스트, 부정과거) 시제는 특정한 문맥 속에서 대단히 광범위한 행위를 묘사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이는 다른 시제보다 의미론적 윤곽을 뚜렷하게 만드는 특성이 부족하다
고 말할 수 있다.
※ 아오리스트(aorist: ‘없는’을 뜻하는 접두어 ‘a’와 ‘궤적’, ‘영역’을 뜻하는 라틴어 orbis의 합
성임)는 이름 그대로 장소가 없고(without place), 불확정적(undefined)이다.
B. 중간태(미들 또는 디포넌트)
중간태와 관련한 오류 간운데 가장 많은 것은 그것을 반드시 재귀적이든지-주어가 자기 자신에
게 하는 행동-혹은 주어가 스스로 하는 것이라 전제하는 것이다. 이는 많은 책에서 볼 수 있으
며, 대개 인기 있는 교리를 떠받치기 위한 목적에 기인한다.
대표적으로 고전13:8(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
식도 폐하리라)에서 중간태 동사 ‘포손타이(그칠 것이다)’를 예로 들 수 있다. 중간태를 위와 같이
이해하는 자들에 따르면, 혀는 누군가 혹은 어떤 것에 의해서 파괴될(수동태) 필요가 없는데, 그
이유는 방언 자체에 내재된 특성 때문에 스스로 그치기 때문이다(중간태).
물론, 이는 많은 중간태를 이해하는 다양한 독법 중 하나이다. 그러나 중간태의 의미론적 범위
는 사실 대단히 넓다. 예컨대, 간혹 그것은 이태동사(deponent, 형태는 수동이고 뜻은 능동인
동사)가 되기도 하며, 때로는 재귀적인 행동-주어가 자기 자신에게 하는 행동-을 나타내는 데 사
용되기도 하며,2) 간혹 주어가 어떤 것이 행해지도록 허락하는 것을 암시할 때 사용되기도 한
다.3) 즉, 각 중간태 동사는 해석시 매우 조심해야 한다.
특히, 중간태는 한국어에서 자주 사용되지 않는 문법인데, 굳이 예를 들면, ‘(불가항력적 외부
요인으로 인해)나는 또는 그가 나를 말하도록 만들었다.’를 들 수 있다. 역시, 이는 그것이 사용
된 문맥에 따라 위 언급된 다양한 해석 중 특별히 하나를 의도할 수 있다.
3. 다양한 통사적(문장 성분적) 단위들과 관련된 오류들
A. 조건문
관련된 3개의 오류들을 지적할 수 있다.
첫째는 일반적인 오류다. 종종 ‘실’(real) 조건문이라고 부르는 제 1 조건문에서는 조건절은 사
실을 전제로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 오류다. 실제로 전제되는 것은 사실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여기서는 전제의 실제(reality of assumption)를 강조
하는 것이지 전제되는 내용의 실제(reality of content)를 강조하는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
다. 대표적으로 마12:27(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을 들 수 있다.
1) D.A 카슨, 성경 해석의 오류, 성서유니온선교회, 2009, p88
2) D.A 카슨, 성경 해석의 오류, 성서유니온선교회, 2009, p99
3) D.A 카슨, 성경 해석의 오류, 성서유니온선교회, 2009,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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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제 3 조건문(조건절에 ‘이안+가정법)’에서 몇몇 성취의 기대를 의심스럽게 하거나 혹은
그 반대라고 주장하는 오류다.4) 예컨대, 누군가가 타인에게 미래에 무엇을 소망하는지 발화하는
경우, 그것은 그것의 성취유무와 무관하게 개인의 감정표현을 의도할 수 있다.
셋째로 제 3 조건문의 귀결절에는 분명한 ‘시간 지시’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관련하여, 이
는 화자나 저자가 발화 또는 기록하는 시점을 고려하여, 적어도 특정 의도된 결말을 상대적 미래
로 설정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그 결말을 다른 관련 성경본문과 종합적으로 비교 분석하여,
구체화할 수 있다.5)
B. 관사 : 예비적 고찰
헬라어에서 정관사는 철저하게 분류하기 대단히 어렵다. 영어와는 달리 헬라어에는 부정관사가
없다. 그리고 헬라어의 정관사는 종종 영어의 정관사나 혹은 부정관사의 용례와는 판이하게 다른
기능을 한다. 지나치게 단순화시키는 것 같기는 하지만, 헬라어 관사의 기본 용례는 다음 같이
도식화할 수 있다.
표 1
용례1
용례2
관사
(a)한정적
(c)일반적인
무관사 (b)비한정적 – 즉, 정성의
(d)비일반적인(개별적인)
이는 놀랄 정도의 개념교차(crossover)가 있음을 보여준다. 즉, 관용적인 표현은 별개로 하더라
도, 문맥과 헬라어 본문을 많이 다루면서 성경 전체에 적용할 수 있는 독자의 축적된 ‘감’만이
적절한 통제 장치 역할을 한다.6)
C. 관사 : 그랜빌 샤프 법칙
※ 그랜빌 샤프의 법칙 : 만약 두 실명사(substantives)가 ‘카이’로 연결되어 있고, 둘 다 관사
가 있으면 그것들은 각각 다른 사람이나 사물을 지칭한다. 하지만 만약 첫 번째 것에는 관사가
있고 두 번째 것에는 없다면, 두 번째 것은 첫 번째 것과 동일한 사람이나 사물을 가리킨다. 물
론 그 법칙은 세 개 혹은 그 이상의 실명사들에도 적용할 수 있다.
오류의 발단은 그랜빌 샤프가 주의를 기울였던 것보다 훨씬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채 그랜빌
샤프의 법칙을 사용하는 데 있다. 사실, 샤프의 법칙은 대단히 복잡하다. 또한 분명히 그는 복수
명사를 자신의 법칙에서 제외시켰다(다른 한정(restrictions)들을 언급하지 않기 위해서).
따라서, 만약 한 관사가 ‘카이’로 연결된 두 복수 실명사들을 지배한다면, 그 관사가 어떤 측면
에서 하나의 전체 역할을 하기 위해서 둘을 하나로 묶고 있다 할지라도 두 실명사가 동일한 것
을 언급하고 있다고 볼만한 증거가 없다. 예컨대, 대표적으로 마6:1 등에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들을 묶어 놓은 것을 들 수 있다.7)
4) James L. Boyer, “Third(and Fourth) Class Conditions,” Grace Theological Journal 4(1983):
164-175
5) D.A 카슨, 성경 해석의 오류, 성서유니온선교회, 2009, p103
6) 이는 마치 구약성경 히브리어에서 ‘바브동사’가 존재하는 것과 비슷하다. 다시 말해, 문단을 나눌 수
있는 기능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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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샤프의 법칙에서 좀 예외적인 경우의 예인데, 계2:26에서 ‘그리고 이기는 자와 지키는
자’라는 다소 성가신 숙어를 들 수 있다. 이는 각 실명사마다 관사가 있지만, 해당 구문에서 2개
의 독립된 지시어들이 있어야 각각에 완전히 독립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해당 본
문에서 문맥적으로 각 실명사의 공통점이 강조 및 의도되기에, 그랜빌 샤프 법칙의 단순한 또는
우선적인 적용은 본문의 올바른 이해에 있어 옳지 않다.
D. 시제의 관련성
이 영역의 오류는 대개 동사적 형태로 수립되는 절과 절 사이의 관계에 적절하게 주의를 기울
이지 않기에 발생한다. 예컨대, 히브리서 3:6b(우리가 자랑하는 소망과 용기를 붙잡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다)와 히브리서 3:14(우리가 시작할 때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하게 잡으면, 그리스도
와 함께 참여하게 되었다-NIV는 ‘have come to share’라고 번역하고, 한글개역은 ‘참여한 자
가 되리라’고 미래형으로 번역하고 있다-)를 해석하면서, 마치 두 구절의 뜻이 똑같은 것처럼, 곧
‘하나님의 집의 구성원이 되는 것이 견인의 전제적 조건이다.’8)고 주장하는 경우다.
한편으로 이러한 해석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히브리서 3:14의 문맥에서 시제에 좀 더 주목한
다면, 해당 구절에서 그 밖의 다른 요소들을 볼 수 있다(물론, 그러하기에 번역본마다 약간씩 상
의한 해석을 제안한다).
예컨대, 당신이 지금, 현재에, 처음에 가졌던 확신을 끝까지 붙들고 있다면, 당신은 그리스도에
게 참여한 자가 이미 된 것이다(게고나멘-과거를 가리킴). 단, 한편으로 이 구절은 견인이 지금
요구되는 것이면서도, 또한 과거에 일어난 견인의 증거이기도 함을 내포한다. 다시 말해, 견인은
그리스도인이 이미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자, 현재적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를 함께 의도한
다. 이에, 문맥에 따라 특정 시제가 사용된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고 우선된다.
논리적 오류(3)
요약
‘논리’라는 단어의 의미는 용례에 따라 4가지로 구분된다. 첫째, 이론적이고 상징적인 수준에서
‘논리’는 일련의 자명한(axiomatic) 관계들을 가리키는 포괄적인 용어다. 둘째, 비전문적인 수준
의 일반적인 말에서 ‘논리’는 ‘실행할 수 있는(workable)’, ‘합리적인(reasonable)’과 같은 의미
를 가진 단어와 동의어다. 셋째, 논리는 종종 형식을 갖춘(formal) 주장 제기를 뜻하기도 한다.
넷째, 논리는 일반적인 말에서 제안들이나 견해를 가리킬 수 있다. 이 중 앞으로 다루려는 의미
는 첫 번째 것이다. 성경해석에 있어, 이 오류의 적용에 차이가 있다.
1. 잘못된 이접명제(disjunction) : 중립성 배제의 법칙에 부당하게 호소한 오류
의미론적인 분리는 가능할 수 있으나, 잘못된 분리-상보성(complementarity)이 용인 될 수 있
는 경우인데도 그릇되이 ‘양자택일(either/or)’을 용구하는 잘못이 아주 흔하며, 이는 공정하고
공평한 주석을 무너뜨릴 정도로 대단히 강력하다. 대표적으로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7) D.A 카슨, 성경 해석의 오류, 성서유니온선교회, 2009, p106
8) Lars, Rydbeck, “What Happened to New Testament Greek Grammar after Albert
Debrunner?” NTS 21(1974-75): 42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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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하며(호6:6)’라는 말씀에서 형식적으로는 분리적이나, 한편으로 이는 악한 행위를 하면서도
희생 제사를 드리는 것은 서로 함께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상기하도록 주신 충격 장치일 뿐, 희생
제사 제도를 폐지하자고 제안하는 것이 아님을 들 수 있다.
2. 구분을 인식하지 못한 오류
이 오류에 대한 좋은 예는 최근에 발표된 데이비드 C.스테인메츠의 논문이다. 이 논문9)은 x와
y가 어떤 면에서는 비슷하기 때문에 다른 모든 면에서도 비슷하다고 주장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
다. 그의 논문은 듣기에는 솔깃하지만 실제 자기 주장을 증명하지 못한다. 물론 성경은 그리스도
안에서 남자와 여자가 없다고 가르치고 있다.(갈3:28) 하지만 그렇다고 성경이 남자와 여자가 모
든 점에서 같다는 뜻으로 말하고 있는가? 아니다. 갈3:28의 문맥을 살피면 그 구절의 적용점이
칭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하나님 앞에 설 때 남자와 여자는 하나와 같으며 어느 쪽도
특별히 더 유리하지 않으며, 각각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무죄 선고를 받는 것이다.
3. 선택적 증거에 호소하는 오류
이는 어떤 증거를 대단히 선택적으로 사용한 나머지 다른 증거는 불합리하게 배제하는 오류를
보여주는 예이다. 예컨대, 고전 14:33~36에 호소하여 여성들은 늘 교회에서 잠잠해야 한다고 주
장하는 것을 들 수 있다. 분명 이 구절들 자체만으로는 그렇게 해석될 수 있으나, 그러나 이는
바울이 11장에서 한 말과 불가피하게 상충될 수 밖에 없다. 바울은 거기서 여자들이 어떤 상황
에서는 교회에서 기도와 예언을 해도 된다고 말하고 있다.(고전11:2~15)
4. 부적절한 삼단논법 사용의 오류
예컨대, 우스갯소리가 있다. “A-모든 개들은 동물이다. B-고양이는 동물이다. C-따라서 고양이
는 개다.” 이와 같은 삼단논법의 오류는 매우 많으며, 각 논법의 단계에 있어서 대전제가 그릇
되거나, 각 논리의 범주를 잘 못 이해함에서 시작된다.
곧, 성경에서 다음과 같은 2가지 예를 들 수 있다. “A-모든 것이 너희 것이며 너희는 그리스도
의 것이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다, B-모든 것은 예외 없이 모든 것을 다 포함한다, C-따라
서 모든 종교는 그리스도께 속해야 한다”, 그리고 “자기 입으로 고백하고 마음으로 사람은 누구
나 구원을 얻을 것이다, B-민수는 구원을 받았다, C-그러므로 민수는 자기 입으로 고백했고 마
음으로 믿었다.”, 그리고 “A-현재 직설법 한정 동사에 늘 계속의(durative) 뜻이 있다, B-요한일
서 3:6, 9의 동사는 직설법 한정 동사다, C-따라서 요한일서 3:6,9의 동사들에는 계속의 뜻이
있다.” 등이다.
5. 세계관 혼동(World-View Confusion)
이는 현실에 대한 우리 자신의 경험과 해석이 성경 본문 해석의 적절한 틀이라고 생각하는 오
류다. 하지만 일단 우리가 발견하는 피상적인 수준을 넘어서 대단히 다른 범주의 세계관들이 성
경 본문에서 사용되고 있고, 또한 중립성 배제의 법칙이 적용되고 있다.
예로 스와미 사트키타나다(Swami Satchitanada)는 “양심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저
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볼 것이기 때문이다(마5:8 KJV직역)”는 “자기 양심을 깨끗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는데, 이는 그들이 자기 자신(themselves)이 하나님 같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
9) Zane D. Hodge, The Gospel under Siege: A Study on Faith and Works(Dallas:Redencion
viva, 1981,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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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는 뜻이라고 해석한다.
재귀대명사를 부당하게 끌어들인 것은 별개로 하더라도, 그는 자신의 범신론으로 본문을 해석함
으로써, 성경의 하나님을 어느 정도는 비인격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존재
론적(ontological)인 ‘구분’도 없애버린다. 이러한 오류를 피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석자가 자신
과 본문 사이에 ‘거리두기(distanciation)’를 해야 한다. 본문이 말하고 있는 것과 그것과 똑같은
주제에 대하여 우리가 끌리는 것 사이에는 몇 가지 차이가 있음을 이해해야, 비로소 진정으로 본
문을 이해할 준비를 마친 것이다.
6. 진실(truth)과 정확성(precision)을 혼동하는 오류
종종 성경의 진실성은 명백한 부정확성으로 인해서 가치 절하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 두 범주
들을 혼동하거나 정확성을 가지고 진실을 한정하는 것도 일종의 오류다. 쉽게 말해, 성경을 해석
함에 있어, 그것에 기록된 진실과 정확성을 정확하게 각각 다루어야 한다.
다음의 예처럼 어떤 것도 정확성의 정도로 진실성의 문제를 한정하지는 않는다. A-나의 집은
내 사무실에서 멀지 않다. B-나의 집은 내 사무실에서 약 1.5마일 거리에 있다. C-나의 집은 내
사무실에서 1.6마일 거리에 있다.
7. 순전히 감정에 호소하는 오류
물론, 감정 그 자체는 본래 잘못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감정적인 호소는 종종 이슈들이나 이성
적 논증의 잠재적 결핍을 가릴 수 있다. 이 오류는 감정이 이성을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감정에는 논리적인 힘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있다.
예컨대, 한 작가가 다음과 같은 말로 다른 작가에게 반응한 것을 들 수 있다. “놀랍게도 스미스
교수는... 사실 고려하지 못했어요.” 만약 스미스 교수가 신약 성경에서 볼 수 있는 단어의 용례
에 관한 목록을 완벽하게 제시했다고 주장했지만 사실은 몇몇 중요한 용례를 빠뜨리고 있다면 물
론 그러한 누락은 진실 여부에 있어, 문제시 될만하다. 그러나, 만약 그가 완벽한 목록을 제시했
다고 주장하지 않았다면, 그 누락이 놀랍다거나 의외라고 말할 수 없다.10)
8. 부당한 일반화와 지나친 상술의 오류
이는 단지 우리가 그 본문이 말하기를 원하는 것과 부합하기 때문에 특정한 사항을 일반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어떤 본문은 실제 그 본문이 말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데 있다.
예를 들어 기독교 패미니스트들이 갈3:28을 근거로 그리스도 안에서 남녀의 역할 구별은 없어
졌다고 주장하는 것이 있다. 그러나 해당 성경본문에서 그들은 다른 상대들-노예/자유인, 유대인
/이방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폐지되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곧, 그들은 의도적으로 굳이 남녀 문
제에 자신들의 견해를 투사하여, 본문을 해석한다.
또, 지나친 상술(overspecification)의 경우는 몰몬교가 주장하는 렘1:5를 들 수 있다. “내가
너를 복중에서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다.”라는 구절인데, 그들은 예레미야가 임신되기 전부터 실제로 ‘영아(sprit child)’였으며,
‘지성’으로 존재했다는 자신들의 견해를 정당화시켰다. 이는 문맥적으로 그렇게 억지로 해석될 수
도 있으나, 그럴만한 근거들이 사실 전혀 없다. 이는 자신들의 교리를 지지하기 위해 그 본문이
10) 감정에 호소하여 어떤 방식으로든 스미스 교수의 누락을 청자에게 문제시 여기도록 화자가 유도한다
면, 이는 논리적으로 옳지 않은 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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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바를 지나치게 상술하는 것이다.
9. 잘못 진술하는 오류
놀랍게도 얼마나 많은 책들이나 논문들이 잘못된 정보를 주고 있는지 모른다. 만약, 우리가 그
러한 자료에 너무 지나치게 의존하면, 우리는 심하게 왜곡된 주해를 하게 된다. 웨스트(Wuest)는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요21:3)”는 동사와 그 동사의 현재 시제에 근거하여 베드로가 영원
히 자신의 고기 잡는 직업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러한 해석은 요한복
음의 문맥상 틀렸다. 이는 옛날의 문맥적으로 제자들의 변화를 이해하지 못한 주석가들에게나 지
지를 받을 수 있을 뿐이다.11)
10. 거만한 폐기처분(cavalier dismissal)의 오류
이는 상대편은 그냥 언급한 것에 지나지 않은데도 마치 실제로 자신의 주장을 다룬 것으로 생
각하는 데 있다. 한스 콘첼만(Hans Conzelmann)은 고전11:4~6에 대한 해석의 가능성 한 가지
를 제시하고는 그것을 버리기 위해서 ‘이 해석은 근거가 없다’고 단언한다.
그러나 성급하게 성경해설에 관한 상대측 주장을 폐기처분하여 그것을 무가치하게 만들고 동시
에 거슬릴 정도로 겸손한 척하기보다는, 그와 같은 (즉, 이상하고, 기묘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무언가를 제대로 들여다 보고, 겸손하게 마음의 한편에 정리해 두어야 한다. 이는 성경 본문 해
석을 근접적으로 또한 원접적으로 항시 올바로 검증하게 하는 도구이다.
11. 모호한 주장에 호소하는 오류
예를 들어, “바울이 과연 율법을 이러저러하게 이해했을까요?”라고 수사학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이것은 선택안(option)에서 제외되어 버린다. 그러한 선험적(a priori)인 호소
에는 더 이상 논리적인 힘이 없다. 그러나 물론, 이는 전적으로 부당한 것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수사학적인 질문은 진술되지 않은 전제에 기초하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핵심적으로 다른 관련 요인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이 주장이 결정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또한 잘못이다. 즉, 어떤 주장이 유효할 때조차도, 그것이 결정적이지는 않을 수 있음을 기억
해야 한다.
예를 들어, WCC에서 출간한 선언문12)을 들 수 있다. 이러한 가장 광범위한 동의를 얻기 위해
서 가능한 가장 모호한 말을 열심히 찾아내는 식의 주장은 칭찬할 만한 것이 못 된다. 그런 진술
들은 명백한 차이점들을 감추기 때문에 가치가 없다. 이 주장은 진정한 동의가 없는데도 외견상
의 동의만 강요하기 때문에 부정직하거나 부끄러운 진술들에 해당한다.
※ 이외에 실제로는 명백하게 부적절하고 적합하지 않는데도, 어떤 특정한 유비가 성경 본문이
나 성경의 주제를 조명해준다고 생각하는 “부절절한 유비 사용의 오류”, 제시된 주장이 명백하거
나 논리적으로 결정적이지 않는데도 주석가가 “명백하게”, “이보다 더 분명할 수는 없다” 혹은
이와 비슷한 “표현을 남용하는 오류”, 저명한 학자들이나 존경받는 목사들 그리고 귀한 저자들
다수의 사람들 혹은 다른 다양한 “권위들에 극단적으로 기계적으로 호소하는 오류” 등이 있다.
11) Kenneth S. Wuest, Great Truth to Live By from the Greek New Testament(Grand Rapids: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52), 116
12) D.A 카슨, 성경 해석의 오류, 성서유니온선교회, 2009,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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