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교회 성경해석학 개론(기고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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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교회 성경해석학 개론(기고문3)

개혁신학어벤져스 2023. 9. 20. 16:44
개혁교회 성경해석학 개론(기고문3)  
5. 개혁교회 성경해석학의 한계  
요약  
죄렌 키에르케고르는 해석학에 대한 3가지 비유를 든다. 그의 비유들이 주는 교훈은 독자들이  
해석의 목적을 말씀의 대면이 아닌, 텍스트에 대답하기 싫어서 회피하려고 끊임없이 읽는 법만  
추구함으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는 것”이다. 바로, 텍스트 안에는 독자의 해석 활동과 별개로 독립  
되어 있는 어떤 실재를 반영하는 무엇이 있는가 아니면 텍스트는 오로지 독자의 실재를 반영할  
뿐인가? 라는 질문에 해당한다.  
둘째, “연애편지”이다. 이는 언어적이며 역사적인 학문적 작업은 아직 진짜 읽기에 해당하지 않  
는다는 것이다. 그러한 작업은 거울 자체를 살펴보고 조사하는 것, 즉 거울을 통하여 거울 안을  
들여다보기보다는 거울 면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  
셋째, “왕의 칙령”이다. 이는 왕의 조례가 공포된 한 나라를 상상하는 것이다. 왕의 신복들은 그  
명령에 순종하는 대신에, 임의로 해석하기 시작한다. 곧, 아무도 왕의 조례에 준하여 처신하려고  
읽는 것이 아닌 해석의 다양한 제안만 하는 것이다.  
키에르케고르로 대표되는 소위 ‘포스트모던적 조건’은 한마디로 ‘의미에 대한 불신’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으나, 오늘날의 많은 해석자들은 점차 ‘의미’에 대해서 믿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어렵다고 보고 있다. 왜 의미가 믿지 못할 것이 되었는가? 이를 위하여, 의  
미란 무엇인지 정의를 내리되, 아직도 영향력을 끼치는 각각의 관점을 서술식으로 정리해 보겠  
다.  
먼저, 플라톤의 ‘크라툴루스’를 살펴보자. 크라툴루스는 소위 의미의 ‘모사론’을 믿는 것으로 보  
이지는 않는다. 쉽게 말해, 플라톤은 “만물은 유전한다(끊임없이 변한다)”는 입장은 무엇인가의  
변화로 말미암아 어떠한 참된 진술도 특정할 수 없기 때문에, 사람이 아무런 말도 해서는 안 되  
며 오로지 손가락으로 가리키기만 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관점은 언어  
도 세계도 계속 변화하는 흐름 가운데 있기 때문에 아무것도 참되다고 말할 수 없다는 ‘포스트모  
더니즘’의 사고로 발전한다. 물론, 이는 ‘의미란 무엇인가의 계속 변함으로 정의가 불가능하기에  
우리가 텍스트의 거울에서 우리 자신을 보지 않고 그것을 피하면서 읽을 수 있을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함으로 이어진다.  
시간이 흘러 종교개혁자들에게서 그 답을 구할 수 있다.  
첫째 비평 시기로 저자(인간이나 하나님)의 의도에 대한 관심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이는 텍스  
트는 그 저자의 의식을 독자가 복구시킬 때에 비로소 제대로 이해된다는 말로 요약된다.  
둘째 비평 시기로 지식의 문제와 의미의 인식론에 대한 문제가 제기됨에 따라, 문학적 지식의  
본성과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한 답변이 중요함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이 경향은 1940년대에 저  
자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리고, 대신 텍스트의 형식적 특징에만 초점을 맞추었음에 기인한다. 즉,  
이 비평적 초점은 바로 ‘해석적 합리성’의 방법에 대한 제안으로서, 예를 들면 텍스트가 무엇을  
말하는 지를 알기위해, 텍스트 자체의 형식과 구조에 대한 지식을 설명 및 강조한다.  
셋째 비평 시기로 독자의 문제와 의미의 윤리학의 문제에 직면하여 상기 언급한 1970~80년대  
- 1 -  
에 텍스트 실증주의를 배격하고, 그 대신에 독자의 역할을 검토함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이 견  
해는 텍스트를 저자와 독자로부터 독립되어 있는 대상으로 보았던 구조주의 사상에 대한 반작용  
이다. 곧, 독자가 구성하거나 혹은 해체하기 전까지 텍스트는 미완료 상태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달리 말해, 텍스트가 독자로 하여금 텍스트의 의미 구성에 참여하도록 초청할 수 있음이 강조된  
다.  
물론, 이외에도 추가적으로 텍스트의 해석에 있어 다양한 철학적, 문학비평적 방법이 존재하는  
데, 과연 우리는 그 모든 것을 이용하여, ‘이 텍스트에 의미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는 것일까? 오늘날 이 질문에 간단하게 그렇다고 대답하는 것이 점점 더 쉽지 않아지고 있음  
은 사실이다. 이 질문 배후에 철학적이며 신학적인 쟁점들이 많이 잠복해 있기 때문이다. 이 문  
제의 해결을 위해 필자는 “나는 이해하기 위하여 믿는다(크레도 우트 인텔리감)”라는 어거스틴의  
접근방식을 답으로 제시하며, 아래와 같이 간단히 요약한다. 이것 외에는 성경이라는 특수한 텍  
스트를 해석할 더 나은 방법이 없다. 특히, 그를 역사적으로 또한 신학적으로 중요한 교부로 설  
정한 개혁교회에서 말이다.  
어거스틴은 첫째, 언어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의 가능성을 믿었으며 둘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  
얻는 이해가 단어들 자체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믿었다. 셋째, 그는 그의 저서 ‘참된 종교에 대해  
서’에서 모든 이단설은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를 구별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라 서술하는  
데, 빗대어 보자면 텍스트와 그에 대한 주석을 구별하지 못하 것이라 말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문학적 이해의 도덕성과 관련해서 어거스틴은 자신의 최상의 해석 덕목, 즉 사랑을 강조한다. 이  
는 학문적으로 입증할 수 없는 것을 아무 것도 믿지 않기로 작정한다면, 인간 사회에서 안정적인  
것은 하나도 없을 것이라는 뜻이다.  
즉, 어거스틴에 따르면, 텍스트에 의미가 존재함을 믿는 것은 본질적으로 신앙 행위이되, 그러나  
이는 단순히 신앙 행위에 머무르지 않고 ‘해석자의 신앙 고백’에 해당한다.  
- 2 -  
6. 대표적인 기독교 성경해석학의 오류와 극복  
성경 해석의 오류(1)  
요약  
이번에는 성경의 용어들에 대한 단어 연구를 할 때, 반복해서 생기는 일단의 공통적인 오류들을  
설명하고, 그것들에 관한 몇 가지 예를 제시하겠다.  
1. 흔히 범하는 의미론적 오류  
A. 어근오류 : 가장 흔한 오류들 가운데 하나다. 어근 오류는 모든 단어는 실제로 그 형태나 구  
성에 있어, 그것이 기원한 특정 개념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전제하기에 발생한다. 그러나 의미  
가 전혀 다른 두 단어에서 어원이 같다고 하여 어원의 의미를 두 단어에 일괄적으로 적용하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매우 우스운 상황일 것이다.  
또한, 어원과 무관하게 실제 용례가 성경안에서 정해져 있는 경우와, 의미가 중첩된 경우에 둘  
사이의 차이를 굳이 분별하기 위해 어원을 따져 들어가는 것은 단어가 사용된 현실을 고려하지  
않는 실수이다. 관련된 예시로 ‘레헴과 밀하마’ ‘아포스톨로스와 아포스톨로’, ‘아가파오와 필로’  
등을 들 수 있다.1) 즉, 어원학적인 연구는 특정한 제한된 범위에서 사용가능하다. 예컨대, 통시  
적 단어 연구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것으로 입증된 의미를 분별해 내려고 할 때나, 특별히 단 한  
번만 기록에 남아있는 어구의 의미를 이해하려고 할 때, 이런 어원 연구는 매우 중요할 것이다.  
B. 의미론적 시대착오 : 이 오류는 어떤 후대의 단어 용법으로 그보다 시대적으로 앞선 작품을  
읽을 때 생긴다. 가령 초기 헬라의 기독교 교부들이 헬라어로 신약 성경의 저자들이 그들과 전혀  
다른 의미로 어떤 단어를 사용할 때, 발생하는 오류이다.  
이외에도 해석자가 본문의 단어에 의미론적으로 폐용된 의미를 부여할 때 오류가 발생할 수 있  
다. 예컨대, 장소적으로 성경 텍스트 중 한 단어의 의미를 코이네 헬라어가 아닌 더 넓은 범주인  
고전 헬라어의 용례를 인용하는 경우이다.  
C. 알려지지 않았거나 가능성이 없는 의미에 호소하는 오류 : 이 오류의 예들은 대단히 많다.  
개중에는 조사가 서툴렀거나 원자료를 확인하지 않은 자료들을 의존하였기 때문에 생긴 오류들도  
있고, 분명한 한 가지 해석을 해내려고 하는 마음 때문에 해석자가 공정함을 포기하였기에 새긴  
오류들도 있다. 또한, 본래부터 가능성이 없었거나 입증되지 않은 의미인데도 상세하게 변호를  
받고 급기야 교회에서 명확한 의미로 굳어져 버리기도 한다. 어떤 구절에 대한 다른 해석이 석의  
적으로 거의 가능성이 없다면, 그 이론이 실제로 얼마나 불확실하고 언어학적으로 불분명한지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  
D. 참고자료를 안일하게 의존하는 오류 : 이 오류는 본래 있음직하지 않는 의미를 부여한 참고  
자료들에 호소하는 잘못에 기인한다. 요한복음 3:5에 나오는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않고는’ 이라  
는 표현을 예로 들자면, 두 단어에 대한 이상한 해석이 너무나 많다.2) 그러나 한 전치사에 지배  
를 받는 것을 볼 때, 이는 한 가지 탄생에 초점이 맞춰진 구문으로서 결론적으로 레위기적인 정  
결 의식에 대한 종말론적인 의미를 내포한다. 명백하게 허술한 논거인데도 그것을 변호하기 위해  
감정적인 배수진을 쳐놓고 여러 참고자료를 들이대는 것은 아무런 유익이 없다.  
E. 언어와 지성을 결합시키는 오류 : 이 오류의 핵심은 어떤 언어는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1) D.A 카슨, 성경 해석의 오류, 성서유니온선교회, 2009, p33~36  
2) D.A 카슨, 성경 해석의 오류, 성서유니온선교회, 2009,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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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과정을 심하게 규제하여, 그들은 특정한 형태의 사고를 할 수 밖에 없고 다른 패턴들로부터  
보호를 받는다고 전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만약 히브리적 사유와 헬라적 사유라는 말이 의미  
론적으로 한계가 있는 해당언어의 단어에 관한 지식에 근거하고 있다면, 우리는 ‘히브리적인 사  
유’나 ‘헬라적 사유’의 특성에 관한 모든 진술들을 의심해보아야 한다. 언어가 사고에 긴밀히 연  
관되어 있으나, 사고를 전적으로 지배하지는 않는다.  
F. 전문적인 의미에 관한 잘못된 전제 : 해석자는 어떤 단어에 늘 혹은 거의 늘 어떤 전문적인  
의미가 있다고 잘못 전제한다. 대개 이러한 오류는 일단의 증거나 혹은 해석자 개인의 조직신학  
에서 나온 것이다. 좋은 예로 ‘성령 세례’를 들 수 있다.3) 이는 은사주의자들에게는 ‘회심 후에  
주어질 성령의 부으심’을 언급하는 말로 만들고 싶어 하며, 반은사주의자들에게는 모든 신약 성  
경에 언급한 성령 세례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최초로 회심할 때 주어지는 성령의 부으심’이라  
고 결론지으려는 오류가 있다. 그들은 모두 어떤 단어를 문맥과 무관하게 그 뜻이 늘 일정한 전  
문용어로 취급한다.  
G. 동의어와 구성요소 분석과 관련한 문제들  
:
첫째, 동의성(synonymy)과 등가성  
(equivalence)이란 용어들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오류이다. 이는 증거가 허용하는 것  
보다 많은 방식으로 ‘동의어’를 같은 차원으로 생각하는 부당한 믿음이다. 둘째, 구성성분 분석  
즉 의미론적인 구성성분을 분리시킬 때의 오류가 있다. 가령 ‘Man’라는 단어에 있어, 인간, 어  
른, 남자라는 다양한 의미론적인 구성요소가 있다.4) 달리 말해, 분명 두 단어들 사이에는 의미론  
적 구분이 있으면서도 문맥적으로 크게 차이가 없을 수 있으되, 이때 조그마한 구분도 없다고 주  
장하는 것은 잘못 되었다.  
H. 선택적이고 선입관적인 증거를 사용하는 오류 : 이는 해석자가 하나님의 말씀이 말하는 것  
을 듣지 않고 자기가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할 수 있게 해주는 선택적인 태도이다.  
I. 부당한 의미론적 분리와 제한 : 많은 단어 연구들은 독자에게 선택의 대안들을 제시한 후 결  
정하도록 한다. 다시 말해, 상보성의 가능성이 있을 것 같으면 그 연구들은 의미론적 분리를 요  
구한다. 이는 요한복음 17:11의 ‘카토스(~처럼)’를 들 수 있다.5) 이 단어는 유비적인 진술을 유  
도한다고 한정지어 삼위일체를 주장하기도 하는데, 틀린 말은 아니지만, 무조건 이 단어를 이용  
한다고 해서 절대적인 유비 관계가 성립되지는 않는다. Ex)요15:4  
J. 의미론적 영역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오류 : 단어의 의미론적 범위를 부당하게 제한함으로써  
특정한 문맥에서 어떤 단어의 의미를 오해하는 다양한 방식들이 많다. 우리는 종종 특정 구절을  
주해할 때 가능성 있는 선택 사항들을 적절하게 고려하지 않으며, 자기도 모르게 정확한 것이 포  
함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한다.  
K. 확장된 의미론적 영역을 부당하게 채택하는 오류 : 특정한 맥락에서 어떤 단어의 의미는 그  
문맥 자체가 허용하는 범위보다도 훨씬 넓으며, 그 단어의 의미와 함께 그 단어의 전 의미론적  
범주까지 가져올 수 있다고 전제하는 오류이다. 특별히 설교를 할 때 어떤 단어를 넓은 의미로  
언급함으로써 해당 본문 안에서 그 단어가 갖는 독특한 역할을 희석시킬 수 있다.  
L. 헬라어 신약 성경의 셈어적 배경과 관련한 문제들 : 즉, ‘어느 정도까지 헬라어의 어휘가 신  
약 성경의 많은 부분들의 기초가 되었는지?’를 질문해야 한다. 예를 들어, 신약성경 중 구약 히  
브리어 단어의 의미를 고심하지 않고, 그것을 단순히 헬라어로 읽는 것은 방법론적으로 무책임하  
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70인역(구약성경 헬라어역본)을 읽을 경우 반드시 히브리어의 원래  
3) D.A 카슨, 성경 해석의 오류, 성서유니온선교회, 2009, p55  
4) D.A 카슨, 성경 해석의 오류, 성서유니온선교회, 2009, p60  
5) D.A 카슨, 성경 해석의 오류, 성서유니온선교회, 2009,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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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를 관찰하고 또한 헬레니즘 문학의 특성을 모두 파악해야 한다.  
M. 의미(sense)와 지시대상(reference)을 부당하게 연결하는 오류 : 지시대상 곧, 명시적 의미  
(혹은 외연적 의미, denotation)는 비언어적인 실재를 언어적 상징을 통해서 가리키는 것  
(indication)이다. 그러나 모든 단어들이 그것으로 구체화될 수 없다. 즉, 의미와 지시대상은 분  
명 구별되어야 할 것으로서, 그들의 관계는 늘 겸손하게 텍스트에 접근하도록 요구한다. 문제는  
성경학자들은 대부분 이러한 점을 언어학자들만큼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2. 문제의 핵심 : 문맥으로 극복하기  
단어 연구가 특별히 석의적 오류의 풍부한 원천이 되는 이유는 많은 설교자들과 성경 교사들이  
색인 사전을 찾을 수 있을 정도 또는 그보다 약간 더 해봐야 기초 헬라어를 할 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대개 문맥과 상관없는, 대단히 많은 사전적인 정보들에 불과하다.  
헬라어에 관해 언어학적 지식을 얻는 것만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핵심은 의미론(semantics)을  
즉, 의미는 단어의 의미 이상이라는 점이다. 거기에는 구, 절, 강화, 장르, 문체 등이 관련된다.  
그것은 통합적인 단어연구(단어들 간의 관계에 관한 연구) 뿐만 아니라 표준적인(paradigmatic)  
단어 연구(왜 이 단어가 저 단어 대신에 문맥적으로 사용되고 있을지 살펴보는 연구)가 필요함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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