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교부 바실리우스 삼위일체론의 신학적 좌위 - 장창한 목사(기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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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교부 바실리우스 삼위일체론의 신학적 좌위 - 장창한 목사(기고문)

개혁신학어벤져스 2023. 11. 6.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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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교부 바실리우스 삼위일체론의 신학적 좌위 - 장창한 목사(기고문).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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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실리우스를 연구소 홈페이지에서 검색하여, 더 많은 정보를 얻으시길 바랍니다.(링크를 누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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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부와개혁신학목회연구소(with 열린개혁교회)

주요 교회사적 인물들과 저작들을 현대개혁신학으로 분석하고, 이를 산하 교회와 출판사를 통해 목회에 적용(설교, 강의, 행정자료 제공)합니다.

cr-ministry-institute.tistory.com


 

 

동방교부 바실리우스 삼위일체론의 신학적 좌위  
아리우스주의와 1차 니케아 공의회1)를 중심으로 분석하기  
장창한 목사  
서론  
초기 동방교회에서 바실리우스와 그의 친동생인 니사의 그레고리우스, 그리고 바실  
리우스의 친구인 나지안즈의 그레고리우스는 세 명의 위대한 갑바도기아 교부로 불린  
다. 그 중에서도 특히 바실리우스는 탁월한 교회정치가로 두각을 보인다.2)  
바실리우스의 많은 작품은 대개 자신의 생활과 활동을 반영하는 교회 안의 실제 생  
활과 관련된다. 이러한 작품에는 유명한 소책자 ‘청년들이 그리스문학에서 배워야 하  
는 방법,’ 수많은 강해, 편지, 금욕생활에 관한 규칙서들, 방대한 교의작품인 ‘에우노  
미우스 논박’과 ‘성령론’ 등이 있다.3) 바실리우스가 전대에 받은 영향과 후대에 끼친  
신학적 영향을 그의 삶과 4세기의 시대적 상황을 통해 살펴보고, 짧게 논평하겠다.  
본론  
1. 바실리우스(AD330?~379) 당시 역사적 신학적 상황  
고대 교회에서의 주된 교리 논쟁은 삼위일체 논쟁(AD318~381)과 이후의 기독론 논  
쟁(AD381~681)으로 이어진다. 바실리우스와 가장 관련이 많이 되는 삼위일체 논쟁은  
알렉산드리아 회의(AD318)에서 아리우스가 정죄되면서 시작되고, 콘스탄티노플 공회  
의에서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가 채택되며 확정 및 종결된다. 그리고 기독론 논쟁  
의 시작은 콘스탄티노플회의(AD381)에서 아폴리나리스가 그리스도의 완전한 인성을  
부인했다는 이유로 정죄 받은 후, 제 6차 공의회(AD681)에서 종결된다.  
핵심적으로 바실리우스는 주로 삼위일체 논쟁의 후반부에 관여하며, 이는 정통파의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앙고백의 승리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 삼위일체 논쟁의 세 시기  
제 1기(AD318~325) - 논쟁의 시작과 정통파의 승리, 니케아 신경의 채택  
제 2기(AD325~361) - 아리우스파의 반격과 함께 정통파의 수난시대  
a. AD325~337 : 아리우스파의 복권과 정통파의 실권  
1) 이하, 본고에서 니케아 공의회는 1차를 의미한다.  
2) 그는 주교로 임명된 후 몇 년 내에 교회안팎으로 탁월하고 정평 있는 지도자가 된다. 그의 이러한 역  
할은 그가 사망한 뒤 발렌스 황제가 사망(AD378)하고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통치하기 시작하면서  
AD379) 나타나는 신학적, 교회정치적 해결에 직접 기여함을 통해 확인된다.  
3) H. R. 드롭너, 교부학, 분도출판사, p376-378  
- 1 -  
b. AD337~344 : 아리우스파의 동방에서의 득세와 정통파의 서방에서의 득세  
c. AD344~350 : 서로간의 화해의 모색  
d. AD350~361 : 아리우스파의 득세와 정통파의 수난시대  
제 3기(AD361~381) - 정통파의 재기와 삼위일체 교리의 확립  
시대적으로는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죽음(AD337)은 그의 세 아들이 제국을 분할 및  
계승하면서 일어난 권력투쟁을 일으키고, 이는 정치에 관련되어 교리 논쟁의 판도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콘스탄틴 2세는 서부, 콘스탄스는 중부, 콘스탄티우스 2세는  
동부를 차지하였는데 중부를 차지한 콘스탄스가 정통교리를 지지하자, 동부를 차지한  
콘스탄티우스 2세는 아리우스 주의를 포용하게 되었다.  
이후 콘스탄스가 콘스탄틴 2세를 죽이고, 서부 영토를 차지하게 되자, 콘스탄티우스  
2세는 동부에서 정통교리를 더욱 박해하게 되었다. 이후 콘스탄스가 마그네티우스에  
게 피살당하게 되자(AD350) 콘스탄티우스 2세가 마그네티우스를 멸하고 명실공이 로  
마 제국 전체의 지배자가 되었다(AD351).  
이 같은 정세의 변화는 정통파에게 대단히 불리한 시기였다. 아타나시우스가 동서방  
교회 대표들로부터 거듭 정죄당하고, 애굽의 사막지방으로 피신가게 된 것도 바로 이  
시기였다(AD351~362). AD 360년경에는 기독교회의 정통파가 거의 무너지고 아리우  
스파가 온통 지배하는 듯이 보였다.  
제 3기도 네 시기로 나누어지는데, 4명의 황제의 즉위 및 폐위와 함께 교회 교리가  
부침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첫째, 율리아누스 황제의 치세(AD361~363), 둘째는 죠  
비안 황제의 치세(AD363~364), 셋째는 발렌스 황제의 치세(AD364~378), 넷째로 테  
오도시우스 황제의 치세(AD379~?)이다. 이 시기 중에 아리우스 주의에 호의적이었더  
발렌스 황제 치하에서 잠시 정통파들이 박해를 받기도 하였다. 바로 이 시기에 아타  
나시우스가 피신하였다가 AD366년에 귀환하기도 하였고, 이 시기에 갑바도기아 신학  
자들이 감독들이 되면서 정통파 교리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하였다.4)  
좀 더 살펴보자면, 정치적 권력 투쟁과 더불어 동서방 교회의 갈등은 이후 더욱 심  
화된다. 그러나 279년 서방 황제 그라티아누스가 테오도시우스를 공동황제로 선출하  
였으며, 그 두 황제가 모두 니케아 신조를 고백하고 지지하면서 니케아파는 유리한  
정치적 상황을 맞이하였고, 동방과 서방을 아우르는 광범위한 연대를 이룩한다. 그리  
고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주도하에 381년 5월 공의회가 열렸다. 대략 150명 정도의  
주교들이 참석했으며 안티오키아의 멜레티오스가 지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 공의회  
의 가장 중점적인 문제는 성령론이었다.5)  
4) AD 370년에 Basillius가 Caesarea의 감독(소아시아 중부)이 되었고, AD372년에 그의 동생  
Gregorius가 Nyssa의 감독이 되었고, AD 374년에 Basillius의 친구 Gregorius가 Nazianzus의 임  
시감독이 되었다. AD375년 말에 니사의 감독 그레고리가 감독직에서 쫓겨났으나, 다시 AD378년에  
회복하였다.  
김영구, 「갑바도기아 교부들의 신학에 나타난 삼위일체의 위격들의 관계에 대한 연구」(안양대학교 신  
학대학원, 2006), p5~7  
5) 이양수, 「고대와 현대의 삼위일체론 연구」(장신대학교 신학대학원, 2009), p23-24  
- 2 -  
※ 니케아 신조와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의 차이점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는 아들에 대한 항목에서 ‘즉, 아버지의 본질로부터’, ‘하  
나님으로부터 비롯된 하나님’, ‘하늘과 땅에 있는’을 생략하고, ‘모든 시간 이전에’,  
‘하늘로부터(내려오셔서)’, ‘성령과 처녀 마리아로부터’, ‘우리를 위해 본디오 빌라도에  
게 십자가에 달리시고’, ‘묻히시고’, ‘성서대로(3일 만에 부활하여)’, ‘하나님 오른편에  
앉아계시다가’, ‘영광으로(오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다.’란 말을 추가하였다.  
2. 바실리우스의 생애  
주후 4세기의 대표적인 동방교부로 유세비우스와 아타나시우스 그리고 카파도키아  
세 교부, 즉 바실리우스,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 닛사의 그레고리우스가 있다.  
그 중에서도 ‘대’(Great)라는 별칭이 붙은 사람은 아타나시우스를 제외하고는 바실리  
우스밖에 없다. 그만큼 바실리우스는 괄목할 만한 교회 정치가이자 조직자이었으며,  
정통교리의 수호에 있어서 제 2의 아타나시우스로 기독교 교리의 옹호자였다.  
바실리우스는 아타나시우스가 알렉산드리아 감독이 된지 약 1년 후, 유세비우스가  
죽기 전 약 10년, AD330년 경 갑바도기아의 수도 카이사레아에서 태어났다. 그의 친  
가는 할머니 마크리나 1세가 기독교인이 된 후 가족 모두 기독교인이 되었으며, 로마  
제국 원로원 의원을 배출한 귀족 가문으로 부유한 집안이었다.  
그러나 막시미누스 다이아(AD305-311)황제의 기독교 박해 기간에 박해를 받아 많은  
재산을 빼앗겼고, 소아시아 폰투스 지방으로 피신하여, 온갖 고초를 겪으며 숨어 지냈  
어야 했다. 그의 외가도 경건한 기독교인 가정이었으며 외조부는 디오클레티아누스  
(AD284-305)황제의 박해 기간 중 순교하였고, 그의 외숙부는 교회의 감독이 되었다.  
바실리우스는 아버지 바실리우스와 어머니 엠멜리나 사이에서 10남매 중 장남으로  
어머니 엠멜리나에게서는 사랑을, 할머니 마크리나 1세로부터 신앙교육을 받고 성장  
했으며, 당시 소아시아 지방에서 명망 있는 수사학자이며 변호사였던 아버지로부터는  
수사학 등 초기교육을 받았다.  
이후 만 14세쯤 카이사레아에서 약 3년 동안 보다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게 되었다  
(AD343-347). 이후, 콘스탄티노플의 리바니우스 밑에서 학문과 도량을 닦았으며  
(AD347), 그 뒤 아테네로 가서 수사학과 철학을 공부하였는다.  
이때, 평생 절친한 친구였던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와 당시 황태자였던 배교자  
율리아누스를 만났다. 아테네에서의 유학을 마친 그는 누나 마크리나 2세의 권유로  
AD355년경 카이사레아로 돌아왔다. 그리고 누나 마크리나와 자신의 가정 수도공동체  
의 스승이었던 유스타티우스의 영향으로 회심하여 당시 카이사레아 감독이었던 디아  
니우스로부터 세례를 받았다(AD356). 그와 동시에 세속적인 성공의 꿈을 버리고 헌신  
된 삶에 대한 연구를 목적으로 시리아, 팔레스타인, 이집트를 두루 다니면서 수도원  
생활을 주의 깊게 살폈고, 갈수록 수도생활에 대한 열정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후 가족 영지가 있는 폰투스에서 수도생활을 시작한다(AD356-365  
- 3 -  
년경).  
바실리우스의 생애에 있어서 또 하나의 전환점은 AD364년에 카이사레아 교회의 장  
로가 된 일이었으며, 이때부터 그는 단순한 수도사가 아닌, 목회자 겸 교회정치가로서  
의 역할을 감당하게 된다. 당시 카이사레아 감독은 유세비우스로 신학적인 소양은 부  
족하나 사회적 지위가 높았던 인물이었으며, 자신의 감독직을 보완하고자 바실리우스  
를 장로로 임명했다. 그리고 사실상 카이사레아 감독 역할을 수행했던 바실리우스는  
유세비우스의 죽음으로 AD370년에 카이사레아의 감독이 된다. 그는 수도원을 설립하  
였으며, 곧 사람들의 호응과 사랑을 받기 시작하였고, 친구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  
스가 전혀 새로운 도시가 만들어졌다고 언급할 만큼 전염병 희생자들과 병자를 위한  
병원과 가난한 자들을 위한 집과 이방인과 나그네를 위한 휴게소 등 다양한 봉사기관  
들을 설립하였다.  
감독이 된 바실리우스는 삼위일체 논쟁의 전면에 나섰으며, 아리우스파를 지지하는  
황제 발렌스와 맞섰고, 정통교리와 신학적인 입장을 달리하는 교회지도자들에 대항하  
였다. 그로 인해 한때는 자신의 스승이었으나, 성령의 신성과 인격성을 부인하게 된  
유스타티우스와 AD373년경 결별하고, 성령의 신성을 주장하기 위하여 『성령론』  
(AD374-375)을 저술한다. 그러나 그의 금욕생활과 교회에 대한 염려는 그의 육신을  
약하게 하였으며 니케아 전통신앙이 승리를 거두기 2년 전인 AD379년에 숨을 거두  
었다. 그는 설교자와 신학자로서 위대했지만 영혼들의 목자와 교회의 감독으로써 더  
유명했으며, 수도원 운동의 역사에서도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다.6)  
3. 아리우스주의와 니케아 공의회  
초대 기독교인들이 복음을 처음 로마제국 도처에서 전파했을 때, 이들은 보이지 않  
는 하나님으로 인해 무신론자로 오해 받았다. 이에 학식이 많은 기독교인들은 전우주  
위에 최고의 존재가 있다는 헬라, 로마의 고전 철학자들의 말을 인용하여 전도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기독교를 받아들이게 하는 데에 기여하면서도 위험이 따랐다. 이  
는 성경의 하나님과 철학자들의 하나님 개념 사이의 분명한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  
다.7)  
이 같은 괴리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이 로고스교리인데,8)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바로 알렉산드리아의 아리우스가 하나님의 말씀 혹은 로고스가 하나님과 영원하게 동  
일한가(coeternal)하는 질문을 들고 나와, ‘그가 아니 계셨던 때가 있었다.’는 주장을  
6) 남궁규월, 「바실리우스 공동체에 관한 연구」(장신대학교 신학대학원, 2009), p4-6  
7) 성경의 하나님이 인격적인 하나님이며 직접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하나님이었다면 철학자의 하나  
님 개념(the supreme being)은 불변하고(immutable) 고통을 모르고 무감각한(impassible), 최고의  
존재로서의 비인격적 하나님이었다.  
8) “저스틴, 오리겐 등에 의해 발전된 로고스 신학은 물론 최고의 존재-아버지-는 ‘불변적’이고 ‘무감각  
적’인 것이 사실이지만 로고스, 말씀 혹 하나님의 이성(reason)이라고 하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인격  
적인 존재로서 불변적이고 무감각한 최고의 존재를 이 세상과 인간과 연결시킨다는 것이다.” 이형기  
『세계교회사I』, p208-209  
- 4 -  
한 것이다.9)  
이에 대해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제국 내의 모든 주교들을 니케아로 불러들여 325년  
6월 19일 니케아 황궁에서 ‘1차 니케아 공의회’를 개최하였다. 이 공의회는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에서 모인 사도들의 공의회 이후 열린 최초의 에큐메니컬 공의회였는  
데, 당시 5대관구들(pentarchy - 로마 대관구는 서방교회 중심이었고, 나머지 4개의  
알렉산드리아 대관구, 예루살렘 대관구, 안티오키아 대관구, 콘스탄티노플 대관구는  
동방교회의 중심지였음.)로부터 318명의 감독이 참석하여 정통적 삼위일체 교리를 처  
음 확정한다. 니케아 공의회에서는 ‘주께서 있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고 말한 사람  
은.... 가톨릭 교회에 의해서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라는 문구로 아리우스와 그 추종  
자, 그리고 끝까지 서명을 거부한 2명의 리비아 주교를 정죄한다.10)  
4. 바실리우스의 삼위일체론과 신학  
니케아회의의 결정 가운데서도 ‘본질’과 ‘위격’의 개념들은 동의적으로 사용했기 때  
문에 모호성을 띠고 있다. 결국 이 문제의 해결은 ‘본’과 ‘본체’의 개념을 구별하는 것  
으로부터 시작했고, 갑바도기아 교부들의 바른 이해는 니케아 종교회의 이후의 삼위  
일체 이해에 결정적 영향을 준다.  
특히 바실리우스는 ‘위격’을 이해할 때, ‘실체 안에서 독특한 특성들’로 설명한다. 삼  
위일체 논쟁을 궁극적으로 해결해 주었던 ‘  
’의 공식은 삼위일체  
의 첫 걸음 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이다. 바실리우스는 두 용어가 동일한 개념이 아  
니므로, 신성을 말할 때 무분별하게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두 용어의 구별  
을 말할 때, 그 의미가 무엇인지 다음의 글에서 가장 잘 살펴볼 수 있다.  
‘본질’(  
)과 ‘위격’(  
)를 구별하는 것은 ‘보편적인 것’과 ‘개별적인  
9) 결국 그는 말씀은 하나님이 아니고 모든 피조물들 가운데 으뜸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그의 아들에 대  
한 언급을 모아보면 다음과 같다.  
‘하나님은 언제나 아들이 아니었고’, ‘아들 또한 언제나 존재했던 것은 아니었다.’, ‘하나님 아들 자  
신은 무로부터 만들어졌고, 한때 그는 존재하지 않은 때가 있었다.’, ‘아들은 자신의 시작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고, 다른 피조물들과 같이 창조의 기원을 갖는다.’, ‘하나님은 홀로 존재하였고, 말씀은  
아직 존재하지 않았으며, 지혜도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이후 하나님은 우리와 같은 모양으로 만드시  
고자 하는 소원을 담아 특별한 존재를 만드시고, 그를 말씀과 지혜와 아들이라 불렀다. 그리고 아들  
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셨다.’  
Athanasius, Four Discourses Against the Arians, NPNF Second Series, vol. 4(Peabody,  
Mass. : Hendrickson, 1994), 308-09., by Roger E. Olson & Christopher A . Hall, The  
Trinity, p32 재인용  
10) 니케아 공회의에서 확정된 ‘동일실체(동일본질)’(  
)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단일성’(통일성)  
을 고백한 성격이라고 할 수 있지만, 삼위일체의 위격의 ‘독특성’(개별성)을 증거하지는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어거스틴 시대에 와서야 삼위일체는 ‘한 실체와 세 위격’(  
는 공식화된 형식이 된다. 이는 ‘세 위격 내의 한 실체’(  
)이라  
)로서 ‘한 실체’  
를 강조하기 보다는 ‘세 위격’에 강조를 두고 세 위격의 ‘특성’(개별성)을 설명하였다. 갑바도기아 교  
부들보다 앞서서 이후의 동방교부에 절대적 영향을 끼친 아타나시우스가 신성의 ‘단일성’(실체의 단일  
성)을 강조했다면, 갑바도기아 교부들 중에 선두 주자인 바실리우스는 ‘세 휘포스타시스’를 강조했다  
고 말할 수 있다.  
- 5 -  
것’을 구별하는 것과 같다. 예를 들면, 동물과 특정한 사람을 구별하는 것과 같다. 그  
러므로 신성을 말할 때에도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불의치한 정의를 내리지 않기 위  
해서 신성이란 하나의 ‘본질’(essence), 혹은 ‘실체’(substance)라고 우리는 고백해야  
하며,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에 대한 개념이 혼동되지 않고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특별한 위격’(  
)이라고 우리는 고백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구별된 각 특성들에 대해서 인식하지 못한다면, 존재의 일반적 사고에  
따라서 하나님 개념을 형성한다면, 우리는 신앙을 건전하게 표현할 수 없게 된다. 그  
러므로 우리는 ‘개별성’을 ‘공통성’에 덧붙여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해야만 한다. 신성  
은 ‘공통’이고 아버지 되심은 ‘개별적’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둘을 묶어서 ‘나는 아버  
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해야 하며, 이와 같은 방식에 따라서 아들에 대해서 말할  
때도 ‘공통성’과 ‘개별성’을 묶어서 ‘나는 아들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해야 한다.  
이와 같이 성령에 대해서 언급할 때도 명칭을 통일성 있게 사용해서 ‘성령 하나님  
안에서’ 라고 말해야 한다. 그러므로 한분 신성을 고백할 때에 더할 나위없는 ‘통일  
성’이 보존되는 결과가 있게 된다. 동시에 각각의 구별된 고유성 안에서 ‘독특한 위격  
의 고유성’을 고백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에 ‘본질’(essence), 혹은 ‘실체’(substance)  
를 ‘위격’(hypostasis)과 동일시하게 되면, 다만 세 개의 위격만을 고백하게 되며, 세  
개의 위격만을 주저하여서 말한다면, 사벨리우스의 오류에서 제대로 빠져나오지 못한  
다는 정죄를 받게 된다.11)  
즉, 많은 현대의 사람들의 질문의 원인처럼 당시의 사람들은 ‘세 위격’과 ‘세 본질’을  
같은 개념으로 이해했고,  
를 고백하든  
를 고백하든 아무 차이가 없는  
것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바실리우스는 본질(substance)과 위격(hypostasis)을 엄  
격하게 구별한다. 바실리우스는 이렇게 두 용어에 대해서 뜻이 다른 의미로서  
는 ‘실체’의 개념으로, 그리고  
는 ‘위격’의 개념으로 사용하였다. 또한, 그는  
‘본질’ 혹은 ‘실체’에 대해서 언급할 때, 한 하나님은 ‘수’에 대한 것이 아니고, ‘본질’  
과 ‘실체’에 있어서 ‘한 하나님’임을 설명하며, 이는 위격들이 공유하고 있는 ‘신적 실  
체’가 단순하고 분할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12)  
11) 라틴어의 One Godhead in three persons라는 말이 있다. Godhead는 본질, persons는 위격이다.  
라틴어의 persons는 persona라는 뜻으로 현대의 의미와 약간 다르게 ‘배우가 무대에서 연극을 할  
때, ‘한 인물’의 ‘여러 모습’을 보여줄 때 쓰는 가면을 의미한다. 바실리우스는 이 persons를 프로소  
폰(  
)이라는 단어로 그의 책(Basilius, Ep, ccx, p5 & Basillius, Ep, lii, p3)에서 설명하기  
도 한다.  
Basil, Epistolae(The letters). p236  
12) 한 하나님이신 성부, 한 독생자, 한 성령이 계십니다. 우리는 위격의 각각을 독립적으로 선포해야 합  
니다. 그리고 우리가 ‘수’를 세어야할 때, 우리의 무지한 산술로 인해 하나님들이라는 ‘복수의 개념’으  
로 끌려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덧셈 방식으로 ‘단일한 것’을 다수로 점차 증가시  
키면서 ‘하나’, ‘둘’, ‘셋’이라고 말하거나, 또 ‘첫째’, ‘둘째’, ‘셋째’라고 말해서도 안 되기 때문입니  
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까지 ‘두 번째 하나님’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Basil, De Spiritu Sancto, CAPUT XVIII. p44  
- 6 -  
1) 성부의 특성  
성부가 누구신지에 관한 문제를 다룰 때, 바실리우스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a. 성부는 다른 두 휘포스타시스의 기원이고, 성자는 낳음을 받은 말씀이며,  
성령은 나오신 건데 성부의 일부로서가 아니라 완전하시고 자기 자신 안에 심사숙  
고하시는(contemplate) 하나님으로서 나오셨다.(삼위일체의 기원에 관해)13)  
b. 성자가 구하는 자이고, 성부는 구함의 대상이며, 보혜사는 보내심을 받은  
자이시다.(휘포스타시스의 활동에 관해, 요14:16)14)  
c. 모든 이들 위에 계시는 하나님은 자기 자신의 휘포스타시스의 어떤 특별한  
표시를 가지고 계신다. 그는 성부이시고 그 분만이 자기 자신의 존재의 원인이 없으  
시며 그 표시로 따로 그 분 자신을 알 수 있다.(성부 하나님의 개인적 특징에 대해)15)  
즉, 그의 삼위일체의 제 1 휘포스타시스의 특징은 ‘부성이나, 아들 없이 그 특징이  
있을 수 없고, 성자가 계시기 때문에 그분이 성부가 되신다. 이에 성부를 보면서 우  
리가 성자에게 돌아오게 되어 있다.’고 정리할 수 있다.  
2) 성자의 특성  
성자가 누구신지에 관한 문제를 다룰 때, 바실리우스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리가 그로(성자로)인하여 은혜와 섬김을 받고 있고 그(성자)가 우리에게 은  
사의 은혜를 쏟아주시며 자신을 통해서 우리를 성부 하나님께 인도하신다.16)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하나만을  
지시하지 않고,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과 위대하심을 뜻하는 이름만을 지시하지 않는  
다. 성경은 가끔 아들의 이름을 알면서 본질의 특징을 보여주는 하나님의 이름을 사  
용하고 있는데, 이른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빌 2:9)과 참된 자(요일5:20)로,  
또한 독생하신 하나님(요 1:18),하나님의 능력과 지혜(고전 1:24), 그리고 말씀(요 1:1)  
으로 불리고 있다. 성경은 하나님을 수많은 다른 이름, 즉 목자와 왕, 의사와 신랑,  
길과 문, 기원과 떡, 도끼와 반석으로 부른다. 그 이름들은 본질 아닌 내가 이야기한  
대로 활동의 다양한 모습, 즉 자기 자신의 창조물을 긍휼히 여기면서 그것을 필요로  
한 사람들에게 주신 이름들이다.(성자의 휘포스타시스의 개인 특징에 대해)17)  
13) Saint Basil, On the Holy Spirit.(Василий Великий,Избранные творения Беседа 24Против  
савеллиан,Ария и аномеев).(Moscow: Sretinsky monastir,2007), р373  
14) SaintBasil, On the Holy Spirit.(Василий Великий,Избранные творения Беседа 24Против  
савеллиан,Ария и аномеев).(Moscow: Sretinsky monastir,2007), р370  
15) Saint Basil, On the Holy Spirit.(러시아어 Письмо Григорию брату о различии сущности  
иипостаси (Svyato-troickaya sergieva Lavra,1901г), p83-85  
16) Saint Basil, On the Holy Spirit(Василий Великий,Избранные творения Ч.3.ОСвятом Духе  
к Амфилохию,епископу Иконийскому), р19  
17) Saint Basil, On the Holy Spirit(Василий Великий,Избранные творения Ч.3.ОСвятом Дух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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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그에게 성자는 성부로부터 낳았고 성부의 복사가 아닌 성부의 형상이시고 동일  
한 본질이며, 형상은 복사가 아니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특징을 가지고 있고 우리가  
한 휘포스타시스를 통해서 다른 휘포스타시스를 보게 되고, 성자의 휘포스타시스는  
성부를 인식하는 데에 얼굴을 맞대고 있는 것처럼 되고 성부의 휘포스타시스가 성자  
의 형상 안에서 깨닫게 되지만 동시에 휘포스타시스를 확실하게 구분하도록 성부와  
성자가 가지고 있는 특징도 남아 있다고 주장한다.  
3) 성령의 특성  
당시의 성령의 휘포스타시스를 하나님이 아닌 피조물로 여기면서 그 분을 단지 ‘성  
화하는 힘’이라 부르고, 성부와 성자와 동등한 인격으로 받아들이지 않은 현실에 대응  
하여, 바실리우스는 성령이 하나님이시고 본질에 따른 그의 특징은 성부와 성자와의  
동일성이라고 주장한다.18)  
그에게 ‘나오심’(  
고백하는 말이다. 바실리우스는 요한복음 15장 26절의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신다.’  
)의 ‘나오다’( )라는 단어에서 프로소폰으로서  
)은 성자의 ‘나심’(  
)과 같이 성령의 위격적 특징을  
(
성령의 위격은 ‘영원 나오심’이며, 성자의 ‘영원 나오심’과 다른 구별된 위격을 가진다  
고 설명한다.  
성자는 그 자신을 통하여 성부로부터, 그리고 자신과 함께 홀로 빛을 발하며,  
독생자 하나님(  
)으로 말미암아 출생하지 않은 빛으로부터 성령이  
‘나오신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19)  
그리고 바실리우스는 ‘현재 성령은 인간 영혼에 접근하였지만 깊은 연합을 이루지  
못한다.’20)라고 말하며, 그 이유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연정(passions) 때문이며, 이  
к Амфилохию,епископу Иконийскому), р20  
18) 바실리우스는 프로소폰과 휘포스타시스를 구별한다. 여기서 프로소폰은 물질적인 개념으로 사벨리우  
스의 프로소폰 이론에 근접한 것으로 보인다. 이 물질적인 프로소폰은 개별자로 인간으로 하여금 진  
정한 의미의 존재인 위격을 인식시킨다.  
성령에 관한 그의 자세한 설명을 하기 전에 먼저 휘포스타시스(  
)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에게 퓌시스( )는 신약에서 ‘본질’의 의미로 사용되었다(롬  
11:21; 2:27). 그리고 이 단어를 교부들은 그리스도인들의 참되고 고유한 본성(nature)에 사용하였다.  
), 퓌시스(  
), 프로소폰  
(
다시 설명하자면 우시아는 ‘본질’을 뜻하며 ‘가족’(  
, family)으로 ‘하나님’을 의미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유(genus)와 같은 개념이다. 그리고 이 가족(  
)에는 세 휘포스타세이스가 있다. 여기  
서 휘포스타시스는 ‘종류’(  
)로 진정한 의미에서 존재를 뜻한다. 그리고 세 휘포스타시스는 ‘차이’  
(
)를 가진다. 그리고 바실리우스는 종차(differentia)를 ‘아버지됨’( )과 ‘아들됨’(  
)
그리고 ‘성화’라고 구별한다.  
Basillius, Ep, ccxiv, p4, ccxxvi, p6, et al  
19) Basilius, Ep, xxxviii, p4  
20) Basilius, DSS, IX,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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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물리쳐야만 최종적으로 성령 하나님과의 연합이 일어난다고 본다. 즉, 그는 인간의  
구원과 관련하여, 성자의 성육신(incarnation)을 통한 인간구원의 마지막 사역이 성  
령을 보내시는 것이라는 ‘완전을 향한 변화’를 감당하기 위해 성령이 ‘나오심’을 한다  
고 주장한다. 그에게 성령은 성부로부터 오시지만 성자처럼 나심(generation)에 의하  
지 않는 ‘성부 입의 호흡’이며, 왕의 존엄(dignity)이 성령에게 독생자를 통하여 성부  
로부터 베풀어지는 존재이다.21)  
성령께서는 원인으로서의 성부께 부착되어 있는 그 존재(Its Being)를 가지시  
는데, 그 존재(Its Being)는 성부로부터 나오신다(proceeds). 즉 성령께서는 아들의  
뒤를 따라 알려지시고, 아들과 함께 알려지시며, 또한 아버지에게서 그 존재를 가지신  
다.22)  
그리고 이런 그의 구원론적 관점에서 비추어 볼 때, 성부로부터 성자를 통하여 나오  
시는 성령께서는 인간 구원을 위하여 점진적으로 우리를 교육하시는데, 이를 ‘하나님  
께서는 우리를 연속적인 단계에 의해서 진리의 빛(the light of truth)에게로 이끌어  
주시고, 우리는 각각의 단계에 친숙하게 된다.’고 설명한다.23) 요약하자면 바실리우스  
에게는 성령은 신성과 그 분의 파송, 그리고 구원을 향한 성도의 신화(theosis)를 이  
끄는 하나의 파라클레토스(  
같다.  
)라고 할 수 있다.24) 관련된 그의 글은 다음과  
성부와 성자와 함께 그의 끊임없는 영속성과 모든 세대 이전의 그의 본질적  
존재는 영원한 결합(eternal conjunction) 없이 관조(contemplation)할 수 없다. 왜  
냐하면, 절대적이고 실질적인 상호존재(co-existence)는 서로 분리할 수 없는 것들의  
근원 안에서 특징지어졌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달구어진 철에서 열기가 있다  
고 말하지만 근원적으로 이것은 상호공존하는 것이다. 비유컨대, 육체적으로 몸이 건  
강하다는 것은 생명이 영혼과 함께 공존하는 것이다. 어디에서든지 상호존재  
(co-existence)의 친교는 심오하고, 선천적이며(  
, congenital, born with  
one) 분리할 수 없는 것을 동반한다. 메타( , with)란 단어는 분리할 수 없는 친교  
(fellowship)의 사상 그 이상 더 많은 것을 표현하며, 더 많은 것을 암시한다.25)  
결론  
21) Basilius, DSS, XVI, p38; XVIII, p46~47  
22) Basilius, Ep, xxxviii, p4  
23) Anne Gordon Keidel, “Hesychia, prayer and transformation in Basil of Caesarea,”, SP,  
vol. 37(2001), p116  
24) 이정석, 「성령의 위격과 ‘나오심’에 관한 고찰」(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대학교, 2006), p203-210  
25) Basilius, DSS, XXVII,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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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실리우스는 세 위격으로부터 한 본질을 설명하는 ‘초대동방교회’에서 삼위일체론을  
처음으로 잘 정립시킨 교부다. 이후, 시간이 흘러 한 본질로부터 세 위격을 설명하는  
논리를 강조한 서방교회의 영향을 많이 받은 개혁교회는 바실리우스의 그것에 대한  
기초적 관점을 지속시킨 동방교회의 삼위일체론을 이해하여 새롭게 신학을 안팎으로  
강화할 하나의 출발점으로 바실리우스를 연구하는 데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먼저, 바실리우스가 살았던 격변하던 역사적 신학적 시대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4세기 당시에 아직 정립되지 못한 삼위일체론과 기독론은 로고스이론의 도입 실패로  
인한 아리우스주의를 포함한 거센 이단의 영향과 황제권 강화를 위한 정치희생물로서  
의 부정적 영향을 받게 되는데, 이 점은 현재 우리의 상황과도 닮아있다. 예컨대, 삼  
위일체론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없이 마구잡이로 성경과 하나님을 이해하고 성경을 읽  
는 신자들과 목회자들의 득세를 들 수 있다.  
관련하여, 바실리우스의 구원과 연계한 ‘  
’로 표현되는 삼위일체  
론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의미를 주는데, 먼저 삼위 하나님의 협력하심을 통한 피조  
물인 인간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오시는 친근한 하나님을 접하게 하며, 둘째로 관련하  
여, 사변적이지 않고 좀 더 현실적으로 접할 수 있는 하나님을 제시할 것이다.  
여기서 다시 우리는 다시 몇 가지를 추가로 배울 수 있다. 먼저 신학적 입장에서 바  
라 본 시대의 철학을 관통하는 통찰력의 필요성과 둘째로 우시아와 휘포스타시스의  
개념을 구원론적 관점에서 풀어낸 뛰어난 학문적 소양이다.  
현재 한국교회는 외적으로는 이단과 잘못된 정치적인 타종교의 공격대상으로 위험을  
겪고 있으며 내적으로는 권력다툼과 성적인 타락, 이단의 득세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는 우리 합동교단도 예외가 아니며, 이에 현실적이고 신자와 비신자를 불문하여 납  
득할만한 넓고 깊은 신학적 토대를 구축하는 것이 필수적이다.26)  
분명 그 하나의 방편으로 동방교부를 연구하는 것 자체가 매우 큰 방향을 제시할 것  
이며, 뿐만 아니라 세계 속의 개혁주의 한국교회를 세워나가는 데 기여할 것이라 확  
신한다. 본고를 첫 발걸음으로 동방교부에 관한 개혁주의적 해석과 적용의 중요성이  
널리 전파되고 수용되기를 바란다.  
26) 삼위일체론을 기본적으로 이해하지 못한 채, 아무렇게나 신앙생활을 쌓은 결과 한국교회는 엄청난  
후유증에 시달리는 중이다. 물론, 그간의 양적으로 폭발적인 성장에 삼위일체론에 관한 교육을 더한  
다면, 한국교회는 다시 질적으로 성장할 동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더 이상 단순히 극히 일부의  
교리체계로 인문학적으로 낮은 수준의 해석학을 이용한 설교와 묵상은 한국교회에 해가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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