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아래)중요하고 좋은 논문을 추가합니다. 칼빈의 설교 원문을 통해, 그의 생애에서 얼마나 '미사참여 허용주의자'들과 치열하게 싸웠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개혁교회(또는 개신교회) 그리스도인들의 문제적 내면을 잘 짚어내고, 현실적으로 어떤 악영향이 있는지 신학적으로 풀어냅니다.
-> 아래에 2개의 링크 자료(니고데모파)를 추가합니다. 하나씩 살펴보세요!
2023.11.27 - [신학 자료/추천 신학 논문] - 개신교인의 성당 미사 참여?!1 - 칼빈과 니고데모 논쟁을 중심으로
2020.08.05 - [신학 자료/역사신학] - 칼빈과 코른헤르트 간의 서신(편지) - 니고데모파 비판하기
요한 칼빈의 니고데모파 논박 설교 (1)
Sermon a.uquel taus chrestiens sont exhortez de fuir J'idola.trie exterieure, sur le troisieme verset du Psea.ulme xvi:
le ne communiquera.y point 겼 leurs sacrifices de sang, et leurs noms ne pa.sseront point pa.r ma. bouch~
강경림
(안양대학교교수)
I. 서 론
칼빈은 거의 25년 간에 걸쳐 니고데모파를 대항하여 투쟁하였다. 그가 니고데 모파의 위기를 간파하고 열정적으로 논박하기 시작한 것은, 그가 제네바에 도착 한 1536년부터 종교 개혁자로서의 권위가 확보되고 도처에서 불어권 개종자들이 모여 들게 되는 1548년까지로 볼 수 있다. 칼빈은 종교 개혁에 관심을 보여 온 주 위의 인사들이 ‘‘종교 개혁의 내적 정신”과 “로마 정통 신앙의 외적 준수” 사이를 모호하게 결부시키는 이중적인 나약함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 개개인 뿐만아니라특히 불어권종교 개혁의 운명 자체가 위험에 처함을 인지하고그들 을 공격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칼빈은 그가 할 수 있는 온갖 방법, 즉 서신· 소논문설교를통하여 니고데모파를논박하였다.2)
칼빈은 니고데모파를 논박하기 위해 1552년에 네 편의 설교와 시편 87편에 대 한 한 편의 주해를 한 권의 소책자로 묶어 출판하였다. 그는 그 소책자 출간 목적 을 그 책 서문에서 잘 밝히고 있다. 즉 '복음의 순수한 교리를 알고 있는 어떤 그 리스도인이 교황권 내에 살고 있올 때, 그곳에 널리 퍼져 있는 구습과 미신과 우 상에 어떤 식으로든 동의하거나 찬동하는 체하는 것이 적합하지 못함을 충분히 보여 준 두 편의 소논문을 썼움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충고’’를 요청하는 자들이
1) 다는 저희가 드리는 피의 전제를 드리지 아니하며 내 입술로 그 이름도 부르지 아니하리로 다” 라는 시편 16:3(한글 개역 성경은 4절임)을 중심으로 모든 기독교인이 외형적 우상 숭배 를 피하도록 권면하는 설교. 이 설교는 Calvini Ioannis, Opera quae supersunt omnia, in CR, vols 24-87, 재8권 377-392쪽에 수록되어 있다.
2) 描著 『칼빈과 니고데모주의』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화 1997), 161-217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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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겨났고, 그글들에 반대하여 여러 핑계를주워대는자들이 일어나자, 칼빈은그 문제에 대해 이미 행한 설교들을 정리하여 출간할 필요를 느꼈던 것이다.3)
16세기 불어로 출판된 칼빈의 이 설교들은 아직 다른 현대어로 번역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그 설교들을 우리말로 번역하여 소개하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고, 독자들에게 칼빈의 글을 직접 대하는 즐거움을 제공할 수 있올 것으로 사료된댜 그리고 칼빈이 성경을 롱하여 어떻게 니고데모파를 논박하는지 파악할 수 있는좋은기회가될 것이다. 다소 직역으로 인한따분함이 있을지라도 전체적 인 내용을 인지하는 데는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 설교에서도 칼빈이 니고데모 파를 논박하는 주된 논지는, 로마 카톨릭의 미사는 미신 덩어리이자 우상 숭배의 행위이기 때문에 그 미사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비록 정신적으 로는 미사를 인정하지 않고 몸만 미사에 참여하기 때문에 우상 숭배하는 것은 아 니지 않느냐는 니고데모파의 변명에 대해, 그는 영혼과 몸이 다 그리스도에 속한 것이며 영혼과 몸이 온전히 하나님을 경배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첫번 째 설교의 본문 내용은 다음과 같다.4)
n.본문내용
우리들은 여기서, 자기 자신을 독실한 신자라고 말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 기의 죄를감추기 위해 무엇인지 모를묘책을찾지 않는다는조건하에, 아주 명백 하고 이해하기 쉬운 어떤 교리를 다룰 것이다. 그 개요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우 리의 아버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세주로 인식한 이후에, 우리는 그분의 무한한 호의에 의해서 우리를 아들로 삼았던 그분에게 육신과 영혼을 바쳐야 하 고, (그분에게) 아주 고귀한 것을, 이 홀륭한 구세주에게 신종(臣從)의 서약을 잊 지 않고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불성실을 포기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명예에서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섬기는 데에 상반되는 모든 미신들로부터 우리들을 떼어 놓아야 한다. 그러한 미신돌은 복음서의 순수한 교 리와진실한신앙고백과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이 교리가 그 자체로 아주 쉬운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그렇게 많 이 유죄를 선고받은 것에서 죄인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단지 그 교리를 잘 실천하
3) CO, 8.373-4. 두 편의 소논문은 『소논문』과 『변명』을 일컫는다.
4) 본문 내용의 단락은 역자가 임의로 나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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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것만 남았으며, 또 단지 많은 사람들이 최소한의 신중성만을 추구하면 된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득이 각자가 자기의 의무가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그리고 젖은 누더기 옷으로 자기 자신을 가림으로써 피할 수 있다고 믿으며 아무 것도 잘못된 것이 없기 위해서, 그 교리 속에 있는 것을 우선적으로 보여 주 기를 결정해야만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서 교황에 대 해 타락이나 우상 숭배를 없앤 교회를 가지고 있는 우리에 관해서 필요 이상의 논 쟁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무시하기 이전에 그 러한 사람들이 크계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맨 먼저 그들의 불경건성에 동의하거나 집착하는 것같이 보이면서, 우리들이 우상 숭배자들과 함께 오염된다는 것이 어떤 죄인지 우리들에게 보여질 때, 우리는 우리들의 과거의 잘못에 대해 괴로워하고, 그 점에 대해 그지없이 겸 손한 태도로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며, 또 우리들이 빠져 들었던 진흙탕으로부터 우리들을 구해 주면서,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만들어 주었던 대단히 귀중한 선(善) 을 인식해야 하는 고통을 겪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들은 그러한 은총[f. 5)을 그 다지 찬양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무엇이 우리에게 일어날지도, 하나 님이 우리들에게 무엇을 남겨 놓았는지도 모르기 때문에, 우리들이 그 어떤 곳에 서 왔든지 혹은 그 어떤 유혹을 받았든지 간에, 우리는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을 거역하지 않도록 시간을 대비하는 것이 좋다.
카톨릭 국가로 여행을 하려고 구성된 단체의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그 국가가 전투중일 때는, 그들은 무장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만약 하나님이 오늘날 우리 에게 오로지 그를 섬기도록 자유를 주었다면, 우리는 그것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모른다. 따라서 우리의 믿음에 대해 고해하게끔 운명지워져 있으면서, 우리는 적 절한 시기에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서는 새롭게 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 리는 항상 지속되어야만 하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우리 자신 을 강화할 수 있도록 여가를 준 일시적인 휴식으로서 우리가 쉴 수 있는 시간을 갖도록 하자. 그렇지만 우리는 또한 사이비 구세주의 폭정하에 있는 우리 형제들 을 생각해야 하며,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요구되는 인내력 으로 그들을 강하게 만들 수 있는 하나님께 기도를 해야 한다.
그 다음에 또 그들이 안주하지 않고 자만에 빠지지 않고 그들의 의무를 일깨워 주기보다는 그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그들에게 주의를 환기시켜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배웠던 것은, 단지 우리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각자가 자기의 믿음의 정도에 따라 하나님의 가르침에서 자기에게 보여졌 던 바를 각자의 이웃들에게 분배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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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대한 기억이, 자주 우리에게 원기를 북돋워 준다는 사실이, 우리를 위해서도 우리 형제를 위해서도 유익하고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우리가 설명해 야 할 텍스트가 우리를 그곳으로 이끌어 갈 때마다 우리는 그러한 사실을 알 수 있게된다.
이 구절에서 다윗이 큰 저항을 했던 것처럼 우상 승배자들의 회생적 행위에 결 코 참여하지도 않고, 심지어 그토륵 많은 미움과 증오심으로 우상들을 가지고 있 었기에, 마치 그 우상들을 거명함으로써 자기의 입이 오염되는 것처럼, 그 우상들 올 거명하는 것을 삼가할 정도의 엄숙한 맹세를 했던 것이다. 이것은 한 인간의 개인적인 행위가 아니다. 다윗의 예는 하나님의 모든 자녀에게 보편적인 규칙이 다. 그렇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보다 더 분명하게 인식되고, 또한 우리가 그것에 더 잘 감동되기 위해서 그가 덧붙이는 이유에 주의를 기올이자. 그 이유는 바로 그가 우상 숭배자들 사이에 뒤섞일지도 모르는 두려움 때문인 것이다.
다윗이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산업이다”라고 했다. 그것은 모든 신자에게 공통된 것이 아닐까? 최소한 하나님올 찬송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f. 6). 사실 하나님은 일단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이 되게 하시어 우리들에게 보내 주시 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하도륵 매일 우리를 초대하셨다는 것은 아주 확 실하다. 그러나 그 사실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필요로 하기 때문인데, 그 부 분에서 감동받은 사람은 아주 드물다. 왜냐하면 우리는 단지 그러한 조건에서만, 또한 우리 모두 하나님의 것을 가질 때에만 하나님을 소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윗이 이러한 주제에 의거했음은 당연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의 유 산이고, 그가 우상 숭배를 그만두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우상 숭배는 우리로 하여 금 그를 외면하게 하고 멀리하게 하는 것이다.
바로 그 때문에 이사야는(57:6)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이 꾸며낸 가짜 신들 에게 빠져 들었다는 사실을 비난하고 다움과 같이 덧붙였다: "7 t짜 신들은 너의 몫이니라." 이 말에 의하면 하나님은 우상 숭배자들에게 모든 계약을 파기하고, 그들에게서 하나님이 만들어 주었던 무한한 혜택을 박탈해 버렸다는 사실을 의미 한다. 어떤 사람은 이사야가 거기에서 우상들을 신봉하고 무신앙에 의해서 우상 들을 잘못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고 반박할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을 인정한다. 그러나 반면에 만약 하나님의 영광을 우상들에게 전혀 전가하 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히 배제된다면, 그들은 두려움이나 신체적 병약에 의해서 미신에 동의하는 체하는 것이라고 나는 대답할 것이다. 왜냐하면 어쨌든 마음으로나 태도로나 의지나 외견상으로 우상들에게 접근하는 것이 아니 기 때문에,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그렇게 멀리 멀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이 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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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칼빈의 니고데모파 논박 설교 (1) I 강경림 목이 해결됨으로써 진실로 그리고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산업으로 소유하기 를 노력하는 사람들은 우상들과 어떠한 교류도 갖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 과 어떤 결별을 갖고서 자기 소유의 모든 사람들이 그들과 치명적인 전투에 직면 하기를원하신다.
특히 다윗은 이 구절에서, 그는 그들의 제물에 결코 참여하지 않을 것이고, 그 들의 이름을 자기 입으로 부르지 않올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홀륭 하게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러한 속임수를 믿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러 한 거짓을 추종하도록 하나님의 진실을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렇 게 말하지 않았다. 그는 그들의 의식(儀式)들 속에 뒤섞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 했다. 결국 그는 하나님에 대한 봉사로 말하자면 정신과 마찬가지로 육체적인 순 수함으로 유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선, 우리들은 여기서 사람들이 하나님 에 대한 봉사가 부패되고 타락되도록 만든 미신에 동조한 사실을, 외적인 징후로 보여 주는 것이 바로 우상 숭배인지 아닌지를 보이야만 한다. 난처한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핑계를 주워댄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정신적으로 경배되기를 원하고, 사람들은 확신을 갖지 못하고서는 우상들을 경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대답은 쉽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렇게 정신적으로 경배되기를 원하지 않기 때 문에, 하나님은 마치 자기에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닌 것처럼 그 나머지 부분을 포 기하셨댜 그 이유는 하나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는 것 이 다른 구절에서 충분히 언급되어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 까? 하나님이 요구하는 주된 봉사는 참으로 정신적인 것이지만, 그러나 신자들이 섬기고 존경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이라는 신자들의 선언은 나중에 일어나는 것이 고 언제나 공동적인 것이어야 한다. 신지들이 말을 했던 그 순간에, 그들은 그 구 절을 다시 봄으로써 충분할 것이다.
다니엘서 제2장에서는 느부갓네살이 만들어 놓았던 미신에 동의하는 체하기를 거절한 사드락메삭·아벳느고가 느부갓네살의 신들을 경배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 기술되어 있댜 만약 훌륭한 소피스트들이 거기에 있었다면, 그들은 하나님 의 이 세 신봉자들의 단순함을 조롱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다움과 같이 말 했기 때문이다 .•• 불쌍한 자들이여, 너희들이 신을 믿지 않을 때 그것은 신올 경배 하는 것이 아니며, 신앙심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우상은 없다." 그러나 이러한 성인(聖人)들은 가장 훌륭한 충고를 따랐다. 그리고 사실, 이러한 대답들은 그들 의 지능으로부터 나오는것이 아니라, 그들의 말을나오게 하는 것은바로성령인 것이다. 만약우리들이 그성령에 거역하기를원하지 않는다면, 우리들은이 구절 로부터 어떤 규칙이나 정의를 끌어 내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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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봉사를 싫어하는 외적인 행위를 범했을 때, 그것은 일종의 진정한 우상 숭배이며, 또한 그것은 단지 가식에 의한 것이다. 이 러한 위선자들은 아무리 야유한다 해도 소용없다. "죽 그것은 우상 승배가 아니 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우상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같 이 그들은 위대한 심판자가 내렸던 판결문에 의해서 유죄를 선고받은 채로 머물 러 있올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전혀 변명할 수 없는 잘못을 단지 부분적 으로 최소화하기를 주장하면서 그 말에 대해 논쟁을 벌인다. 그들은 그것이 나쁜 행동이라고 충분히 고백할 것이다. 그러냐 그들은 사람들이 그러한 행동을 거의 가벼운 죄로 평가해 주기를 바란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들이 요구한 바를 그들에 게 이름으로 허락했을 때, 그들은 거의 이익을 얻지 못할 것이다.
우상들을 숭배하는 그러한 가장을 우상 숭배라 부르지 않는 경우를 생각해 보 자.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불성실이며, 신앙 고백에 반하는 행위이며, 신성한 것 을 더럽히는 행위이며, 신성 모독자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이 모 독당했을 때, 우리들이 하나님께 바쳤던 약속을 어겼을 때[f. 8), 우리가 그렇게 비겁하게 우리의 기독교 신앙을 슬며시 포기했올 때, 우리가 이중적이 되고 하나 님이 증오했던 사실들을 흐려 놓았을 때, 그것이 과연 우리들이 아무렇게나 말해 놓고, 우리들이 조그만 실수를 저질렀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따라서 그들은 우리의 죄를 덮어 주지도 못했고, 단지 우리로 하여금 좀더 과감하게 죄를 짓는 데에만도움을주었다는사실을보면서, 그러한기만술책을제거해 버리자.
거기에는좀더 염치없는또 다른사람들이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 말을 위장 하면서, 그것은 그렇게 큰 죄도 아니고 그렇게 엄청난 죄도 아니라고 믿게 하려고 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은 그것은 전혀 죄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완벽하게 유지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마음으로 섬기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 마음이 이중적이 아니라면, 물론그렇다. 왜냐하면 진정한마음의 순결성이 였을 때, 육체는 그 마음과 반대 방향으로 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댜 나는 그들에게, 그들이 미사를 듣기 원할 때, 바로 누가 그들의 발길을 성당으로 옮겨 놓을 것인 지를 묻는다. 즉 그들의 다리는 그들 자신의 움직임으로는 결코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우상들에게 봉사하려는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을 확신하고, 게다가 그들은 진실의 적들에게 환심 사기를 원하고, 또 그들의 생 활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값진 것이라는 사실을 바라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의 파렴치한 행동은 너무나 중대하기 때문에, 나는 마치 어떤 색깔이 있는 것처럼 그에 맞서서 논쟁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그렇지만 만약 그렇 게 해야 한다면, 그것은 그들이 그토륵 그러한 행동을 좋아하고, 너무 열광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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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칼빈의 니 고데모파 논박 설교 (1) / 강경 림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들 생각으로는 하나님은 정신적으로 추앙받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면 육체는 누구를 경배할 것인가? 성 바올(Saint Paul)은 우리들에게 육체 와 정신 둘 모두로 주 예수를 받들라고 설교했다. 왜냐하면 그 둘 다 주 예수에게 속하기 때문이다(고전 6:20). 하나님은 육체를 창조하셨는데 악마에게 그 육체를 헌정하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 게다가 하나님이 전체 인간의 창조주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들은, 그들 스스로를 마니교도라고 선언하는· 것이 더 낫다. 그들이 복음의 세계에 최소한의 홍미를 갖고 있다면, 그들은 결코 그러한 방종으로 넘쳐 흐르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것을 통하여 단지 예수님의 피로서 인 류의 죄가 사해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가 육체 와 정신의 속죄자라는 사실올 모르고 우리가 어떻게 육신의 부활을 기대할 수 있 는가? 성 바올은 우리들에게 우리들은 비싼 대가를 치르고 얻어졌기 때문에 결코 사람들의 종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고전 7:23). 따라서 우상들의 숭배에 열중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멸시하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육체에서 기대하고 있는 불멸의 영광을 누가 쥐어 주겠는가? 현 세의 왕권이 우상들에게 하늘에서도 약속되어 있는 이상 우리의 육체가 우상들 앞에서 모독되어지고 더럽혀지는 것[f. 9]은 어떤 의도가 있는가? 사탄의 주변에 서 우리 자신들이 맴돌고 있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천국에 들어가는 수단인가? 게다가우리의 육신은성령의 전이라고말하는것은헛된 일은아니다. 그 때문에 단지 모든 신성함으로 그들을 지켜야만 한다고 인식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복음 에 의해서는 결코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 수 있다. 또한 그들은 그것은 단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것이지 그의 은총에 의한 것은 아니라 고 알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라고 말했을 때(엡 5:30), 그것은 바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육체적·정신적으로 결합되어 있다는 사실올 잘 보여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떠한 미신에 의해서도 자신의 육체를 더럽힐 수 없으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신자가 되게 해 주었던 그 신성한 결합을 포기할 수 없다. 따라서 치밀한 박학자들은 단지 그들의 정신 속에서만 영세를 받았다고 나에게 대답한다.
하나님은 과연 그러한 기호가 우리들의 살갖에 새겨지기를 명하지 않았던가?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표시가 새겨져 있는 그 육체는 해로운 반종교적인 가증 스런 짓에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성체 배수는 정신뿐만 아니라 손과 입으로도 받 아 들여지지 않았는가?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문으로 우리의 육체를 만드 시고, 우리는 그 육신을 진흙과 쓰레기로 오염시키지 않았는가? 금 한 조각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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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주형을 새겨 넣는 것, 또는 서로 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는 두 개의 두레박 을 하나의 공공 기구로 사용하는 것이 합법적이지 못한 것처럼, 죽음을 면할 수 없는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의 성체 배수와 세례서를 위조하고서도 아무런 죄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한 사람들은 그들의 하인들이 잠만 자고 즐기고 손 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도, 그들에게 봉사하려는 마음 올 가지고 있다고 그들에게 거짓 속임수로 믿게 하려는 것은 당연히 당할 수 있는 일이다.
만약 그들이 자기들보다 낮은 사람들의 봉사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그것은 전 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변명한다면, 나는 다음과 같이 대답할 것이다: ''ii~나님 은 그러한 봉사를 필요로 하지 않으면서, 우리를 하나님의 명예를 위해 고용하기 를 원했기 때문에, 양식을 거슬러 행동하면서 우리가 하냐님에 대항하여 떠나기 를원한다면그것은큰수치가된다. 또한지렁이나썩은시체가그의 창조자보다 더 큰 우월성을 가지기 원한다는 것은 더 큰 수치가 된다." 그러한 짐승들에게는 보다 더 상스럽게 말해야 한다. 그들은 교황주의자(Papistes)들 사이에서 서로 속 이는것은그들에게 합법적이라고말한다.
그러면 거기에서 그들이 먹을 빵은 누가 주는가? 그리고 누가 그 땅을 열매 맺 게 해 주는가? 만약 그들이 하나님이 다른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거기에서 그들을 부양할 것이다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면, 왜 그들은 악마에게 그들의 육신을 헌정했을까? 만약 그들이 기독교도들이었다면, 나는 그들에게 우리는 왜 이 땅에 서 살고 있는지 물어 보면서 좀더 강한 근거를 제시할 것이다. 그러나 간교하게 하나님과 함께 놀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그들을 양식 없는 사람으로 취급함으로써 멍청해지는 것은 불쌍한 일이다. 그들에게는 그들이 두려움 때문에 그곳에서는 아무 것도 못한다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만약 이러한 거 짓이 일어난다면, 요셉은 자신의 쾌락올 추구한 것이 아니라 단지 그의 스승이 그 에게 행한 힘에 굴복하여서 쉽게 그의 스승과 방탕한 생활을 했다고 말해야 할 것 이다. 따라서 그는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고통받고, 그러한 명 예 훼손에 직면하는 것은그에게는 터무니없이 행해진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의 불변성을 강조하고 있는 성령의 증거를 중시하는 것이 오히려 더 적합할 것이댜 만약 교황주의자들의 분노를 피하기 위해 우상올 섬기 면서 죄를 짓지 않는다면, 그 주인의 하수인이 될 그 사람은 전혀 명예를 손상하 지 않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그가종속되어 있는사람의 명예를손상시킬까두려 워서 그의 이웃을 타락시키거나 혹은 어떤 배반을 했을 때, 그는 용서받을 수 있 을 것이다. 그것은 내가 말했듯이, 아무런 어려움이나 조심성 없이 지나치게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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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를 강조한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의 술책으로 하나님의 판단올 피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어떠한 혼란에 빠지는가를 사람들이 보는 것은 좋은 것이다. 오늘 날도 다른 핑계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왜냐하면 이교도들의 우상 숭배에 가담하는 것은 가증스러운 일이다라는 사실올 고백하면서, 그들은 그것이 교황권 에 대한 맹목적인 신앙에까지 영향올 미친다는 사실올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이교도들의 모든 불경건이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봉사의 부패는 아니다. 교황 들을 제외하고, 이교도들은 그들의 모든 의식을 어디에서부터 끌어 냈는가? 그들 이 하나님에 의해 잘만들어진 것을타락시켰다는 것이 바로 죄이다. 좌우간세상 에 결코 존재하지 않았던 모든 반종교적 가증스러운 짓은, 하냐님과 종교라는 이 름의 아름다운 덮개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반종교적인 가증스러운 행동 들은 정당화되지도 않고 또 신자들도 거기에 참여하지도 않았다. 그냥 무시해 버 리자. 만약 하나님이 외국과 마찬가지로 [f. 11] 벰엘 성지의 우상 숭배를 고대 사 람들에게 엄격히 금지했었다면, 사실을 그들이 부인할 수 없었다면` 나는 여기서 과거의 교황주의자들의 우상 숭배와 이교도들의 우상 숭배 사이에 자이점이 있었 다는 사실을 정말 인정한다. 송아지들이 단(Dan)과 벤엘에서 길들여졌을 때, 그 것은 바로 하나님의 이름을 핑계로 하여 이집트의 국민들을 끌어 내었던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서 행해진 예배는 하나님의 계율에 어긋난 것이었기 때문에, 하나 님은 그곳에서 자신을 모독하려 한 모든 사람들에게 유죄를 선언했다. 모세의 헌 신과 여로보암의 헌신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성체 배수와 교황의 미사들은 아주 일치될 수 없는 사실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체 배수를 가장하여 미사에 가는 그러한 허가는 어찌 된 일 인가? 반면에 나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하는 사람들은 이중적인 증오심으로 그 미사를 가졌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미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스러운명령을보다 더 공개적으로 더럽혔기 때문이고, 또한그 미사는예수그 리스도의 성스러운 명령과 그렇게 반대로 행해지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움과 같은 규칙을 정해 보자. ''is]-나님의 말씀의 단순한 순수성을 부패시키고, 하나님이 바라고 칭찬하는 경배를 혼란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인간들의 모든 술책 들은 진정으로 신성을 더럽히는 것이며, 기독교 신자는 단지 하나님을 모독함으 로써, 즉 하나님의 영광을 무시함으로써 신성을 더럽히게 되는 것이다." 나는 그 들의 욕망에 따라 그들을 다루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러한 엄격성이 얼마나 행복하고 참기 힘들게 보이는가를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거기에 직면하기를 원하는가? 그렇게 미묘한 지식들을 나 는가능한한면하기를원한다. 게다가나와그들은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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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죄를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들은 나보다 더 엄격한 것들을 전혀 찾아 내지 못 했다(그들이 말한 것처럼).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지금까지 내가 너무 부드럽게 글을 다루었다는 사실을 알아 주기를 원한다. 그렇게 된다 할지라도, 그들은 예언 자 예레미야가 요구했던 바를 바빌론에서 포로가 된 유대 교도들에게 면제해 줄 수는 없을 것이다(10:11). 그들에게는 갈데아 사람들의 반종교적인 가증스러운 짓 으로 냐아가는 것도, 혹은 그 행위에 동의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금지되어 있올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그들의 행동이 구역질나는 것이라는 사실을 보도록 단호 한명령이 내려져 있었다.
그 말씀은 다음과 같다 .•• 너희는 이같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천지를 짓지 아니한 신들은 땅 위에서, 이 하늘 아래서 망하리라 하라."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어떤 상 황이 있댜 즉 자신의 책을 히브리어로 기술했던 그 예언자는 갈데아 지방의 거친 사투리로 기록했다. 그것은 마치 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들이 우상 숭배자들 과 가졌던 불화를 더 명백하게 보여 주기 위하여, 그들의 언어를 바꾸도록 억압한 것처럼 보인다. 지금 우리의 어린 자녀들은 마치 내가 너무 지나친 것처럼 [f. 12] 나를 원망하려 한다. 그렇지만 나는 그 예언자가 행했던 바의 절반도 그들에게 요 구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그것에 대해서 말하든지 혹은 침묵을 지키든지 간에, 우리는 모두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내렸던 그 법칙을 여전히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사실 하나님이 그의 신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것은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너희는 나의 증인이라 내가 선택했던 나의 봉사자이니라” (사 44:8).
거짓 행동이나 위선으로 진실의 증거를 감추고 있는 사람들은 전혀 용서받지 못하는 것처럼, 자신을 그리스도인으로 인정받기 원하는 자는 누구나 그러한 자 격이 자신에게 속해 있다는 사실을 보아야만 할 것이다. 그들은 사람들 앞에서 자 기의 기독교 신앙에 대한 어떤 표시도 보여 주지 않으려고 자신들의 기독교 신앙 올 숨길 뿐만 아니라, 그 기독교 신앙과 전혀 다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행히~근 것처럼 그들의 모든 생을 거꾸로 뒤집어 놓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일까? 그러한 신성 모독의 오염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악에 대항할 수 있는 방법과 기회를 부여할 것인가에 따라, 실로 악에 대항하기 위해 훌륭한 롯(Lot)을 본받아서 그들의 정신이 혼란스러워지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 도남아있지않다.
그러면 지금 오늘날 유행하고 있는 우상 승배를 규명해 보기로 하자. 나는 이미 미사(La Messe)에 대해서 약간 언급했다. 그것은 더이상 아무 것도 없을 만큼 심 각하고 엄청난 신성 모독적 언사가 아니었던가? 그렇지만 여전히 그곳에는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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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버무리는 나쁜 의도의 변호인들이 있다. 그들이 원하건 원하지 않건 간에, 그들 은 내가 말했던 바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즉 “그렇기 때문에 미사 그 자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방기하는 것이며, 성체 배수의 칠 성사(七聖事)를 폐지하 기 위하여 사탄에 의해 꾸며진 신성 모독이다~·. 그들은 또한 사람들이 성인들에게 행한 기도와 사람들이 고인들을 위해 행한 대도(代禧)가, 모든 것에 대해 신성한 것이었던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원하는 것이 신성 모독이 되었을 만큼의 악습이 아니 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교황주의자들 사이에서 그러한 추잡스러움으로 뒤섞이면서, 그들은 죄 를 지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그들은 말한다: “우리들은 어떤 조치를 해야 할 것 인가라고. 즉 우리들이 나쁘다고 알고 있는 사실들을 다시 만들도록 우리들에게 는 허용되어 있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사적(私的)인 사람들이고, 공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그러한 사실들을 꽉 붙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 은 그냥 감수해야만 한다." 나는 그들이 말한 모든 것올 인정한다. 그러나 아무런 의도는 없다. 사람들이 공통적인 상태를 다시 만들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아니다. 아무 것도 그들에게 그렇게 하도록 명령하지도 않았다. 즉 사람들은 그들의 직무 였던 그들의 사람들을 다시 만들어 낸 것에 대해 그들을 질책했다. 사람들은 그들 에게 그들이 교회를 없애고 길도 없앴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각자가 순수하게 자 기의 육신과 정신을 지키며, 하나님은 자기의 집에서 경배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라고말했다.
그것은 두 가지 아주 상이한 사실이 있다. 그 하나는 한 나라에서 미사~룹 없애 버리는것과미사가통용되어야만할때 거기에 참석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여 전히 상투적인 말로 되돌아간다. 즉 그것은 바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수난올 부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의 의도는 그러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은 한 기독교 신자가 입으로 고백을 한 것인지 아니면 그가 마 움으로 믿은 것인지”를 그들에게 묻는다. 그들이 한 행동이 기독교적 고백에 완전 히 상반된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충분히 주지할 사실이다. 따라서 그들이 할 수 있는 한 그들은 순수한 믿음에 속하는 것은 부인하고 거부한다. 나는 여전히 좀더 개인적인 입장에서 말할 것이다. 미사는 교황주의자들이 하나님에게 죄의 용서를 빌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제물로 바치기를 원하는 제물 공헌식이다. 그 것이 만약 진실이라면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죽음과 수난에 의해 우리들의 영원 한 구세주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들이 원할 수 있는 그렇게 많은 에움길에 직면한다 할지라도, 한 점에 이르러야 한다. 신앙심이라는 명목하에 미사에 참석 하는 모든 사람들은 그 미사를 인정하기를 공언한다. 따라서 가능한 한 그들은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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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그들의 완벽한 속죄를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좀더 재한된 미사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그들이 소교구의 미사(La Messe parochile)만을 보존하는 것이다. 그들은 이 미사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성체 배수 와그 이상의 일치점이 있는 것처럼 보고 있다. 사실 사람들은주교좌성당의 참 사원들이나 성당 전속 사제들에 만큼이나 많은 사기꾼들(fallourdiers)에 의해 일 컬어지는 미사들 그리고 한 개인의 신앙심에 근거하거나 혹은 매일 돈으로 매수 되는 모든 미사들은 마치 갈보집의 창녀들과 같다고 말할 수 있다. 소교구의 미사 는 마치 음탕한 여자와 같은 것이며, 그것은 덕이 있는 부인이라는 평판올 듣기 위해 처신하려고 자기 남편의 이름으로 자신을 가리는 것이다. 그러한 유사성은 전혀 적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결혼한 음탕한 여자는 여전히 누구에게나 몸을 내 맡기는 데 대해 어떤 부끄러움을 가질 것이다.
그러나 소교구의 미사는 모든 미사들 중 가장 보편적인 우상 승배이다. 좌우간 여기서 사람들은 그러한 양상으로 소교구의 미사를 감추려 하지만, 그 미사는 여 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성체 배수의 몇몇 흔적을 가지고 있다. 즉 그것은 마치 산 적이 그가 죽였던 사람의 탈취물로 장식을 하고, 그리고 그의 말 위에 올라앉았을 때 더욱 유능하게 보이는 것과 같다. 그들은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체 배 수를 찾는다”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우리들이 처해 있었던 폭정 때문 에 순수한 예수 그리스도의 성체 배수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하나 님이 거기에 손을댈 때까지 그잔재로만족해야한다[f.141"
그 얼마냐 그럴 듯한 변명인가! 그들은 성체 배수의 올바르고 완전한 관례를 가 지지 못한 이상, 잠정적으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원하고 유일한 희생자로 간주하지 않고, 또 그들은 매주 그들의 죄를 사하기 위해 새로운 희생을 찾는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은 성 니콜라스나 혹은 죽은 살마들의 미사에서 만 큼이나 소교구의 미사에서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의 우상을 승배 하는 척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찾을 수 있다고 자부한다. 그들은 검이나 방패 없 이 하나님에 대항해서 싸우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은 검이나 방패의 권위를 주장 한다. 그것은 마치 한 인간의 사죄가 그들에게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유죄를 선 고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유지시 켜 준 것처 럼 보인다. 나는 그들이 그들의 옹호자 들에게로 데리고 가는 사람들을 데리고 가면서 그들은 단지 틀리게 행동하고 있 다고 말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어떤 성스러운 인물이 한동안 교구의 미사에 참석 하는 것이 그렇게 매우 나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을지라도, 그가 그 미사에 있었 던 것을 알고 난 이후에는 그가 나중에 저지를지도 모르는 죄에 대해 더욱더 믿어 야만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것이 그것에 대해 그를 속박하고, 또 그는 그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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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칼빈의 니고데모파 논박 설교 (l) / 강경림 에 이겨 내었던 것을정복당하고만다는사실을보기 때문이다.
그러냐 여기서 되는 대로 말하고 넘어가야만 하는가? 그들은 죽어 가는 한 인 간의 의견이나 말에 의해 하냐님을 물리쳐야 한다고 믿는가? 우리들은 어느 누구 에게도 치우침이 없이 그의 판단으로 지배하는 것은 바로 그 유일한 미덕만이라 는 사실을 알고 있다. 따라서 사실 소교구의 미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제물로 바치 기 위해, 그리고 죽은 자들을 위하는 것만큼이나 살아 있는 자들을 위해서 하나님 과 화해를 하기 위해 설립되었으며, 또 거기에서는 빵 한 조각도 그것이 마치 하 나님의 아들인 것처럼 경배되어졌다는 것이다.
나는 사실들올 상세하게 삼살이 조사하지 않을 것이다. 온갖 수많은 부패한 점 들이 있지만 나는 단지 가장 큰 것만을 지적한다. 비록 그것에 동의하는 척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원할 수 있는 만큼 깨끗이 할 수 있다 하더 라도, 결국 그들은 빌 라도보다 더 올바르지 않을까? 그러나 수많은 본당 교구 주민들이, 부활절이 오 면 몇몇 반(半) 기독교도 수도사들이 그들에게 가짜 성체 배수를 행하여 주는 따 로 떨어진 교회를 찾아 가는 것은 신비스러운 일이다. 그들이 말했던 것처럼 소교 구의 미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성체 배수와 가깝다면, 왜 그 주민들이 소교구의 미 사에 참석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그들은 성체 배수의 칠 성사에 참석하기 위해 일 년의 매 주일에 소교구 미사에 있었을 때에도 그 미사를 부인한다. 나는 그러 한 변절자에 대해 전혀 놀라지 않는다. 왜냐하면 [f. 15]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진 리에 근거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의 진정한 대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냐님은 그들이 항상 동요하고, 그들이 행한 것에 대해 서로간에 반대하도록 만들면서, 그 들에게복수한다.
그러한 위장된 성체 배수에 대해서, 나는 그들 멋대로 그 성체 배수를 배척하는 것은 큰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계 율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우린들 별 수가 있겠는가? 냐는 그 성체 배수가 비밀 로 행해지기 때문에 그것올 비난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나는 적들의 폭정 때문에, 신봉자들이 성체 배수를 행하기 위해 비밀로 은둔해야 하기 때문에, 그 성체 배수 가 결코 보다 더 성스럽게 행해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 기에 참을수 없는두 가지 악이 있다. 그 하나는 바로 성체 배수에 대해 어떤 위 선을 세우는 사람들이 거기에서 그들의 미사를 가지는 체하고, 또 사람들이 그렇 게 생각해 주기를 바란다는 사실이다. 또 하나는 그들이 성체 배수를 받았던 그 신부가 그리스도의 사제로서가 아니라 로마 교황의 사제 자격으로 그들에게 성체 배수를 주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미사에서의 그들의 가수가 그들로 하여금 빵도 포도주도 찬양하게 하려는 의도를 가지지 않았고, 가장 불경건한 것들이 있는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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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전문(canon)을 그대로 두고, 또 모든 사람들에게 두 가지 종류로 칠 성사를 주 었다고 말하면서 훌륭한 옹호 체제를 가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이 위대한 심판자 앞에서 일어났을 때 그들은 그 모든 은폐물들로 얻올 수 있는 것들을 느 낄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들은 이미 그것을 느꼈음에 틀림없다. 그리고 나는 그들 의 양심으로부터 가지고 온 아픔이나 상처를 믿는다. 바로 거기에서 그러한 진행 과정은 없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좀더 오랫동안의 조사 없이 그들은 모든 대중들 만큼이나 하나님의 적들에게도 보여 주기를 주장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 이다.
하나님은 그러한 신앙 고백 행위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희생해야 할 것 이다. 지상의 모든 사람들이 그들을 정당화하기 위해 함께 협력해야 할 때, 그들 중 가장 능숙한 사람은 그가 불확실하게 의심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결코 용서받 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예언서에(왕상 18:21), 사람들은 그에게 서 결코 어떠한 훌륭한 주교적 역할을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이 성 체 배수의 성직자로 간주했던 사람으로 말하자면, 그러한 직무를 수행할 의지를 가진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그러나 그들은 칠 성사의 덕행은 사람들의 품위에 달려 있지 않다라고 말한다. 만약 악마가 성체 배수를 베푼다면 그 성체 배수는 더 나쁘게 되지는 않을 것이고, 반대로 천사가 미사를 노래한다면 그 미사는- 전혀 더 좋아지지도 않을 것이라고 나는 고백한다[f. 16].
그러나 지금 우리는 또 다른 문제에 대해 다루어야 할 것이다. 즉 한 수도사에 게 주어진 교황의 명령이 그를 사제의 직무를 수행하게 하는 전문가로 만들어 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이, 그들은 그것이 무엇인가에 봉착하고 있다는 사실을 듣지 못했으며, 또 그들이 그를 선택하지 않았다고 즉각 응답한다면, 문제 는 그 반대로 냐타날 것이다. 그가 그들과는 관계가 없다고 말한 사실을 들어 보 자. 죽 나는 항상 그들이 행한 외부적인 주장에 대해 강조할 것이다. 그래서 그들 은 성직자의 가면으로 위장하고 있음이 명백하다. 주 예수의 성체 배수를 정식으 로 축하하기 위해, 그들은 그들이 그 사실에서는 그들과 공통적인 것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우상 숭배자들로부터 그 목자를 분리시키는 것이 좋을 것이댜 그렇 게 하기는커녕, 그들은 마치 등록하듯이 가서 그 단체의 구성원인 체하는 것이다. 그 점에 대해서, 그들은 우리를 인간의 악행을 위해 칠 성사의 사용을 강요했던 옛날의 이교도와 유사하도록 만들었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오히려 그 상태에서 가아니라개개인의 악에 세심한주의를 기울이도록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간략하게 지나가겠다. 그러나 내가 조금이라고 그것을 언급한다 면, 그것은 대단히 천박한 파렴치를 정말로 확인시키는 것이 될 것이댜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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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칼빈의 니고데모파 논박 설교 (1) / 강경 림 만약 그들이 너무 얼이 빠져 그것에서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말씀 은 우리에게 충분할 것이다. 주께서 예레미야서(4:1)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 다. "이스라엘아 네가 돌아오려거든 내게로 돌아오라 ······." 그 말들은 아주 간략 하게 표현되었지만, 우리는 그 말을 넌지시 돌리지 말고 하나님과 함께 실행해야 만 한다. 바로 그 때문에 성 바울은(행 14:15) 자만심으로 가득 찬 이교도들을 살 아 있는 하나님에게로 돌이키기 위해 보냄올 받았다고 주장했다. 즉 그는 마치 수 많은 다른 가장(假裝)으로 익숙해져 있는 악을 변화시키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지 만, 진정한 종교가 그 순수성으로 설립되기 위해서는 미신을 없애야만 한다고 솔 직하게 말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하나님에게로 올바르게 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를 알지 못하고 비틀거리면서 변 화하게된다.
그때까지 미사를 떠났었던 또 다른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결코 불경한 사람 들을 편들지 않기 위해서 몇몇 사람들로 하여금 소위 하나님을 섬기도록 붙들어 놓기를 원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훌륭한 감동으로 거기에 오는 것이 있을 법한 것 이다. 그리고 최소한 나는 그것을 믿는 것으로 만족한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바란다 할지라도, 그들은 훌륭한 조치도 없이 거기에서 올바른 규칙을 이행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세례에 잘 참예할 수 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명백한 우상 숭배가 없기 때문이다." 그것 은 마치 칠 성사가 거기에서는 다양한 종류로 더럽혀지지 않는 것과 같으며, 예수 그리스도가 모욕을 당하고 치욕을 직면하려고 아직도 빌라도의 집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그것은 그들이 종교를 가지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 데 대헤 사람들은 그것은 교황주의자들을 만족시키고, 박해를 피하려고 좋은 얼굴을 보이기 위한 것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또 다른 사람 들은 미사에 봉착하지 않기 위해 기회를 엿보고 있지만, 그들이 미사에 였었다고 사람들이 생각하도록 교회에 가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입장에서 단지 대도(代禧)만을 유지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그들로부터 만약 그들이 사람들은 우상을 승배한다고 생각하지 않 는다면, 엄숙한 기도는 중재에 기초를 두고 있고, 어떤 성스러움을 받을 만하다는 사실을 알기 원한다. 즉 사람들이 성모 찬가(salve, Regina)를 부른다는 것은 바 로 저주스럽고 악의적인 신성 모독으로 뒤섞이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있는 그대 로의, 모르는 말로 된 그 노래가 성경이나 하나님의 찬양에 대한 완전히 허가된 신성 모독이라는 사실을 말하고자 한다. 그것은 마치 성 바울이 고전 1:14에서 그 것을 다룬 것과 같다. 사람들은 이 부분의 잘못을 그들에게 용서했다. 만약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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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들의 기독교 신앙에 대한 어떤 동의를 주기 위해 대도(代福)에 참석했다면, 그것은 특히 큰 축제가 될 것이다. 바로 거기에 주요 우상들에 대한 장엄한 분향 이 이루어질 것인데 이 분향은 성경에서도 보여 주었던 것처럼 일종의 제물 바치 기이댜 또한 그것은 이교도들이 병약자들에게 하나님을 부인하게 하는 공통적인 방법이었다. 바로 여기에 대부분의 순교자들이 어떤 논쟁에 대해 죽음을 참아 내 었던 이유가 있다. 즉 그 이유는 바로 그들이 우상들에게 향료를 뿌리거나 분향하 기를 원하지 않는 것이다. 향로의 냄새를 맡게 될 우상들은 그러한 냄새로 곧 오 염될 것이다. 그러한 오염은 죄를 짓는 것이며, 그들에게는 사람들이 그 오염을 반드시 멈추게 해야만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들이 여기에서 언급된 것을 진정으로 명심해 주기를 바란다. 즉 우상들은 신앙심이 강한 사람에게는 아주 큰 증오의 대상임에 틀림없다. 그들은 두려워서 신앙심이 강한 사람에게 그 말을 받아 들이게 할 수 없다. 물론 그 말은 우리들로 하여금 우상 숭배자들의 오염 속에 우리들을 끌어 넣는 모든 것으로부터 구해 낼 수 있도록 만들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과 악마 사 이에서 중개에 의해 이득을 보기를 원하는 이중적인 모든 사람들에 대해, 솔직하 게 말하자면, 나는 그들을 잘 표현하기 위해 에서와의 비교만큼이나 더 적합한 비 교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에서가 그의 아버지 이삭이 야곱으로 하여금 아내를 얻게 하기 위해 메소포타미아로 보내는 것을 보았을 때였다. 가나안 지방 의 여인들은 이삭과 그의 아내 리브가의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숙명적으로 그들을 화나게까지 했다. 에서는 부분적으로[f. 18] 그의 부모들을 만족시키기 위 해 새로운 아내를 맞이했지만, 그가 이미 취했던 여인을 떠나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는 다시 죄를 지었고, 이삭은 이에 대해 개탄했다. 그러므로 에서는 그럭저럭 그 일을 수습하기 위해 새로운 결혼을 거행했다.
세상에서 그렇게 얽히게 된 사람들은 하나님이 명령하신 바를 따를 수 없으며, 매우 혼란스럽게 될 것이며, 하나님의 의지에 어느 정도 따르기 위해서 다양한 방 법으로 일을 꾸며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항상 어떤 부패를 가지지 않고는 견디 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이 행한 모든 것은 순수하지도 올바르지도 않다. 나는 어찌할 줄 모르는 수많은 불쌍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들은 위선도 없이 올바르게 걸어가기를 바라고, 또 극도의 조심성으로 서두르지 않는다. 교황 정치 내에 있는 무시무시한 혼란 때문에, 나는 그것에 대해 놀라지 않는다. 마찬 가지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고, 가능한한그리스도교의 적들 사이에서 서로 지지 할 수 있는 수단을 찾는 사람들을 나는 불쌍히 여긴다. 아니, 무엇이라고? 나는 그들이 무엇을 했는지를 그들에게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것을 고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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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칼빈의 니 고데모파 논박 설교 (1) I 강경 림 록 하기 위해서는 어느 쪽에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만약 사람들이 이것저 것 상세히 나에게 질문하려 한다면, 나는 그러한 질문자들을 내가 하나님으로부 터 받은 일반적인 규칙을 참조하게 할 것이다. 거기에는 아주 중요한 것이 있기 때문에, 비록 사람들이 그들의 모든 어려움에 대답하기를 원하다 할지라도, 그것 온 결코 그들과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말한다. 그러한 사람들은 당연 히 그들이 사치도 화려함도 없이 검소하게 옷올 입으라고 권유받은 한 설교에 긍 정적으로 답하고 난 후에 그 설교자가 그들에게 그들의 신발을 꿰매 주기를 원하 는 사람들과 비교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는 모두 이 점에서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확 실한 목표를 가진다. 즉 그것은 바로 신전에 대한 열성은 우리의 마음을 감아먹 고, 또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해진 치욕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열성은 곧 꺼진 불이 아니라 끊임없이 태우기 위해서, 우리의 aH년편|서 점화될 것이다. 그러한 열성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명예를 훼손하게 했던 반종교적인 가 증스러운 짓을 인정해 주는 척하는 것을 허용해 주기는커녕, 우리로 하여금 그 반 종교적인 가증스러운 짓을 보면서 침묵하고 숨기는 것이 불가능하게 할 것이다. 다음을 유의하자. "신전에 대한 열성, 그것은 우리들의 믿음에 대한 고백으로 우 리들을 시험하기 위해 교회에 있는 외부적 명령에 부합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우 리가 알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가 제멋대로 그것에 대해 말한다고 조롱하는 사람들과[f. 19] 나는 무관하다. 왜냐하면 여기서는 알다시피 내가 꾸며낸 것이 전 혀 없으므로, 그들이 결부시키는 것은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면서 그것에 대한 그들의 격언을 말하는 모든 철학 자들에 대해서도 그렇게 말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을 가르치기 위해 그들에 게 말했던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재판관석 앞으로 그 들을 소환했다. 거기에서 그들은 그들의 격언들을 탄원했지만, 그것에 대해서 더 이상 응답할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은 지금 하나님의 말씀을 으뜸가는 것으로 들 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마지못해 하나님을 그들의 심판자로 느낄 것이다. 여기서 가장 능란하고 가장 교활한 것들은 그들의 계산 속에 있다. 즉 그들은 그들이 그 법률을 뒤집거나 모호하게 하기를 원할 만큼 정롱해 있기 때문에, 그들이 걸치고 있는, 그리고 우졸대면서 이성을 잃은 그들의 샤프롱(현수포)은 그들에게 결코 재 판에서 이기게 하지 않을 것이다. 법률 고문들이나 판사·변호사들이 하나님을 비 난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기 위해서, 하나님께 대항하기를 시도할 뿐만 아니라, 모든 성경의 말씀을 거부하면서 지상 최고의 판결처럼 그들의 신성 모독 발언을 토해 냈기 때문에 나는 이 사실을 말한다. 이러한 소인배들은 아주 거만할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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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신학논총재2집
며, 그 말을하고 난 이후에 진실도 없는 이성이 일어난 것을참을수 없어 할 것 이다. 따라서 말이 나온 김에 나는 진실을 거짓으로 바꾸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 어떠한 무시무시한 복수가 준비되어 있는지를 그들이 생각하는 것이 훨씬 더 낫 다고 그들에게 알려 주고 싶다.
탁상 공론하는 학자들은 여기서 그들에 비해 너무 높은 지위를 차지하지 못하 기 때문에, 우리들이 모두 면담하기로 한 하나님에게 대항해서 싸우는 것이다. 사 제들이나 수도원장·승원장·조제장&fl際長)들이 하나님이 행할 유죄 판결에 맨 먼 저 행동올 개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을 제외하고는, 최고의 훌륭한 작위도 여기서 는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궁정의 고관 들이 그들의 성수(聖水)로 사람들을 만족시 키는 데 익숙하다면, 그들은 그것을 하 나님과 유사하게 하려고 시도하지는 않는다. 모든 익살꾼들이 짓궂은 말을 하기 를 포기하고, 일상적인 비웃음을 버리게 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그 들이 두려워해야 할 하나님을 우격다짐으로 느끼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 를 비난하면서 믿게 하는 것은 너무나 큰 잘못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더이상 심판 자로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이 나의 이름을 그러한 이유에서 그들의 종이에 서 지워 버렸다. 그것은,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고 순종해야 한다는 것 이외에 내 의도대로 의식을 지배하기를 주장하지도 않았고, 그들에게 필연성이냐 법칙을 강요하기를 주장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 어떤 자존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지 않고, 그러나 매번 너무나 무기 력하고용기가 없어서 사람들이 그들을움직이게 할수 없는 또 다른 사람들로 말 하자면, 나는그들이 행했던 것처럼 더이상자만하지 않도록그들이 좀더 잘생각 하기를 권유한다. 그들은 그들의 악을 보고, 느끼기 위해서 눈을 뜨고 스스로 깨 어나야 할 것이댜 나는 그들이 처해 있는 어려움을 잘 알고 있으며, 또 나는 그들 에게 아주 쉬운 일처럼 우상 숭배자들 사이에서 순수하게 하나님에게 봉사하는 것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그들에게 덕이 부족하다면 그들은 하 나님에게 의존할 것이고, 하나님은 그들을 강하계 해 주시고, 그들은 세상의 모든 것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더 좋아하기를 배운다.
나는 교황의 권위하에 있는 모든 불쌍한 신자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예언자 예 레미야가 바벨론에 포로로 유치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그와 같은 교훈을 보냈던 것처럼” 그것을 이해하기를 바란다. 만약 교황과 그의 각료들의 폭정이 혹독하고 잔인하다면, 그 당시의 이스라엘은 거기에서 그들의 몫을 차지할 것이다. 그러나 교황은 그 나라의 카톨릭 고유식문(文)으로 그들에게 갈데아의 우상 숭배를 분한 생각이 들게 하도록 만들었다. 왜냐하면 인간들의 폭정으로 하나님은 우리에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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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 숭배되어야 한다는 법칙이 깨뜨려지고 약화된다는 것은 정당하지 않기 때문 이다. 여기서는 위대한 사람이나 하찮은 사람을 위해서, 부자나 가난한 사람을 위 해서 면속이나특권은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모두가고개를숙여야한다.
가난한 사람이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말한다면 하나님이 ''Lj도 너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대답할까 두렵다. 부유한 자는 그들의 호사스러움에 안주하는 것처럼 그들의 안락함에 도취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오 히려 그들은 성 바울올 본받아서 그들을 기독교적으로 살아가게 하는 것을 그만 두게 하거나 혹은 지연시키는 모든 것을 추잡스럽고 애석하게 생각하는 것을 배 운다. 그러나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내가 처음에 언급했던 것을 또한 잊지 말자. 즉 그것은 바로 우리들이 그 어떤 곳으로 옮겨 간다 할지라도, 또 우리에게 그 어 떤 일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진리를 거역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흐리게 하고, 하나님의 봉사를무너뜨리게 하는!모든 미신과우상숭배, 그리고 악습들을 증오하면서 우리들의 순수한 신앙 고백을 지속하기를 항상 준비하기 위해서, 우 리들은 우리들의 교육에 내가 처음 언급한 것을 적용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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