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하면, 추도예배(Memorial service - 제사와 성인기념예배의 합성)가 아니라, 완전히 구별된 개념으로 추도식(Memorial commemoration)을 드리는 것이 좋다.
원래, 예배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즉, 하나님에 대한 신앙적 고백이 유일한 ‘예배의 목적’이다. 추도예배라는 단어는 그리스도인이 사용할 수 있는 단어가 아니다. 이것은 사실, 어불성설이다.
무엇보다도 죽은 조상들은 지금 잠들어 있는 상태다. 죽은 조상들은 천국에서 생활하지 않는다. 간혹, 죽은 가족에 대해, 그가 천국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말을 하는데, 이는 틀렸다. 이미 죽은 자들과 곧 죽을 우리들은 예수님의 재림때에 잠(=죽음)에서 깨어, 최후의 심판대에 서게 된다. 즉, 죽은 조상들에게 경배하는 행위는 무익(=일종의 조상 숭배)하며, 그것을 행하는 자가 성경에 대해 잘 모름을 증명한다.
다만, 그리스도인은 '추도식을 행할 수 있다.' 예배의 형식을 굳이 빌리지 않고 말이다. 이는 죽은 자의 기일이나 명절에 그리스도인으로서 행할 수 있는 최선의 ‘망자’에 대한 효와 예를 다하는 행위다. 물론, 어느 정도의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소속감을 제공할 수 있으며, 불신자들의 ‘유교적 사고체계’에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다.
참고로, 원래, 기독교 의례체계는 관혼상(冠婚喪)만 있다. 왜냐하면 사람이 죽고 나서 천국에 가면 끝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죽은 조상을 기리는 제(祭)에 해당하는 의례는 기독교에 존재하지 않는다. 예외적으로 가톨릭 교회와 정교회에서 ‘성인 축일’에서 얼핏보기에 추도예배와 비슷한 상황이 연출될 뿐이다. 물론, 이는 비신앙인을 포함한 가족중의 누군가를 위해 ‘추도예배’를 드리는 것과 근복적으로 완전히 다르다.
참고로, 한국의 경우, 로마가톨릭교회는 1930년대부터 복음과 문화를 분리하며 일본 황실의 신사참배와 중국의 제사 제도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였고, 개신교회는 제사 금지에 따른 문화적인 공백을 메우고자 1907년부터 추도식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였다. 이는 지나치게 많은 인명적 피해를 줄이고자, 달리 말해, 선교를 위한 전략의 일화으로 또한, 기독교를 처음 접하는 많은 조선인의 죽음을 안타까워 하는 마음으로 각 교파에서 임시로 또한 좋은 의도로 시행되었다.
물론, 관련하여, 많은 논란이 있을 수 있는데, 분명한 것은 2022년을 기준으로 더 이상 ‘현재 진행형’인 ‘추도예배’가 과거의 선교를 위한 전략으로 사용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점이다. 지금은 ‘유교적 제사’를 행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많은 인명적 피해’가 교인들에게 발생하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 ‘추도 예배’라는 특이점에 관해, 시간이 많이 지난 상태에서 ‘신학적인 줄타기’를 굳이 계속할 필요가 없다.
결론적으로 그리스도인은 추도예배를 대신하여, ‘추도식’을 드리는 것이 좋다. 물론, 이는 그것의 순서와 목적을 분명히 드러낼 수 있는 ‘틀’과 '내용'을 전제해야 할 것이다. 기회가 되면, 이것도 열린개혁교회에서 만들고자 구상중이다. 이는 아직, 개신교회 전체에서 주류로 다루어지는 바가 아니다. 좋은 상황이 빨리 오기를 기도한다.
* (아래의 자료로)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추도식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유지하여, 각 순서와 내용을 담았습니다.^^
추도식 순서
1. 사회 – 인도자
지금으로부터 고 OOO 집사님의 ( )주기 추도식을 거행하겠습니다.
2. 신앙고백(사도신경) - 다같이
3. 찬송가(491장) – 다같이
4. 대표기도 – 인도자
5. 성경봉독(고후5:1-2) – 다같이
(고후 5: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고후 5:2)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6. 말씀 - 인도자
인생은 영원할 수 없습니다. 이 땅에 오면 한번은 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세상 사람들과 다릅니다.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집이 있기 때문입니다. 잠시 우리가 육체로 사랑하는 사람과 떨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됩니다.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집(=천국)이 있다는 것을 믿고, 기뻐해야 합니다.
본문에 따르면, 사람의 영혼은 세상에 있는 동안 육체의 장막에 머물되, 사람의 영혼이 세상을 떠난 후 종말적으로 하늘 나라의 집에 머뭅니다. 오늘 고인은 그동안 세상에서 육체의 장막집에 거하여 하나님을 섬겼고, 이제 그 장막집이 무너졌습니다. 그러므로 고인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영원한 집으로 이사를 갈 것입니다. 사실, 육체의 장막은 그리 좋은 집이 아닙니다. 영원한 하늘 나라의 집과 육체의 장막은 비교할 수 없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그곳은 찬송과 영광과 기쁨과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충만합니다. 반면, 세상은 눈물과 한숨과 억울함과 고달픔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고인은 이 모든 무거운 짐을 벗고, 행복을 누리는 곳으로 향합니다. 이제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옮겨가, 새 생활이 시작되는 겁니다. 그러니, 고인의 죽음을 너무 슬퍼하지 말고, 오히려 기뻐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의 특권입니다. 성경에 따르면,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순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집니다” 여러분!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세상에서 살아가는 중 예수님은을 그리스도로 신앙하느냐 아니냐입니다. 그러니, 고인과 같이 살아 생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재림(=마지막 심판) 때에, 고인과 함께 하늘 나라의 집으로 옮겨지기를 고인과 함께 영원한 기쁨을 누리기를 소원합니다.
7. 찬송가(23장) – 다같이
8. 주기도문 - 다같이
* 주기도문으로 추도식을 마치겠습니다.
-> 관련하여, 배춘섭 교수님의 제사와 관련된 논문을 읽어보시길(링크) 바랍니다. 추도예배가 아닌, 추도식으로의 변화가 절실합니다.
2023.11.20 - [신학 자료/추천 신학 논문] - 그리스도인이 '제사'와 '추도 예배'를 드리면 안되는 이유 - 논문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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