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230709 갈릴리에서의 후속 사역3 – 물 위를 걸어, 제자들을 구하다 & 갈릴리에서의 후속 사역4 – 게네사렛의 이방인을 치유하다, 마태복음 14장 22-33, 34-3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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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개혁교회(2106-2308)/주일 예배

주일예배, 230709 갈릴리에서의 후속 사역3 – 물 위를 걸어, 제자들을 구하다 & 갈릴리에서의 후속 사역4 – 게네사렛의 이방인을 치유하다, 마태복음 14장 22-33, 34-36절

개혁신학어벤져스 2023. 7. 9. 11:07

예배를 드리실 분은 12:04부터 보시길 바랍니다.


 도입 or 요약

 예수님 당시, 신적 능력으로 인하여 자연 법칙이 극복될 수 있음은 유대인들에게 매우 당연하고 광범위하게 수용됐습니다. 특히, 성자 하나님인 그리스도께서 물 위를 걸을 수 있음은 너무나 당연했습니다. 곧,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과 후대의 마태공동체에게 ‘물 위를 걸음이 가능한가?’는 그것의 실현 가능성이 아닌, ‘그것이 누구로부터 일어났는가? 곧, 그가 그리스도인가?’를 의미했습니다. 관련하여, 많은 구약성경본문들이 ‘물 위를 걷는 하나님’을 다룹니다.(예_욥 9:8, 합 3:15, 시 77:19)

 본문은 그것들에 연장하여 바다 위를 걷는 예수 그리스도(=성자 하나님)를 강조합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이 물 위를 걸어, 성자 하나님(=그리스도)으로 강조됩니다. 특히, 27절에서 예수님은 풍랑으로 말미암아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안심하라, 나다(=에고 에이미), 두려워 말라."라고, 말합니다. 이는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에고 에이미, 70인역, 출애굽기 3:14)”라는 ‘신의 현현(theophany – 인간의 눈에 보이는 신의 가시적인 나타남)’을 연상시킵니다. 그렇습니다. 물 위(=바다 위)를 걷는 예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입니다.

 동시에, 문맥적으로 물 위(=바다 위)를 걷는 예수님은 위험에 처한 제자들을 돕습니다. 곧, 문맥적으로 ‘목자로서 자신의 백성을 돌보는(=오병이어에 후속하는) 예수님’이 강화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신적 능력을 소유했기에, 그 어떤 강력한 것으로부터 구하지 못할 자가 없습니다. 특히, 예수님이 바다 위를 걷는 이야기는 마가복음 6:45-52과 요한복음 6:15-21에 나오되, 오직 마태복음에서 ‘베드로에 관한 보충적인 내용’이 추가됩니다. 이는 마태공동체를 위한 마태의 의도적 삽입입니다. 바로, ‘예수의 그리스도됨’에 관한 믿음과 의심의 중간에 위치한 그리스도인을 다루기 위함입니다.

 실로, 베드로는 예수의 신적 능력(=베드로가 바다 위를 걷게 할 수 있음, 그리스도됨)을 믿어, 자신을 삼키려는 풍랑에 맞섭니다. 곧, 그는 예수의 그리스도됨에 관한 확실한 신앙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곧장, 그는 풍랑의 위압감에 사로잡혀, 바다 속으로 빠져듭니다. 곧, 그는 예수의 그리스도됨을 순간적으로 신앙하지 못합니다.

 아마, 마태공동체는 베드로를 자신들로 또한 배를 유혹과 시험과 박해를 당하는 교회로 연상했을 겁니다. 물론, ‘예수의 그리스도됨’에 관한 신앙적 도전을 하며, 그것이 약해질 때 성자 하나님께서 직접 또한 즉시 자신들의 신앙적 위기를 도우리라 신뢰하며 말입니다. 이는 베드로가 풍랑을 맞이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와 능력을 요구 및 재요구하고 그것들을 충분히 예수로부터 받은 것과 같습니다. 이어, 게네사렛에서의 치유(14:34-36) 본문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의 점증하는 반대와 배척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 그들의 병자들을 치유함을 강조합니다. 특히, 게네사렛(=갈릴리 지역 중 비옥한 평야 지대로서, 특히 많은 이방인이 거주함) 사람들은 예수의 치유능력에 대해, 다만 그의 옷깃을 만지는 것으로 충분하리라 확신합니다. 이는 예수께서 개별적으로 환자들에게 접촉하지 못한 채 곧, 무리가 예수를 에워싼 채 한꺼번에 집단적으로 예수께 접촉하여 치료됨을 전제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를 향한 게네사렛 사람들의 반응은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종교 지도자들(=바리새인들, 특히 서기관들)의 부정적인 반응(=다음 단락, 정결 논쟁에 관함, 예_이방인과 직간접적으로 접촉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함)과 대조되기에 다방면에서 적절합니다. 그렇게, 다음 단락에서 다루어질 내용의 배경이 극적으로 제시됩니다. 


 기

 - 자연 현상마저 다룰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과 자신의 백성들을 항상 돌보는 하나님의 자비를 신뢰하게 하소서!

 - 특히, 감당할 수 없는 위기를 맞이 했을 때, 끊임없이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소서!

 - 그리하여, 날마다 하나님의 돌봄을 체험하고, 그것에 감사하게 하소서!


 관찰과 이해와 적용

 - 예수님은 오병이어를 체험한 무리와 제자들을 어디로 보내고, 자신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나요?(14:22, 23) 관련하여, 예수님은 왜 그렇게 하나요?(설교)

 - 예수님은 풍랑을 맞은 배에 걸어가, 제자들에게 무엇이라 말하나요?(14:27) 그중 누가 흐릿하게 보이는 예수님을 알아보며, 그는 예수께 무엇을 요구하나요?(14:28)

 - 베드로처럼 하나님의 신적 능력을 신뢰 및 간구하여, 거대한 위기를 극복한 적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또한, 베드로처럼 거대한 위기에 압도되어 일시적으로 하나님의 신적 능력을 신뢰하지 못해, 다시 위기에 처한 적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 나는 어느 정도로 예수님의 신적 능력을 신뢰하나요? 비유컨대, 나는 어느 정도로 예수님을 만져야 치유 받을 수 있으며, 어느 정도로 예수님의 방문을 주위에 통지할 수 있나요? 나누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