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신앙 생활(WISE FAITH, 23년 10월호) - PDF, 전문 HTML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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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신앙 생활(WISE FAITH, 23년 10월호) - PDF, 전문 HTML 포함

개혁신학어벤져스 2023. 11. 2. 15:02

2023년 슬기로운 신앙 생활(WISE FAITH) 10월호가 발간되었습니다.^^

 

WISE FAITH(2023년 10월호).pdf
1.36MB


 

2023  
개혁교회 그리스도인의 이야기  
10  
NO.1  
슬기로운 신앙 생활(WISE FAITH)  
|Cover story|다방면으로 살펴, 만전을 기하다!  
박이정  
만전책  
博而精 萬全策  
ꢀ ꢀ ꢀ  
여러 관점으로 넓고 깊이 알아  
안전하게 신앙하다.  
장창한 윤선영 백승엽 김은성  
윤다원 장봉근 윤다이 천예나  
이재현 윤용준  
슬기로운 신앙 생활  
개혁교회 그리스도인의 이야기  
행|2023년 10월 31일  
자|장창한, 윤선영, 백승엽, 김은성, 윤다원, 장봉근, 윤다이,  
천예나, 이재현, 윤용준  
편집자, 펴낸이|장창한  
펴낸곳|온고지신 북스  
출판사등록|2021.01.08.(제2021-5호)  
소|서울특별시 성북구 솔샘로 4길 18 601호  
화|010-2210-6843  
이메일|changhan3501@daum.net  
ISSN|2765-6411  
cr-ministry-institute.tistory.com  
ⓒ 온고지신북스 2023  
본 저작물은 각 저자와 온고지신북스의 지적 재산으로서 무단 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비매품  
목차  
들어가며  
4
장창한_COVID-19 팬데믹 이후 영광의 개똥 신학(칼럼)  
신학과 목회 - 특집  
14  
44  
46  
50  
70  
장창한_부동산 문제를 바라보는 개혁신학의 관점2(평론)  
윤선영_어느 날의 감사(칼럼)  
장창한_어린이 슬기로운 신앙 생활(QT)  
백승엽_고대 근동사와 다니엘서의 관계(강의)  
김은성_장례를 마치며(칼럼)  
인문학과 철학과 음악과 일반과학 - 기획연재  
윤다원_비극의 결말(문학)  
74  
81  
86  
89  
93  
101  
장봉근_어린이 구강관리법(치의학)  
윤다이_성인 백신접종에 대한 궁금증 모음(약학)  
천예나_나는 산곡교회 반주자입니다!(피아노학)  
이재현_풍력발전으로의 전환에 대해(재생에너지학)  
윤용준_찬양인도의 준비(실용예배학)  
나가며  
장창한_COVID-19 팬데믹 이후 신학적·목회적 패러다임의  
변화 예측(칼럼)  
104  
115  
부록  
장창한_칼빈의 서신에 나타난 칼빈신학의 적소성대(積小成  
大)3(칼럼)  
- 3 -  
들어가며  
COVID-19 팬데믹 이후 영광의  
개똥 신학 : 부정신학1)과 겸손을  
견지하라  
장창한 / 열린개혁교회2) 담임목사  
장창한 목사는 개혁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열  
린 관점’을 강조한다. 왜냐하면, 개혁교회에서 강조되는 개혁은 ‘열린  
관점’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현대 한국개혁교회에서 지나  
치게 ‘닫힌 관점’을 곧, 개혁을 꺼려하는 태도를 견지함은 다수의 목  
회자나 성도들에게 공통적으로 알게 모르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물론, 장창한 목사는 ‘열린 관점’에 소위, 신학적 방종을 경계한다.  
이는 개혁신학에서 강조하는 개혁의 범위가 이전의 개혁신학을 토대로  
새시대적인 요구사항들에 반응하여, 그것을 보수하여 발전시킨다는 의  
미로 한정되기 때문이다. 관련하여, 장창한 목사는 ‘부정신학’과 ‘겸손’  
을 본고에서 강조한다.  
1) 긍정신학은 논리학에 바탕을 둔 신학방법이다. 예컨대, 삼위일체, 성부,  
성자, 성령, 사랑, 진리 등 개념적 보편자들을 정의하고 이들을 통해  
- 4 -  
한국교회는 COVID-19 바이러스 팬데믹 이후3), 하나님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가짜 그리스도인과 하나님에 대해 참으로 관심  
이 있는 진짜 그리스도인을 더욱 확실히 구분하게 됐다. 곧, 큰 의  
료적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며, 누군가의 흐릿한 또는 애매한 신앙  
없는 것으로 또는 있는 것으로 분명히 드러날 계기가  
COVID-19 바이러스 팬데믹을 지나며 많았다.  
아마, 이는 COVID-19 바이러스 팬데믹 이후, 목회에 전력을 쏟  
아 부은 목회자들과 이외의 평신도들에게 특히 와닿을 것이다. 실  
로, 그것의 창궐은 진짜 그리스도인이라 생각했던 사람들이 가짜  
그리스도인으로 판명되는 계기였다. 또한, 역으로 그것의 창궐은  
많은 가짜 그리스도인이라 생각했던 사람들이 진짜 그리스도인으  
로 판명되는 계기이기도 했다. 물론, 인간의 관점으로 또한 일시적  
인 현상적 관점으로 ‘구원 여부’를 소위, ‘대략적으로’ 판단하면 그  
신을 이해할 수 있다는 명제를 바탕으로 한 신학방법이다.  
반면, 부정신학은 긍정신학으로 결코 신을 정의할 수 없을 뿐만 아니  
라 이해할 수도 없다는 명제를 바탕으로 한 신학방법이다.  
곧, 부정신학에서 '신학'은 긍정신학처럼 논리적으로 서술하는 학문이  
아니라 '신에게로 나아가는 길' 정도의 의미를 가진다.(임헌조, 하느님  
과의 완전한 일치 부정신학연구:'생각 끊기'를 중심으로,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 2015, 14.)  
2) 열린개혁교회는 2023년 8월 31일까지 운영되었으나 해산하였다. 202  
3년 10월 31일 현재 교부와개혁신학목회연구소 산하 교회로 해당 교  
회가 변경되었다. 이하, 본고에서 편의상 집필진을 열린개혁교회 구성  
원으로 호칭하도록 한다.  
3) 대한민국은 2023년 1월 30일부터 일반 병의원과 약국에서 마스크를  
의무화하지 않게 된 소위, ‘비포(before) 코로나’시대를 맞이한다.  
- 5 -  
러하다.  
관련하여, 필자는 COVID-19 바이러스 팬데믹 이후에 정의될 수  
있는 ‘진짜 그리스도인’들을 다시 나눌 수 있다 또는 나누어야 한  
다고, 생각하게 됐다. 왜냐하면, COVID-19 바이러스 팬데믹을 극  
복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인 자 중 일부들에게 그것으로 말미암  
‘자만심’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내가 이번  
COVID-19 바이러스 팬데믹 때에, 교회에서 이런 일4)을 했어! 내  
가 아니었다면, 교회가 큰 일 났을거야!’, 또는 ‘나는 이번  
COVID-19 바이러스 팬데믹 때에, 각종 시련을 기도로 이겼어!  
역시 기도하면 모든 의료적 경제적 어려움으로부터 승리할 수 있  
어!’ 등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많은 교부가 전제 및 예고했듯, 이러한 현상  
곧, ‘자만심의 일어남’은 또 다른 열매를 낳았다. 예컨데, ‘내가 하  
나님을 매우 잘 알아. 하나님은 “이런 분”이야!’라는 개똥 철학적  
확신이다.  
특징적으로 소위, 그들의 “이런 분5)”은 그들의 경험에 근거하여  
매우 협소하게 정의된다. 안타깝게도 이런 주장은 한편으로 옳으  
나, 전반적으로 여러 사람이 처한 여러 상황을 두루 포괄하지 못한  
다. 다시 말해, 소위, ‘진짜 그리스도인’들의 ‘자만적 신앙고백’은  
많은 교부로부터 지적되는 ‘또 다른 죄’의 잉태로 귀결 및 직결된  
4) 아마, 설교, 반주, 특송, 청소, 헌금, 전도 등 각종 개인적 또는 공동체  
적 신앙생활에 관련된 무형적 유형적 요소를 들 수 있다.  
5) 하나님을 지칭함.  
- 6 -  
다.  
그렇다. 필자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늘 하나님에 대해 알 수 없음을  
곧, ‘하나님을 앎’에 관한 겸손을 강조해야 할 필요성을 느껴, 본고  
를 쓰게 됐다. 큰 의료적 경제적 어려움을 지날 때 교회를 사랑으  
로 섬긴 또한 그것들을 기도로 극복한 너무나도 귀한 일부 ‘진짜  
그리스도인’로 그들이 판명되길 바라며 말이다. 필자는 참으로 그  
들에게 개인의 구원사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이 글을 쓴다.  
부정신학의 시작과 목적 피조물은 하나님을 알 수  
없다  
부정신학은 절대적이고 초월적인 신에 대한 유한한 인간의 언표  
(言表) 및 지식의 불가능성을 전제한다.6) 이는 갑바도기아의 교부  
들에게서 시작하여 동서방의 모든 그리스도교 분파에서 현재까지  
공통적으로 사용되는 신학방법이다.  
관련하여, 부정신학은 신이 무엇인지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신이  
무엇이 아닌지를 서술한다.7) 왜냐하면, 그것이 피조물인 인간과 차  
원을 달리하는 신의 초월성 또는 절대성을 확보함을 주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8)  
6) 전광식, Theologia Negativa: 부정신학의 역사와 의미, 石堂論叢, 20  
09, 33.  
7) 전광식, Theologia Negativa: 부정신학의 역사와 의미, 石堂論叢, 20  
09, 34.  
8) 전광식, Theologia Negativa: 부정신학의 역사와 의미, 石堂論叢, 20  
09, 34.  
- 7 -  
물론, 이는 하나님에 대한 명명과 인식의 불가능성만 서술하는 것  
에 머물지 않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직관하고 하나님과  
합일되는(unio mystica) 신비주의적 길을 열어둔다.9) 달리 말해,  
인간이 신에 의해 신을 부분적으로 알 수 있다는 명제로 귀결된다.  
현대개혁교회의 부정신학적 측면 그리스도와의 신  
비로운 연합, 그리고 그것으로 말미암는 겸손  
개혁신학은 큰 틀에서 부정신학의 이점을 신학을 전개함에 있어  
다방면으로 취한다. 그중 대표적으로 ‘그리스도와의 신비로운 연  
합’을 들 수 있다.10) 관련하여, 칼빈의 그것에 관한 이해는 ‘의의  
전가와 그리스도의 계속적 중보’의 개념과 더불어 논의되며, 성도  
에게 구원받음(특히, 행위라는 열매를 맺음)에 관한 완벽한 겸손으  
로 귀결된다.  
먼저, 칼빈은 인간의 삶에서 맺는 열매를 ‘의’로 지칭할 경우, 그  
것을 맺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인간을 다음의 4가지 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그는 마지막의 인간을 전적인  
은혜로 의롭다 함에 이르는 성도라 설명한다.11)  
9) 전광식, Theologia Negativa: 부정신학의 역사와 의미, 石堂論叢, 20  
09, 34.  
10) ‘그리스도와의 신비로운 연합’외에도 개혁교회는 다양한 신학적 논의  
에 갑바도기아 교부들의 부정신학적 관점을 곧,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  
님에 대해 모든 것을 알 수 있느냐?’는 질문에 ‘아니다’라는 대답을 사  
용한다.  
11) 『30주제』 211.  
- 8 -  
첫째,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우상숭배에 자신을 바치는 인간  
둘째, 입으로 하나님을 고백하고 성례에도 참여하나 명목상 그리  
스도에 속한 인간  
셋째, 마음의 불법을 숨기고 외식하는 위선자  
넷째, 하나님의 영으로 중생하여 ‘진정한 거룩함’에 이끌리는 인  
관련하여, 칼빈은 하나님 앞에서 의와 불의가 구별되는 것은 ‘행  
위의 법’이 아니라 ‘믿음의 법’으로 말미암는다고 분명하게 말한다.  
이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  
함에 근거하기 때문이며(히 11:6)12), 누군가에게 실질적인 결과로  
서의 행위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믿음을 강조하도록 길을 연다.13)  
또한, 동시에 칼빈은 네 번째 종류에 속한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  
로 거듭나서 순결한 생활 곧, 마음과 뜻을 다하여 율법에 순종하는  
(의를 드러내는) 삶을 살아간다고 주장하며, 이를 개인의 구원론  
중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와 그로 인한 성도의 그리스도와의 연합  
에서 도출한다.14)  
이때, 의의 전가를 논하기 전, 칼빈은 신학적으로 죄의 전가15)  
12) 『30주제』 212.  
13) 물론, 여기서 믿음은 행위를 수반한다.  
14) 이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의로운 생활을 수반하는 즉, 성화의 삶을  
수반하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15) ‘죄의 전가’의 경우, 현상적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누  
군가에게 구체적인 논리적 설명을 요구 및 필요로 할 수 있다. 그러한  
필요에 따라 칼빈이 이를 정의했음에 유의해야 한다.  
- 9 -  
먼저 다룬다. 이는 오직 전가된 그리스도의 의만이 전가된 죄를 성  
도의 구원 과정에서 제거할 수 있다고 말하기 위함이다.16) 관련하  
여, 칼빈은 로마서 5:8-10을 통하여, 죄를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불화로 다루고,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적으로서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야 하는 상태에 머뭄을 강조한다.  
이때, 중요한 단어의 정의를 필요로 한다. 바로, 죄의 용서와 그  
로 말미암는 화목이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를 통해 일어날 때, 믿음  
으로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를 받은 상태’17)를 ‘법정적 칭의’로 부  
르는 점이다.  
관련하여, ‘법정적 칭의’를 다룰 때, 칼빈은 ‘행위는 이미 이루어  
진 칭의의 진정성을 확증한다’고 말한다. 이는 행위가 공로로 등가  
될 수 없지만, 이미 이루어진 ‘칭의18)의 확증’에 있어 행위가 칭의  
를 확증할 수 있음을 전제한다. 관련하여, 칼빈에게 예수님의 열매  
비유는 그것을 설명하기에 적절하다. 실로,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  
를 맺고, 나쁜 나무는 열매를 맺지 않는 법이다.  
달리 말해, 칼빈은 예수를 참되게 믿는 ‘믿음’은 의로운 행동(선한  
삶)으로 증명되는, 즉, 믿음으로 말미암아 신자와 그리스도 사이에  
신비로운 연합이 이루어지는, 그의 설명에 따르면, ‘그리스도와의  
신비로운 연합’(unio mystica cum Christo)으로부터 ‘이중은  
16) 『30주제』 213.  
17) 물론, 이는 예수께서 승천하사, 하나님의 보좌 옆에서 신앙을 고백한  
자들을 위해 계속적으로 중보함을 전제로 한다  
18) 이하, 본고에서 칭의는 모두 칼빈이 주장한 ‘법정적 칭의’를 의미한  
다. 이는 칼빈의 저작을 읽을 때에 일반적으로 적용되며, 개혁교회에서  
현재에도 사용하는 개념과 명칭이다.  
- 10 -  
총’(gratia duplex, ‘칭의’(instificatio)와 ‘성화’(sanctificatio))이  
신자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그렇다. 칼빈에게 ‘믿음’은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기에 ‘칭의’는  
인간의 공로로 인정될 수 없으며, 그러기에 ‘믿음’은 그리스도와  
연합시키는 도구요 수단에 해당한다.  
관련하여, 그는 ‘오직 믿음’은 결코 홀로 믿음이 아니라(sola  
fides nunquam sola)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즉, 칼빈에게 믿음  
으로 그리스도의 의를 받아 의롭다 칭함을 받은 자는 이미 성령으  
로 말미암아 중생된 새 피조물로서 신앙적으로 지속발전하는 삶을  
시작할 것이기에 이미 이루어진 칭의의 확증으로서의 행위를 필요  
로 한다.  
그렇다. 칭의의 확증을 받은 신자는 필연적으로 성화의 과정을 밟  
을 수 밖에 없다. 이는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은 인간의 경우,  
반드시 성화의 삶을 살게 됨을 의미한다.19)  
이외에 칼빈은 구원의 원인을 4가지로 나눈다. 첫째는 동력인으  
로 하나님의 사랑이고, 둘째는 질료인으로 그리스도의 공로(값), 셋  
째는 도구인(형상인)으로 믿음, 넷째는 목적인으로 하나님께 영광  
이다. 이러한 논리적 구조는 성도의 선행20)을 모조리 하나님의 은  
혜로 귀결시킨다. 곧, 성도의 선행은 하나님의 선물로서 그분의 선  
19) 주목해야 할 점은 칭의와 성화의 관계에 있어서 논리적 순서는 있지  
만, 시간적 순서를 따지지는 않는다. 이는 현상학적으로 누군가의 구원  
유무를 원천적으로 인간이 판단할 수 없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20) 본고의 문맥에서 신앙인으로서 COVID-19 팬데믹을 극복하는 과정에  
서 드러난 현상학적 각종 행위를 1차적으로 의미한다. 그것이 교회에  
서의 봉사이든 개인적인 기도이든 무엇이든 말이다.  
- 11 -  
하심을 깨닫게 하며 소명의 표로서 그분의 택하심을 돌아보게 할  
뿐이다.21)  
즉, ‘그리스도와의 신비로운 연합’에서 시작된 구원의 각종 원인  
을 설명할 때, 칼빈은 칭의의 근거로서의 행위를 철저하게 부정하  
되, 이미 이루어진 칭의의 확증으로서의 행위를 강조한다. 그렇다.  
칼빈에 따르면 행위는 후험적으로(a posteriori) 칭의의 확증이 되  
고, 그중에서도 이는 부르심의 열매(신자가 부름을 받은 것에 대한  
증거)에 해당하기에, 만약 믿음과 함께 이러한(소명의) 길을 가지  
않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는 애초에 칭의를 받지 못한 가짜 그리스  
도인일 뿐이다.22)  
참고로, 칼빈은 신자의 행위에 상급이 약속되어 있음은 사실이지  
만 이러한 행위에 상급이 돌려지는 것은 행위 자체의 공로가 아닌  
다음과 같은 다른 이유에 있다고 말한다.23)  
첫째, 하나님께서 신자의 행위들을 그 자체로 받으시지 않고, ‘그  
리스도 안에서’ 받으시기 때문이다. 둘째, 하나님께서 너그러우심  
과 자애로 신자의 불완전한 행위들의 가치를 고려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것을 돌이켜 새로운 유의미한 가치로 만드시기 때문이다.  
셋째, 하나님께서 신자의 부패한 행위들에 불완전함을 돌리지 않으  
21) 『30주제』 216.  
22) 물론, 이는 대표적으로 구원받음에 관한 겸손한 태도를 견지하지 못  
하는 자를 포함한다.  
23) 칼빈은 신자의 행위로 말미암는 각종 신학적 담론을 ‘그리스도와의  
신비로운 연합’을 중심으로 오로지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으로 설정  
한다. 이는 개혁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 논리적으로나 행위적으로나 구  
원사적으로 겸손하게 만드는 근거이다.  
- 12 -  
시고, 그것들을 용서와 함께 받으시기 때문이다.  
이렇게 칼빈은 그리스도를 통한 의의 전가와 그리스도의 계속적  
중보를 ‘구원’과 관련시키며, 그것과 그것에 후속하는 모든 논의의  
종착점을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에 둔다.  
요약하면, 그리스도와의 신비로운 연합은 신을 스스로 인식할 수  
조차 없는 인간에게 신이 신을 인식하도록 하고 나아가, 신이 인간  
에게 소위, 신과 연합(신성의 부여를 전제하는 표현)하도록 한 곧,  
인간에게 구원사역적 참여24)에 있어 겸손을 강제로 할당한 대표적  
이론이다.  
그렇다. 개혁신학에서 부정신학은 1차적으로 하나님이 인간의 인  
식대상이 아니라 도리어 인간이 그의 인식대상임을 지적하며, 하나  
님의 인식대상화 내지 객체화,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인식  
주체화를 거부한다.25) 다시 말해, 개혁신학에서 부정신학은 원론적  
으로 하나님을 너무 초월적이라 단순히 인간의 지성 그 자체만으  
로는 인식될 수 없으므로 하나님에 대한 언설로서의 모든 종류의  
신학과 인간 중심적 또는 인간 주체적 신앙생활을 불가능한 것이  
면서 모순적인 것이라 간주한다.26)  
24) 이는 순차적으로 누군가의 개인적 구원에 관하고, 후속하여 그가 속  
한 교회의 공동체적 구원으로 확장된다. 다시 말해, 신자는 그의 구원  
사적 좌위(locus)에서 ‘구원됨’에 관해 그 어떤 자만심을 일으킬 수 없  
다.  
25) 전광식, Theologia Negativa: 부정신학의 역사와 의미, 石堂論叢, 2  
009, 66.  
26) 전광식, Theologia Negativa: 부정신학의 역사와 의미, 石堂論叢, 2  
009, 66.  
- 13 -  
신학과 목회  
부동산 문제를 바라보는 개혁신학  
의 관점2  
장창한 / 열린개혁교회 담임목사  
Ⅱ. 본론  
3. 채권자의 생존과 존엄을 성취하는 희년의 구체적  
실천규정 희년과 안식년의 성경본문을 중심으로  
신구약성경을 보면, 예수님이 오신 당시까지 희년이 존재했으며,  
예수께서 그것의 존재 자체를 결단코 부정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눅 4:18-19 참고). 곧, 희년은 신약시대에도 충분히 존중해야 할  
율법 규범으로서,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의 정의와 존재 목적과  
사용법에 대해 올바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특히, 부동산의 사용과  
소유에 관한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 말이다. 실로, 신구약성경은 토  
지(부동산)의 사용과 소유를 소재적 중심에 놓고 희년을 신학적으  
로 또한 목회적으로 다룬다.  
- 14 -  
구약성경에서 희년은 일곱 번째의 안식년으로서 49년마다 돌아왔  
다.27) 김회권의 주장처럼 본디 이는 가문 또는 가족 내에 전해지  
는 가난과 부를 끊기 위해 제정되었다.28) 희년이 되면, 채무자(債  
務者) 즉 채무로 인해 자신의 토지 소유권을 빼앗긴 사람이 그것을  
가져간 사람(채권자[債權者])으로부터 그것을 무상으로 돌려받을 수  
있었고, 만약 그가 토지 소유권뿐만 아니라 채권자의 노예로 전락  
했을 경우 신체의 자유까지 무상으로 얻을 수 있었다.29)  
이때, 중요한 것은 이러한 행위를 행해야 하는 주체와 그 행위를  
받는 대상의 속성이다. 관련하여, 각종 구약성경 본문은30) 그 행위  
를 받는 대상에 대해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또한 그렇게 된 어  
떤 이유를 불문하고 현재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는 자로 규정한다.  
대표적으로 빚이나 기근이나 전쟁이나 사별(死別) 등을 경험한 자  
를 예로 들 수 있다.31)  
27) 신약성경에서 직접적으로 희년에 대해 서술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경  
우가 없다. 이에, 그것의 신학적 바탕이 된 구약성경을 자세히 관찰함  
이 중요하고, 선행되어야 한다.  
28) 김회권, 구약성서의 희년사상과 사회윤리적 함의(含意), 신학사상, 20  
04, 144.  
29) 신명기 15:1-18; 레위기 25:1-55;  
30)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출애굽기 23:10-11과 신명기 15:1-11과 레위  
기 25:3-7을 관련지어 이해한다. 이는 성경이 안식년에 대해 가진 하  
나의 분명한 관점을 중심으로 그것이 가지는 다양한 특성 중 강조하고  
싶은 무엇인가를 문맥에 따라 서술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관련하여, 위 신명기 본문은 특정한 일곱번째 년에 대해 빚진 자의  
탕감을 강조하고, 위 출애굽기와 레위기 본문은 땅을 쉬게 하는 것을  
강조한다.(김선종, 레위기 25장의 형성 안식년과 희년의 연속성과 불  
연속성, 장신논단, 2011, 103.)  
31) 관련하여, 필자는 레위기 25:1-55의 흐름 속에서 25:3-7을 이해해야  
함을 강조하는 바이다. 그래야, 그것을 레위기 전체 본문의 흐름에 근  
- 15 -  
요약하면, 해당 구약성경 본문들은 희년법을 통해 누군가가 하나  
님의 백성이라면, 그는 반드시 빈곤한32) 다른 하나님의 백성에게  
자신이 주장해야 할 바 또는 주장할 수 있는 바를 포기해야 한다  
고 말한다. 곧, 이는 하나님의 백성인 채권자가 하나님의 백성인  
채무자의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생존과 존엄을 염두해야 함을 핵  
심으로 한다.33)  
특히, 해당 성경본문들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희년의 상위 개  
념인 안식년을 다룰 때에 구약성경은 다른 이스라엘 백성 중 가난  
한 자34)들을 위해 밭의 일부를 비워두거나 밭에서 난 곡식을 남겨  
야 한다고 말한다.35) 이는 희년이 안식년의 하위 개념으로서 특별  
히 토지를 중심으로36) 한 인간의 생존과 존엄에 대한 보호를 강조  
거하여 바르게 곧, 행위의 주체와 그 행위를 받는 대상의 속성을 규정  
한 구문으로 이해할 수 있다.  
32)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는  
33) 필자는 김회권이나 일반적으로 지금까지 알려진 개혁신학자가 아닌  
공공신학자 또는 해방신학자들의 주장과 다르게 해당 희년의 적용 대  
상을 비그리스도인으로 확대하지 않는다.  
모세오경은 희년을 누릴 수 있는 범주로 오직 하나님의 백성 즉, 구  
원받은 이스라엘 백성을 다루며, 모세오경은 그들을 이방인과 철저히  
구분한다. 다시 말해, 모세오경에서 이방인은 희년을 누릴 수 있는 또  
는 희년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다.(김회권, 구약성서의 희년사상과 사회  
윤리적 함의(含意), 신학사상, 2004, 146; 레위기 25:11-55)  
물론, 모세오경은 처음에 이방인이었더라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갖  
게 된 경우,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으로 신분이 변화되었다고  
말한다. 즉, 희년의 적용 대상이 제한적인 것은 단순히 이방인이라는  
출신에 따른 구분이 아니라 믿음의 유무에 따른 구분으로 보는 것이  
옳다. 이러한 논리성은 개혁신학적 성경주해방법에 의거하기에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34)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는 자’의 또 다른 표현이다.  
35) 레위기 2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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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음을 드러낸다.  
즉, 희년은 안식년 중에서도 특별히 구분하여 지켜야 한다. 희년  
은 다른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자신의 권리  
포기를 요구하는 절기를 대표한다. 달리 말해, 희년은 평범한 다른  
안식년처럼 자신이 감당할만한 수준으로 다른 하나님의 백성을 배  
려을 하는 정도37)를 넘어서는 내려놓음을 채권자에게 요구한다.  
그렇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왜 희년을 일부러 지정하  
셨는지를 구약성경을 통해 간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실로, 하나님은 그러한 가치를 시대에 알맞게 어느 정도의 수준으  
로 제도화하여 실천하기를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명령하셨다.38)  
리고 바로, 그것이 다른 후대의 구약성경에서 언급된 희년과 안식  
년의 구체적 실천규정이다.  
필자는 안식년의 구체적 실천규정 중 노예가 된 자에게 자유를  
주는 사례를 지적하고 싶다.39) 이는 희년이 더 상위 범주인 안식  
년에 구문론적으로 포함된 이유와 이를 근거로 희년을 더욱 세밀  
36) 성경시대에 농업이 성경인물들의 주된 산업임을 명심해야 한다.  
37) 레위기 25:2-7  
38) 이는 하나님이 진정한 땅의 주인이기에 곧, 그분께서 근본적으로 땅  
을 만드셨고, 인간에게 경영하도록 허락하셨기에 가능하다. 하나님의  
백성은 자신들의 왕인 하나님의 요구에 대해 긴장할 수 밖에 없다.(이  
사야, 구약의 땅과 사회윤리: 안식년과 희년을 중심으로, 기독교사회윤  
리, 2015, 280.)  
관련하여, 하나님은 신명기 15:7-8까지 희년으로 인해 채무를 돌려받  
지 못할 것을 생각하지 말고, 오히려 더욱 넉넉하게 채무를 빌려주도  
록 강하게 명령한다.(이사야, 구약의 땅과 사회윤리: 안식년과 희년을  
중심으로, 기독교사회윤리, 2015, 285.)  
39) 신명기 15: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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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게 부동산과 관련지어 이해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누군가가 다른 사람의 노예가 되는 경우는 주  
로 도둑 즉, 절도 범죄자에게 해당했다.40) 이는 해당 시대의 형법  
을 반영할 경우, 고대 근동의 형법 중 가장 범죄자의 생존과 존엄  
을 존중히 여긴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참고로, 일반적으로 이스  
라엘 외의 지역에서 당시에 도둑(=절도 범죄자)을 처벌하는 방법은  
가혹했다. 예를 들어, 손을 자르거나 죽음에 이를만큼 매질을 했거  
나 물건의 수십 배를 물어내도록 했다.41)  
이처럼 희년의 실천규정은 안식년의 주요 개념인 모든 하나님의  
백성의 생존과 존엄을 최대한 보장하려는 조치 중에서도 특별히  
부동산과 관련하여 강조된 것임을 전제로 이해되어야 한다.  
관련하여, 침례교의 신학자 이사야는 희년에 무상으로 토지를 반  
환하는 것에 대해 희년이 하나님의 백성의 생존과 존엄을 지키는  
일종의 레드라인(Redline)이었다고 단언하며,42) 구약성경에서의 토  
40) 이사야, 구약의 땅과 사회윤리: 안식년과 희년을 중심으로, 기독교사  
회윤리, 2015, 285.  
41) 출애굽기 22:1-4은 도둑질에 대한 형벌 또는 벌금에 대해 언급한다.  
해당 성경본문에서 양보다 소를 더욱 많이 배상하도록 한 것은 당시  
힘든 농사일을 돕도록 노동력을 보충하는 소의 기능을 감안한 것이며,  
밤에 잘 보이지 않는 도둑을 죽인 것은 피해자를 우선적으로 보호한  
것이며, 낮에 잘 보이는 도둑을 죽이지 않도록 한 것은 우선적으로 피  
의자를 보호한 것이다.  
이는 고대의 법 중에서 가장 피해자와 피의자의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인 권리를 잘 보호한 조취였다.(이사야, 구약의 땅과 사회윤리: 안식년  
과 희년을 중심으로, 기독교사회윤리, 2015, 285-286.)  
42) 이사야, 구약의 땅과 사회윤리: 안식년과 희년을 중심으로, 기독교사  
회윤리, 2015, 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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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개념이 현대적 부동산 개념으로 발전 및 적용될 수 있음을 논  
증한다. 관련하여, 그는 슬로브핫의 딸들이 모세에게 아버지의 토  
지를 자신들에게 상속해달라고 부탁한 사건을 중요하게 다룬다.  
이사야에 따르면, 당시, 슬로브핫의 딸들은 그녀들의 아버지의 유  
일한 자녀들로서 아버지의 토지를 받을 법적 근거가 부족했다. 이  
에, 모세는 하나님께 상황을 아뢰었고, 하나님은 그녀들에게 토지  
의 상속을 허락하셨다.43)  
이사야가 언급하듯 해당 성경본문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 중  
사회적 약자들에게 관심을 표현하신 대표적인 사례이다.44) 그리고  
이는 한편으로 하나님께서 이전에 없던 토지 규정을 상황에 맞게  
새로이 허락하시되, 처음에 허락하셨던 토지 규정을 계승 및 발전  
시키는 분임을 드러낸다. 물론, 그러한 일을 하시는 이유는 사회가  
변함에 따라 나타나는 새로운 종류의 사회적 약자45)를 돌보기 위  
함을 전제한다.  
어쩌면, 채무자로부터 당연히 누릴 수 있는 채권자의 권리를 주장  
함에 무슨 잘못이 있느냐고 따질 수 있다. 어쩌면, 그것이 공정하  
지 못한 처사라고 하나님께 불평과 비난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은 믿음을 가진 자로서 합당하지 못한 처사이다.46)  
43) 민수기 27:1-11  
44) 이사야, 구약의 땅과 사회윤리: 안식년과 희년을 중심으로, 기독교사  
회윤리, 2015, 293.  
45) 물론, 하나님의 백성으로 한정됨.  
46) 그러한 자는 이미 하나님의 법보다 인간들의 법을 사랑하는 것에 불  
과함을 깨달아야 한다. 이는 자신의 정체성을 하나님 나라가 아닌 인  
간 나라에 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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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님은 모든 인간 특히 하나님의 백성에게 토지를 공동으로 사용  
하는 대원칙(大原則)을 두셨다. 인간이 하나님의 모상임을 기억한다  
면, 나아가 다른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임을 안다  
면, 그는 이러한 사실을 삶에 반영하기 위해 양심상47) 토지에 대  
한 잘못된 권리요구를 할 수 없다. 이는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어  
적절히 또한 반드시 지속적으로 보존 및 적용되어야 할 신앙인의  
논리 또는 명제이다.  
4. 하나님의 모상(模像)인 인간과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중요성 토지와 하나님의 백성된 증거의 관계  
필자는 구약성경 중 사회적 약자와 관련된 성경본문에 관련하여,  
창세기 1:27-28을 강조하려 한다. 해당 성경본문은 기본적으로 모  
든 인간이 누릴 수 있고, 누려야할 자유와 권리, 그것의 제한에 관  
한 범주를 다루는데,48) 특히, 하나님의 백성 중 사회적 약자를 돌  
보는 데에 이를 유용하게 적용할 수 있다.  
47) 이는 기독교 전체에서 통용되는 개념이기도 하다. 인간의 창조주이자  
구원자이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전제로 그리스도인은 마땅히 특정한 행  
동을 내적 동기에 근거해 실행한다. 특히, 개혁신학에 따르면, 이러한  
양심이 없다면, 그는 애초에 믿음이 없는 자(=그리스도와 연합하지 못  
한 자 양심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자)에 해당한다.  
48) 이는 필자가 다음에 저술할 책에서 자세히 논하려 한다. 이는 그리스  
도인 사이에 한 가족이라는 끈을 넘어서, 또다른 공통점 또는 연결점  
을 부여한다. 물론, 이러한 관점은 비그리스도인까지 확장할 수 있는  
개념으로서 신구약성경 전체에서 신학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안타깝게  
도 이 부분도 그동안 신학적으로 깊이 다루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이 개혁신학에서 인간론을 전개하는 독특한 논법에 기인하기 때문  
이다.  
- 20 -  
고대 근동지역에서 신의 형상이라는 표현을 오직 왕에게 사용하  
였음을 고려하면, 구약성경이 얼마나 다양한 계층의 인간을 그 자  
체로 높게 평가하는지를 알 수 있다.49) 물론, 인간 중에서도 소위  
이방인과 달리,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 특별히 존중을 받는다.  
이는 안식년과 희년에 관한 규정에서 여실히 드러나며, 해당 성경  
본문 뿐만 아니라 구약성경 곳곳에서 하나님의 백성 중 고아와 미  
망인과 나그네를 보호해야 한다는 발언의 반복으로 확증된다.50)  
관련하여,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의 백성이 다른 하나님의 백성을  
배려함에 있어, 반복적으로 ‘입장을 바꾸어 보기(역지사지[易地思  
之])’를 권한다.51)  
대표적으로 구약성경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그들이 아브라함 시대  
부터 지속적으로 한 곳에 정착하지 못했음을 자주 언급한다. 그들  
은 갈대아 우르에서 하란을 지나 가나안에 도착했으며, 거기서 다  
시 이집트로 이동해야 했다. 특히, 토지를 소유하지 못하고 떠돌아  
다니던 모세 시대의 이스라엘 민족은 성경에서 고아와 미망인과  
나그네로 묘사됐다. 그리고 하나님은 여기에서 나아가 구약성경 전  
체에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그러한 과거를 기억하며 서로를 사랑해  
49) 이사야, 구약의 땅과 사회윤리: 안식년과 희년을 중심으로, 기독교사  
회윤리, 2015, 294.  
50)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어진 특별한 은혜가 토지에 관해 따로 있다.  
그 누구라도 또는 그 누구의 후손이라도 모두 이러한 은혜를 경험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이사야, 구약의 땅과 사회윤리: 안식년과 희  
년을 중심으로, 기독교사회윤리, 2015, 295.)  
51) 물론, 이는 신학적으로 모든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모상을 닮았  
기에 가능하다.  
- 21 -  
야 함을 십계명을 통해 반복적으로 명령한다.52)  
즉, 구약성경은 토지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소유라 지적하며, 토  
지를 다른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사랑과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  
여, 누군가53)가 하나님의 백성임을 드러내는 도구로 설정한다. 그  
렇다. 그것이 구약성경에서 토지가 다루어지는 본질적 목적 중 하  
나이다.54)  
52) 물론, 이는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알레고리적 논증이다. 곧, 그것의 사  
용에 일반적으로 전제되듯 이는 누구라도 자신의 예전에 힘들었던 형  
편을 각종 장래에 해야 할 일에 고려하도록 유도한다.(신명기 5:15;)  
해당 성경본문은 이스라엘에게 십계명을 주시는 근원적인 이유를 하  
나님이 직접 밝히시는 부분이다. 출애굽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현세적  
내세적 구원의 징표로 작용하며, 그들이 처음에 처했던 비참한 상황을  
기억하게끔 한다.(이사야, 구약의 땅과 사회윤리: 안식년과 희년을 중  
심으로, 기독교사회윤리, 2015, 296.)  
알레고리적으로 보면, 기독교강요에서 칼빈이 다루듯 하나님의 백성  
은, 하나님의 토지 사요에 관한 지적을 통해, 비참한 원래의 구원 받기  
전 또는 하나님을 알기 전 형편을 기억하며, 자신의 신분이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되어 하나님의 더욱 특별한 보호를 받게 된 것을 감사할  
수 있다.  
53) 채권자  
54) 필자의 견해처럼, 토지의 공공성을 하나님의 백성 안으로 한정지을  
경우 신학적 논의 전개시 다양한 이점을 얻는다. 이는 일반적인 공공  
신학자들과 해방신학자들이 겪는 다수의 모순적 난제를 겪지 않아도  
됨으로 귀결된다.  
관련하여, 공공신학자들과 해방신학자들은 토지의 공공성을 보편적  
인류에게 적용하려 한다. 그들은 그렇게 해서 성경이 인류애를 가진  
것으로 증명하려 한다. 이에, 간혹 그들은 그 명제의 역(逆)도 마찬가  
지로 성립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전제들은 다룰 필요조  
차 없는 이상한 모순을 끊임없이 낳는다.  
무엇보다도 성경은 분명히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오경을 기록하고 희  
년을 선포하는 과정에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자들을 구분한다. 구약성  
경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이방인에게 결코 안식년과  
희년이 제공하는 권리를 적용하지 않는다.(이사야, 구약의 땅과 사회윤  
리: 안식년과 희년을 중심으로, 기독교사회윤리, 2015, 301-302.)  
- 22 -  
5. 영국 산업혁명 시기의 빈농 문제가 주는 교훈 그  
리스도인 공동체의 사회적 책임 수행의 필요성 대두  
김성룡은 레위기 25장에 언급된 희년이 영국의 산업혁명 시기 영  
국의 빈농 문제를 해결하는 상황에서 이미 주요하게 다루어진 것  
에 주목한다. 그에 따르면, 산업혁명을 통해 당시 영국의 대부분의  
농업 노동자55)들은 성경에서 경고하였듯 소수에 의한 땅의 독점으  
로 고통을 받았다.56) 지주들은 사회적 흐름을 따라 영국 내의 한  
정된 토지 자원에서 자본집약적으로 무엇인가를 생산하려 했고, 자  
결론적으로 공공신학자들과 해방신학자들은 상기 언급된 그들의 전제  
적 명제를 버리지 않는 이상, 성경에서 언급된 객관적 사실(Fact)을 원  
활히 설명할 수 없다.  
이에, 필자는 개혁신학적 해석을 따라 안식년과 희년의 적용대상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한정하고, 그것이 차별이 아닌 구분에 해당함을 강  
조하려 한다. 이는 누군가가 다양한 기독교 교파 중 하나를 선택할 때  
에, 개혁교회만이 제공하는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매력을 느끼도록 유  
도한다.  
기본적으로 개혁교회는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시는 특전(特  
典)이 있다고 전제한다. 단, 개혁교회는 그것을 믿음의 유무를 요구하  
는 방식으로 접근하지 않고, 대신, 누군가가 그것을 얻기 원할만큼 아  
름다운 것으로 다룰 뿐이다.  
곧, 개혁교회는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시는 특전(特典)을 믿  
음을 요구하기 위한 도구로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개혁교회는 하나님  
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시는 특전(特典)을 다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으로 승화시키고자, 이러한 개념을 설정하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  
개혁교회에서 이러한 특전은 한편으로 새로운 의무를 낳는 것에 불과  
하다.  
55) 당시 영국 시민 대부분이 범기독교인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56) 김성룡, 산업 혁명 시기 잉글랜드의 토지 문제와 희년 인식, 신학과  
목회, 2007, 317.  
- 23 -  
연스럽게 그들은 규모가 큰 농장을 경영하려 했다. 물론, 이는 가  
족 단위로 토지를 경영하던 다른 사람들의 토지를 끊임없이 매수  
하는 결과를 낳았고, 이러한 사회적 현상은 오랫동안 꾸준히 심화  
되었다.57)  
자본주의적으로 봤을 때, 소수에 의한 땅의 독점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는 생산의 증대와 그로 인한 총 인구와 농업인을  
제외한 대부분의 영국 시민들의 삶의 질의 향상에 있어 긍정적인  
결과를 낳았다.  
하지만 그것은 당시 영국 농업인들에게 완전히 부정적인 결과를  
낳기도 했다.58) 적나라하게 말하면, 지주들의 이러한 행동은 농업  
인들의 고혈(膏血)을 짜내어, 그들 이외의 사회구성원이 이를 크게  
키워 나누어 먹는 결과로 이어졌다.  
관련하여, 김성룡은 영국 농업인들의 실질 임금의 감소에 주목했  
다. 대표적으로 그들은 평균적으로 가계 지출의 60%를 빵과 밀가  
루 구입에 지출해야 했고, 차와 치즈와 버터와 고기와 우유 등 추  
가적인 식료품은 거의 구입할 수 없었다.59) 물론, 그들은 옷이나  
비누나 양초 등의 기본적인 생활용품조차 구매할 수 없었다. 심지  
57) 김성룡, 산업 혁명 시기 잉글랜드의 토지 문제와 희년 인식, 신학과  
목회, 2007, 318.  
58) 김성룡, 산업 혁명 시기 잉글랜드의 토지 문제와 희년 인식, 신학과  
목회, 2007, 321-322.  
59) 이는 단백질 섭취가 불가했음을 의미한다. 이는 영양학적 관점에서  
네거티브 피드백으로 말미암아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농업인들에  
게 생존을 불가하게 만든다고 요약할 수 있다.(김성룡, 산업 혁명 시기  
잉글랜드의 토지 문제와 희년 인식, 신학과 목회, 2007, 324-325.)  
- 24 -  
어, 당대의 영국 농업인들이 개, 돼지, 말 보다 대우를 받지 못했  
으며, 해당 가정의 여성들은 빵을 만드는 등 기본적인 요리법조차  
몰랐다는 기록이 다수의 서적과 신문에 존재하기도 한다.60)  
이처럼, 당시 영국 농업인들의 삶은 성경에 나타난 토지를 빼앗긴  
빈농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시 말해, 산업혁명 시기의  
영국 빈농들과 성경에 나타난 빈농들은 공통적으로 그들을 향한  
국가의 보호 및 보조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오직 다른 신앙인61)  
자선에 기대하여 보조를 받아야 했다.62) 안타깝게도 가장 빈농에  
관심을 가져야 했던 시대인 산업혁명기를 지나면서도 여전히 토지  
의 집중화로 인해 야기되는 그리스도인의 생존과 존엄을 지키한  
위한 체계적이고 충분한 복지개념은 어떠한 소위 최고의 기독교  
국가 또는 사회에서 자리잡히지 않았던 것이다.63)  
개인적으로 필자는 토지를 잃은 인류사의 모든 빈농과 관련하여,  
레위기 25장 23절을 강조한 황봉환의 견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다. 그는 해당 성경본문을 사용해 하나님이 토지의 근원적인 소유  
60) 김성룡, 산업 혁명 시기 잉글랜드의 토지 문제와 희년 인식, 신학과  
목회, 2007, 324.  
61) 하나님의 백성으로 바꿀어 말할 수 있다. 물론, 이는 당시 영국에 적  
용할 때, 영국의 그리스도인에 해당한다. 참고로, 향후 본고에서 하나  
님의 백성 개념은 그리스도인으로 바꾸어 표현하겠다.  
62) 이는 신구약성경 시대나 지금이나 동일하다.  
63) 당시의 영국 농업인들은 성경해석방법의 시대적 한계로 레위기 25장  
에 나타난 희년을 제대로 풀어내기 어려웠다. 그들은 단순히 이를 스  
스로가 처한 상황에 대입하여, 문자주의적으로 해석했다. 안타깝게도  
이는 1838년 켄트 지역의 소요사태 등 그들의 폭력적인 사회주의 운  
동을 정당화 하는 데에 사용되기도 했다.(김성룡, 산업 혁명 시기 잉글  
랜드의 토지 문제와 희년 인식, 신학과 목회, 2007, 326, 333-335.)  
- 25 -  
자로서 그리스도인 간의 사회적 책임을 지도록 하셨다고 주장한다.  
곧, 하나님이 자신의 자녀들을 위해, 특히, 그 중 한명도 그의 생  
명과 존엄을 다른 그리스도인으로부터 짓밟히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유를 불문하고 희년에 토지를 반환하도록 하셨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이러한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순종은 거대한 하나의 공동  
체를 이루는 전체 그리스도인들의 개별 생존에 필수적으로 요구된  
다.64)  
6. 개신교회 교부(敎父)들의 토지의 사용과 소유에 대  
한 관점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바라본 루터, 크리소스  
톰, 칼빈  
항상 존재했던 문제, 부동산의 편중(偏重)  
토지의 집중화로 인한 문제는 종교개혁교회시대를 넘어 초대교회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역사속에서 개신교회 교부들은 토지로  
인해 야기된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갈등을 풀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했다. 그리고 이는 농업이 그토록 오랜 기간 동안 모든 국가에  
서 주요 산업이었음을 고려할 때, 빈농문제로 바꾸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실로, 빈농은 토지의 집중화로 말미암아 발생하는 결과물  
로서 항상 역사 속에서 그 문제가 제기됐다.  
본고는 빈농문제 곧, 토지의 집중화에 관한 개신교회 교부들의 해  
64) 황봉환, 성경적 관점에서 본 토지 취득과 소유 그리고 분배와 활용에  
관한 연구, 로고스경영연구, 2010, 118.  
- 26 -  
결방안 또는 접근방법을 짧게 그러나 핵심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만약, 이를 통해 이끌어 낼 수 있는 일련의 논리가 체계적으로 세  
워지고, 그것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수용된다면, 개혁교회는 최소한  
그리스도인 공동체 안에서 적용할 수 있는 적절한 현대적 토지사  
용방법을 찾은 것이다. 나아가, 이는 원론적인 차원에서 비그리스  
도인을 포함한 사회 전체의 부동산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할  
밑바탕이 될 수 있을 것이다.65)  
개신교회 교부(敎父)의 토지 임대 및 임차에 대한 관점 –  
루터를 중심으로  
먼저, 개신교회 안에서도 루터파를 정립한 루터는 『고리대금업에  
관한 긴 설교』에서 생산적인 활동을 위함이 아니라 단순히 땅을  
사고 파는 과정에서 차액을 남기는 일종의 투기행위를 강하게 비  
판했다.66) 그는 상당한 부를 전제로 이러한 투기행위를 일삼던 상  
인들을 강도 또는 도둑이라 표현했다.67)  
65) 참된 신앙이 있다면, 당연히 부동산 소유에 대해 진지하게 신학적으  
로 신앙적으로 옳고 그름을 고민하여, 그로 말미암는 열매를 맺을 것  
이다. 그러나 참된 신앙이 없다면, 잘 되어봐야 참된 신앙인들로 말미  
암는 열매의 부스러기를 얻을 뿐이다. 이제 필자는 영국의 산업혁명기  
부동산에 관한 신학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교부들의 지혜와  
제안으로부터 정제(filteration) 및 추출(extraction)하고자 한다.  
66) 김유준, 루터의 경제사상, 한국교회사학회지, 2018, 142.  
67) 본고에서 부동산의 활황으로 말미암아 얻어지는 국가차원의 경제적  
유익은 생략하도록 한다. 관련하여, 많은 현대 경제학자들은 그것의 유  
익한 측면을 지적하기도 한다. 물론, 이는 한편으로 논리상 옳다. 하지  
만, 본고는 인류사의 큰 서사적 관점에서 그것의 미비한 역할을 고려  
할 뿐이다. 그것은 단기적으로 또한 경제 이론상 한정적으로 유의미할  
- 27 -  
관련하여, 김유준은 루터가 현대판 토지 투기 즉, 부동산 투기를  
비판했음을 체계적으로 분석한다. 그는 관련된 루터의 주요 관점을  
다음과 같이 요약 및 정리한다.  
바로, 어떤 노동을 주고 받음에 있어서, 제공자와 수취자 간에 자  
연스럽게 또한 응당 나누어야 할 타인을 향한 생존과 존엄의 배제  
이다.68) 예를 들어, 수취자가 어떤 물건을 살 때 그 물건을 힘겹게  
구하여 판매하는 제공자의 노고를 고려할 수 있다. 이는 그것의 가  
격이 얼마로 책정되는가와 무관하게 직관적으로 갖는 마음이다.69)  
루터 당대의 부동산 또는 토지 투기자들70)을 현대적으로 적용하  
면, 이는 아마 수에서 수십채의 공동주택을 소유한 그리스도인 다  
주택자를 대표적으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강남 또는 서초  
뿐 구속사역의 흐름에서 본질적으로 무익하거나 가치중립적이다.(김유  
준, 루터의 경제사상, 한국교회사학회지, 2018, 142-143.)  
68) 김유준, 루터의 경제사상, 한국교회사학회지, 2018, 143.  
69) 역지사지의 개념이 없는 사람은 기본적인 인간됨이 갖추어지지 않은  
자이다. 물론, 사람들마다 처한 형편과 상황이 다를 수 있지만, 타인을  
대함에 있어 인간으로서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바는 전제되어야 마  
땅하다.  
특히, 루터 당시 모두라고도 할 수 있는 신성로마제국 대부분의 사람  
이 그리스도인임을 고려해야 한다. 달리 말해, 루터의 해당 저작에서  
‘그 사람(부동자 투기자)’은 타인(타 그리스도인)을 하나님의 형상을 갖  
춘 존재로 여기지 않는 자로 정의할 수 있다.  
70) 그리스도인은 가능한 임대를 놓는 다주택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이는  
투자를 빙자한 자본주의적 가치에 자신을 흠뻑 적신 결과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필자의 경험에 따르면, 스스로의 이러한 상태를  
모르는 그리스도인이 99.99%이다.  
임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임차인 그리스도인들과 하나의 공동체인 비가  
시적인 교회로 존재 및 결속한다. 이는 임대인과 임차인 그리스도인들  
이 서로에게 임대료 측정 및 납부시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를 고려함  
또는 결정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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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당장 사회적으로 중요한, 소위 양질의 일자리 근처에 위치한  
아파트 또는 오피스텔 또는 빌라를 다수 소유한 사람이다. 그러한  
그리스도인 다주택자는 루터 당시로 따지면 사회적으로 중요하고  
양질의 재화를 생산하는 농토를 농업인에게 세를 주는 자와 동일  
하다. 그것의 소득을 만들어내는 방법상 또는 원리상 말이다.72)  
대게, 임차인은 자신의 직장과 자녀의 교육으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부동산을 임대 또는 구입할 수 밖에 없다. 소위, 직주근접과  
학세권은 현대 그리스도인을 포함한 전세계 모든 현대인들에게 현  
실적으로 거주지를 결정하는 핵심요소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안타  
깝게도 대게 임차인은 울며 겨자먹기로 값비싼 임대료73)를 치러야  
한다.74)  
물론, 언제든 포기라는 선택이 가능하기에, 임차인은 이러한 ‘을  
(乙)’의 입장을 벗어날 수 있다. 좀 더 경제적으로 쉽고 편한 선택  
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선택을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자신  
과 가족의 미래에 관한 좋은 선택지를 소위 ‘이번 생애(生涯)’에 포  
71) 이는 한국의 대표적인 주거지역 중 하나이다. 이곳 말고도 대한민국  
은 부동산과 관련하여 곳곳에 이러한 특징을 가진 주거지역이 대도시  
를 중심으로 널리 분포한다.  
72) 물론, 독자들은 굳이 뛰어난 입지조건을 갖춘 동네가 아니더라도 원  
론적으로 그것들과 비슷한 동네에 루터의 견해를 적용할 수 있다. 필  
자는 가장 와닿을 수 있는 예를 들고 싶었을 뿐이다.  
73) 또는 ‘매매가’가 될 수 있다. 단, 본고에서는 ‘임대 및 임차’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를 전개하도록 한다. 분명히 임대 및 임차와 매매는 다른  
거래방식으로서 서로 다른 정교한 신학적 접근이 요구된다.  
74) 관련하여, 그리스도인이라할지라도 평범한 인간의 본성을 거슬러야  
함을 상세히 논의 또는 논설하지는 않겠다. 비록, 필자의 목회자로서의  
신념이 그러하지만 말이다. 이는 필자의 본고를 쓴 의도에서 벗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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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하는 일에 해당한다. 이는 평범한 그들에게 참으로 선택하고 싶  
지 않은 어려운 결정이다.75)  
즉, 다수의 그리스도인 다주택자들은 을에 해당하는 현대 그리스  
도인을 포함한 모든 현대인들의 심리와 상황을 교묘히 이용하고  
있지 않는지, 다시 말해, 그리스도인으로서 다른 그리스도인과의  
또는 비그리스도인과의 관계에서 고려해야 할 타인을 향한 생존과  
존엄을 고려하지 않고, 그저 이익을 남기는데에 급급하지 않는지  
점검해야 한다.76)  
실로, 모든 다주택자들은 웬만해서는 루터가 지적한 원리와 같이  
임차인의 수고와 희생을 고려하여 임대료를 책정하지 않는다. 대게  
75)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은 자녀, 물질, 직장 등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겨드리지 못한다. 다시 말해, 어떤 상황에서 하나님께 감사드  
리지 못하고(=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거나 하나님의 조용한 역사  
를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관점과 의견을 현실에 투영하여 함부로 자  
신의 의견을 하나님의 뜻이라 이해하고 행동한다.  
76) 현재 한국사회의 어떤 임대인이라 할지라도, 그들에게 임대료를 책정  
하는 가장 큰 요인은 부동산을 임대해서 ‘수익을 남기는 정도’이다. 여  
기에는 2023년 10월 현재 아무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한편으로 이는  
자유시장경제를 살아가는 입장에서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과연 이것만 고려하여 임대료를 결정하는 것이 성경에서 전제  
된 부동산 임대의 원리가 될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고 말하는 사람  
이 있다면, 성경에서 근거를 찾아 필자에게 설명해주기를 바란다.  
참고로 꼭 신앙인이 아니더라도 비가시적인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에  
게도 하나님의 모상(模像)이 있음은 부동산 문제를 접근함에 있어, 매  
우 중요하다. 언급하였듯, 필자는 이를 추후 서적으로 출판하려 한다.  
관련하여, 여기서 짧게 다루면, 부동산 문제를 풀기 위한 핵심축 중  
하나는 인간론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의 모상(模像)’이 있느냐를  
고려하는 것이다. 성경은 신앙인이든 그렇지 않든 모든 사람이 기본적  
으로 ‘하나님의 모상(模像)’임을 즉, 하나님이 공유하도록 하신 것(특히,  
토지 또는 부동산)에 일정한 또는 최소한의 권리를 가짐을 전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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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자신의 가정과 사회적 상황을 계산하여, 적절한 수준의 이  
익을 남기기 위해 임대료를 책정한다. 관련하여, 그들은 루터가  
『기독교인들은 모세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서 토지 투기를 고  
리대금업과 동일한 방식으로 돈을 버는 것이며,77) 그러한 행위로  
돈을 버는 사람들을 고리대금업자로 정의함을 기억해야 한다.78)  
사실, 루터는 토지 투기로 인해 얻는 차액에 대해, 국가79)가 타인  
을 향한 생존과 존엄을 위해, 10~20%의 세금을 신설하여 거두어  
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렇다. 한편으로 이는 루터가 종교개  
혁시대에 부동산 투기 자체를 금지하지 않되, 다만 그것으로 지나  
친 이득을 보지 않아야 하며, 그것에 세금을 거두어 다른 평범한  
사업활동과 동일하게 개신교회 그리스도인 전체의 생존과 존엄80)  
에 사용되도록 유도했음을 드러낸다.81)  
77) 고리대금은 가장 대표적인 자본주의 사업이다. 이는 돈을 빌린 사람  
에게 상황과 이유를 묻거나 따지지 않고, 그저 돈을 빌림으로 말미암  
아 발생하는 모든 문제와 책임을 홀로 감당해야 함을 전제한다.  
78) 고리대금업은 신구약성경 전체에서 하나님이 같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행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지정하신 대표적으로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행위이다.(김유준, 루터의 경제사상, 한국교회사학회지, 2018, 143.)  
79) 이는 루터 당시 상황을 고려할 때, 기독교 국가를 의미한다. 이는 매  
우 중요하다. 아무렇게나 루터가 ‘국가’에 제안한 것을 현재의 비기독  
교 국가인 곧, 종교의 자유가 있는 대한민국으로 기계적으로 적용할  
수 없다. 이는 부동산과 관련된 논의를 전개함에 매우 중요한 개념이  
다.  
80) 다시 강조하지만, 종교개혁시대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최소한의 기  
독교적 세계관과 신앙을 갖고 있었다. 이는 국가가 백성을 위해 복지  
활동을 한다는 명제를 기독교 국가가 각각의 그리스도인을 위해 복지  
활동을 한다는 명제로 바꾸어 이해해도 무방함을 뜻한다.  
81) 단, 루터는 『약탈하고 살인하는 농민무리들에 반대하여』에서 비록 토  
지 투기로 인해 피해를 입은 농민일지라도 폭동을 일으켜서는 안된다  
고 주장했다. 이는 루터가 농민계급을 위한 단순하게 경직되고 편향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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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필자는 “누군가가 신앙인이라면, 무엇보다도 우선적으  
로 임대인이 개인의 양심에 비추어, 그리스도인 다주택자들이 어느  
정도의 이익을 남길 것인지 결정하는 것”이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물론, 이는 그리스도인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모상(模  
像)’임을 반영한다. 이것이 전제된다면, 그리스도인 다주택자들은  
현존하는 부동산 문제에 관해 충분히 해결할 방법을 원리적으로  
찾아, 실제적으로 그것을 실행할 수 있다. 반복하여 말하지만, 그  
리스도인 다주택자는 임차인이 일하는 과정에 들인 수고와 희생을  
지나치게 뺏지 않아야 한다. 그것은 루터의 말처럼 임차인들에게  
고리대금(高利貸金)을 행하는 것이 되지 않아야 한다.82)  
핵심적으로 그리스도인 다주택자는 그리스도인 임차인에게 자신  
의 수입활동을 과도하게 전가하지 않아야 한다.83) 무엇보다도 임  
이념에서 벗어나 신학을 전개함을 곧, 전체 그리스도인 계급의 생존과  
존엄을 그의 신학적 논지에 올려둠을 보여준다.(김홍섭, 존 칼빈의 경  
제, 경영 사상과 현대적 적용에 대한 연구, 한국항만경제학회지, 2015,  
149.)  
82) 특히, 현재 전세 또는 월세를 사는 대부분의 임차인은 은행 또는 가  
족 또는 누군가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 기본적인 보증금을 제외하  
고, 대부분의 임차인은 매월 실제적으로 그들 중 하나 또는 복수에게  
매달 돈을 강탈당하기도 한다.  
임대인이 스스로 그리스도인임을 고려하여 앞으로 만날 그리스도인  
임차인에게 자비를 베풀 수 있다면, 다시 말해 그것만이라도 전제된다  
면, 사실 모두에게 가장 좋은 결과를 어떤 상황에서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임대인에게 현실적으로 다른 임대인들과 비교해 상대적  
으로 당장 큰 경제적 손실이 따를 수 있지만 말이다.  
83) 물론, 임차 자체에 아무런 노동이 들어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  
려, 현대 부동산 사업은 매우 정교한 성공 방정식을 요구하며, 여러 변  
수가 돌발적으로 발생한다. 그만큼 임대로 수익을 내기가 시대적으로  
어려움을 필자도 잘 안다.  
하지만, 임차는 임대를 전제로 행하는 수익활동이기에 오로지 임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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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인은 임차인에게 피치 못할 사정이 자신에게 보다 더욱 그에게  
다양하게 존재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빚을 내지 않고는 살아  
갈 수 없는 사회적 구조84)에 어쩔 수 없이 함몰되는 임차인에게  
다시 말해, 현재의 특정 제도와 현실로 말미암아 임차인이 고통을  
당할 수 있음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대게 이는 임대인에게 주어  
지지 않은 고통이다.  
물론, 건전하지 못한 방식으로 말미암아 예를 들어, 도박성이 짙  
은 생각으로 말미암아 빚을 내게 된 임차인의 경우, 본인의 잘못이  
매우 크다. 이는 다소 예외적인 경우로서, 1차적으로 그는 자신의  
부족함으로 인해 고통을 겪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필자는 임차인의 행동도 임차인 스스로 돌아봐야 함을 지적하고자  
한다.  
그러나 임대인이 이러한 형편에 몰린 임차인에게 적절한 수준으  
로 임대해야 함은 여전하다. 곧,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그러한 임  
차인을 임대인으로서 직접 가르치거나 벌주는 상황은 흔하지 않다.  
아니! 정말로 그러한 상황이라면, 그는 임차인이 되지 않았을 것이  
다.85) 곧, 토지 또는 부동산으로 말미암아 임차인에게 부과되는 것  
으로 수입활동을 하기란 그의 올바른 신앙생활에 있어 또한 그의 생존  
에 있어 큰 위험부담을 부여한다. 만약, 이것에서 자유롭다면 그는 본  
단락에서 고되게 현실과 맞서는 신앙인으로서 공감과 위로를 얻을 것  
이다.  
84) 다음에 링크된 EBS 다큐멘터리를 통해, 자본주의적 성장이 빚으로 쌓  
아올린 금자탑임을 이해할 수 있다.(https://www.youtube.com/watc  
h?v=p5ncb7c5qIY&list=PLvNzObWMMx6tuqZy7n6HH5VDSjsE_-  
WGo, 자본주의 이해하기[자본주의 X 경제대기획 빚 #1], 20231101)  
85) 임차인들은 늘 그렇게 기도하기를 바란다. 그러면, 그러한 상황을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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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지나치게 많지 않아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임대인은 임차인에게 ‘하나님의 모상’으로서 그가 누려야 할 권리  
를 빼앗을 권리가 원론적으로 없다.  
개혁교회 교부(敎父)들의 토지 임대 및 임차에 대한 관점  
1 크리소스톰을 중심으로  
크리소스톰이 토지 또는 부동산 투기에 대해 가졌던 관점은 『In  
Matthaeum Homilia』 61-63에서 잘 드러난다. 관련하여, 김유  
86)은 해당 저작이 AD386~404에 안디옥과 콘스탄티노플에 머  
물렀던 크리소스톰의 생생한 목회 경험을 반영한다고 주장한다.87)  
해당 저작에서 크리소스톰은 토지 또는 부동산 투기라는 문제가  
생겼던 근본 원인을 신앙인임에도 불구하고 가지는 아무런 구속사  
험하지 않거나 그러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많은 신앙적 경제적 고뇌가  
해결될 것이다.  
86) 김유준은 부동산과 교부들에 관한 좋은 통찰력을 많이 가졌음에도 불  
구하고, 필자와 달리 해당 성경본문을 해방신학적인 관점으로 다룬다.  
김유준은 크리소스톰이 단순히 부자와 가난한 자의 대립구도로 해당  
설교를 했다고 주장하지만, 필자는 이를 당시대의 부유하고 가난한 그  
리스도인들에게만 적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참고로, 설교 목적과 대상에 대한 이러한 해석학적 관점의 차이는 각  
기독교 교파가 가지는 조직신학적 특성에 기인한다.(김유준, 크리소스  
토무스의 경제사상 연구, 신학사상, 2016, 184.)  
필자는 초대교회 교부들이 공통적으로 가졌던 빈부격차에 대한 관점  
을 개혁신학적으로 본고에서 풀이했다. 결론적으로 필자는 그들의 토  
지의 분배와 관련된 신학적 담론을 해석함에 있어, 항상 개인의 구원  
론적인 또는 구원사적인 차원을 전제로 특히, 그것을 사람(=그리스도  
인) 사이의 관계와 그로 말미암는 문제로 이해한다. 독자들은 크리소스  
톰을 해석함에 있어, 누구의 견해가 논리적인지 고민하길 바란다.  
87) 김유준, 크리소스토무스의 경제사상 연구, 신학사상, 2016, 179-180.  
- 34 -  
적으로 합당한 근거없는 토지를 향한 소유욕(所有慾)으로 다룬다.  
관련하여, 크리소스톰에게 토지를 포함하여 무엇인가를 향한 각종  
소유욕은 누군가의 구원에 방해가 되는 심각한 장애물이다.88)  
예를 들어, 크리소스톰이 활동했던 안디옥에 거주하던 사람89)  
10%가 부자였으며, 그들은 안디옥의 대부분의 토지를 소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지속적으로 얼마 남지 않은 안디옥의  
땅을 소유하고자 했다.90) 이러한 상황은 크리소스톰에게 토지의  
소유로 인해 생기는 빈부의 격차와 그로 말미암는 그리스도인 공  
동체 내의 문제를 깊이 또한 생생히 경험하도록 했다.91) 곧, 그는  
88) 이는 다른 초대교회 교부들도 마찬가지다. 크리소스톰과 동일한 시대  
를 살았던 암브로시우스와 바실리우스도 이러한 관점을 취한다. 그들  
은 그리스도인 공동체 내의 부유함과 빈곤함의 격차를 토지의 소유격  
차와 ‘인과관계(因果關係)’로 이해한다. 이러한 소유욕과 자비심의 관계  
를 대조적으로 여기는 관점은 전체 초대교회 교부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왜냐하면, 로마의 기독교 공인으로 말미암아 당시 초대교회  
에서 가장 크게 화두된 바가 ‘소유욕’이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초대교회 교부들은 부유하면서도 가난한 그리스도인들을  
경제적으로 구제하지 않는 자들에게 믿음의 열매가 없음을 즉, 애초에  
그들에게 믿음이 없음을 지적한다. 곧, 초대교회 교부들의 저작에서 소  
위 내세에 하나님 나라에 가지 못하거나 현세에 기도응답을 받지 못하  
는 부자는 논리적으로 구원받지 못한 자에 해당한다.(최현욱, 크리소스  
톰에 있어서 빈부의 문제,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2009, 43.)  
89) 다시 강조하지만 로마제국은 당시 다수의 백성들이 이미 세례를 받으  
며, 기독교로 전향한 상황임을 기억하라.  
90) 김유준, 크리소스토무스의 경제사상 연구, 신학사상, 2016, 179.  
91) 크리소스톰은 당시 사도행전 2장을 설교하며, 누군가가 진정으로 세  
례를 받았다면, 다시 말해 그리스도인들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룸을 깨  
닫는다면, 부유한 그리스도인이 가난한 그리스도인에게 경제적으로 자  
비를 베풀어야 마땅함을 강조했다. 즉, 크리소스톰에게 이러한 마음을  
갖지 못한 자는 진정으로 세례를 받은 자(=그리스도의 공동체에 속한  
자)가 아니다.(최현욱, 크리소스톰에 있어서 빈부의 문제, 장로회신학대  
학교 신학대학원, 2009, 16,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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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막론하고 소위 그리스도인 공동체 내에서 벌어지는 토지  
또는 부동산 투기가 즉, 소수에 의한 땅의 독점이 땅을 소유하지  
못하게 되는 다수92)에게 비참한 삶을 야기함을 처절하게 목회적으  
로 체험했다.93)  
이외에, 크리소스톰은 『Peccata Fratrum Non Evulganda』 2에  
서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나사로 비유를 설명하되, 해  
당 성경본문에 등장하는 부자가 나사로를 비인간적으로 대했음에  
주목한다.94) 크리소스톰에 따르면, 부자가 부동산을 얼마나 소유하  
느냐를 정량적으로 따지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다. 대신, 그는 그것  
과 무관하게 또는 그것에 선행하여 부동산을 어떻게 모으고 사용  
했느냐가 즉, 얼마나 다른 그리스도인의 생존과 존엄을 고려하여  
그러했느냐가 부자의 구원과 연관됨을 설명한다.95) 그에 따르면,  
이러한 방식으로 즉, 다른 그리스도인의 생존과 존엄을 고려하지  
않고 토지를 이용해 재산을 늘리는 부자는 내세의 구원을 받지 못  
92) 크리소스톰은 그들이 비참함이나 굶주림, 압류, 독촉, 체포, 강제노동  
등으로 고통을 겪고 있음을 해당 저작에서 언급한다. 참으로 이는 현  
대의 비슷한 류들에게도 나타나는 현상이다.(김유준, 크리소스토무스의  
경제사상 연구, 신학사상, 2016, 180.)  
93) 김유준에 따르면, 크리소스톰은 부동산 투기로 인해 얻는 막대한 이  
득에 빠진 부자들의 삶의 원인을 당시 평범한 농업인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생존과 존엄을 위한 자비가 없음으로 갈음한다.(김유준, 크리소스  
토무스의 경제사상 연구, 신학사상, 2016, 182.)  
94) 크리소스톰도 루터와 마찬가지로 부유함 자체에 또는 그것으로 토지  
및 부동산을 매입함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지는 않는다.(김유준, 크리소  
스토무스의 경제사상 연구, 신학사상, 2016, 182.)  
95) 참고로, 크리소스톰은 자신의 저작에서 부동산 투기를 당시의 ‘부자가  
될 수 있었던 주요 요인’으로 해석 및 강조한다.  
- 36 -  
한다.96)  
나아가, 다른 교부와 마찬가지로 크리소스톰은 부동산 투기로 인  
해 피해를 입는 어떤 약한 그리스도인의 생존과 존엄을 보호하기  
위해, 하나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는 큰 틀에서 루터와  
마찬가지로 이익의 ‘그리스도인 공동체97)로의 공유 또는 재분배’로  
요약할 수 있다.98)  
96) 요즘 여러 기독교 신학자들과 목회자들과 기독교 사회학자들은 정량  
적인 차원에서 토지의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고자 시도한다. 그러나 이  
는 교부들의 부동산에 관한 핵심적 관점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부동산을 포함하여 재물에 관한 정량적인 분배방식에 집중하는 것은  
한편으로 당장 필요하지만, 이는 결국 매우 일시적인 미봉책(彌縫策)에  
불과하다. 근원적으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반드시 행동의 주체인 ‘인  
간의 생각’을 바꾸려는 접근이 요구된다. 독자들은 현존하는 대부분의  
해방주의적 해법들의 이러한 근본적 한계를 분명히 직시해야 한다.  
97) 크리소스톰은 그리스도인을 포함하여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것으로 공기, 물, 불, 태양, 토지(부동산)를 대표적으로 꼽는다. 이는  
당대의 세상을 이루는 요소들의 대표로서, 그에 따르면, 이러한 것들은  
하나님이 모두에게 소유하도록 허락하셨으며, 특정 소수가 이를 독점  
하는 것은 그것을 창조하고 그것이 모든 인간에게 공유되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다.(김유준, 크리소스토무스의 경제사상 연구, 신  
학사상, 2016, 188.)  
크리소스톰과 동일하게 바실리우스도 『내 곳간들을 헐어라』 p.34 에  
서 하나님이 인간을 빈손으로 태어나 자연에 속한 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용하도록 결정하심을 강조한다.(조현진, 부동산 인질 사회에서 벗어  
나기 위하여, 가톨릭 평론, 2018, 133.)  
이는 초대교회 당시에 부동산 투기로 말미암은 인간(=다른 그리스도  
인)의 생존과 존엄의 상실에 대한 문제가 로마제국 전역에 퍼져있었음  
을 의미한다. 놀랍게도 크리소스톰도 토지 문제와 관련하여 인간의 기  
본적인 생존과 존엄을 즉, 인간이 하나님의 모상(模像)으로 만들어짐을  
전제한다.  
98) 크리소스톰은 국가 주도의 분배 개념을 도입하지는 않는다. 이는 아  
마도 로마제국이 갓 기독교화된 상태였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즉, 크리  
소소틈과 루터는 그들이 각각 처한 조금 다른 현실을 고려하여 그리스  
도인 공동체 중심의 배분을 접근한 것 같다.  
- 37 -  
크리소스톰은 사도행전 4:32과 누가복음 16장을 주해 및 인용하  
며, 비가시적인 교회에 속한 자들은 반드시 하나의 경제 공동체임  
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99) 그에 따르면, 비가시적인 교회는  
분명하고도 엄연한 하나의 실체다. 이는 항시적으로 또한 체험적으  
로 일상 가운데에 존재한다. 그 안에서 약한 지체에 대해 다른 생  
각과 다른 행동을 하는 지체는 곧, 다른 지체의 고통에 동참하지  
못하는 지체는 존재할 수 없다.100)  
또한, 크리소스톰은 『De Decem Millium Talentorum  
Debitore』 4에서 토지 또는 부동산 투기를 일삼는 부자들에게 그  
것의 취득과정에 다른 그리스도인의 생존과 존엄을 해치는 예를  
들면, 강탈 또는 착복이 없었는지를 노골적으로 질문한다.101) 그에  
따르면, 그러한 문제적 부동산은 원래의 주인에게 반환되어야 하  
며,102) 그렇게 행하지 않을 경우 하나님은 장차 그가 맞이할 최후  
99) 구체적으로 크리소스톰은 후자를 언급함에 있어,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것(비가시적인 교회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존엄을 누  
려야 한다고 강조한다.(김유준, 크리소스토무스의 경제사상 연구, 신학  
사상, 2016, 188.)  
100) 참고로, 누군가가 자신이 어떤 분명한 가시적 범주의 그리스도인 공  
동체에 속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어떤 그리스도인 공동체이  
든 그리스도 안에서 지체를 이루기 위해, 소속처를 찾아야 한다. 크리  
소스톰이 전제하듯,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아픔과 기쁨  
을 반드시 언제 어디서든 공동체 내의 다른 그리스도인과 공유해야 한  
다. 이러한 관계설정 자체를 부정 또는 거부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아닐 수 있다.  
101) 김유준, 크리소스토무스의 경제사상 연구, 신학사상, 2016, 189.  
102) 크리스소스톰이 그리스도인 공동체 내에 이처럼 반강제적으로 구원  
론을 도입하여 토지의 반환을 당대의 임대인들에게 요구한 이유가 있  
다. 이는 그가 부동산 투기로부터 얻은 이익의 일부를 공동체에 환원  
하도록 적당히 미사어구로 설득하는 것만으로는 다른 그리스도인의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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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법정에서 그를 살인자로 선언할 것이다.103)  
그렇다. 크리소스톰은 부자들의 부동산 투기 행위를 개인의 구원  
론적인 차원에서 자기 기만 또는 위선으로 설정하여, 부자들이 다  
른 그리스도인에게 강도짓 또는 살인을 행했다고 즉,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단언한다.104)  
나아가, 크리소스톰은 그것이 로마의 실증법에 따른 합법적 절차  
를 거쳤다더라도 결코 정당화 될 수 없다고 강조한다.105) 즉, 그도  
루터와 마찬가지로 부동산의 사용과 소유에 있어서, 그리스도인들  
에게 그리스도인 사이에 적용되어야 하는 하나님 나라의 법을 우  
선적으로 강조한다.  
존과 존엄에 대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음을 현실적으로 알았기 때문이  
다.  
관련하여, 크리소스톰이 살았던 시대는 루터당시와 다르게 사회 구조  
가 상대적으로 복잡하지 않았다. 초대교회 당시는 루터당시에 비해 더  
욱 그리스도인 공동체 개념이 체계적이지 않아, 공동체를 통한 체계적  
인 불로소득의 공유 또는 재분배가 사실상 불가능했다. 다시 말해, 채  
무자에게 많은 경제적 손실을 가져올 수 있는 100% 환급을 현실적으  
로 유도해야 했으므로, 크리소스톰은 구원 유무를 최후의 재판이라는  
가시적인 소재와 직결하여, 일종의 충격을 주고자 노력한다.(김유준,  
크리소스토무스의 경제사상 연구, 신학사상, 2016, 190.)  
103) 김유준, 크리소스토무스의 경제사상 연구, 신학사상, 2016, 189.  
104) 김유준, 크리소스토무스의 경제사상 연구, 신학사상, 2016, 189-19  
0.  
105) 김유준, 크리소스토무스의 경제사상 연구, 신학사상, 2016, 190.  
물론, 다주택자 그리스도인이 다른 그리스도인 임차인으로부터 이미  
과도한 이익을 남겼을 경우, 이러한 해결방법을 기계적으로 적용할 필  
요는 없다. 물론, 그만큼 철저히 다른 그리스도인에게 배상해야 함은  
당연하지만 말이다.  
아마, 그의 신앙의 크기에 즉,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향한 사랑의 크기  
에 맞추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역동적인 현대의 현실에서 적합할  
것이다. 관련하여, 심도 있는 신학적 논의가 더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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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이는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을 준다.  
초대교회 교부들은 한결같이 당대의 사회에 만연한 소위, 지극히  
인간적인 가치체계 또는 사회체제에 맞서 싸우며, 오직 성경에 근  
거한 행동원칙을 토지 또는 부동산 문제해결에 있어 강조했다. 이  
를 확장하면, 독자들은 자본주의를 정당화하는 모든 현대 국가의  
법률에 근거하여 지나치게 부동산으로 이익을 취함의 정당성을 주  
장하지 않게 될 것이다.  
개혁교회 교부(敎父)들의 토지 임대 및 임차에 대한 관점  
2 칼빈을 중심으로  
루터와 거의 동시대를 살았던 칼빈도 루터와 비슷한 주장을 한다.  
단, 루터에 비해 약간 후대를 살았던 칼빈은 그리스도인 공동체 내  
의 토지 임대 및 임차에 관해 더욱 발전된 논의를 이끌어 낸다.  
바로, 청지기론106)이다. 잘 알려져 있듯, 칼빈은 재세례파와 달리  
과도하고 이분법적인 재산의 공유를 주장하지 않는다.107) 곧, 그는  
106) 이는 어떤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이 직장 또는 직업 등의 일거리를  
주셨기에, 그는 해당 직장 또는 직업에서 하나님의 뜻에 관한 맡은 바  
를 성취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며, 그 과정과 결과에서 하나님께 영  
광을 돌려야 함을 의도 및 전제한다.  
107) 루터와 이전의 교부들은 토지소유와 빈부격차를 구원론적으로 이해  
한다. 이는 실제 가난한 그리스도인에게 경제적으로 자비를 베풀 마음  
이 전혀 없는 그리스도인이 많았기 때문이다.(최현욱, 크리소스톰에 있  
어서 빈부의 문제,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2009, 41-48.)  
그러나 이러한 관점으로만 그것들의 관계를 이해한다면, 어디까지 경  
제적인 자비를 베풀지와 어디까지가 합법적인 경제활동인지에 대한 논  
쟁이 생길 수 있다.  
관련된 부정적인 예로, 간혹 재세례파의 주장과 같이 급진적인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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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재산 소유를 인정하였으며, 다른 그리스도인을 위한 지나친  
구제와 사유 재산의 공유가 오히려 서로에게 악영향을 일으킨다고  
지적한다.108)  
‘청지기론’을 다룸에 있어, 칼빈은 그리스도인 개인과 그리스도인  
공동체에 각각 구분되는 경제적 영역을 신학적으로 설정한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현상적인 재산의 불평등을 수용하도록 하기 위해,  
이를 설명하는 과정에 하나님의 섭리를 도입한다.109) 이는 신학사  
적으로 최초의 시도이다. 핵심적으로 그에 따르면, 하나님이 어떤  
그리스도인에게 토지를 포함하여 재물을 많이 준 것은 다른 그리  
스도인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는지 확인하기 위함이고, 반대로 하나  
님이 어떤 그리스도인에게 토지를 포함하여 재물을 적게 준 것은  
하나님께 그러한 상황 속에서 감사할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함이  
다.110)  
나아가, 칼빈은 토지 임대를 포함하여 어떠한 종류이든 그것이 전  
적 주장이 발생하기도 한다. 재세례파의 경우, 그들은 직접적인 부동산  
관련 주장을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빈부격차에 관해 전제적으  
로 또한 다분히 폭력적 방식으로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김홍  
섭, 존 칼빈의 경제, 경영 사상과 현대적 적용에 대한 연구, 한국항만  
경제학회지, 2015, 153, 155.)  
108) 김홍섭, 존 칼빈의 경제, 경영 사상과 현대적 적용에 대한 연구, 한  
국항만경제학회지, 2015, 153, 155.  
109) 김홍섭, 존 칼빈의 경제, 경영 사상과 현대적 적용에 대한 연구, 한  
국항만경제학회지, 2015, 153, 155.  
110) 이는 청지기론의 핵심으로서 그리스도인 개인과 그리스도인 공동체  
에 각각 구분되는 경제적 영역이 독립되면서도 중첩될 수 있음을 가능  
케 한다.(김홍섭, 존 칼빈의 경제, 경영 사상과 현대적 적용에 대한 연  
구, 한국항만경제학회지, 2015, 153, 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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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그리스도인의 삶에 긍정적인 또는 생산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면,  
채권인[채권자] 또는 임대인이 어느 정도의 이자(利子)111) 또는 이  
득을 받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한다.112) 단, 그는 신명기 24:19-22  
를 주해하며, 이자를 매김에 있어 추가적인 조건 또는 전제를 단  
다. 바로, 이는 해당 성경본문에 지적된 것처럼, 다른 그리스도인  
의 생존과 존엄을 배려하는 것이다.113)  
구체적으로 칼빈은 임차로 인해 발생하는 이자가 임차인의 생존  
과 존엄에 문제가 되지 않는 수준이어야 한다고 적시한다.114)  
111) 고리대금 수준을 의미하지 않는다.  
112) 역시, 이는 그리스도인 개인과 그리스도인 공동체에 중첩되는 경제  
적 영역이 존재하면서도, 각각 구분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김홍섭, 존  
칼빈의 경제, 경영 사상과 현대적 적용에 대한 연구, 한국항만경제학회  
지, 2015, 154.)  
113) 이외에 칼빈은 신명기 24:1-6을 주해하며,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생존과 존엄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 즉 토지를 포함하여 그와 비슷한  
어떠한 종류를 빼앗는 자는 살인을 저지르는 것과 마찬가지라 강조하  
기도 한다.(김홍섭, 존 칼빈의 경제, 경영 사상과 현대적 적용에 대한  
연구, 한국항만경제학회지, 2015, 154-155.)  
114) 구체적으로 칼빈과 츠빙글리는 그들의 설교에서 최대 5%로 이자율  
을 제한해야 한다고 말한다.(김홍섭, 존 칼빈의 경제, 경영 사상과 현  
대적 적용에 대한 연구, 한국항만경제학회지, 2015, 161.; 이오갑, 종  
교개혁자들의 경제관, 사회이론, 2017, 68.)  
사실, 5%는 당시 대부업의 관례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이자율에 해  
당한다. 당시 심한 경우 채권에 대해 최대 60%의 이자율을 적용한 채  
권자들도 있었다. 특히, 5%는 종교개혁시기의 물가상승률을 고려했을  
때, 거의 채권으로 이익을 보지 못하는 수준에 해당한다.  
참고로, 루터의 경우, 그는 상환의 가능성을 따지되 최대 8%로 이자  
율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칼빈이 루터에 비해 어떤 측면에  
서 더욱 과감하게 부동산으로 이익을 보지 않도록 주장한 것이라 생각  
할 수 있다.(이오갑, 종교개혁자들의 경제관, 사회이론, 2017, 62-63,  
74.)  
이외에, 칼빈은 가난한 그리스도인에게 이자를 못받을 것이 확정적인  
- 42 -  
는 다른 그리스도인의 생존과 존엄에 근거하여 토지 임대를 포함  
한 모든 종류의 경제활동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 칼빈의 주장을 대  
표적으로 또한 실제적으로 요약한다.115) 그렇다. 그는 부동산과 관  
련된 어떠한 경제활동이든지 그것이 예수님께서 요약해 주신 2가  
지 대계명 중 하나인 ‘이웃사랑’116)이라는 성경 전체의 핵심주제를  
토대로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어, “다음 호 또는 다음 부록 호”에서 계속됩니다.)  
경우에도 그에게 채권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기  
도 한다.(이오갑, 종교개혁자들의 경제관, 사회이론, 2017, 74.)  
물론, 종교개혁시대의 교부들은 예외적인 상황에 관해, 즉, 예를 들  
어, 돈을 떼어먹거나 갚았다고 우기거나 하는 등의 채무자와 채권자  
간의 일방적 계약파기 등에 관한 섬세한 대응 가이드를 제시하지는 못  
했다. 이는 초대교부들이 가지는 대표적인 신학적 한계 즉, 기독교가  
공인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대적 한계를 보여준다.  
개혁신학을 포함하여 모든 신학은 시대적 요구에 따라 부동산에 관한  
논의를 진행하고, 그것은 어느 정도의 수준에서 마무리된다. 곧, 이는  
현대에 적절하게 논의 및 연구되어야 마땅하고, 장차 지속적으로 발전  
해야 한다.  
115) 이외에 칼빈은 상공업 등 당대의 다른 산업분야에서 어떤 근로자가  
받아야 하는 임금에 대해, 반드시 최소한 그 근로자가 그리스도인이라  
는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수준으로 책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역  
시 이 또한 칼빈이 기본적으로 어떤 경제활동에 관하여, 인간이 누려  
야 할 생존과 존엄을 강조했음을 잘 드러낸다.(김홍섭, 존 칼빈의 경  
제, 경영 사상과 현대적 적용에 대한 연구, 한국항만경제학회지, 2015,  
161.; 이오갑, 종교개혁자들의 경제관, 사회이론, 2017, 69.)  
116) 물론, 이 또한 그리스도인을 대상으로 그들이 다른 그리스도인에게  
행하는 바로 한정됨을 기억해야 한다. 칼빈도 역시, 그의 저작에서 ‘사  
람’이라 함은 협의적으로 당대의 기독교적 세계관을 가진 대부분의 신  
성로마제국의 국민(물론, 광의적으로 유럽 전역의 기독교 국가로 확대  
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 43 -  
신학과 목회  
어느 날의 감사  
윤선영 / 동현교회 은퇴전도사  
어느 날의 감사  
- 윤 선 영 ㅡ  
골목을 들어서자 낮은 담장 넘어 온  
짭조름한 간장에 꽈리고추 졸이는 냄새  
고소한 기름에 부침개 부치는 냄새  
너울너울 삶의 냄새가  
콧 속으로 들어온다  
내가 숨을 쉬고 있구나  
- 44 -  
아 ~ 배고프다  
하나님,  
제가 살아 있음을  
감사드립니다  
- 45 -  
신학과 목회  
어린이 슬기로운 신앙 생활  
장창한 / 열린개혁교회 목사  
성경 본문 - 시편 105:1~11  
개역개정  
1 여호와께 감사하고 그의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가 하는 일을 만  
민 중에 알게 할지어다 2 그에게 노래하며 그를 찬양하며 그의 모  
든 기이한 일들을 말할지어다 3 그의 거룩한 이름을 자랑하라 여  
호와를 구하는 자들은 마음이 즐거울지로다 4 여호와와 그의 능력  
을 구할지어다 그의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 5-6 그의 종 아브라  
함의 후손 곧 택하신 야곱의 자손 너희는 그가 행하신 기적과 그  
의 이적과 그의 입의 판단을 기억할지어다 7 그는 여호와 우리 하  
나님이시라 그의 판단이 온 땅에 있도다 8 그는 그의 언약 곧 천  
대에 걸쳐 명령하신 말씀을 영원히 기억하셨으니 9 이것은 아브라  
함과 맺은 언약이고 이삭에게 하신 맹세이며 10 야곱에게 세우신  
율례 곧 이스라엘에게 하신 영원한 언약이라 11 이르시기를 내가  
가나안 땅을 네게 주어 너희에게 할당된 소유가 되게 하리라 하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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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다  
제목  
하나님을 노래하고 찬양해요!  
요약  
구원받은 사람은 세상의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도록, 예수님을  
보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하고 찬양해요!  
단어 설명  
찬양(105:2) : 아름답고 훌륭하다고 드러냄  
기적과 이적(105:5-6) :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놀라  
운 일을 일으킨 것을 의미함  
판단(105:7) : 여기서는 하나님께 세상의 선과 악을 판단하는 자격  
이 있음을 의미함  
언약(105:8) : 말로 약속함  
할당(105:11) : 누군가가 당연히 받아야할 것을 나누어 줌  
관찰하기  
1.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어떻게 노래하고, 찬양하기를 원  
하시나요?(3절).  
1번 : 친구와 게임을 하느라 시간이 가는 줄 몰랐어. 하루쯤 찬양  
하지 않아도 괜찮겠지?  
- 47 -  
2번 : 찬양보다 아이돌의 노래를 부르는 것이 더 좋아.  
3번 : 나를 구원하려고 기적을 베푸신 하나님을 찬양할 때마다 하  
나님이 자랑스럽고 기뻐.  
4번 : 찬양하는 것은 부끄러워.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알려지지 않도  
록 몰래 찬양할래.  
정답 : 3번  
2.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로 약속하셨어요. 그 약속은 언제까지  
계속되나요? 자음 힌트를 참고하여 문장을 완성해 보세요(8절).  
그는 그의 언약  
대에 걸쳐 명령하신 말씀을  
기억하셨으니  
정답 : 그는 그의 언약 곧 천 대에 걸쳐 명령하신 말씀을 (영원히)  
기억하셨으니  
생각하기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하나님을 기쁨으로 노래하  
고, 찬양해요. 하나님은 인간이 죄를 저지르자마자, 예수님을 보내  
겠다고 약속하셨어요. 예수님은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서 우리를 대  
신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어요.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베푸신  
기적이에요. 만약,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려고 결심하지 않거나,  
중간에 마음이 변한다면 우리는 구원받지 못해요. 우리는 우리에게  
- 48 -  
예수님을 주셔서 천국에 가는 것을 약속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주위에 알려야 해요. 세상의 모든 사람이 하나님  
의 사랑을 알도록 예수님을 전하는 어린이가 되어요.  
느끼기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겠다고 영원히 약속하신 것을 생각하면, 어  
떤 느낌이 드나요?  
결심하기  
나를 구원하기로 작정하신 하나님을 (집에서 기도할 때, 학교에서  
쉴 때, 길을 걸어 갈 때 등) 찬양하기로 결심해요.  
기도하기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노래하고, 찬양하도록 도와주세요.  
- 49 -  
신학과 목회  
고대 근동사와 다니엘서의 관계  
백승엽 / 잠실새내교회 부목사  
다니엘서를 읽고 나면 머리에 남는 몇 가지 장면들이 있습니다.  
1. 다니엘과 세친구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왕이 하사하는 포  
도주와 산해진미의 식탁을 거절하고 소신있게 나실인으로서의 채  
식을 선택하는 장면.  
2. 다니엘이 느부갓네살 왕이 꾼 큰 신상(머리는 금, 가슴과 팔은  
은, 배와 넓적다리는 놋, 무릎 밑으로는 철의 형상을 한 신상)에  
대한 꿈을 알아맞히고 해석하여 느부갓네살 왕에게 인정받고 바  
벨론의 높은 대신이 되는 장면.  
3. 다니엘의 세 친구가 느부갓네살 왕이 만든 금신상에 절하지  
않고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지키다가 풀무불에 떨어져 위기에 처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들을 지키시고 구하시는 장면.  
4. 다니엘이 느부갓네살 왕이 꾼 두 번째 꿈을 해석한 장면으로  
한 순찰자가 꿈 큰 나무를 베어버리는 꿈을 해석하는 장면.  
- 50 -  
5. 벨사살 왕이 귀족들과 예루살렘성전에서 탈취해 온 금, 은 기  
명으로 술잔치를 벌이다가 손가락이 하늘에서 나와 메네메네데겔  
우바르신이라고 글을 적은 사건. 그리고 이를 다니엘이 해석하여  
벨사살 왕이 곧 죽을 것이고 메대 사람 다리오가 바벨론을 정복하  
고 왕이 되는 장면.  
6. 다리오 왕 때에 다니엘이 간신들의 계략과 모함으로 사자굴에  
들어가게 되지만 하나님께서 다니엘을 지키사 머리털 하나도 상하  
지 않고 사자굴에서 구하시는 장면.  
그 다음에 어떤 장면이 떠오릅니까?  
네~ 사실 그 다음 장면이 구체적으로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다  
니엘서의 1장~12장까지 중에 1-6장까지의 장면들은 머리에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7-12장의 총 여섯 장의 장면은 순서대로  
잘 기억에 떠오르지 않는 것이지요. 아마, 기억이 난다고 하여도  
흐릿한 이미지로 떠오를 것입니다.  
그러면 다니엘서를 통독하다 보면 왜 이렇게 뒷부분이 헷갈리는  
것일까요? 왜냐하면 다니엘서 1-6장까지의 스토리 전개방식과  
7-12장까지의 전개방식의 다르기 때문입니다.  
1-6장까지는 다니엘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온 이후로의 스토  
리가 느부갓네살, 벨사살, 메데의 다리오 왕 때까지 있었던 사건  
중심으로 전개가 됩니다. 벨론포로시기 이후를 시간 순서대로 정리  
해놓았기에 다니엘서 전반부를 읽으며 본문의 내용을 기억하기 쉽  
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서를 통독하면 전반부에는 왕들이 통치하는  
- 51 -  
순으로 머리에 정리가 잘 됩니다.  
그러나 7장부터는 시간순 정리가 아닌 다니엘이 개인적으로 꾼  
꿈들을 중심으로 정리되어 있기에 잘 정리되지 않았던 것이지요.  
더군다나 다니엘이 꾼 꿈들의 내용이 상징적인 동물들과 단어, 숫  
자들이 많이 나와 전반부의 왕들이 꾼 꿈보다 비교적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다니엘서를 읽을 때 초반부는 너무 재미있게 쉽게 읽어  
나가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뭐야?.... 도대체 그래서 무슨말이  
야?.... 이걸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해? 라고 질문하며 다니엘서를  
읽고 정리가 잘 안된 채 넘어갔던 적이 많았을 것입니다. 나아가,  
어려운 사항들을 질문하기 위해 인터넷을 뒤져보면 이 부분에서  
다양한 이단들의 글들이 많아 오히려 더 혼란해지셨던 경험들이  
있으실 것입니다.  
다니엘 7-12장에는 전반부보다 더 많은 묵시문학의 특성을 가지  
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묵시문학의 특성은 한 단어 단어마다 함축  
된 상징과 비유가 많기에 묵시문학을 개혁주의적이고 전통적인 견  
해로 해석하며 읽지 못하면 이단들의 잘못된 해석으로 읽게 되어  
신앙생활에 더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더 신중하게 본문  
을 읽고 개혁주의적으로 해석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다니엘 8장 15절에서 27절의 본문 내용에는 다니엘이 벨사살 왕  
제 3년에 꾼 꿈에 대한 환상을 해석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8장에  
다니엘은 이 환상의 꿈을 꾸고 나서 그 뜻을 몰라 속 앓이를 하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천사 가브리엘을 보내어 이 환상의 뜻을 알  
- 52 -  
려주십니다.  
그런데 이 환상의 해석에는 구체적인 왕들의 이름이 거론되고 그  
왕들의 특성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이전 7장의 벨사살 원년에 다  
니엘이 꾼 꿈에서 묘사되고 있는 환상의 해석과는 다르게 더 구체  
적이고 선명한 묘사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니엘 벨사살  
원년에 주신 환상이 이후 2년 뒤인 벨사살왕 3년에 더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환상을 보게 됨을 알 수 있지요.  
곧, 다니엘이 활동할 당시인 BC 6세기의 상황이 아닌 200년  
300년 뒤에 일어날 일인 BC 2~3세기경의 대외 정세를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서 7, 8장의 환상은 바벨론, 메  
대 바사, 헬라, 로마에 이르기까지 제국의 영광과 권력이 어떻게  
전개되어 갈지를 설명해줍니다.  
먼저, 다니엘은 을래강변에 서서 3~4절에 두 뿔을 가진 숫양을  
봅니다.  
3-4절입니다.  
3 내가 눈을 들어 본즉 강 가에 두 뿔 가진 숫양이 섰는데 그 두  
뿔이 다 길었으며 그 중 한 뿔은 다른 뿔보다 길었고 그 긴 것은  
나중에 난 것이더라  
4 내가 본즉 그 숫양이 서쪽과 북쪽과 남쪽을 향하여 받으나 그  
것을 당할 짐승이 하나도 없고 그 손에서 구할 자가 없으므로 그  
것이 원하는 대로 행하고 강하여졌더라  
- 53 -  
이 숫양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바로, 뿔이 긴데 한 뿔은 다른 뿔  
보다 긴 특징이 있습니다. 그리고 긴 뿔은 나중에 나왔습니다. 그  
리고 그 숫양이 서쪽, 북쪽, 남쪽을 향하여 받으나 그 손에서 구할  
자가 없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이 감당할 수 없는 숫양을 제압하는 한 동물이 나옵니다.  
그 동물은 매섭게 드러난 뿔 하나로 달려오는 숫 염소입니다. 이  
숫염소는 분노한 힘으로 숫양에게로 돌진하여 달려갑니다. 그리고  
그 숫양은 이 숫염소한테 일격을 받고 쓰러지지요. 쓰러진 숫양은  
숫염소에게 짓밟혀 땅에 엎드려진 상태로 허우적거립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 숫염소를 저지하고 숫양을 구하지 못합니다.  
이 부분이 5-7절에 잘 나옵니다.  
5-7절입니다. 함께 보겠습니다.  
5 내가 생각할 때에 한 숫염소가 서쪽에서부터 와서 온 지면에  
두루 다니되 땅에 닿지 아니하며 그 염소의 두 눈 사이에는 현저  
한 뿔이 있더라  
6 그것이 두 뿔 가진 숫양 곧 내가 본 바 강 가에 섰던 양에게로  
나아가되 분노한 힘으로 그것에게로 달려가더니  
7 내가 본즉 그것이 숫양에게로 가까이 나아가서는 더욱 성내어  
그 숫양을 쳐서 그 두 뿔을 꺾으나 숫양에게는 그것을 대적할 힘  
이 없으므로 그것이 숫양을 땅에 엎드러뜨리고 짓밟았으나 숫양을  
그 손에서 벗어나게 할 자가 없었더라  
- 54 -  
자 이 환상의 그림이 머리에 너무 잘 그려지시지 않습니까? 두  
뿔을 가진 양보다 한 뿔 가진 염소가 쎄다, 많이 쎄다.... 라는 그  
림이 그려집니다. 그리고 염소가 양을 짓밟고 있는 장면이지요...  
자... 그리고 이러한 장면의 해석이 오늘 본문 20절-21절에 나옵  
니다.  
20-21절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20 네가 본 바 두 뿔 가진 숫양은 곧 메대와 바사 왕들이요  
21 털이 많은 숫염소는 곧 헬라 왕이요 그의 두 눈 사이에 있는  
큰 뿔은 곧 그 첫째 왕이요  
곧, 숫양은 의심의 여지 없이 메대와 바사 즉, 메디아와 페르시아  
연합국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3-4절에 숫양의 두뿔 가운데  
처음 난 뿔보다 나중에 난 뿔이 더 긴 것은 메데(메디아)라는 나라  
보다 바사(페르시아)라는 나라가 더 강성하고 넓은 영토를 가질 것  
을 의미합니다. 이 두 나라는 동방의 나라로 발흥하여 서쪽과 북  
쪽, 남쪽을 정복하고 더 강성해진다는 것이지요.  
한편, 성경에 메대와 바사라고 지속적으로 표현되는 이유는 고대  
국가인 메디아와 페르시아는 할아버지와 손자의 국가의 관계로 연  
합 국가였습니다. 그렇기에 성경에서는 메대 바사 연합국이라고 나  
오지요.  
헤로도투스라는 역사가가 쓴 『히스토리아』 곧, 『역사』라는 책에  
등장하는 페르시아 건국신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내용을 잠시  
- 55 -  
소개하자면....  
페르시아라는 나라는 처음에 메디아라는 나라의 속국이었습니다.  
페르시아는 처음에 안샨이라는 도시국가로 시작했습니다. 안샨은  
수산이라는 도시에서 시작된 약소국이였던 것이지요.  
그런데, 당시 고대 근동의 강대국이었던 메디아에는 아스티아게스  
왕이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아들이 없었고 딸만 있었습니  
다.  
그러던 어느 날 왕은 요상한 꿈을 꾸게 됩니다. 그의 딸 중에 장  
녀인 만다네가 꿈에 나와 소변을 보게됩니다. 그런데 그 소변이 메  
디아 전 영토와 주변의 나라로 넓게 전파되는 것이었습니다. 꿈에  
서 깬 왕은 그 꿈이 잊혀지지 않고 계속해서 머리에 남아 번민하  
는 가운데 점술가들을 불러 해몽을 듣게 됩니다. 그러자 점술가들  
은 만다네가 장차 아시아를 지배하고 메디아를 다스릴 아들을 낳  
을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이에 자신의 왕권에 위협을 느낀 아스티아게스는 만다네를 당시  
속국이자 약소국이었던 안샨의 왕 캄비세스에게 시집을 보냅니다.  
그리고 얼마 후 메디아의 아스티아게스 왕은 다시 한번 요상한  
꿈을 꾸게 됩니다. 꿈에서 또 딸 만다네를 만나게 되는데 이번에는  
만다네의 자궁에서 포도넝쿨이 끝도 없이 쏟아져 나와서 아시아  
대륙과 유럽까지 퍼져나가는 꿈을 꾸게 됩니다.  
다시 왕은 점술사들을 불러 해몽을 듣고 충격에 빠지게 됩니다.  
곧, 만다네에게서 태어난 아이가 아시아와 및 유럽에서 대왕이 될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 56 -  
그 꿈대로 캄비세스에게 시집보낸 만다네가 아들을 낳게 됩니다.  
그리고 그 아들의 이름은 키루스 2세였습니다. 키루스 2세는 성경  
에 나오는 고레스 대왕으로서 고대 근동의 아시아를 점령하고 고  
레스 칙령을 선포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예루살렘으로 귀환시킨  
왕이었습니다. 그렇게 아스티아게스 왕은 자신의 왕권에 더 위협을  
느껴 키루스 2세를 죽이라고 자신의 부하-하르파고스에게 명령합  
니다.  
그러나 부하 하르파고스는 아이를 불쌍히 여겨 죽이지 않지요. 그  
렇게 키루스 2세는 유소년기를 하르파고스의 밑에서 숨어서 성장  
하게 됩니다. 그리고 때가 되었을 때, 자신의 부모인 안샨국의 캄  
비세스와 만다네에게로 돌아가게 되지요. 그리고 시간은 지나 키루  
스는 아버지 캄비세스의 다음으로 왕위에 올르게 됩니다. 그리고  
할아버지 국가인 메디아에 반란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리고 유소년  
기에 자신을 키워주었던 하르파고스와 결탁하여 할아버지 아스티  
아게스 왕을 몰아내고 메디아를 정복하게 됩니다. 그렇게 페르시아  
가 세워지게 됩니다.  
그렇기에 오늘 다니엘 8장 2절에 나오는 양의 두 뿔 가운데에서  
첫 번째로 난 메대라는 나라보다 두 번째로 늦게 난 바사 왕국의  
뿔이 더 길고 강력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21절에 이 두 뿔을 가진 강력한 양을 정복하고 지배하는  
숫 염소를 볼 수 있습니다. 이 나라는 헬라 곧, 그리스임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의 이해를 위해 다니엘 당시의 BC6세기 경의 지도  
를 참고하겠습니다.  
- 57 -  
<지도1. 참고>  
붉은색은 메디아였고, 그의 속국이자 사위국가인 안샨 그리고 옆  
에 바벨론과 리디아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키루스2세, 곧 고레스  
왕은 이 세 나라를 다 점령하고 영토를 넓히게 됩니다.  
<지도2. 참고>  
그리고 고레스가 다스리는 페르시아는 영토를 확장하여 동쪽으로  
는 인도로부터 시작하여 서쪽으로는 동유럽 그리스도시국가에 이  
르기까지 영토를 넓힌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 58 -  
그러니까 다니엘 8장 전반부에 등장하는 두뿔 달린 숫 양은 엄청  
난 힘을 가진 메디아와 페르시아 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은 더 강력한 뿔 하나달린 숫염소가 등장을 하여 이 숫 양  
을 제압합니다.  
두뿔 달린 숫양 페르시아가 그렇게 강력했는데 서쪽에서 혜성과  
같이 숫염소가 등장한 것이지요. 그는 뿔이 하나였는데, 두뿔을 제  
압해버지요. 그 뿔 하나는 곧, 헬라의 첫 번째 왕입니다.  
21절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21절입니다.  
21 털이 많은 숫염소는 곧 헬라 왕이요 그의 두 눈 사이에 있는  
큰 뿔은 곧 그 첫째 왕이요  
숫염소의 큰 뿔은 헬라의 첫 번째 왕을 상징합니다. 그러면 이  
왕은 누구일까요? 네~ 맞습니다. 바로 헬라의 알렉산더 대왕입니  
다. 역사상 동양과 서양의 가장 넓은 영토를 다스리고 정복했던 왕  
이지요. 서양의 그리스의 헬레니즘 문화를 동양 인도의 간다라와  
굽타지역까지 전파시킨 인물이지요.  
또한, 그의 영향으로 성경의 이스라엘도 헤브라이즘(히브리즘)의  
문화에서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에 다 나오  
지 않는 신구약 중간기 시기를 지난 이후 신약성경은 헬라어로 기  
록된 것이지요. 대표적인 예로 인물의 이름들이 히브리어에서 헬라  
식으로 기록됨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는 헬라식 이름이고 여호수아는 히브리식 이름입  
- 59 -  
니다. 시몬은 헬라식 이름이고 시므온은 히브리식 이름입니다. 바  
울은 헬라식 이름이고 사울은 히브리식 이름입니다. 마가는 헬라식  
이름이고 요한은 히브리식 이름이라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알렉산더대왕은 당시의 숫염소에 난 첫 번째 뿔을 상  
징함으로서 헬레니즘문화를 동양과 고대근동지역에 전하는 역할을  
감당했고 이것은 후에 신약시대에 헬라어의 보급으로 성경의 기록  
과 예수님과 사도들이 복음을 전파하는데에 큰 도움이 되는 기조  
제 역할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렇게 알렉산더 대왕은 서쪽 마케도니아로부터 시작하여 페르시  
아로 동방 원정을 떠나게 되고, 페르시아의 마지막 왕 다리우스(다  
리오) 3세는 이수스전투에서 알렉산더 대왕에게 대패하며 기세를  
꺽이게되죠.  
<지도3. 참고>  
그리고 페르시아의 다리오 3세는 최종적으로 가우가멜라 전투에  
- 60 -  
서 패망함으로 역사 가운데 종적을 감추게 됩니다. 그렇게 드넓었  
던 페르시아 제국의 영광은 무너지게 되고, 알렉산더는 여세를 몰  
아 남방지역 애굽과 더 나아가 동쪽 인도의 인더스강 유역까지 넓  
은 영토를 확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인도 인더스강 유역에서  
“더이상 정복할 땅이 없다”라는 말을 남기고 동방정복전쟁을 마무  
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10년 동안의 정복전쟁을 마무리하고 바벨로니아로  
돌아와 아라비아 원정을 준비하다가 33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  
감하게 됩니다. 그렇게 숫염소에 홀로 현저하게 난 뿔인 알렉산더  
대왕은 꺽이게 됩니다. 그리고 그 뿔에서 다른 네 뿔이 나게 되지  
요.  
8절입니다. 함께 보겠습니다.  
8 숫염소가 스스로 심히 강대하여 가더니 강성할 때에 그 큰 뿔  
이 꺾이고 그 대신에 현저한 뿔 넷이 하늘 사방을 향하여 났더라  
이에 대한 해석이 22에 잘 나옵니다.  
22절입니다.  
22 이 뿔이 꺾이고 그 대신에 네 뿔이 났은즉 그 나라 가운데에  
서 네 나라가 일어나되 그의 권세만 못하리라  
큰 뿔의 영광은 꺾이고, 대신 그 자리에 다른 뿔 넷이 나와 하늘  
- 61 -  
사방으로 퍼져나가게 되죠. 그런데 그 네 뿔은 알렉산더 대왕때 만  
한 권세를 누리지 못하게 되지요.  
그리고 그 예언은 역사에서 이루어지게 됩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알렉산더 대왕이 죽은 후 그 드넓은 영토는 그의 4대 장군에게 나  
눠지게 되지게되고, 그 영토를 기반으로 네 장군은 왕이 됩니다.  
<지도4. 참고>  
첫 번째로 마케도니아 지역은 카산더(Cassander) 장군이 왕으로,  
두 번째로 트라키아(Thracia)의 지역은 리시마커스(Lysimachos)  
장군이 왕으로, 세 번째로 이집트 곧, 애굽은 톨레미라고도 불리는  
프톨레미(Ptolemy)장군이 왕으로, 마지막 네 번째로 메소포타미아  
는 셀류커스(Seleucus)장군이 왕으로 차지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두 왕이 남게 되는데요. 다니엘  
11장에 나오는 남방왕과 북방왕이 되겠습니다. 남방왕은 곧 프톨  
레미 왕이며 북방왕은 곧, 셀류커스 왕입니다. 남방은 이집트 기반  
으로 남아 있게 되고 북방왕은 메소포타미아의 바벨로니아를 중심  
- 62 -  
<지도5. 참고>  
으로 힘을 키워 마케도니아의 카산더와 트라키아의 리시마커스를  
정복하게 됩니다. 이 부분이 다니엘 8장의 9-10절에 잘 나옵니다.  
9-10절 함께 보겠습니다.  
9 그 중 한 뿔에서 또 작은 뿔 하나가 나서 남쪽과 동쪽과 또 영  
화로운 땅을 향하여 심히 커지더니  
10 그것이 하늘 군대에 미칠 만큼 커져서 그 군대와 별들 중의  
몇을 땅에 떨어뜨리고 그것들을 짓밟고  
9절의 네 개의 뿔 중에 한 뿔에서 작은 뿔 하나가 나오게 되는데  
요. 그 뿔의 권세는 점점 커져서 남쪽과 동쪽을 다 점령하게 되고  
하늘 군대에 미칠 만큼 커져서 군대와 별들 중의 몇을 땅에 떨어  
뜨려 짓밟게 됩니다. 곧, 리시마쿠스와 카산더의 땅을 다 정복하게  
되고 프톨레미 왕도 압박하게 됩니다.  
- 63 -  
또한, 11-12절에 북방왕은 잔혹한 악행을 저지를 것도 예언합니  
다.  
11-12절  
11 또 스스로 높아져서 군대의 주재를 대적하며 그에게 매일 드  
리는 제사를 없애 버렸고 그의 성소를 헐었으며  
12 그의 악으로 말미암아 백성이 매일 드리는 제사가 넘긴 바 되  
었고 그것이 또 진리를 땅에 던지며 자의로 행하여 형통하였더라  
이들이 악행을 해도 형통할 것에 대해서는 23절과 24절에 해석  
되어 있는데요. 23-24절에 잘 나타납니다.  
23-24절  
23 이 네 나라 마지막 때에 반역자들이 가득할 즈음에 한 왕이  
일어나리니 그 얼굴은 뻔뻔하며 속임수에 능하며  
24 그 권세가 강할 것이나 자기의 힘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며  
그가 장차 놀랍게 파괴 행위를 하고 자의로 행하여 형통하며 강한  
자들과 거룩한 백성을 멸하리라  
남방왕 프톨레미가 근동의 이스라엘 지역을 점령하였을 때에는  
유대인들의 종교적 자유를 보장해 주고 자치를 인정해 주어, 이스  
라엘이 프톨레미 왕조 아래에 있을 때에는 식민지 생활이지만, 그  
럭저럭 살만하였습니다. 그러나 북방왕 셀류커스 왕이 남방왕 프톨  
- 64 -  
레미를 몰아내고 이스라엘 지역을 점령하였을 때에는 그 수모를  
말로 다할 수 없었지요. 특히 그들이 여호와를 믿는 신앙을 공격하  
는 행태는 참혹했습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 23-24절에 다니엘이  
예언한 내용입니다.  
그 왕은 얼굴은 뻔뻔하며 속임숙에 능하며, 권세가 강하여 놀랍게  
파괴 행위를 하고, 자의로 행하여 강한 자들과 거룩한 백성을 멸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23절에 일어날 한 왕은 이스라엘 백성들 입장에서 북방왕 셀류커  
스 왕조 가운데에서도 가장 악날했던, 안티오커스 4세 에피파네스  
왕을 지칭합니다. 그는 실제 역사에서도 유대인들을 심하게 핍박합  
니다. 그는 정복한 나라들을 헬레니즘 문화로 제국 통합하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에 제우스 신전을 설치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 헬라의 신들 석상을 가져와 성전에 비치하였으며,  
유대인들이 부정한 짐승이라 여기는 돼지를 잡아 제사를 드리고  
돼지 피를 번제단에 뿌렸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꺼내는 자들은 가문을 멸족시켰습니다. 이에 유대인들은 자신의 신  
앙을 지키기위해 더욱 완강하게 저항합니다. 그러자 셀류커스의 에  
피파네스는 예루살렘에 자신의 모습을 딴 동상들을 세우고 그 발  
아래 엎드려 제사를 지내라고 지시하며 더 억압하고 짓밟지요.  
결국, 참다 참다 견딜 수 없었던 유대인의 제사장 맛다디아가 아  
들 다섯 명과 반란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의 다섯 아들 중 마지막  
- 65 -  
까지 살아남은 셋째인 마카비가 오랜 게릴라전으로 에피파네스와  
의 전쟁에 승리하며 반란에서 혁명을 이루어내며 독립을 이루어내  
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여호와 신앙을 회복하고 그날을 수전절  
이라는 유대인의 명절로 지키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 가문의 이름  
을 따서 하스모니안 왕조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렇게 남방왕 프톨레미 왕과 북방왕 셀레커스 왕 사이의 고대  
근동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150년이라는 긴 시간을 전쟁하게 되  
고, 그 시간 동안 두 강대국 사이에 끼어있는 이스라엘은 고통과  
아픔의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그런데 이 환상을 보는 다니엘은 궁금증이 생깁니다. 이러한 일이  
“언제 일어날 것이며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라는 의문이 생기는  
것이지요. 곧, 하나님의 거룩한 제단이 더럽힘을 당하고, 훼파되며,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는 때를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느 때까지  
견뎌야 합니까?”라고 질문하는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14절과 같이 2300주야를 말씀하십니다. 이것  
을 날수로 환산하면 1150일이 되지요. 이 숫자는 대략 삼년 반  
곧, 세때 반(3년 반)을 상징하며 이것이 곧, 2300주야라는 것입니  
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이 상징적인 숫자를 왜 말씀하  
신 것일까요? 진짜 3년반 뒤에 이루어진다는 말씀이실까요?  
아닙니다. 역사에서 증명되었듯이 이 사건은 200-300년 뒤에 나  
타날 일들이고 그들이 고통받는 기간도 몇 백년에 걸쳐 일어나는  
것이지.... 사전적 의미의 세때 반, 3년 반이 아니라 상징적인 의미  
- 66 -  
의 숫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곧,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치욕스럽고 고통스러운 날이 반드시 정  
해진 시간이 있으니, 그 수치와 고통의 시간을 견디고 인내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간을 통과할 때에 하나님께서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실 것이고, 이기고 남은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  
하게 될 것이라는 메시지입니다.  
그 위로의 메세지가 본문 25절에 잘 나타납니다.  
25절입니다.  
25 그가 꾀를 베풀어 제 손으로 속임수를 행하고 마음에 스스로  
큰 체하며 또 평화로운 때에 많은 무리를 멸하며 또 스스로 서서  
만왕의 왕을 대적할 것이나 그가 사람의 손으로 말미암지 아니하  
고 깨지리라  
그렇게 “만왕의 왕을 대적하는 북방왕도 사람의 손이 아닌 하나  
님의 손”에 의해 깨질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곧, 대적에게는 심판  
을 내리실 것이며, 그의 백성에게는 구원하실 것이라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주시지요. 하나님께서 복잡한 세계사의 굴레 가운  
데에서 고통받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미래의 환상을 구체적으로 알  
려주시는 이유는 자신의 백성에게 견딜 수 있는 믿음과 신앙을 허  
락하시기 위함입니다.  
이어서 마지막으로 26절과 27절에 최종적인 묵시의 말씀을 다니  
엘에게 주십니다.  
- 67 -  
26-27절의 말씀 함께 보겠습니다.  
26 이미 말한 바 주야에 대한 환상은 확실하니 너는 그 환상을  
간직하라 이는 여러 날 후의 일임이라 하더라  
27 이에 나 다니엘이 지쳐서 여러 날 앓다가 일어나서 왕의 일을  
보았느니라 내가 그 환상으로 말미암아 놀랐고 그 뜻을 깨닫는 사  
람도 없었느니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메시지는 언제나 확실하고 한결같  
습니다. 하나님 주신 말씀이 지금 당장 일어나고 실현되지 않는 것  
같아 보여도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지지요.  
하나님의 사람 다니엘도 이 환상의 말씀을 다 소화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주신 이 환상의  
말씀을 다른 이들에게 쉽사리 떠벌리거나 말하지 않고 잘 간직하  
게 됩니다.  
<결론>  
역사는 세상의 주관자들에 의해 움직이는 것 같으나 그 역사를  
주관하시고 통치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말씀에 하  
나님께서는 다니엘에게 앞으로 당할 고난 가운데 이겨나갈 방법과  
힘을 더해주십니다.  
역사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개입하셔서 우리  
가 고난과 시험에 어떻게 할지 모르고 있을 때에 이겨나갈 수 있  
- 68 -  
는 힘과 지혜를 더해주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의 나라들은 왔다가 갑니다. 바벨론도, 페르시아  
도, 헬라 제국도, 로마도 다 지나갔습니다. 세상 군왕들도 잠시 떵  
떵거리다, 결국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따라서, 우리  
가 사모할 나라는 이 땅의 나라가 아닙니다. 이 세상이 전부가 아  
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 세상에 가치를 둔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가치를 둔 소망을 품고 살아가시길 소망합니다.  
다니엘 이후에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예수님을 통해 온전히 이루  
어 짐과 같이 지금도 우리 주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 나라는 여전  
히 성취되어 가고 있습니다.  
현재 누구에게도 말 못할 어려움과 고난 가운데에 있는 성도님들  
이 계십니까? 또한, 당면한 문제에 실족이 되어 일어날 수 없는 수  
렁에 빠져계신 분들이 계십니까?  
그때 역사의 주관자 되시며, 통치자 되신 우리 주 예수님을 찾으  
시며 간구하시길 소망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회복시키시고 치유하  
시는 주님을 경험하시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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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과 목회  
장례를 마치며  
김은성 / OO교회 목사1)  
2023년 하반기에 사역하며  
어느덧, 초등부 사역을 시작한지 2년이 되어간다. 아무것도 마련  
되어지지 않던 부서, COVID-19로 인하여 마치 폐허가 된 마냥  
타격을 입은 주일학교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지금까지 이 교  
회 초등부 사역자는 25명 이상이 지나갔다고 한다. 모두가 그러했  
던 것은 아니지만, 부장님을 포함하여 많은 선생님들이 소리 높여  
외치었던 말이 있다. “목사님! 목사님은 저희에게 상처주지 마세요!  
저희들은 잘못 없는데, 교역자의 실수로 교역자에게 받은 상처가  
많은 부서에요. 마음 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아시지요?”  
이 말이 마치 나에게는 하나의 ‘경고’, ‘옐로우 카드’ 같은 느낌마  
저 들었다. 웃으면서 대답하였지만, 마음 한켠에 커다란 부담감이  
느껴지기도 하였다. 20년이 넘은 교회라고 하였지만, 부서를 돌아  
보니 어느 하나 제대로 준비되어 있는 것이 없었다. 조직도 체계도  
1) 개인 사정으로 교회명을 생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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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아둔 자료도 하나의 매뉴얼조차도 없었다. 아이들과 교사들은 이  
미 많은 인원이 장결자로 분류된지 오래였고, 상처로 꽁꽁 싸맨 마  
음문은 상당히 두터워 보였다.  
이러한 가운데 내가 초점을 둔 것은 ‘진정성’의 사역이었다. 기도  
도 사역도 심방도 설교도 ‘형식’이 아닌 ‘한 영혼’에 집중하고, ‘진  
심을, 전심을’ 다해 사역하는 것이었다. 속도 보다 방향에 집중하  
였고, 급속도로 무너진 집을 짓기 보단 세월이 걸려도 붕괴가 없는  
탄탄한 집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교회 입장에서는 하루 빨리 세워  
지기 원했겠지만, 모래성과 같은 연약함보단 시멘트 같은 탄탄함으  
로 부서를 재건축 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지금, 완성형의 모습은 아니지만 많은 부분  
조직과 체계가 잡히고, ‘안정감’이 느껴진다. 타부서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단단하고 내구성이 존재한다. 30명 이상의 성도와 청  
년들이 교사로 지원하였고, 구세대와 신세대가 조화를 이루며 서로  
의 장단점을 보완하고 있다. 이러한 교사들간의 단합과 서로를 향  
한 애착은 고스란히 아이들에게도 이어졌고, 자동적으로 영적부흥  
을 이루며 양적 부흥에까지 도달하게 되었다. 남들은 말한다. “초  
등부는 완성형 부서이다. 너무 탄탄하다.”  
그러나 담당교역자이자 리더로서 말하기엔 ‘아직 이르다’라고 말  
하고 싶다. 초등부의 단합과 응집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기쁜  
날이 있을 땐, 누구보다 기뻐해주고, 슬픈 날이 있을 땐, 자기 일  
처럼 슬퍼해주는 부서이다. 하지만, ‘아직이다..’  
총무 집사님의 어머니가 소천하셨다. 73세의 나이. 내가 부임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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즈음, 아프기 시작하셨고 원인모를 병으로 인해 근육이 빠지고 음  
식을 섭취하지 못하여 평소보다 -30kg 감량이 되셨다. 그리고 지  
난 27일 하나님 품으로 돌아가셨다. 아직 천국으로 가기엔 너무  
이른 나이이신데.. 왜 이리 빨리 데려가신 것인지..  
수화기 너머로 선생님의 애절함과 다급함이 느껴진다. “목사님,  
엄마가 산소호흡기를 꼈는데도 얼굴이 파래요..다시 연락드릴게요.”  
그리고 1시간 후, “목사님, 엄마가.. 소천하셨어요.. 교구에 알려주  
세요..” 이 한 문장을 듣는데 1분이란 시간이 걸렸다.  
마치 어린아이가 울먹이듯 한 글자 한 글자 더듬으며 눈물을 삼  
켜가며 말씀하시는 선생님의 언어의 온도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마  
음이 무거웠고, 침체되었다. 부장님과 상의 후, ’교구 위로예배를  
넘어 부서에서도 위로예배를 드렸으면 좋겠다.‘라는 의견이 취합되  
었고, 난생 처음으로 위로예배를 인도하게 되었다.  
얼마나 긴장되던지.. 처음 전도사로 부임하여 첫 설교하던 시절이  
잠시 떠올랐다. 그렇게 위로예배를 드리는 가운데 많은 선생님들이  
참석을 하였고, 발인예배까지 거의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조문을 하  
였다.(48명) 부서의 리더로서 참으로 감동이 되는 순간이었고, 초  
등부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롬12:15]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교회란, 특정한 특별한 무엇을 갖추어야만 하는 곳이 아니라는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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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이 든다. 교회란, 하나님 안에서 또 하나의 가족같은 존재.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이 서로가 형제, 자매가  
되어주고 가족이 되어주고 의지할 피난처이자 쉼터가 되어주는 곳.  
그게 교회의 본질이 아닐까..  
선생님들의 눈물을 보며 많은 생각이 지나가는 하루이다.. 아직은  
이르지만, 이들이 좀 더 성숙하고 능동적인 평신도 리더가 되었을  
때, 그 시간이 되었을 때, 그 땐 내가 물러나도 되는 시간이 아닐  
까.. 24년도 겉만 단단한 시멘트가 아닌 속도 단단해진 초등부가  
되길,, 상황과 환경이 휘청이지 않는 내구성을 가진 부서가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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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과 철학과 음악과 일반과학  
비극의 결말  
윤다원 / 열린개혁교회 집사  
비극의 결말 4장  
“그만들 하세요.”  
유언장을 공개할 동안 한 마디도 하지 않았던 이영인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말투엔 날이 서 있었고 더 이상 못 참겠다는 짜증이  
담겨 있었다. 이영인의 등장에 당장 주먹다짐이라도 하려는 듯 들  
썩이던 분위기가 한층 가라앉았다.  
“정말 너무들 하세요. 어머님이 그래도 가족이라고 챙겨 주신 걸  
로는 만족이 안되시나 봐요? 솔직히 여기 계신 분들, 어머님이랑  
무슨 관계가 그리 있으셔서 당연히 그 많은 돈을 받을 자격이 된  
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어머님 아들이랑 결혼해서 한 이불 덮고  
잔 것도 저, 오랜 세월 수발 든 것도 저, 심지어 지금 상주 역할을  
하는 것도 전대요? 제 얘기는 유언에 한 줄, 딱 한 줄 밖에 없어  
요. 여기 저보다 더 죽고 싶은 사람 있으면 나와 보세요! 돈 때문  
이 아니라 이게 사람 마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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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인은 흐느낌을 주체하지 못하고 말을 끊었다. 이영인의 외침  
에 모두가 숙연해 졌다. 그도 그럴 것이 김서라 여사가 이영인에게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건 누가 봐도 비인간적인 처사였다. 사실 친  
척들은 김서라 여사가 이영인에게 모든 걸 다 남겨줄까봐 걱정했  
지 일이 이렇게 전개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영인씨, 그 개한테 돈을 준다는 유언을 어떻게 해  
서든 무효화 시켜야죠. 그럼 영인씨 몫도 나오는 거니까. 우리가  
나눠 줄게요.”  
분위기 파악에 둔한 한기문이 이영인의 상태를 간과하고 기어코  
말을 꺼냈다. 영인은 울어서 충혈된 눈으로 한기문을 노려봤다. 독  
기서린 눈빛을 보고 한기문이 주춤했다.  
“한기문씨, 그게 불가능합니다. 제 말을 안 믿으시네요. 정 될 것  
같으시면 어머니 동의 받아서 소송하세요. 그럼 처음에 사인하신  
대로 어머니 몫은 바로 사라집니다. 못 믿으시겠으면 다른 변호사  
한테 물어 보시고요. 근데 변호사를 만나려고 했던 사실을 다른 사  
람한테 들키시면 그것도 법적인 문제를 일으킬 의지가 있었던 걸  
로 간주해서 어머니 김소영씨에 대한 유언은 바로 없던 것으로 하  
겠습니다.”  
김한철 변호사는 좀처럼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한기문에게 좀  
더 엄격하고 건조한 어조로 처음의 약속을 지키지 않을 시 얻게  
되는 불이익을 상기시켰다. 김한철 변호사는 여기 모인 사람들에게  
그 어떤 여지도 남기고 싶지 않았다. 한기문은 도와 달라는 신호로  
김혜영을 애타게 쳐다봤지만 김혜영은 괜한 짓을 했다는 듯 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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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찌푸리고 한기문을 눈으로 나무랐다. 김혜영은 벌써 이영인의  
고통에 전염된 상태였다. 그리고 김한철 변호사의 말을 조용히 곱  
씹던 마덕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 생각해보니 이런 일로 싸우기엔 내가 나이가 너무 많아. 나는  
이걸로 끝내겠네. 그리고 형수가 남겨준 그 주식은 그냥 처리해서  
내 통장으로 넣어주게. 난 이제 그런 덴 관심 없거든.”  
좀 전의 격정이 완전히 사라진 마덕호의 얼굴엔 80대 노인의 지  
친 기색이 완연했다. 장례기간 동안의 피로가 이제야 몰려오는 듯  
했다.  
“네, 주식은 워낙 금액이 커서 처리에 시간이 좀 걸릴 겁니다. 따  
로 연락 드리죠.”  
김한철 변호사가 말을 마치자 마덕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방을 나  
섰다.  
“조심히들 가거라.”  
마덕호는 조카들에게 짧게 인사를 건내고 방 한쪽에 웅크리고 있  
는 영인을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김혜영은 마덕호가 나갈 수  
있도록 길을 비켜 주고는 문 앞에 가만히 서서 생각에 잠긴 듯 손  
톱을 물었다. 그리고 핸드폰을 켜 시간을 확인했다.  
“저도 됐어요. 지금 받은 돈도 차고 넘치는데 뭘. 이제 시간도 없  
고. 저도 가 볼께요. 오빠는? 뭐, 여기 계속 있을 거야?”  
김혜영이 한기문에게 눈치를 줬다. 여기서 한기문이 더 이상 창피  
해 지지 않도록 하려는 나름의 배려였다. 그래도 기영이 형이니까,  
기영이를 봐서 그 정돈 해 줄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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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또 뭘 망설이고 있어. 그냥 나와. 큰어머니한테 더 이상 죄  
짓지 말고. 차 가지고 왔지? 나 터미널까지 좀 태워줘. 얼른!”  
김혜영은 멀뚱이 서있는 한기문의 팔을 잡아 당긴 후 문 밖으로  
밀쳤 버렸다.  
“언니, 미안해요. 저희는 이만 가 볼게요.”  
김혜영은 마지막으로 쓰러져 있는 이영인의 등을 안쓰럽게 바라  
보며 인사했다.  
“그럼 두 분다 이의 없으신 걸로 알겠습니다. 유산 지급 문제는…  
다시 연락 드리죠.”  
김한철 변호사가 문을 닫으려는 김혜영에게 급하게 소리쳤다. 김  
혜영은 눈짓 몸짓으로 알겠다고 대답한 후 상주 방을 완전히 빠져  
나갔다. 밖에서 결과를 궁금해 하는 가족들의 웅성거림이 상주 방  
까지 전해졌다. 손님들이 하나둘씩 떠나가는 소리가 들리고 웅성거  
림이 사라지자 상주 방엔 다시 정적이 감돌았다. 김한철 변호사는  
한숨을 크게 푹 쉬고 엎어져 있는 영인에게로 다가갔다.  
“영인아. 괜찮아?”  
김한철 변호사의 목소리가 아까와는 다르게 사뭇 다정했다. 그리  
고 그는 영인의 팔을 부드럽게 잡아 일으켰다. 영인은 김한철 변호  
사의 손길에 의탁해 자연스레 몸을 기댔다.  
“영인아, 어머님이 너한테 따로 남기신 유언장이 또 있어.”  
영인이 얼굴을 들어 김한철 변호사를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지금 읽어도 될까?”  
영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김한철 변호사는 자신의 한쪽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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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에 기대고 있는 영인의 머리가 흔들리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가  
슴에 숨기고 있던 또다른 유언장을 꺼내 들었다.  
“오빠, 내가 읽을래. 내가 읽고 싶어.”  
영인이 갑자기 몸을 세우면서 유언장을 들고 있던 김한철 변호사  
의 손을 잡았다. 김한철 변호사는 잠자코 이영인에게 유언장을 건  
넸다. 유언장을 받아 든 이영인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  
다.  
사랑하는 내 딸 영인아.  
내 첫번째 유언으로 네 마음이 많이 상하지 않았기를 바란다. 내  
가족들은 내가 제일 잘 알지. 너에게 그 어떤 문제도 안겨주고 싶  
지 않았던 내 마음을 이해해 주면 좋겠구나. 너도 알다시피 만복이  
는 벌써 12살이니 이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네가 끝까지  
만복이를 잘 보살펴 준다면, 그게 우리에겐 별일이 되겠지. 그 별  
일이 생기면 만복이에게 갔던 재산 전부는 너의 것이다. 마음 같아  
선 하루라도 빨리 모든 걸 다 주고 싶지만 심장을 지키기 위해  
팔, 다리 하나씩쯤은 포기해야 될 때도 있는 법이지. 그리고 만복  
이이게 준다고 했지만 사실 그 재산은 모두 한철이가 자신의 명의  
로 가지고 관리할 게야. 너에게 주는 거나 한철이에게 주는 거나  
별반 다르지 않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여자가 돈을 가지고 있  
는게 나을 게다.  
너무 놀라지 마라. 너와 한철이 사이는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 아  
무도 없는 너에게 한철이가 남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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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 많은 네 시아버지가 신뢰한 사람이니 믿을 수 있을 거야. 나도  
물론 한철이를 믿는다. 석진이 걱정은 하지마라. 내가 만나서 잘  
이야기 해 두마. 자기 마누라 두고 그렇게 떠난 놈 잘못이지. 그러  
니까 나랑 석진이한테 너무 마음 쓰지 말고 행복해라. 살아 있는  
동안 마음껏 행복해.  
내가 이 긴 세월을 살 수 있었던 건 다 네 덕분이었다. 자식이  
둘 다 그렇게 되고 나선 더이상 살고 싶지가 않더구나. 자식을 먼  
저 떠나보내는 건 인생 최고의 비극이란다. 네가 내 옆에 남는다고  
했을 때도 나는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그 절망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거든. 근데 어느 날 보니 내가 너와 함께 웃고 있더구나. 사람  
의 온기가 그렇게 강력한 것인 줄 나도 몰랐다. 내 희망이 되어  
주어 고맙다. 진심으로 고맙다. 그리고 이제부턴 네가 살아가는 날  
동안 내가 남긴 이 온기가 네 삶의 희망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  
다. 행복하게 살아라. 그게 내가 너에게 바라는 마지막 소원이다.  
가슴 속 깊이 사랑한다 영인아.  
영인은 어그러진 미소를 지으며 따뜻한 눈물을 쉴새없이 흘렸다.  
눈물로 얼룩진 유언장을 건네 받은 김한철 변호사는 영인의 어깨  
를 부드럽게 꽉 쥐었다. 그 눈물에는 수많은 감정들이 섞여 있었  
다. 하지만 영인은 지금의 눈물을 끝으로 더 이상 슬퍼하지 않겠다  
고 다짐했다. 김서라 여사가 뿌려준 거름으로 비옥해진 영인의 마  
음에 새로운 새싹이 움트는 순간이었다.  
“하나님의 나라……”  
영인은 살아 생전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인과 만나고 싶다고 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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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라 여사의 말이 기억났다.마음에 싹튼 새싹 가운데로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쨍한 햇볕이 내리쬐었다. 그 훈훈함이 영인의 몸 곳  
곳으로 퍼져나갔다. 죽어있던 씨앗을 다시 살릴만큼 강력한 빛. 김  
서라 여사의 기도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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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과 철학과 음악과 일반과학  
어린이 구강 관리법  
장봉근 / 열린개혁교회 집사  
어린이 구강 관리법  
어린이 시절에 형성된 치아의 건강은 성인이 됐을 때의 구강 건  
강 여부를 좌우하는데요! 이 시기의 구강 관리에 대해 알아보겠습  
니다.  
○ 첫 치과 방문 시기  
- 보통 생후 6개월이 되면 아래 앞니가 가장 먼저 맹출하게 되는  
데, 이 때부터 칫솔을 이용하여 치아를 닦아주시고, 우유병을 물고  
자는 습관은 충치 위험을 높이기 때문에 삼가는 것이 좋습니다. 돌  
즈음에는 치과에 처음 방문하셔서 구강 검진 및 상담을 받으시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식습관 교육 및 구강 위생 관리법에 대해 배  
우시는 것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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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후에는 나라에서 시행하는 영유아 구강 검진을 4번의 기간(1  
차: 18~29개월, 2차: 30~41개월, 3차: 42~53개월, 4차: 54~65  
개월) 동안 본인 부담금 없이 받으실 수 있습니다. 영유아 구강 검  
진 기관으로 선정된 치과에서 검진을 받으시고, 연령 및 개별 구강  
상태에 맞는 자세한 구강 관리법을 배우시기를 추천 드립니다.  
○ 영유아 시절 구강 관리법  
- 칫솔질 및 치실: 첫 번째 유치가 나오기 전에는 거즈나 부드러  
운 수건으로 음식물 잔사를 닦아주시고, 첫 번째 유치가 나온  
후에는 영유아 전용으로 판매되는 칫솔머리가 작은 칫솔을 사용  
하여 닦아주시면 됩니다. 영유아 시기는 손의 움직임이 정교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이 혼자 닦게 하지 마시고, 칫솔질 시 항상 지  
도하실 뿐만 아니라 하루 1회 이상 보호자가 직접 닦아주시기를  
권장 드립니다. 이 때 아이의 정면에서 닦기보다, 아이의 뒤에서  
접근하셔서 아이를 감싸는 모양으로 닦으시거나 아이를 눕혀두  
시면 더 잘 닦으실 수 있습니다. 치아 사이사이에 음식이 끼는  
경우, 치실을 꼭 사용하여 음식을 제거해주어야 치아 사이사이  
충치를 막을 수 있습니다.  
- 불소 치약: 불소는 치아 표면에서 치아의 화학적 구조가 충치에  
더 잘 견디는 형태로 만들어 치아를 단단하게 만들고 충치 저항  
력을 높여줍니다. 첫 유치가 나온 직후부터 1000ppm 이상의  
고농도 불소 치약을 사용하시기를 권장합니다. 단, 과도한 불소  
의 섭취를 막기 위해서는 치약의 양을 조절하시면 됩니다. 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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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 시, 0~29개월에는 쌀 알 만큼, 30~65개월에는 작은 콩  
만큼 치약을 사용하여, 하루 2회 치약 사용을 권장합니다. (6세  
이후에는 1000~1500ppm의 고농도 불소 치약을 콩알 만큼 사  
용 하시기를 권합니다.) 일부에서는 과도한 불소 섭취로 인해 치  
아 표면에 반점이 생기거나 구토 및 두통을 유발하는 불소중독  
같은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까 염려되어 무불소 치약 혹은 저불  
소 치약을 문의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하지만 불소 함유량이  
1000ppm 미만의 경우 충치 예방 효과를 보기 어려우며, 실제  
로 몸무게 10kg 아이 기준으로 불소 1000ppm 농도의 100g  
치약 1~2통을 한 번에 짜먹지 않는 이상 과도한 불소 섭취로  
인한 건강 부작용은 발생하기 어렵습니다.  
○ 불소 도포  
- 불소 도포의 경우, 몇 가지 방법이 있지만 편리성 등의 이유로  
치과에서는 흔히 불소 바니쉬를 많이 이용하게 됩니다. 불소 바  
니쉬의 도포 주기는 우식 위험도에 따라 3~6개월 간격으로 많  
이 시행 됩니다. 특히 영구치(특히, 제1대구치)의 맹출 직후에는  
치아 표면이 완전히 단단하게 성숙되지 않은 점, 경우에 따라  
아이가 잇몸을 찢고 올라온 첫 영구치를 잘 닦기 어려워하는 점  
등을 고려하여 매 3개월마다 도포하는 것이 권장 됩니다.  
○ 치아 홈 메우기  
- 치아 홈 메우기는 치아의 음식을 씹는 면에 치면열구전색제(일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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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레진)를 바르고 굳히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치아의 깊은 주  
름을 인위적으로 봉쇄해 음식 및 세균의 접근을 막고 충치 발생  
을 막는 것입니다.  
- 만 18세 이하까지 충치가 발생하지 않은 영구치 어금니(제1대구  
치, 제2대구치)에는 건강보험이 적용되므로 치과의사와의 상담을  
통해, 필요한 경우 치아 홈 메우기를 받으시면 되겠습니다.  
○ 방사선 사진 촬영  
- 만 6~12세는 유치와 영구치가 함께 있는 혼합 치열기이며, 만  
12세 이후는 영구치열이 완성되는 시기입니다. 이들 시기에는  
새로 난 영구치의 충치 유무 뿐만 아니라, 영구치의 결손 혹은  
과잉치의 유무, 물혹이나 종양 등의 존재 확인을 위하여 파노라  
마 방사선 사진 촬영이 필요 합니다. 대표적으로 10대 초반에는  
윗니 송곳니 맹출 이상으로 치과에 내원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치아의 맹출 순서가 거의 마지막이기에 양 옆의 앞니와 작은  
어금니가 이미 송곳니의 경로에 자리 잡거나, 경우에 따라 송곳  
니가 위턱뼈의 깊은 안쪽에 위치하는 이유로 인해 맹출 이상이  
자주 관찰 됩니다. 적절한 교정 및 발치 등의 치료 시기를 놓칠  
경우, 주변 치아에 손상을 줄 수 있기에, 특히나 만 10세 전후  
에는 파노라마 방사선 사진을 통해 맹출 이상을 확인하시길 바  
랍니다.  
- 충치의 빈도가 높은 어린이의 경우는 6~12개월마다, 반면 충치  
의 빈도가 낮은 어린이의 경우는 2년 간격으로 교익방사선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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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는 구내 사진을 촬영함으로써, 충치의 조기 진단을 통해 적  
절한 치료 시기를 놓치지 않으시길 권합니다.  
☆ 오늘은 어린이들의 구강 관리법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어린이  
시기의 구강 질환들은 대부분 예방적 조치 및 조기 진단이 중요하  
므로, 주기적인 치과 방문을 통해 어린이들의 구강 건강을 지키시  
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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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과 철학과 음악과 일반과학  
성인 백신접종에 대한 궁금증 모  
윤다이 / 열린개혁교회 담임목사 사모  
성인 백신접종에 대한 궁금증을 마무리하며  
다시 추워지는 겨울이 다가옵니다. 독감예방접종을 맞는 계절입니  
다. 성인이 된 이후 예방접종에 대해 별로 생각이 없다가 아이가  
생기니 접종을 맞기 시작했습니다. 가족 중에 한명이라도 걸리면  
온 가족이 아프니 미리미리 조심하는 것이죠.  
이사 와서 새로운 소아과에 갔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문진하면서  
물으시더라구요. “계란 알러지는 없으시죠?” 예방접종 맞기 전에  
확인하시는 건데, 오랜만에 들으니 신선하게 들렸습니다. 오늘은  
백신접종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몇 가지 궁금증을 해결해  
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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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 계란을 먹으면 가벼운 발진이 있는데 백신 접종하면 안되나  
요?  
A1. 아니요. 계란에 대한 아낙필락시스 또는 아낙필락시스양 알  
레르기 반응이 아니라면 접종할 수 있습니다. 계란을 먹으면 호흡  
곤란이 오거나 경련이 오는 등 심한 알레르기 반응을 말합니다. 가  
벼운 발진은 금기사항은 아니란 말이죠. 접종전에 꼭 의사선생님께  
말씀드리세요. 일반적으로 계란이나 계란 함유 제품을 먹을 수 있  
으면 접종에 큰 문제가 없습니다.  
계란의 단백성분이 포함되어 있는 백신이 있기 때문에 확인하는  
절차입니다. 다른 음식물 알러지의 경우 백신에 없는 성분이므로  
확인하지 않는 것입니다.  
Q2. 가벼운 기침, 콧물의 증상이 있는데 백신 접종해도 될까요?  
A2. 심한 증상이 아니면 가벼운 감기증상이 있어도 백신을 맞을  
수는 있습니다. 백신의 효과가 감소되거나 이상반응이 생긴다는 통  
계는 아직 없습니다. 컨디션 좋은 날 맞으면 좋겠지만 일정이 안된  
다면 백신을 맞고 쉬는게 좋겠습니다.  
Q3. 항생제 복용중인데 백신 맞아도 될까요?  
A3. 대부분의 백신은 항생제 복용 중에 맞아도 백신의 효과에 영  
향을 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특성 백신과 특정 항생제는 함께 투  
여되면 안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항생제 복용 중에 맞을 수 있는  
백신인지 주사 맞기 전에 문의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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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감 예방접종을 맞아도 독감에 걸릴 수 있습니다. 독감에 걸릴  
수 있는 수많은 바이러스 중에 예상되는 3~4가지 병균에 대해 미  
리 예방하는 것이 독감백신이기 때문입니다. 예방접종을 했더라도  
이번 겨울 따뜻하게 입고 건강한 활동으로 아프지 않고 건강하시  
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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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과 철학과 음악과 일반과학  
나는 산곡교회 반주자입니다!  
천예나 / 하남산곡교회 집사  
필자는 독일에서 최고연주자 과정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서 연  
주와 교육 활동 중이다. 학생들을 인격적으로 가르치며 함께  
성장하고자 한다. 다양한 전문적 연주활동을 하되 찬양 선교와  
찬양 편곡에도 관심을 갖고 활동 중이다.  
교회 반주자로서의 삶  
나의 많은 이름표 중에서도 꽤나 큰 이름표는 교회 반주자이다.  
피아니스트이자 교육자로 살고 있는 나의 음악 인생에 지금껏 큰  
영향을 주었던 교회 반주는 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이름표였다.  
목회자이신 부모님 아래 자라며 교회는 나에게 집이자 생활 터전  
이었다. 아버지의 초기 목회시절, 부목사셨을 때 악보를 읽을 줄  
알았기에 급히 성가대 연습에 반주가 필요할 때 투입되고는 했었  
다. 그 때가 10살이었는데 그 때가 교회 반주인생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이후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께서 교회 개척을 시작하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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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은 교회에서 나는 10대와 20대를 보내게 되었다.  
음악을 공부하며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어머니이다.  
이는 어머니로부터 음악을 알게 되었고 배움을 시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머니께서 항상 하시던 말씀이 있었는데 그것은 ‘하나  
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음악을 공부하고 피아노를 연주해야 한  
다는 것이었다.  
교회 반주자는 늘 부족했기에 주일이면 아침 9시에 학생 예배부  
터 시작되어 11시 예배 반주와 성가대 반주, 오후 예배 반주를 모  
두 맡아 해야만 했다. 한창 사춘기였던 십대의 시기였기에 그럴 때  
면 항상 ‘내가 왜?’ 라는 질문이 들었다. 그 때마다 어머니께서 하  
신 말씀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라는 말을 되뇌이며 하  
기 싫던 반주를 참으며,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해왔던  
것 같다. 내가 투덜댈 때마다 어머니께서는 하나님께 쓰일 수 없는  
음악은 쓸데없는 음악이라고 하셨고 울리는 꽹과리라고 하셨다.  
그렇게 하기 싫던 반주가 어느덧 나의 음악 인생에 스며들어 있  
었고 돌아보니 그 시간들 또한 은혜였고 연단의 시간이었노라 고  
백할 수 있게 되었다. 때로는 예배 당일에 받는 성가대 악보를 연  
습 없이 쳐내야만 할 때도 있었고 간혹 구해 오신 악보가 얼토당  
토 하지 않아 스스로 수정하고 편곡해서 쳐야할 때도 비일비재했  
다. 덕분에 악보를 읽는 초견 실력이 차츰 성장되었고 간단한 편곡  
또한 할 수 있게 되었다.  
초견 실력이 늘어 피아노 연습 시간을 더욱 효율적으로 쓸 수 있  
게 되었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한 대형 신문사 콩쿨에서 1등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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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되었다. 그 때 수상 인터뷰를 했고 기사가 나갔는데 나의 인터  
뷰 타이틀은 이러했다. “부모의 기도 덕분에 큰 상을 수상, 교회  
반주자로 활동하며 기본기 탄탄“. 그 날 인터뷰에서 교회 반주 이  
야기를 한 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 아이러니 하게도 그 싫던 교회  
반주는 나의 음악 공부의 큰 동기부여가 되었고 그 안에서 나는  
꿈을 키워갔다.  
작은 개척교회 목회이셨기에 적은 월급으로 딸의 음악 공부를 시  
키시기에 많은 부담이 되었으리라. 어머니께서는 발품을 팔아 레코  
드 가게에 가서 눈치를 보며 부탁해서 다양한 연주자들의 연주를  
적은 돈으로 테이프에 녹음해 와 들려주시고 피아노 수업을 들을  
때는 함께 청강하시며 악보에 적어가며 나를 공부시키셨다. 덕분에  
비전공자인 어머니는 도사가 되어 내가 연습하다가 틀리는 부분을  
기가 막히게 족집게처럼 잡아내기도 하셨다.  
아버지께서는 음악공부가 적지 않은 돈이 들기에 한때는 만류하  
기도 하셨는데 어머니께서 적은 돈으로도 나를 공부시키시겠다고  
약속하시며 아버지를 설득하셨다. 실제로 나를 지도해주신 선생님  
께서는 수업료를 다 받지 않으시고 때로는 나의 상황을 고려하여  
아예 수업료를 받지도 않고 은혜를 베풀어주시며 나를 지도해주셨  
다. 어머니의 그 믿음으로 나는 계속해서 공부할 수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무모하리만큼 어머니께서는 믿음으로 나를 키우셨던 것  
같다.  
지도해주셨던 선생님 뿐 아니라 어려운 순간마다 도움의 손길이  
늘 있었고 거저 받는 은혜의 순간들도 많았다. 그래서 나는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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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되었을 때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에게 베풀어야겠다는 다짐을  
했고 지금, 예전의 나처럼 상황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려  
고 노력하고 있다.  
나의 음악 시작 이야기는 여기서 마치고 앞으로는 교회에서 반주  
를 하다가 일어난 에피소드들과 그에 의해 쌓인 노하우들을 하나  
씩 소개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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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과 철학과 음악과 일반과학  
풍력 발전으로의 전환에 대해  
이재현 / 열린개혁교회 집사  
필자는 2013년도 부산대학교 조선해양공학과 졸업하고 2019  
년도에 델프트공대/노르웨이공과대학에서 Offshore dredging  
engineering/Wind engineering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  
다. 대우조선해양과 선박해양플랜트 연구소에서 해상플랜트 구  
조엔지니어로 근무하였으며, 이후 DNV에서 육상/해상 풍력발  
전기 하중엔지니어로 일하였고, 현재는 TotalEnergies에서 부  
유식 해상풍력 발전 시스템의 설계담당으로 일하고 있다.  
들어가는 글  
필자는 2013년에 부산대학교 조선해양공학과를 졸업하고 대우조  
선해양과 선박해양플랜트 연구소에서 2017년까지 약 4년 반동안  
일을 하였습니다. 해상플랜트, 즉 오일&가스 산업군에서 일하다  
보니 전통적인 발전 방식에 대한 지식은 있었으나, 풍력 발전기를  
비롯한 신재생 에너지원에 대한 관심도 지식도 전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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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에 저는 풍력 발전기라고 하면 “비싸고”, “비효율적이고”,  
“산업화되려면 한참 먼” 에너지원으로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한 계기로 직장 동료와 대화를 하다가, 미국에서 떠오  
르는 직업군 중 최상위에 “풍력 발전 엔지니어”가 있는 것을 확인  
하고는 관심이 생겼습니다. 인터넷을 통하여 검색을 하다보니 이미  
2017년도에는 미국이나 유럽 중심으로 풍력 발전 산업이 미래에  
떠오를 산업으로 인식되어있어 연구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  
습니다. 또한 GE, Siemens나 Vestas같은 미국과 유럽의 산업체  
들을 중심으로 대규모 풍력발전 단지를 이미 조성하고 있었습니다.  
특히나 충격을 받았던 것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풍력 발전기가  
생산하는 에너지량이 어마어마하고, 전기 생산비가 그렇게 비싸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2017년 당시에 우리나라에서는 풍력 발전  
산업에 대한 언급을 도저히 찾아볼 수가 없었는데, 지구 반대편인  
미국과 유럽에서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풍력 발전 산업을 바라보  
고 있다는 데에 충격을 받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과감하게 직장  
을 그만두고 유럽으로 유학을 가서 풍력 발전에 대해서 공부를 하  
게 되었습니다.  
2019년에 제가 졸업을 하고 독일에서 일을 시작할 당시만 하더  
라도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풍력 발전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았  
습니다. 그러다 2021년부터 우리나라의 풍력 시장이 “해상 풍력”  
을 중심으로 커지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우리나라가 “부유식 해상  
풍력”에 있어서는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시장이 되었습니다.  
이번 글을 통하여 제가 2017년에 가지고 있었던, 일반인으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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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력 발전에 대해 가질 수 있는 궁금증들을 풀어보고자 합니다. 나  
아가 우리나라의 풍력 발전 산업, 특히 “부유식 해상 풍력”에 대해  
공유드리고자 합니다.  
풍력 발전 개요  
풍력 발전기는 말 그대로 바람의 힘을 통해 날개 (Blade)를 돌리  
고, 날개를 돌리는 힘을 이용해서 발전기 (Generator)를 돌려 전  
기를 얻는 형태의 발전 시스템입니다.  
‘바람의 힘이라고 해봤자 얼마나 크겠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  
만, 짧은 예를 아래와 같이 들어볼 수 있습니다. 육상에서는 최근  
에 4.5 메가와트 (MW) 발전기가 굉장히 많이 사용되는 것으로 알  
고 있습니다.(참고로 4.5 메가와트의 발전기는 날개 (Blade)의 길  
이가 150 m 정도로 굉장히 깁니다.) 또한 일반적으로 육상 풍력  
발전 단지의 경우 6m/s이상의 평균 풍속을 가지게 됩니다. 6m/s  
의 평균 풍속을 가지는 육상 풍력 발전 단지에 4.5 메가와트 발전  
기가 설치되는 경우, 풍속의 분포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발전기의  
효율, 유지보수 기간 등을 고려하여 일반적으로 약 연간 10,000  
MWh 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2022년 가구당  
평균 전력 사용량이 연간 약 2.85 MWh 인 것을 감안하면2)  
대의 풍력 발전기가 생산하는 전력량이 연간 약 3,800가구가 사용  
2) 한국전력 전력데이터 개방 포털시스템,  
https://bigdata.kepco.co.kr/cmsmain.do?scode=S01&pcode=000  
171&pstate=L&redirec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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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전력량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생각보다  
풍력 발전기 1대가 생산하는 전력량은 작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많은 전력 생산량을 얻기 위해서는 평균 풍속이  
중요합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풍속이 높을수록 전력 생산량은 많  
아지게 됩니다. 앞서 설명한 4.5MW 터빈이 만약 평균 풍속 7  
m/s 의 평균 풍속을 가지는 풍력 발전 단지에 설치되면 전력 생  
산량은 어떻게 변할까요? 정확한 계산은 풍속의 분포에 달려있지  
만, 이 경우에는 전력 생산량이 연간 약 12,000 MWh 로 약  
20%정도 생산량이 늘어나게 됩니다.  
그렇다면 평균 풍속은 어디가 높을까요? 육상의 경우 탁 트여있  
는 대지나, 장애물이 없는 산 꼭대기 등이 풍속이 높은 구간입니  
다. 이보다 더 높은 평균 풍속을 가지는 곳은 바로 해상입니다. 해  
상의 경우 주변에 장애물이 없기 때문에 적도 부근을 제외하고는  
약 8 m/s 이상의 평균 풍속을 가지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해상 풍력의 경우 큰 단점이 있습니다. 바로 풍력 발전기  
를 해저에 고정할 수 있는 추가적인 구조물이 필요하다는 것입니  
다. 이 추가적인 구조물은 일반적으로 500톤이 훨씬 넘게 되고,  
이러한 추가적인 구조물을 설치하는 비용 또한 육상 풍력 발전기  
에 비해 돈이 더 들게 됩니다. 또한 이러한 추가적인 구조물들의  
유지/보수 비용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해상 풍력의 경우에  
는 이러한 추가적인 구조물들의 개수가 많아지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특정 해상 풍력 발전 단지에 100 MW 의  
발전 용량을 설정한 경우, 1 MW 짜리 풍력 발전기 100개를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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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것보다, 5 MW 짜리 풍력 발전기 20개를 설치하는 것이 비  
용 면에서 훨씬 효율적입니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풍력 발전기가 점점 더 대형화 되어가는 추  
세입니다. 현재는 풍력 발전기 1대가 15 MW 이상의 전력을 생산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대형화된 풍력 발전기의 경우 날개  
하나의 길이가 약 230 m 로 매우 깁니다.  
미국처럼 광활한 평지가 있는 경우에는 이러한 긴 날개를 옮기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나라처럼 산지가 많고 직진로보다  
경사로가 많은 경우에는 날개를 육로로 옮기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이런 대형화된 풍력 발전기의 경우에는 육상보다는 해상에  
설치하게 됩니다.  
이러한 “해상 풍력 발전기”의 경우에는 또 다시 “고정식 해상 풍  
력 발전기”와 “부유식 해상 풍력 발전기”로 나누어집니다. 고정식  
해상 풍력 발전기는 말 그대로 해저면에 구조물을 고정해 놓은 풍  
력 발전기 시스템을 말하며, 부유식 해상 풍력 발전기는 수면에 구  
조물을 띄운 상태로 발전을 하는 풍력 발전기 시스템을 말합니다.  
대한민국의 부유식 해상 풍력  
앞서 설명하였듯이, 부유식 해상 풍력 발전기는 수면에 구조물을  
띄워놓고 발전을 하는 풍력 발전기 시스템입니다. 상상만 해도 알  
수 있듯이, 부유식 해상 풍력 발전기는 고정식 해상 풍력 발전기에  
비해 움직임도 많고 만들기도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수심이 깊은  
지역의 경우(60 m 이상) 고정식 해상 풍력 발전기의 하부 구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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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굉장히 커져야 합니다. 이러한 지역에서는 고정식 해상 풍력 발  
전기가 부유식 해상 풍력 발전기에 비해 경제성이 떨어지게 됩니  
다.  
우리나라의 경우 수심이 깊은 편에 속합니다. 서해와 남해 일부의  
경우에는 그나마 수심이 50 m 정도로 고정식도 가능한 구간이 있  
지만, 대부분의 남해와 동해의 경우 수심이 100 m 이상으로 부유  
식 해상 풍력 발전 시스템으로 가야만 합니다. 이러한 환경적 제한  
조건 때문에 우리나라의 풍력 발전은 많은 수가 부유식 해상 풍력  
발전 시스템으로 개발되고 있습니다.  
또한 부유식 해상 풍력 발전의 경우 굉장히 많은 기자재가 필요  
합니다. 필요한 기자재로는 풍력 발전기 그 자체 뿐 아니라, 발전  
기를 지지하는 타워, 전체 시스템을 수면 위로 띄우기 위한 부유체  
그리고 전체 시스템을 일정한 위치에 고정시키기 위한 계류 시스  
템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기자재들을 공급하는 공급망이  
부유식 해상 풍력 발전의 가장 큰 장애물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과 한화오션 등 세계적인  
조선소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조선소들이 기존에 석  
유산업에 사용되던 해상 플랜트를 굉장히 많이 지어왔기 때문에,  
위에 말한 부유체와 계류 시스템 등은 조선소들이 이미 지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에 더하여 풍력 발전기를 지지하  
는 타워 또한 씨에스윈드, 동국S&C 등의 회사들에서 세계적인 풍  
력 발전기 제조 업체들과 협력하여 굉장히 많이 지어오고 있습니  
다. 이러한 대한민국의 공급망 덕분에, 대한민국의 부유식 해상 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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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경쟁력이 있다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마치며  
이번 기회를 통하여 자세히는 아니지만, 풍력 발전의 개요와 대한  
민국의 부유식 풍력 발전에 대해 써 볼 수 있었습니다. 풍력 발전  
의 경우 앞에 서술한 바와 같이 발전량이 생각보다 굉장히 많고,  
특히 해상 풍력의 경우 적은 수의 풍력 발전기로 굉장히 많은 전  
기를 공급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극복해야 하는 문제들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풍력 발전의  
경우 발전량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바람이 많이 불 때 과생산되  
는 전기를 저장해 두었다가, 바람이 불지 않을 때 사용할 수 있는  
저장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또 다른 예로는 어민들의 어장과 가까  
이 위치하는 경우, 어민들과 공생할 수 있는 해답을 찾고 이를 충  
분히 어민들과 공유해야 합니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풍력 발전, 특히 해상 풍력 발전에 대한  
프로젝트와 연구가 굉장히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고, 기술도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들은 단시간 내에 해결  
책을 찾아낼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의 해상 풍력, 특히 부유식 해상 풍력의 경우  
에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고, 우리나라의 청정 에너지로의  
전환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에너지원입니다. 짧은 글이지만 제  
글을 통해 부유식 해상 풍력 발전에 대해 조금이나마 관심을 가지  
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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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주신 자연을 보호하고, 그리스도인을 포함한 인류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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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과 철학과 음악과 일반과학  
찬양 인도의 준비  
윤용준 / 부산영락교회 성도  
필자는 부산영락교회에서 오랫동안 청년부 찬양팀의 리더로 섬기는  
중이다. 찬양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며 공동체의 회복과 하나님  
의 뜻을 노래하고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하기에, 무엇보다도 예배의 주  
인이 하나님임을 기억하려 한다. 예배드리는 모든 사람의 상황과 감정  
보다 하나님께 집중하는 찬양이 드려지기를 항상 기도한다.  
찬양팀 리더로서의 생각  
찬양팀 리더로써 늘 겪는 고민은 팀원들인 것 같습니다, 이 팀원  
들이 예배에 대한 고민들과 얼마나 많은 영적전쟁에서 힘들어하고  
지쳐있는지 늘 봐야하고 그 팀원들을 위해서 기도하면서 하나님  
안에서 함께함이 얼마나 기쁜건지 알려주고 또 같이 사역하며 교  
제하며 서로를 사랑하는 게 말은 쉽지만 행동이 어렵기에 늘 고민  
입니다.  
회중들을 어떻게 하나님께로 찬양을 통해서 인도하지? 늘 고민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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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 매주 느끼는 고민중 제일 큰 고민인 것 같습니다. 레위인들  
의 마음처럼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는 예배를 늘 드리고 싶어 리더  
가 제일먼저 제일 많이 하나님과 교제 해야하고 찬양콘티를 짜는  
것 부터해서 예배시간 라이브 상황 때까지 정말 많은 고민과 생각  
들이 있습니다. 특히, 그것을 다 이겨내고 매주 그 찬양을 하는 것  
이 정말 힘든 것 같습니다.  
찬양팀 리더를 하면서 겪었던 일중 한 개가 예배 속에서 모두가  
하나님이 허락하신 깊은 임재 속에 들어간 그 모습들을 보았을 때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어 저도 찬양 인도 중 가사를 못 부르고  
울먹거렸던게 기억납니다.  
찬양팀 리더로서의 교회 악기 추천  
1. 어쿠스틱 기타  
주로 통기타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많은 찬양인도자들이 기타는  
거의 매고 찬양인도를 하기 때문에 다른 악기들이 하나도 없어도  
기타 하나로 찬양할 수 있다는 말들을 많이 합니다. 기도회 소모임  
등등 없어서는 안 될 악기라고 생각합니다.  
대략적으로 추천하는 모델은 다음과 같습니다.  
야마하 ll16 are (자체 픽업이 달려있기에 바로 앰프에 케이블 연  
결 후 사용가능)  
마틴 d28 (기본 사운드는 좋은 편이라 픽업은 따로 구매해서 연  
- 102 -  
결해야 함)  
테일러 314ce (자체픽업이 달려있기에 바로 앰프에 케이블 연결  
후 사용가능)  
2. 일렉 기타 & 베이스 기타  
일렉이랑 베이스 기타는 제가 잘 모르는 악기라서 보통 베이스는  
야마하 브랜드의 모델을 가성비있게 사용하고, 일렉기타도 일본산  
펜더를 많이 사용합니다.  
3. 신디&신디사이저  
신디와 신디사이저도 마찬가지로 야마하 모델을 많이 사용합니다.  
4. 드럼  
야마하, 롤랜드 모델을 주로 사용합니다.  
- 103 -  
나가며  
COVID-19 팬데믹 이후 신학적·  
목회적 패러다임의 변화 예측 :  
성경해석학적 측면에서  
장창한 / 열린개혁교회 담임목사  
개혁신학은 그 어떤 그리스도교 분파보다도 가장 논리성을 강조  
한다. 왜냐하면, 개혁신학은 스콜라적 논리1)를 활용한 중세가톨릭  
신학을 극복하는 과정에 태동했기 때문이다. 참으로 이는 신비롭게  
도 개혁신학에 끊임없는 생명력을 불어 넣는 동인(動因)이다.  
관련하여, 개혁신학에서 논리의 변화로 귀결되는 신학적 극복 또  
는 갱신 또는 발전은 다양한 해석학2)적 수용을 내포한다. 왜냐하  
면, 다양한 해석학적 관점의 등장으로 말미암는 평범한 인간들의  
1) 정확히 말하면, 모든 일반 학문의 영역을 포괄한 해석학에 사용된 스콜  
라적 논리일 것이다.  
2) 아직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주어지지 않은 미지의 또는 미래의 해석학  
적 관점까지 포함한다.  
- 104 -  
시대적 삶과 그에 연관된 철학적 질문에 개혁신학이 점차 논리적  
으로 대답하기 때문이다. 곧, 개혁신학은 ‘해석학3)에 관련된 신학  
적 논리 발전’으로 그것의 발달을 특징지을 수 있다.  
4)  
개혁신학적 해석학 나선형적 발전과 귀결  
원론적이지만 너무나 중요한 사항을 짚고자 한다. 바로, 개혁신학  
적 해석학은 역사의 흐름에 따라, 소위, ‘나선형’으로 전개되되 최  
종적으로 ‘진리’라는 하나의 점으로 귀결된다는 점이다. 이는 결과  
적인 분석이자 최종적인 결론으로서 결코 경험적으로 또한 논리적  
으로 누구에게도 부정되지 않는다.  
관련하여, 모든 개혁신학적 해석자는 성경해석에 관한 나름대로의  
각종 신학적 철학적 사회적 인문학적 선이해(preunderstanding)  
들을 갖는다. 이는 어느 역사적 지점에 위치한 개혁신학적 해석자  
들에게든 공통적으로 적용된다.  
단, 성경본문의 연구가 진행되는 동안 그 해석자의 선이해는 더  
이상 본문 연구 이전의 선이해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이해로 발전  
한다. 왜냐하면, 본질적으로 성경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한 신  
비로운 기록으로서, 성경 그 자체로 성경을 해석하여, 하나님에 관  
3) 2)과 마찬가지로역시, 모든 시대와 학문의 영역을 포괄한 해석학을 의  
미한다.  
4) 관련하여, 필자가 본 연구소 홈페이지 연구소장 저작물란에 업로드한  
자료들(‘개혁교회 성경해석학 개론’)을 참고하길 바란다. 그것들은 개혁  
신학적 해석학의 나선형적 발전과 귀결에 요구되는 전제들을 중점적으  
로 다룬다.  
- 105 -  
한 심오한 사상을 그에게 새로이 불어넣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성경은 그것을 해석하는 해석자에게 성경해석상 하나  
님의 본질적인 뜻에 부합하는 점진적인 해석학적 발전을 성취하도  
록 다시 말해, 그가 살아가는 사회의 특정 상황에 그것이 알맞도록  
유도한다. 물론, 종말이 오기 전까지 다시 말해, 하나님을 직접 대  
면하여 볼 수 있을 때까지5) 끊임없이 말이다.  
COVID-19 바이러스 팬데믹 이후의 해석학적 패러다임  
‘극복 의지’의 강화  
COVID-19 바이러스 팬데믹은 개혁신학적 성경해석학의 나선형  
적 발전에 있어, 현재 신학적 소재에 관해 한국교회에 ‘극복 의지’  
를 다루도록 요구한다.6)  
관련하여, 폴 리쾨르(Paul Ricoeur)는 ‘의지의 시학’이라는 이름  
의 미완성 책에서 구원받은 자가 현실에서 접하는 다양한 ‘문제적  
구원의 결정 요인(예_죄, 죄로 말미암는 악 구원유무를 결정하는  
부정적 요인)’에 맞서 어떻게 구원받을지 또는 어떻게 구원 받은  
자로 살 수 있는지를 ‘의지’라는 키워드로 다룬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COVID-19 바이러스 팬데믹 이후 많  
5) 이는 성경을 해석함에 있어, 마지막 포인트에 해당한다. 대략적으로 말  
하면, 하나님을 대면하지 못하는 순간까지 성경은 해석된다.  
6) 신앙 공동체와 신앙인 개인에 관해 그러하되, 특히, 신앙인 개인에 대  
해 그러하다. 2023년 10월 31일 현재 COVID-19 바이러스 팬데믹에  
후속한 의료적 경제적 어려움은 한국 사회 전반에 점차 다양한 형태로  
심화되는 중이다.  
- 106 -  
은 그리스도인들은 현세적 생존을 위협 받았고, 지금도 그로 말미  
암는 다양한 한계적 생존 상황에 직면한다. 다시 말해, 그들은 하  
나님을 신앙할 의지와 그것에 반하여 생존하려는(죄 또는 죄로 말  
미암는 악에 해당하는) 의지에 관해 알게 또는 모르게 오랫동안 갈  
등했고, 지금도 지속적으로 그러하다.  
긍정적으로 말하면, 폴 리쾨르의 ‘의지의 시학’은 COVID-19 팬  
데믹으로 말미암아 ‘자신에게 구원 받으려는 의지가 존재함’을 그  
리스도인들에게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증명하고 싶도록 유도했  
다.7) 다시 말해, 그의 신학은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신앙에 관한  
인간의 의지란 무엇이며, 그것이 구원 또는 구원받은 자의 삶과 어  
떤 점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관해 고민하도록 문제를 제기했고,  
그에 대한 하나의 대답으로 작용했다.8) 이런 방식으로 그는  
7) 예컨대, 한국교회에서 소위 ‘다시 믿음 안에 거하자!’ 또는 ‘다시 하나  
님께 돌아가자!’ 등의 회복 의지를 드러내는 직간접적 표어와 문구를  
지난 2023년 내내 쉽게 접할 수 있었다.  
8) ‘아래로부터의 신학’을 대표하는 폴 리쾨르가 ‘의지’를 ‘비움’과 함께  
다룸은 한편으로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개혁신학에 큰 진  
보를 가져올 수 있다.  
예컨데, 개혁신학은 ‘의지’와 ‘비움’을 ‘예수 그리스도와의 신비로운  
연합’을 매개로 충분히 신학적으로 다룰 수 있다. 관련하여, 필자는 안  
타깝게도 칼빈의 부정신학적 측면이 칼빈의 작품 내에서만 수백년간  
머물렀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칼빈의 위대한 유산을 다른 신학자들에  
게도 적용할 수 있도록 그것을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  
결론적으로 폴 리쾨르는 전통적인 개혁신학의 ‘의지와 비움’에 관한  
설명 가능성과 상당히 다른 결로 그것들의 관계를 개진했으나, 예컨대,  
‘예수 그리스도와의 신비로운 연합’으로 대표되는 하나님의 은총이 개  
인의 구원받으려는 의지를 전제적으로 유발할 수 있음으로 그것에 부  
연설명할 수 있다.  
또한, 개혁신학은 폴 리쾨르의 ‘의지와 비움’에 관한 견해 개진으로부  
터, 현실적으로 필요한 논리들을 추출하되,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 107 -  
COVID-19 바이러스 팬데믹으로 말미암아 현세적 생존에 관한 환  
란을 경험 중인 그리스도인들에게 ‘구원사적 자신의 위상’을 상기  
시키는 데에 공헌하는 역할을 했다.  
나아가, 폴 리쾨르는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소위 ‘창조로 증명되  
는 넘치는 사랑(transcreation)’9)에 집중하도록 유도한다. 그는 여  
러 측면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소위 현세적으로 극복해야 할 생존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키워드를 주지시키고  
유용하게 사용하도록 그들에게 제안한다.  
그렇다. 비록, 미완성이라는 한계로 인해 폴 리쾨르가 그의 작품  
에서 구체적으로 ‘다양한 문제적 구원의 결정 요인(예_죄, 죄로 말  
미암는 악)’에 맞서 어떻게 구원받을지 또는 어떻게 구원 받은 자  
로 살 수 있는지를 상술하지 않지만, 현실적으로 그가 남긴 신학적  
유산은 한국교회의 목회적 상황에서 활발히 작동하는 중이다.  
관련하여, 필자는 추후 폴 리쾨르가 전개한 미완의 개념인 ‘비움’  
에 관해, 심층적 연구가 진행되어 ‘위로부터의 신학’을 전제한 인  
간의 극복 의지가 더 깊이 개혁신학적으로 다루어지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안타깝게도 현실적으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위로부터  
의 신학’을 확고히 하지 못한 채, 다시 말해, 그것을 논리적으로  
계속적 중보’를 전제로 ‘구원 의지의 피동성’ 및 ‘그리스도인으로서 공  
적인 영역으로의 기여 의무’ 등을 다룰 수 있다. 이는 ‘COVID-19 바  
이러스 팬데믹 이후 고난 당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1차적으로 ‘극복  
의지’를 피력할 수 있는 토대이자, 비그리스도인들에게 2차적으로 ‘극  
복 의지’라는 희망을 제공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9) 정기철, “의지의 시학: 리쾨르 이후의 신학”, 범한철학, 2021, 92, 95,  
110.  
- 108 -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주시는 은혜로 연결하지 못한 채, 단순히  
자신에게 존재하는 특정 문제에 관한 ‘극복 의지’를 중심으로 폴  
리쾨르의 논리를 삶에 사용하기 때문이다. 단언컨대, 신학에서 ‘비  
움’은 ‘의지’와 연결되기 위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둘의 가운  
데에 둔 채, 논의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필자가 ‘들어가는 말’에  
서 다룬 부정신학적 개념10)을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  
COVID-19 바이러스 팬데믹 이후의 목회학적 패러다임  
‘글로컬’에 따른 신앙 강화 계기를 맞이한 가정과 그들의  
예배당 활용을 중심으로  
흑사병으로 말미암은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은 종교적, 인문학적 갱  
신뿐만 아니라 사회문화 전반에 실제적 개혁을 가져왔다.11) 이와  
마찬가지로 COVID-19 바이러스 팬데믹은 새로운 ‘흑사병’으로서,  
현대 인류에게 비슷한 효과를 낼 것이고, 실제 그러하는 중이다.12)  
10) 구체적으로 한국개혁교회 성도들이 폴 리쾨르의 작품을 대할 때, 그  
리스도와의 신비로운 연합과 의의 전가와 그리스도의 중보 등을 떠올  
리거나, 폴 리쾨르의 신학체계에 접목할 수 있어야 한다. 각주 8에서  
언급했듯이 말이다.  
11) 최용성, 강순규, 최병학, “팬데믹과 개혁교회의 패러다임적 대응”, 신  
앙과 학문, 2021, 89.  
12) 이는 1차적으로 COVID-19 바이러스 뿐만 아니라 새로운 각종 유형  
의 병원체로 말미암아 가속화 되는 중이다. 예를 들어, 독감과 폐렴 등  
호흡기 질환의 유병률이 이미 증가했고, 나아가, 익히 알려진 것처럼,  
대표적으로 지구의 소위, ‘영구동토’가 앞으로 급격히 녹아내려 봉인되  
었던 새로운 병원체가 유행할 수 있다. 물론, 이는 1차적으로 의료적  
위협을 그리고 2차적으로 그에 파생하는 경제적 위협을 인류의 생존에  
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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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지만, 흑사병은 중세의 4중 의미의 해석학, 알레고리적  
성서해석학 패러다임 등과 단절하면서 동방교회, 비잔틴 문화, 르  
네상스 인문주의적 전통에서 영향받은 역사적, 문법적 해석학의 통  
찰을 에라스무스가 혁명(개혁)과학화 하게 된 대표적인 동인(動因)  
이었다. 특히, 그것은 에라스무스의 영향 속에서 칼빈, 쯔빙글리,  
멜랑톤, 부쩌와 같은 인문주의자들로 말미암아 역사적, 문법적, 해  
석학적, 또한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이라는 해석학적 원리를  
그들의 삶의 자리(Sitz im Leben)에서 발전시키게 했다.  
물론, COVID-19 바이러스 팬데믹도 그렇게 구체적으로 작용하  
기 시작했고, 앞으로 더욱 그러할 것이다. 곧, COVID-19 바이러  
스 팬데믹(또는 그 이후의 특정 미생물 팬데믹)은 인류의 모든 삶  
의 영역을 변화시키는 기폭제로서, 특히, 신학의 역사적, 문법적,  
해석학적 특이점으로 작용하여 그것에 올바로 반응한 그리스도교  
교파를 발전 및 성장시킬 것이다. 긍정적으로 예상하면 말이다.  
단, COVID-19 바이러스 팬데믹은 당시 사회에서 로컬한 영향을  
끼친 ‘흑사병’과 달리, 현대 사회에서 ‘글로컬’하게 영향을 끼친다.  
왜냐하면, 현재 그리스도인을 포함한 모든 인간의 삶의 중심에 그  
것을 이끌어 내는 4차 산업혁명이 있기 때문이다. 곧, 비신앙인이  
든 신앙인이든 그들의 ‘대면 또는 비대면 활동’에 있어, ‘시공간의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중이다. 다시 말해, COVID-19 바이러스 팬  
데믹으로 말미암는 역사적, 문법적, 해석학적 변화는 반드시 이러  
한 ‘글로컬한 시대적 특징’을 염두하여 대비해야 한다.  
관련하여, 필자는 현대교회의 목회적 변화에 직결되어 그것에 가  
- 110 -  
장 큰 영향을 끼치는 ‘교회 예배당 운영’에 있어, 이를 실용적으로  
대비하도록 제언하고 싶다. 이제, 특정 건물 장소성에 치중한 '외  
형적 교회주의'는 그 동력을 상실하고 오히려 디지털 시대, 언택트  
시대에 온라인 '인프라 공간'을 확충하는 장소성, 공간성이 중요시  
되리라 예상하기 때문이다.  
곧, ‘교회 예배당 운영’은 종교적 기능을 수행하는 장소성을 확장  
하여, 세속적인 회사나 가정과 접속되는 하이브리드(hybrid)적 특  
성에 집중해야 한다.13) 물론, 그중에서도 미디어 대응력을 갖춘 소  
위, 작고 민첩한 체질의 교회 운영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14)  
특히, 필자는 전통적인 대면 개념을 지닌 지역적 교회 공동체의  
소속감을 지속적으로 유지 및 강화하기 위해, ‘특정 장소’를 기반  
으로 하되, 그것을 초월하는 ‘온라인 공간’에서 교회가 운영되어야  
함으로 향후 다룰 내용을 갈음하고 싶다. 곧, 대면과 비대면을 모  
두 아우르는 ‘미래지향적 예배당’으로 요약·정리할 수 있는 ‘글로  
컬한15) 교제의 공간’으로 기존 신앙인들과 장래의 신앙인들 간에  
소속감, 공간성, 장소성을 넓히는 예배당 개념이 필요하다.  
13) 최용성, 강순규, 최병학, “팬데믹과 개혁교회의 패러다임적 대응”, 신  
앙과 학문, 2021, 102.  
14) 최용성, 강순규, 최병학, “팬데믹과 개혁교회의 패러다임적 대응”, 신  
앙과 학문, 2021, 103.  
15) 이를 장소적인 표현으로 한정하여 이해하는 경우가 많겠으나, 사실  
그렇지 않다. 이는 장소적인 것만이 아니라 시간적인 개념을 포함한다.  
쉽게 말해, 이제 각각의 교회는 전지구적 다중접속(multi-junction)이  
언제 어디서든 가능한 도구를 필수적으로 사용해야 한다.(최용성, 강순  
규, 최병학, “팬데믹과 개혁교회의 패러다임적 대응”, 신앙과 학문, 20  
21, 103.)  
- 111 -  
그중, 예배당의 비대면 개념을 포괄하는 ‘접촉’은 글로벌한 예배  
당 중심 만남을 충족시킬만큼 4차 산업적으로 적절히 준비되어야  
할 것이다. 예컨대, 비대면 상황에서 대면 상황만큼 최대한 끌어올  
린 현장감(reality)을 제공할 수 있다면, 기존의 대면 예배당을 바  
탕으로 또한 그것을 포함하여 말 그대로 ‘글로컬한 예배당’이 될  
수 있다.16)  
대표적으로 작은 교회의 경우 따로 건물공간으로서의 교회를 소  
유할 필요없이 교회 구성원의 한 가정에서 사역할 수도 있을 것이  
다. 목사의 집이 언제든 예배당이 될 수 있고, 다른 성도의 집이  
언제든 그것이 될 수 있다. 곧, 누군가의 거실에서 로컬한 모임을  
유지하되, 글로벌하게 교회원을 연결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장점 외에도 부가적으로 누군가의 집에서 인도하는  
‘거실’ 예배의 경우, 굳이 피아노가 없더라도 원격으로 접속한 가  
정용 키보드나 기타를 동반한 노래와 함께 본격적인 예배를 드릴  
수 있다. 물론, 관련해서 멀리 떨어진 각각의 성가대 구성원 예를  
들어, 반주자나 지휘자나 성가대원들이 한 자리에 모여야만 했던  
과거의 방식을 대체해서 찬양할 수 있다.17) 이렇게 될 때 해당 구  
16) 단언컨대, 이미 생물학적 기계적 통신적 기술에 있어 인조인간의 출  
현이 멀지 않았다. 장담컨대, 인조인간이 출현하기 전, 반드시 인류는  
비대면의 대면화를 그것의 제작기술을 활용하여 성취할 것이다. 예를  
들어, 엄청난 데이터 전송을 통한 세미한 변화를 인지 및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이 다양한 논문과 박람회를 통해 실증되는 중이다.  
17) 또한 라이브 스트리밍 서비스에 미리 준비된 로컬한 성도들의 큐티  
리뷰나 독서 리뷰, 다른 영상편집이 포함될 수 있다. 예컨대, 이는 예  
배(다른 각종 공동체적 신앙생활을 포함할 수 있음)를 시각적으로 풍성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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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원의 집은 그 자리에 모인 성도들과 함께 글로컬한 교회로 자연  
스레 공시적(共時的, synchronic)으로 확장된다.18)  
그렇다. 한국개혁교회는 기존 대면 예배당 중심의 사역 장점을 취  
하고, COVID-19 바이러스 팬데믹으로 말미암은 변화하는 시대상  
에 맞추어 그것에서 소홀하게 취급되었던 ‘가정, 예배 공간, 교제,  
교육공간’ 등의 다양한 한계점을 극복할 수 있다.19) 곧, 필자가 제  
안하는 글로컬한 예배당으로의 전환은 교회의 재정관리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교회 구성원 각자에게 더욱 신앙적 필요 또는  
갈급함을 채우는 훌륭한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20) 실로, 지금은  
대면 신앙생활의 장점을 취하고 그것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비  
대면 신앙생활을 신앙생활의 영역에 귀속시켜야 할 시점이다.  
분명히 이러한 가정 중심적 글로컬 예배당 운영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지만, 다양한 해석학적 관점의 태동으로 말미암는 너  
무나 많은 상황적 변수를 가진 ‘역사적, 문법적, 해석학적 변화’를  
대비함에 있어 필수적일 것이다. 그 어떤 무형의 변화를 제대로 준  
18) 최용성, 강순규, 최병학, “팬데믹과 개혁교회의 패러다임적 대응”, 신  
앙과 학문, 2021, 104.  
19) 최용성, 강순규, 최병학, “팬데믹과 개혁교회의 패러다임적 대응”, 신  
앙과 학문, 2021, 104.  
20) 많은 현대 그리스도인이 가정을 교회화 시키는데에 실패했고, 그러하  
는 중이다. 전통적으로 개혁교회에서 가정을 교회의 시발점으로 여기  
는 것을 고려할 때, 필자가 제안한 글로컬한 교회로 발전하는 것은 매  
우 창발적(emergent) 사고이다. 아마, 대한민국의 교회가 처한 상황을  
고려할 때, 필자의 제안은 가정과 교회를 동시에 살릴 수 있는 가장  
적절한 해법일 것이다. 장차 인류는 시공간적으로 더욱 복잡하고 확장  
된 생활을 영위해야 할 것이다.(최용성, 강순규, 최병학, “팬데믹과 개  
혁교회의 패러다임적 대응”, 신앙과 학문, 2021, 104,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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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려면, 반드시 당대에 주류를 이루는 과학기술의 진보 방향을  
제대로 이해하고 대비하고 활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현실에  
서 동떨어진 또는 영향력이 없는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세상의 흐  
름에서 벗어난 교회로 낙오될 수 밖에 없다.  
적절한 표현인지 모르겠으나, 다만 비유하는 바는 언제나 그러하  
듯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는 함께 바뀌고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법이라는 점이다. 곧, 그리스도인들의 외형적 신앙생활이 바뀌면,  
내형적 신앙생활에 영향을 주고, 그 반대도 항상 성립한다. 어쩌  
면, 어떤 신앙인에게 외형적인 것 하나21)만 바뀔 경우, 그에게 내  
형적인 것도 하나22)가 바뀌었는지 따끔하게 물어볼 수도 있지 않  
을까?  
21) 예컨대, 4차 산업을 대표하는 AR, 자율주행차 등 새로운 물품의 사용  
을 들 수 있다.  
22) 예컨대, ‘4차 산업을 대표하는 AR, 자율주행차 등의 사용이 신앙생활  
에 어떤 하나의 기여를 했는지?(QT, 예배 참여 등)’를 물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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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칼빈의 서신에 나타난 칼빈신학의  
적소성대(積小成大)3  
장창한 / 열린개혁교회 담임목사  
(지난 호에서 이어집니다.)  
12. 칼빈이 드 투리에게와 프랑수아 다니엘에게(12번 편  
지)  
“안녕히, 친구여. 언젠가 우리에 대한 기억이 떠오르거들랑 답신  
을 보내게나  
파리에서, 시몬 축일 전날,”23)  
해당 문장이 사용된 부분에서 칼빈은 당시의 가톨릭교회 중심적  
월력(달력)을 사용한다. 이는 그가 그것 자체24)에 대해 무조건 배  
23) 박건택, “칼빈 서간집1”, 크리스천 르네상스, 2014, 46.  
24) ‘가톨릭교회에서 당시 사용했던 무엇임’이 강조된 표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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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하지 않고, 오히려 유연하게 대처 또는 활용함을 보여준다. 곧,  
칼빈에게 당시 월력(달력)은 삶을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수치화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도구로 여겨진다. 다시 말해, 칼빈은 그것을 교  
회 정치적 도구로 이용하지 않는다.25)  
“단, 프랑베르는 빼게나. 나는 그를 부드럽게 구슬릴 수도 없었  
고, 또 꾸짖어서 얻어 낼 수도 없었기에 침묵으로서 그를 길들이기  
로 결심했다네. 게다가 무엇보다도 고약한 것은, 그의 형[혹은 동  
생]이 이곳에 왔는데도 그는 형을 통해 내게 단 한 마디의 안부조  
차 전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네.”26)  
해당 문장이 사용된 부분에서 칼빈은 누군가에게 소위 ‘인간적 도  
리’에 관한 관점을 드러낸다. 이는 칼빈을 다분히 평범한 성정(性  
情)을 지닌 인물로 추측케 하되, 그가 결단코 인간관계에서 기본적  
으로 요구되는 것들을 무의미하게 여기지 않음을 보여준다.  
“자네에게 우리 G의 또 다른 <개요서>를 보내네.”  
COR의 관점을 따라, 해당 문장이 사용된 부분의 G를 인명(人名)  
25) 이는 무작정 가톨릭교회에서 파생된 또는 관련된 것들을 교인들에게  
경멸 또는 경계하도록 유도하는 현대교회에 교훈을 준다. 모든 것은  
대게 그 자체로 가치중립적이며, 단지 그것의 본질을 어떻게 현실에  
적절히 사용하느냐로 그것의 신앙적 효용이 결정된다. 이점을 분명히  
인식한 채, 신앙적으로 가치중립적인 모든 것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  
26) 박건택, “칼빈 서간집1”, 크리스천 르네상스, 2014, 46.  
- 116 -  
인 제라르 루셀(루터적 견해를 가진 당시 왕비의 고해 신부)27)  
이하할 경우, 칼빈이 당시 사순절 예배(=미사)에 참여한 것일 수  
있다. 이 경우, 당시 칼빈이 가톨릭 교회 중심의 예배28)에 100%  
또는 무조건적으로 참여하지 않거나 그 자체를 신앙적으로 무의미  
하게 다루지 않음을 추론할 수 있다.  
13. 칼빈이 프랑수아 다니엘에게(13번 편지)  
“편지 쓸 소재를 제공하는 수많은 일들이 내 손에 있지만, 자네가  
긴 이야기 대신 많은 목록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 펜을 조절하겠  
네.”29)  
해당 문장을 시작으로 칼빈은 13번 편지(=왕비의 종교관을 비판  
하는 연극 ‘단 하나’가 왕권과 사제들 사이의 관계에 몰고오는 영  
향력과 그것의 인과관계를 분석함)에서 프랑수아 다니엘에게 자신  
의 사회 정세에 대한 파악능력(=통찰력)을 드러낸다. 칼빈은 자신  
의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정치적 관점으로 보며, 그것이 사회  
적으로 특히, 종교개혁자들에게 가져올 파장을 계산한다.30)  
27) 박건택, “칼빈 서간집1”, 크리스천 르네상스, 2014, 48.  
28) 특히, 중세가톨릭교회적 절기의 개념이 강하다.(박건택, “칼빈 서간집  
1”, 크리스천 르네상스, 2014, 47.)  
29) 박건택, “칼빈 서간집1”, 크리스천 르네상스, 2014, 48.  
30) 칼빈의 이러한 일련의 경험은 그가 정치와 종교에 관한 관점을 그의  
저작에서 서술하는데에 필연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렇다. 칼빈은  
정치와 종교를 무조건 이원화하여 다루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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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칼빈이 프랑수아 다니엘에게(14번 편지)  
“나는 그를 도와주는 것이 내 의무라고 생각하기에 자네가 거주  
하는 도시에서 그가 전적으로 생소한 손님이 되지 않도록 그를 추  
천해 주려고 하네. [중략] 의사를 추천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  
는지 잘 알고 있다네. [중략] 그가 자신의 학문에 대해 제대로 배  
웠다는 것과, 미숙함 때문에 쉽게 그르칠 정도로 경험 부족은 아니  
라는 것이네. 나아가 영혼의 가르침보다 더 나은 가르침은 없네.  
[중략] 자신의 생명의 위기와 더불어 미지의 것을 시험해야 하는  
사람들이 감히 자신들을 그에게 안전하게 맡기도록, 할 수 있는 한  
노력하게.”31)  
해당 문장이 사용된 부분에서 칼빈은 프랑수아 다니엘에게 의사  
를 추천하되, 배움의 깊이(=충분한 전문 지식)와 경험(=임상적 경  
력)의 양을 강조한다. 물론, 실질적인 공동체의 유익(=예컨대, 질병  
으로부터 치유됨)을 확신하며 말이다.32) 그렇다. 칼빈은 실질적인  
종교적 유익과 함께 그것을 돌출하기 위해 현실적으로 요구되는  
것들의 중요성을 고려한다. 이는 칼빈에게 목회적 감각이 없지 않  
음을 잘 드러낸다.  
31) 박건택, “칼빈 서간집1”, 크리스천 르네상스, 2014, 53-54.  
32) 편지가 집필되는 종교개혁시대에 전염병이 자주 창궐했음을 고려할  
때, 이는 의술에 관한 칼빈의 실용적 입장과 추천한 자와 추천받은 자  
사이의 관계유지에 요구되는 목회자로서의 고뇌를 유추케 한다.  
- 118 -  
15. 프랑수아 다니엘이 칼빈에게(15번 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즉시 자네에게 편지를 쓰진 못했네. 왜  
냐하면 자네는 내가 편지를 보내야 할 파리에 없었기 때문이지. 나  
는 자네가 무엇을 하는지, 얼마나 잘 있는지, 어디 있는지 알고 싶  
다네. 그러니 될 수 있는대로 빨리 우리에게 알려 주게나.”33)  
해당 문장이 사용된 부분에서 프랑수아 다니엘 등 주위 사람들에  
게 칼빈이 자신들의 안부를 세밀히 전하지 못함을 알 수 있다. 과  
련하여, 그들은 그점에 대해 칼빈에게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는다.  
달리 말해, 칼빈은 정신없이 종교개혁에 집중했거나 어떠한 긴박한  
사정(예컨대, 가톨릭교회의 핍박)으로 자신의 주위 사람들에게 안  
부를 전하지 못했고, 이에 주위 사람들은 칼빈에게 섭섭한 마음을  
나타낸다.  
아마, 칼빈은 그에게 주어진 시대적 형편으로 인해 이와 비슷한  
상황을 많이 경험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향  
후 종교개혁이 본격화 되었을 때, 칼빈은 그러한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도록 철저히 노력했을 것이다.34)  
16. 칼빈이 프랑수아 다니엘에게(16번 편지)  
33) 박건택, “칼빈 서간집1”, 크리스천 르네상스, 2014, 56.  
34) 목회자로서 주위의 각종 사람들에게 섭섭함을 주는 것은 단 한번이라  
도 목회적으로 그리 좋지 않다. 총명한 칼빈은 목회자로서 이런 서신  
(편지)를 받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관계를 철저히 관리하는 훈련의  
필요를 충분히 인지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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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내 후견인의 친절이 아주 많이 게으른 자의 무기력  
을 자극할 수도 있나 보네. 왜냐하면 내가 [후견인의 친절이] 저술  
을 위한 친절이라는 걸 명백히 깨닫고 있으니 말이야. [중략] 물론,  
내가 모든 열심을 기울인다 해서 무슨 적절한, 혹은 적절치 못한  
보답을 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내가 갚아야 할 은혜의  
양이 너무 크다네. [중략] 내게 부과된 너무도 큰 평가 때문에 말  
이지.”35)  
해당 문장이 사용된 부분에서 칼빈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바  
탕으로 누군가가 자신의 사역을 후원할 수 있음을 전제 및 강조한  
다. 물론, 칼빈은 하나님과 그 후원인에게 각각 감사한다. 후원인  
으로 말미암는 자신의 사역에 자신에게 요구되는 커다란 무게가  
있음을 기억하며 말이다.36)  
“나는 우리가 우리 앞을 멀리 내다볼 수 없다는 것을 경험으로  
배웠네. 내가 스스로에게 편안하고 조용한 생애를 약속했던 그때,  
가장 예상치 못했던 일이 가까이 있었네. 그런데 반대로, 내 상황  
이 유쾌하지 않아 보였을 그때, 내 예상을 벗어나 나를 위해 조용  
한 보금자리가 세워졌다네. 이것이 주님의 일하심이지.”37)  
35) 박건택, “칼빈 서간집1”, 크리스천 르네상스, 2014, 57-58.  
36) 이는 칼빈의 감사 대상이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께 사용받는 사람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칼빈의 경험은 그가 하나님과 사람에게 동시에 감사  
를 해야 한다는 신학적 명제를 도출하고 깊이 고민하도록 유도했을 것  
이다. 관련하여, 본 서신에서 칼빈이 후원을 얼마나 간절히 필요로 했  
는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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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은 후원을 받지 못하던 상황에서 다행히 후원 받는 상황으로  
바뀜에 큰 감명을 받는다. 이는 편지 16 전반부와 특히 후반부에  
서 드러난다. 편지에서 잘 드러나듯 칼빈은 이를 조용히 자신을 위  
해 일하는 하나님으로 갈음한다. 즉, 칼빈은 16번째 편지를 쓸 때  
여러 조력자들38)로 기뻐하며, 상황의 이면에서 역사하신 하나님을  
핵심적으로 찬양한다.  
17. 칼빈이 어떤 친구에게(17번 편지)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진영도, 무기도, 그리고 전략도 모르는 그  
런 적대자들과 전투를 시작하는 것이 용이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나는 아직도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고, 단지 막연한  
어떤 중얼거림만 들었을 뿐입니다. [중략] 그들은 이 수면이란 말  
이 의미하는 것을 은근히 알리지 않았습니다.”39)  
칼빈은 편지 17(영혼수면론 논박- Vivere apud Christum, 초  
판, 친구에게 주는 헌정 서한)에서 영혼수면론자들이 공적인 신학  
37) 박건택, “칼빈 서간집1”, 크리스천 르네상스, 2014, 58.  
38) 필자는 이를 나바르 왕비로 지목하려 한다.(박건택, “칼빈 서간집1”,  
크리스천 르네상스, 2014, 58.) 참고로, 편지 원문인 Genevan Ms. l  
at. 111.을 참고하여, Doxopoili(조력자로 번역됨)의 의미를 서신들의  
자연스러운 연결흐름에 따라 각자 판단하길 바란다.(CHRISTOPH BU  
RGER, “IOANNIS CALVINI EPISTOLAE VOLUMEN I”, LIBRAIRI  
E DROZ 11, 2005, 94.)  
39) 박건택, “칼빈 서간집1”, 크리스천 르네상스, 2014, 5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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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논의의 장에 참여하지 않음을 비판한다. 물론, 이는 칼빈에게  
그들의 주장을 의도적으로 정확히 설명하지 않기 위함으로 칼빈에  
게 받아들여진다. 관련하여, 칼빈은 영혼수면론자들이 구체적인 논  
리적 설명 또는 근거 없이 그저 직관적으로40) 자신들의 주장을 합  
리화한다며 그들을 평가절하한다.  
“나는 어떤 악의도 없이, 또 어떤 사람에게도 집착함 없이, 그리  
고 야유하거나 헐뜯을 생각 없이 [이 문제를] 토론할 것이기 때문  
에 그 누구도 나로 인해 상처를 받았고, 심지어 그것이 어떤 종류  
이건 간에 모욕당했다고 해서 똑바로 불평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나는 우선 그들에게 우리가 그리스도에 기초한 연합 외에는 아무  
런 연합도 인정하지 않으며, 그리스도가 유대가 되는 사랑 외에는  
그 어떤 사랑도 인정하지 않는다고 대답합니다. [중략] 나아가 그  
들이 내가 심사숙고 끝에 혀를 가져온 것과 같은 식으로 귀를 가  
져온다면, 이 토론은 사랑에 아무 상처를 주지 않고서 결단될([이  
뤄질] 수 있다고 대답합니다.”41)  
40) 칼빈은 영혼수면론자들의 주장, 곧, 망상(妄想)을 이성과 판단에 근거  
하지 않은 것으로 표현한다. 이는 그들의 주장이 신학적으로 무논리에  
근거한다는 대단히 중요한 지적이다.  
참고로, 영혼수면론자들의 이러한 주장은 한편으로 신학적 논리 전개  
를 중요하게 여기면서도 한편으로 그렇지 않은 당시 가톨릭신학의 한  
계를 드러낸다. 대표적으로 당시 수도원에서 주로 유행한 ‘당시의 콘템  
플라치오(Contemplatio, 명상으로 번역 및 정의할 수 있는)’를 바탕으  
로 스콜라적 신학 논리를 전개한 예를 들 수 있을 것이다.  
41) 박건택, “칼빈 서간집1”, 크리스천 르네상스, 2014, 6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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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칼빈은 최근 재세례파 일부에서 영혼수면론을 수용 또는 활  
용하려 한 점을 그들의 신학적 배경과 수준이 미천하기 때문으로  
지적한다.42) 이에, 칼빈은 재세례파 일부에서 태동하기 시작하던  
영혼수면론 수용론자들에게 부드럽고도 단호한 필체로 공적인 신  
학적 논의의 장에 참여해야 함을 요구한다. 이는 신학적 논의에 관  
한 칼빈의 평소 태도43)를 잘 보여준다.  
관련하여, 칼빈은 해당 영혼수면론자들에게 공교회의 일치를 원하  
는 자신의 입장을 곧, 자신이 여전히 그들 중에 존재하는 비가시적  
인 교회에 속한 자들을 사랑함을 매우 강조한다. 이는 재세례파에  
게 공교회에서 벗어날 수 있는 도구 또는 근거를 신학적으로 애초  
에 박탈하기 위함이다. 곧, 칼빈은 철저하게 해당 영혼수면론자들  
을 공적으로 신학적 논의의 장에 참여하도록 자신의 신학적 입장  
을 전개하되, 불필요한 싸움44)으로 신학적 논쟁이 변질되지 않도  
42) 칼빈은 영혼수면론자들의 영혼수면론을 ‘쓸데없는(쓸모없는) 생각들’로  
표현한다.(박건택, “칼빈 서간집1”, 크리스천 르네상스, 2014, 62.)  
43) 공적인 신학토론을 통해 문제적 신학사고를 가진 자들에게 신학적으  
로 변화될 기회를 주는 한편, 확고하게 그것의 방향을 정해주어야 함  
으로 요약된다. 물론, 이는 칼빈의 신학적 논쟁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  
으로 한다.  
44) 대게 신학적 논쟁은 감정 싸움이나 신념 싸움으로 귀결된다. 다시 말  
해, 신학적 사고를 논리적으로 하기 보다, 다른 비논리적인 무엇으로  
그것이 쉽게 함몰될 수 있다.  
적절한 비유인지 모르겠으나, 예컨대 한국 정치판에서 ‘헌번 수정’이  
라는 제안으로 모든 세부적인 정치 테마와 논쟁을 귀결시키는 상황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선동적이고 비논리적인 행동은 주로 대중의 어리  
석음을 전제로 그들을 어리석은 길로 인도해도 괜찮다는 못된 생각을  
가진 자들에게 주로 사용됨에 주의해야 한다.  
참고로, 이러한 칼빈의 적절한 대응은 어거스틴(아우구스티누스)의  
‘요한 서간 강해’를 통해 신학적으로 매우 정당함을 알 수 있다.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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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 대비한다.45)  
18. 칼빈이 황제, 왕, 군주 백성에게(19번 편지)46)  
“이런 사실로 볼 때, 거룩한 작품(성경)은 결코 인간들의 증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 명백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최근에  
출현한 것도 아니고 인간에 의해 진행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  
다.”47)  
올리베탕의 번역 성경 출판시, 칼빈은 인간들로 말미암아 기록  
된 성경이되, 그것의 자체적 또는 자동적 또는 자발적 읽힘(또는  
출판)을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쓰여진 근거라 주장한다. 이때, 놀랍  
게도 칼빈은 ‘성경의 권위’를 논함에 있어, 인간들로 말미암는 서  
을 통해 어거스틴은 비가시적 교회를 중심으로 한 특히, 이단에 관한  
구원론적 교회론을 정립했다. 편지 17로 추측컨데, 칼빈은 어거스틴의  
이러한 신학적 전개방식과 이유를 잘 알았을 것이고, 이처럼 당시 목  
회에 실제적으로 유익을 가져오는 용도로 적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45) 참고로, 칼빈은 영혼수면론자들에게 신학적 심사숙고와 자신의 주장  
에 관한 ‘들을 귀’를 풍자적으로 요구한다. 이는 각주 48에 추가될 수  
있는 칼빈의 평소 특징이기도 하다.  
참고로, 편지 20번에서 칼빈은 크리스토프 파브리에게 그가 자신의  
편지 17(영혼수면론 논박- Vivere apud Christum, 초판, 친구에게  
주는 헌정 서한)을 다소 오해하게 됨을 안타까워 하며, 당시 일상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뉴스거리(예컨대, 문둥병자들에게 성찬을 나누어  
주는 사역을 지속적으로 감당하지 못하고 어떤 목사가 도망간 사건)를  
인용하여, 간접적으로 그의 오해를 풍자하기도 한다.(박건택, “칼빈 서  
간집1”, 크리스천 르네상스, 2014, 74.)  
46) 18번 편지의 경우, 본고의 주제에 부합하는 분석 요소가 없어 곧장 1  
9번 편지를 다루겠다.  
47) 박건택, “칼빈 서간집1”, 크리스천 르네상스, 2014,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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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보증 또는 장려를 제외한다. 즉, 칼빈은 성경이 가장 높은 권  
위를 지닌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신적 권위를 지닌다고 강조하며,  
사람은 누구나 그것의 내용에 순종해야 함을 논증한다.48)  
이후, 칼빈은 백성들(평민들)이 성경을 직접 읽고 연구하며, 종교  
지도자들(사제들)과 성경을 논의할 수 있어야 함을 지적한다. 관련  
하여, 칼빈은 여러 교부들49)의 발언들을 예로 들며, 과거 대부분의  
백성들(평민들)이 게으름과 탐욕으로 인해 스스로 그렇게 하지 못  
했으나, 그리고 현재도 동일한 상황이나, 간혹 과거의 백성들(평민  
들)이 성경을 직접 읽고 연구함으로 이단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었음을 지적한다.50) 칼빈의 이러한 논리전개는 성경의 내용  
에 누구나 순종해야 함을 곧, 달리 말해, 성경의 내용을 누구나 직  
접 읽고 연구하며 누구와도 논의할 수 있어야 함으로 귀결된다.  
“지금 여러 곳에서 인정되고 있는 가장 왜곡된 역본과 비교해서  
보다 순수한 다른 역본이 필요하다는 것을 부인하기 때문에, 그들  
은 분명한 성령 모독자들입니다. 바울은 언어의 해석이 성령의 은  
사임을 주장하고[고전12:10] 그것이 교회의 덕을 세우는 데[고전  
14:5, 12] 이바지할 것을 기대합니다. 만일 그들이 이 은사를 멸  
시한다면 그들은 신성 모독자들입니다. 만일 그들이 많은 사람들에  
48) 박건택, “칼빈 서간집1”, 크리스천 르네상스, 2014, 66.  
49) 크리소스톰(크리소스토무스), 어거스틴(아우구스티누스), 팜필루스, 에  
오세비오 등이 언급된다.(박건택, “칼빈 서간집1”, 크리스천 르네상스,  
2014, 67-68.)  
50) 본 칼빈서신(편지)의 상황성(context)를 고려했을 때, 아마, 칼빈은  
영혼수면론자들을 1차적으로 염두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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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도움을 주는 것을 막기 위해 그 은사를 제거하고자 한다면, 그  
들은 적개심을 가진 불의한 자들입니다.”51)  
해당 문장이 사용된 부분에서 칼빈은 백성들(평민들)이 읽기 쉽  
고, 그간 사용해온 성경의 번역상 오류를 정정하려는 성경 역본의  
필요성을 부인하는 자들을 성령모독자들로 규정한다. 왜냐하면, 그  
들의 행태가 성경에 매장된 진리를 찾지 않도록 하려는 목적을 전  
제하기 때문이다.52)  
“역자에 대해 조금 말하겠습니다. [중략] 그가 근면, 성실, 노력  
을 다했고 지대한 성실함 덕에 이런 번역 일에 숙달될 수 있었  
다는 점에서, 성품상 게으르지 않고 박학다식을 결여하지 않은  
인물임을 밝혀야겠습니다. [중략] 다른 많은 부분에서도 탁월한  
재능을 가진 그는 절제를 통해 자신을 극복합니다. 설령 이 절제  
51) 박건택, “칼빈 서간집1”, 크리스천 르네상스, 2014, 69.  
52) 칼빈은 백성들의 눈높이에서 읽기 쉬워야 해당 역본이 성경으로서 유  
의미함을 강조한다. 관련하여, 칼빈은 “이 새로운 것이 아무런 노력의  
대가도 없이 외부에서 얻어진 것이 명백하다면, 혐오를 받을 만합니다.  
이 새것이 실로 매장된 진리를 들춰내는 한 그 진리를 전적인 호의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가장 수치스러운 [하나님을 향한]배은망덕입니  
다.”라고, 말한다. 이는 해당 역본의 저술이 매우 어려우며, 그러한 노  
력이 매우 당연함을 전제한다.(박건택, “칼빈 서간집1”, 크리스천 르네  
상스, 2014, 69.)  
실로, 라틴어 성경인 당시 불가타 성경은 라틴어에 익숙하지 않은 곧,  
라틴어 교육을 거의 받지 못한 신성로마제국의 백성들(평민들)에게 거  
의 읽혀지지 않았고 또한 읽어질 수 없었다. 물론, 신성로마제국 외의  
기타 범유럽 계통의 당시 사람들은 학술적 언어에 해당했던 당시 라틴  
어에 더더욱 익숙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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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극도의 부끄러움이 우월한 성품은 아니라 해도 하나님의 말  
씀의 증인이요, 거룩하고 불굴의 사람들인 파렐과 비레가 권면과  
재촉으로 그에게 항복을 강요하지 않았더라면, 그가 이런 책임 있  
는 거룩한 노력으로부터 자칫 떠러져 나갈 뻔했던 것입니다.”53)  
칼빈은 성경 역자를 다방면에서 최대한 수사적으로 칭찬하며,  
해당 성경 번역본을 독자들에게 읽도록 권면한다. 이는 누군가를  
또한 그의 작품을 강력히 또한 재미있게 추천을 하는 모습으로서  
칼빈에게 평범함과 친근함을 느끼도록 한다.54)  
19. 칼빈이 크리스토프 파브리에게(20번 편지)  
“곧, ‘영혼의 불멸’에 관한 우리의 소책자 가운데서 어떤 것들은  
그대가 충분히 인정하지 못한다는 것이오. 그런데 나는 이런 그  
대의 견해가 공격적으로 느껴지기는커녕 묘하게도 이런 직설적  
인 솔직함에 대하여 크게 기뻐하고 있다오. [중략] 그러나 같은  
말을 반복함으로써 그대가 쓸데없이 괴로워하지 않도록, 그 책은  
거의 온전한 결정으로 수정되었소. 첨가되거나 삭제된 것은 많지  
않으나, 순서는 전적으로 뒤바뀌었소.”55)  
칼빈은 자신의 편지 17(영혼수면론 논박- Vivere apud  
53) 박건택, “칼빈 서간집1”, 크리스천 르네상스, 2014, 70.  
54) 칼빈은 성경 역자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성경을 번역하게 되었음을  
전제로 이토록 자신의 흥겨움을 드러내는 추천사를 쓴다.  
55) 박건택, “칼빈 서간집1”, 크리스천 르네상스, 2014,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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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um, 초판, 친구에게 주는 헌정 서한)에 오해가 있을 수 있  
음을 시원하게 인정한다. 단, 그는 그것에 아주 극소량의 내용을  
삽입 및 변경할 뿐 전혀 삭제하지 않고 대신, 대게 순서를 바꾸었  
다고 파브리에게 강조한다. 즉, 칼빈은 지난번에 보낸 편지 17(영  
혼수면론 논박- Vivere apud Christum, 초판, 친구에게 주는 헌  
정 서한)을 정리 또는 갈무리하지 못했을 뿐이라 설명한다.  
이러한 면면은 칼빈 스스로의 작품을 향한 열정과 완성도에 관한  
확신을 반영한다. 다시 말해, 칼빈은 최대한 완성도 높은 저작(편  
지를 포함한)을 만들고자 항상 노력했고, 그러해야 하는 이유 또는  
필요를 충분히 인지했다. 물론,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칼빈은 더  
욱 철두철미하게 작품을 완성하고자 노력했을 것이다.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지만, 기록된 것 가운데 내가 결코 빠뜨릴  
생각이 없었던 것이 사라졌소. 그것은 그대와 다른 형제들에게 몇  
마디 말로, 그러나 매우 진심으로 평화의 배양에 대해 권면하는 것  
이었소. 사탄이 의도적으로 그것의 전복을 노리고 있기 때문에, 그  
만큼 더 그대와 여러분 모두는 이 평화의 보존을 위하여 진지하게  
애써야 할 것이오.”56)  
추신란에서 칼빈은 지난번에 크리스토프 파브리가 받은 자신의  
편지 17(영혼수면론 논박- Vivere apud Christum, 초판, 친구에  
게 주는 헌정 서한)에 소위 ‘평화의 배양을 권면함’을 곧, 영혼수  
56) 박건택, “칼빈 서간집1”, 크리스천 르네상스, 2014,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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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론자들 중에 존재하는 비가시적 그리스도인을 향한 칼빈의 사랑  
과 그들이 공적으로 신학적 논의의 장으로 나와야 함을 강조했  
57)을 지적한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자신에 대해 오해하지 않도  
록, 특히, 칼빈을 대함에 있어 또한 종교개혁자로서 어떤 기본적으  
로 요구되는 태도에 있어, ‘평화’를 간접적으로 강조한다. 이는 철  
저하게 원론적인 자세를 점검하는 그의 치밀함58)을 드러낸다. 물  
론,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원인으로 그것이 이전에 보낸 편지에서  
삭제되었음을 지적하며 말이다.  
(이어, “다음 호”에서 계속됩니다.)  
57) 공교롭게도 크리스토프 파브리가 앞서 받은 서신에 그 내용이 빠져있  
었다. 이에, 칼빈은 매우 중요한 내용이 이상하게 빠짐을 지적하고, 다  
시 서신에 그것을 첨부한다.  
58) 특정 신학적 담론을 다룰 때, 칼빈의 이러한 필체는 학자들의 전형적  
인 특징인 까탈스러움을 느끼게 할 수 있다. 이는 그가 신학적으로 중  
요한 무엇인가의 옳고 그름을 서술할 때 자주 드러난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칼빈이 경험한 다양한 인간군상들에게 아마 역으  
로 까탈스러운 면이 있었으리라 추측한다. 칼빈의 서신들을 총체적으  
로 접근하면, 필자는 칼빈의 MBTI를 ESTJ와 ISTJ가 강한 성격으로  
추측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보통 이런 유형의 성격은 외부의 까탈스  
러운 잘못된 신학 사고(특징적으로 스스로 잘 바꿀 수 없음)를 가진 사  
람에게 전반적으로 딱딱한 자세를 취하는 편이다. 물론, 그것은 진리에  
대한 주장의 옳고 그름을 분별하기에 또한 그 주장을 실천하기에 매우  
적절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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σποδασον σεαυτν δκιμον παραστσαι τθεῷ  
ργτην νεπασχυντον  
ρθοτομοντα τν λγον τῆς ἀληθεας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디모데후서 2:15)